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출판 예정 두번째 詩集의 제목입니다.

林森의 인생에 있어서 또다른 전환점이 되는 시기의 시작인
2008년 후반기부터 2010년 전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인 양
정말 많은 量의 詩를 짓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의 나날을 헤쳐나오면서
量産된 詩이니만큼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비감어린 내용과
칙칙한 파스텔톤 색깔의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의 방랑자 다운 林森의 詩心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우는 詩語의 조화가
오묘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는지라,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고
한 데 어울려 함께 눈물짓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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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명 (黎明) *



시작노트

" 여명 (黎明) " 詩作 note

매일 새벽이면 밝아오는 여명의 시간. 어김없이 그 시간이면 반복되는 새벽의 몸짓. 제 아무리 거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해도 맞이해야 하는 새벽. 설령 너무도 그리워 한꺼번에 여러 번의 새벽을 원해도 단 하나씩 밖에는 나누어주지 않는 시간의 배열.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리했으며, 내일도 새벽은 새벽의 이름으로 시작될 거다. 하루를 열어야 하니까.

그렇게 모두에게 골고루 뿌려지는 새벽의 기운.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희망과 찬란한 광명으로 시작하는 그 새벽이, 또 다른 이들에게는 암흑과 칙칙한 절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회한과 미련으로 뒤척이며 마지못해 열린다. 새벽의 얼굴은 그렇게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진다. 하루의 희노애락을 결정짓는 삶의 주사위가 새벽 시간이면 어김없이 어둠을 열고 굴려진다. 그 날의 운세를 결정지어주는 주사위다.

이렇게 평생 살아온 만큼의 무수한 날들마다 경험한 새벽의 얼굴이, 그토록 오랜 시간을 대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언제나 처음 보는 얼굴처럼 낯선지 모르겠다. 의례히 새벽이면 누구나 부시시 잠깨어 일어나기 마련인데, 그리고는 창문을 열고 밝아오는 누리를 바라보곤 하는 게 일상의 버릇이건대, 어째서 새벽마다 처음하는 행동인 것 처럼 어설플까? 대관절 언제가 되어야 새벽을 향해 떳떳하고 자연스럽게 손 내밀 수 있게 되려나?

나의 새벽은 끝없이 방황한다. 그래서 나의 새벽은 가없이 허망타. 그러기에 긴 삶의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나의 새벽은 오늘도 내게 작은 소리로 말한다. “그래, 새벽이야. 제발 오늘은 제대로 한 번 살아봐.” 미처 거두지 못한 밤의 장막을 성급하게 걷고 있는 새벽하늘을 올려다보며, 종주먹 들이댄 나의 반란은 오늘 또 이렇게 당차게 도전장 내민다.

어차피 여명은 ‘희미하게 날이 밝아 오는 빛, 또는 그런 무렵’을 칭하는 단어다. 한 마디로 무언가가 확연하고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은 상태다. 그것이 기대하고 바라는 모양일 수도 있지만, 막상 확실한 표정을 읽으면서 결론적으로 실망이나 좌절로 끌려갈 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명은 불안하다. 여명은 어쩌면 불확실한 미래의 예고편이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가 만들어 갈 여지가 훨씬 큰 가능성이기도 하다. 생각하고 마음먹은 대로 빚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여명은 삶의 재료다. 삶을 구성하는 세포다. 여명에서 삶은 시작된다.

어차피 여명의 빛은 아침의 밝은 햇살로 이어지고, 여명의 눈동자는 수많은 삶의 편린이 되어 삼라만상에게 보여지는 약속의 부싯돌로 화하면서 삶의 불을 지핀다. 지축을 뒤흔드는 사람들의 역사는 여명에서 잉태된다. 여명을 먹고 자란 모든 사람들의 꿈과 정열이 지금 우리 자신의 이야기들을 써내려간다. 그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흘러흘러 커다란 세계를 견인한다. 그것이 거대한 진리고 불멸의 윤회다. 그 속에 우리가 산다.

새벽이 밝아오는 여명의 멋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그래서 인생의 맛을 진솔하게 느껴보려면, 지금처럼 겨울의 초입에 슬쩍 한 발을 들이민 이 시기를 놓치지 말고, 얼른 서둘러 길을 떠나면 된다. 어쩌면 여명은 초겨울이라야 더욱 맛깔나게 제대로 숨을 쉰다. 새벽 미명의 그 시간에 거친 숨을 훅훅 토해내는 여명의 숨소리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지금 떠나는 여정에 망설임이 있을 리 없다. 기왕지사 초겨울의 감성을 되새기고 싶은 심사라면 어딘가 낯선 곳을 찾아, 게서 여명을 만나자.

그리하면 삶의 경건함과 엄숙함도 일견 깨우칠 수 있을 터. 지난 주말, 초겨울비 후줄근히 대지를 적시니 불현듯 번잡한 도심을 떠나, 비 대신 하얀 눈발로 제법 사람을 현혹시키는 자연을 찾아, 무작정 차를 몰고 싶은 필자의 오래된 방랑벽이 도졌었다. 쓸쓸한 감수성으로 가득한 가을의 끝자락, 12월 초순의 가물거리는 초겨울 길목에서일진대 작심하고 약간의 온기를 더하면, 쓸쓸함은 이내 고즈넉하게 빛을 발할 수 있을 게다.

칼바람 부는 길 위에서는 날카롭기만 한 이 맘 때 풍경을, 실내에서 바라보면 차라리 아늑하기까지 하다. 그걸 익히 아는 필자가 조바심을 내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우리네 삶에서도 그렇게 언 손을 녹이면서, 아랫목에 몸을 의지할 수 있는 작은 공간 정도는 장만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찾은 곳이었다.

경험에서 비추어보건대 강원도 영월의 ‘조견당’과 ‘우구정가옥’은 지금 같은 초겨울에 가볼 만한 따사로운 전통 한옥이다.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필자의 발길은 그리로 향했다. 100년의 세월을 넘어선 두 옛 집은 서로 다른 개성으로 여행을 부추기고 있었다. ‘주천면 조견당(김종길 가옥)’은 옛 것과 새 것이 조화를 이룬 한옥이었다. 안채는 조견당에서 유일하게 옛 모습이 보존된 공간이었으며, 새롭게 단장한 사랑채는 깔끔한 외양으로 길손을 반겼다.

잘게 흩날리는 눈발을 친구삼아 한참 둘러보다 걸음을 떼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장소를 옮겼다. 이윽고 다다른 오늘의 목적지인 ‘남면 우구정가옥’은 전통 시골집의 정서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는 한옥이었다. 방은 안채, 건넌방, 사랑방으로 단출했다. 모두 장작으로 구들에 불을 때며, 툇마루가 붙어 있는 창호 문을 열면 아늑한 시골 정경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객방이 정갈하고 소담스럽게 꾸며져 있어서, 마치 낯 익은 시골 고향집에 돌아온 푸근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손 끝이 짜르르하게 울리도록 따스한 아랫목이 한낮임에도 단연 압권이었다. 선조들이 터 좋은 곳에 지은 옛 한옥에서 바라보는 초겨울 풍경이 더욱 고즈넉할 수 있는 것도 뜨끈한 구들장이 주는 온기 때문일 것이다. 아궁이에 장작불 지펴 구들장을 데운 아랫목이, 낯선 곳이라서인지 더욱 반가웠다. 행랑채와 사랑채 앞 마당은 겨울 참새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였다. 게다가 행랑채는 초가지붕으로 엮여져 아련한 숨결을 토해내고 있었는데, 때마침 한 켠에서는 사라져가는 ‘초가 이엉잇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우리 선조들에게 볏짚은 일상이었다. 볏짚 사이에서 일하고, 볏짚 아래서 볏짚 깔고 먹고 자며 살았던 지푸라기의 일상이 삶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다시피 벼의 낟알을 떨어내고 남은 줄기가 볏짚이다. 벼농사 중심의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볏짚은 생활의 도구이자 방식이며 목표였다. 볏짚을 엮어 지붕을 해 올리고, 멍석 짜고, 가마니를 짰다. 맷방석, 소쿠리도 만들고, 짚신도 삼았다.

볏짚을 꼬아 만든 새끼줄은 일상의 잡다한 물건들을 묶고, 엮고, 매달고, 갈무리하는 데 쓰였다. 사실 40~50년 전까지도 그랬다. 그 중에서도 볏짚의 일상을 대표하던 것이 초가 ‘이엉잇기’다. 해마다 추수가 끝나고 찬바람 불 무렵이면, 마을마다 ‘초가지붕 교체작업(이엉잇기)’이 품앗이 형태로 벌어졌다. 남자들은 새끼 꼬며 이엉을 엮고, 여자들은 국수 삶고, 막걸리를 준비해 마을잔치를 벌였다.

이 거칠고 궁핍한 지푸라기의 일상은, 정겹고도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뜻밖에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진한 볏짚 향기를 맡으며 선인들의 일상생활과 전통 주거문화를 피부로 느끼고 배워볼 수 있는 기회까지 마주할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횡재였다. 체면 불구하고 이런저런 마구잡이 질문을 하는 필자에게, 작업을 하던 노인들은 귀찮아 하지 않고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지금까지도 추수가 끝난 뒤, 날을 잡아 ‘새끼꼬기’, ‘날개엮기(영애엮기)’, ‘마루엮기(용마름틀기)’를 하고, 다시 날을 받아 ‘이엉잇기’를 한단다. 가장 많이 해야 하는 일이 지붕에 겹겹이 두르는 ‘날개(영애)엮기’인데, 한 움큼씩의 짚을 차례로 엮어, 길이 8m 짜리의 날개 한 장을 만드는 데 30분 가량이 걸리며, 능숙한 사람은 하루 20장을 엮는다고 한다. 한 노인은 푸념처럼 “보통 한 동에 날개 60~70장을 까는데, 요즘엔 키 큰 나락이 없어서 힘이 든다.”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바람에 강한 키 작은 벼 품종만 재배되면서, 볏짚 길이가 짧아진 탓에 이엉잇기 작업만 늘고 볏짚도 많이 들어간다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주민들 걱정거리는 정작 다른 데 있었다. “이것이 아주 위험한 작업이여. 순간적으로 삐끗해버리면 그냥 가는 것이니까.” 행랑채 초가지붕 위에서 ‘용마루 올리기’ 작업을 하고 내려온 노인의 말이었다. 노인은 “아까 낮에도 80살 노인이 지붕에서 떨어져 병원으로 실려갔다.”고 했다.

기존 지붕의 썩은 부분을 헐어내고 새 볏짚(진새)으로 메우는 일도, 새로 엮은 볏짚단(날개)을 지붕에 둘러 펴는 일도, 그 위에 다시 새끼줄을 둘러 묶는 일(고삿매기, 고사새끼줄치기)도, 60~80대 어르신들이 안전장비 없이 맨 몸에 맨 손으로 해내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란다. “누가 하겠소? 늙은이들 뿐인데. 우리 죽으면 이 재주도 끝나버리겠지.” 일련의 과정을 넋 놓고 바라보는 사이에 어느새 훌쩍 밤이 되었다. 해 떨어진 뒤 칠흑 같은 어둠을 만나기에도 따뜻한 온기가 있어야 든든하다. 여행지에서 하룻밤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인 한옥에서의 꿀잠이라면, 초겨울의 여명이 더욱 포근해질 수 있다.

거기서라면 누구나 체면 차리지 않고 편한 잠을 잘 수 있다. 그리고 밝아온 새벽, 이어지는 여명 체험은 신비롭고 황홀한 삶의 바깥 쪽을 보여주었다. 그 아침에 불끈 솟아오르는 웅비라니, 새롭게 살아갈 새 날들에 대한 소망과 기대로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감히 추천한다. 초겨울의 여정의 끝은 한옥이 제 격이다. 여명의 체험담을 쓰려거든 아랫목을 선택하면 된다. 간단한 선택이 짜릿한 삶의 경험을 선사한다.

아침식사 후, 영월에서 돌아나오는 길은 제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충북 제천의 초겨울은 참 시원하고 산뜻하다. 호수는 수정 같아, 볼수록 두 눈이 깨끗해진다. 천연한 자연에 걸러진, 맑은 바람을 들이키니 가슴 밑바닥에 꼭꼭 숨겨진 콩알 같은 생채기까지 절로 아물었다. ‘힐링’이 뭐 어려울까 싶었다. 치열한 일상을 잠깐 벗어나, 삐걱거리는 몸과 마음을 정비할 수 있다면 이게 바로 힐링이다. 초겨울 제천이 여기에 딱 맞는 고장이다.

‘수산면 괴곡리’ 뒤로 솟은 ‘백봉’ 정상은 높지 않았다. 이 자리는 ‘청풍호(충주호)’를 감상하는 데 더 없는 명당이다. 제천시가 여기에다 전망대를 만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청풍대교’에서 ‘옥순대교’에 이르는 호수의 물길이 이 자리에서는 고스란히 다 보였다. 첩첩산중으로 옥빛 물길이 흘러드는 풍광이 어찌나 장쾌한지, 딱 10초만 바라보니 도시에서 생긴 체증이 싹 가셨다. 그 유명한 ‘옥순봉’이 발아래 아득했다. 탁 트인 시야가 어느 곳과도 비교 안될 만큼 압권이라는 말이다.

걷기 열풍이 전국을 강타한 덕에 제천에도 ‘자드락길’이 생겼다. 청풍호 주변 산간 마을을 잇는 길인데, 산기슭 비탈을 따라 걸으면 호수도 보이고, 준봉들의 운치도 느낄 수 있다. 총 7코스가 조성됐는데, 백봉은 ‘6코스(괴곡성벽길)’에 속한다. 자드락길이 생기기 전에도 백봉은 산 좋아하고 걷기 즐기는 이들에게 명소로 통했다. 그러던 것이 자드락길이 생긴 뒤에는 더 빠른 속도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산길 초입에는 단출한 주막 하나가 있었다. 한 줄기 볕이 비추니 옹색한 산비탈도 몸 붙이고 살만한 곳처럼 느껴졌다. 모녀가 손두부와 부침개를 만들어 파는데, 이들 모습처럼 음식 맛 또한 소탈하고 담백하였다. 이곳에서 직접 빚었다는 동동주가 세속의 묵은 갈증을 확 풀어주었다. 제천 사람들은 ‘충주호’를 ‘청풍호’라고 부른다. ‘남한강’ 물길을 막아 ‘댐(충주댐ㆍ1985)’을 만드니 제천, 단양, 충주에 걸쳐 호수가 생겼다. 이 중에서 제천 땅이 물에 가장 많이 잠겼다.

호수의 정식이름은 결국 ‘충주호’가 됐다. 그러나 터전을 가장 많이 내어 준 제천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여전히 이들에게 호수는 청풍호다. 이런 설명도 있다. 제천 쪽 일대를 흐르던 ‘남한강(파수)’을 이곳 사람들은 ‘청풍강’이라고 했다. 강이 사라지고 호수가 생겼지만 이름은 그대로 가져왔다는 이야기다.

청풍호의 서쪽과 남쪽 일대는 관광지로 잘 개발됐다. “청풍호 구경간다”고 하면 십중팔구 이쪽이다. 그러나 호수의 북쪽은 한갓졌다. 도로 포장이 비교적 부실하고, 숙소나 음식점도 거의 없었다. 소담한 마을들이 전부였다. 호수가 생기며, 물 안 닿는 산 중턱으로 집을 옮긴 사람들, 외지에서 조용한 곳을 찾아 들어 온 이들이 마을마다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다.

몇 해 전만 해도 오프로드 자동차 동호회나 강태공들이 종종 찾긴 했지만, 먹고 살기 어려워진 탓에 이들의 발길도 요즘은 뜸하단다. 사람들 북적일 일이 사라지니, 하루 네 차례 다니는 시내버스가 이들에게는 가장 반가운 일이 돼 버렸단다. 겨울 들머리에는 더 적요하다. 그래서인지 북쪽 호숫가를 느릿하게 달리니, 호수의 비밀스러운 속살을 더듬는 기분이었다. 눈이 놀랄 풍경보다 여운 짙은 것들이 참 많았다.

호수와 땅이 만나는 곳에 마을 사연처럼 애틋한 풍경 하나가 있었다. 층층이 쌓아놓은 듯한 바위 끝에 앙상한 소나무 네 그루가 서 있었다. 안개가 자욱하니 풍경이 참 몽환적이었다. 혹자는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와 닮았다고도 했단다. 애써 마을까지 들어가서 이 나무들을 알현했다. 오래지 않아 사라질지 모를 풍경이라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남한강 하류에 보가 생겼고, 호수가 나무를 삼키는 시간이 길어지자 나무가 생기를 많이 잃었다. 마을에서 만난 촌노는 “한 겨울 아주 춥고 바람 강할 때 어른 키만한 용오름이 올라오니 그 때 다시 들르라”고 했다.

제천은 한약재 집산지로도 명성 자자하다. 전국 생산량의 약 20%가 제천에서 나고 유통량의 80%가 제천에서 거래된다. ‘의림지’에서도 조선시대 때 붕어가 많이 잡혔단다. 약으로 손색이 없어 제천 사람들은 이를 ‘약붕어’라고 하고, 왕에게 진상도 했단다. 비록 약붕어는 이제 자취를 감췄지만, 천연한 풍경은 여전히 이곳 사람들에게 삶의 생채기를 치유하는 ‘약’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2,000년에 개봉했던 영화 ‘박하사탕’은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한 마디 절규로 기억된다. 제목인 박하사탕이 영화 어디쯤 등장하는지는 희미하지만, 철교 위에서 절규하던 주인공의 모습은 1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이 장면이 촬영된 곳이 ‘백운면 애련리 진소마을’이다. 영화가 뜨자 당시만 해도 오지로 꼽히던 이 마을도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필자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충북선’이 전철화 된 탓에, 당시에는 없던 전깃줄과 전봇대가 생겨났다. 그러나 그럼에도 영화의 서정은 오롯했다. 마을을 에두르는 강변에 아직도 잎을 떨구지 못한 갈대가 볕을 받아 반짝였다. 주변이 고요한 덕에 물소리는 참 맑고 또렷했다.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왔다. 첫사랑의 애틋함, 박하사탕의 달콤한 추억도 어두운 기억의 터널을 통과해 다시 스멀거렸다. 그렇게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보았다.

강변 마을의 초겨울 풍경이 참 고왔다. 호수의 날개인 강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이내 태양이 지평선과 수평선이 맞닿은 위로 막 내려앉고 있었다. 잿빛 이내의 층을 녹이며 사방으로 붉은 기운을 화염처럼 퍼뜨리고 있었다. 그 막막한 풍경에 숨결도 곧 평온히 내려앉았다. 다시 저녁이 왔다. 이제 곧 밤이다. 그리고 다시 새벽이 올 것이다. 여명이 밝아올 것이다.

예정에 없던 주말의 짧은 1박 2일의 여행은 그동안 찌들었던 마음을 활짝 펴주었다. 흐릿한 환상 속에서 고민 많았던 삶의 향배가 또렷하게 뚫려지는 기분이었다. 한낱 속세의 근심 따위가 무에 대순가? 훌훌 털어버리고 가슴을 쫙 내민다. 지난한 세상사에 한껏 대적질이라도 해보리라는 호연지기가 절로 샘솟는다.

가끔은 대자연의 힘이라도 빌어 스스로에게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멋진 페어플레이를 다짐하는 언약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삶에서는 꽤나 요긴한 덕목이다. 아마도 뒷날, 살기가 차마 버거워지면 필자는 또 떠날 것이다. 흔들리는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한 가장 현명한 묘수를 찾아서, 꽉 막힌 틀에 갇혀서 몸부림치기 보다는 자연에서 숙성시킨 거룩한 삶의 일기를 쓰기 위해서, 필자는 다시 갈 것이다. 새벽 속으로, 여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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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다

퍼부어지던 눈발 한참 전에 멈추었고
지금엔 새벽별들 얼마나 총총한지
흡사 익은 알밤처럼 하늘 툭 벌리고
아프게 쏟아지려 한다

초겨울 하늘아래
콧등 찡해지는 눈냄새만 흥건하여
수명 다하는 인생의 새벽 찾아와
수평으로 누운 채 영면 취하고 있으니,

무섭다

밤에도 새벽에도
왜 이렇게 요즘은 어둡기만 한지

잃어버린 정체성 찾아 뒤척거리다
꼭 떨어지고야 마는 원초적 그리움

미안하다

나 무서워서 그런다
자꾸만 빈 공중 빨려들 것만 같아서 -

도처에 널린 본능의 죄로 인해 심한 상처 입고
날개에는 혈흔 검게 들러붙어있어
시간 웅덩이 속에서 이내 곯아떨어지려는
의식 걷어차며 맞이한 이 새벽여명,

부랑하는 남자 형상
척박함의 시각이
윤곽들 사이 거친 그림자 메우면서
그렇게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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