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출판 예정 두번째 詩集의 제목입니다.

林森의 인생에 있어서 또다른 전환점이 되는 시기의 시작인
2008년 후반기부터 2010년 전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인 양
정말 많은 量의 詩를 짓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의 나날을 헤쳐나오면서
量産된 詩이니만큼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비감어린 내용과
칙칙한 파스텔톤 색깔의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의 방랑자 다운 林森의 詩心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우는 詩語의 조화가
오묘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는지라,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고
한 데 어울려 함께 눈물짓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 ]

위로 이동

* 어떤 고백 보다도 강렬한 고백 *



시작노트

" 어떤 고백 보다도 강렬한 고백 " 詩作 note

필자는 시를 지을 때 비교적 제목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심혈을 기울이고 신경 쓰지는 않는 편이다. 혹자는 시의 제목이 시의 절반이라고까지 하면서 제목의 중요성을 역설하지만, 글쎄다. 필자는 영 공감이 안된다. 그냥 그 때 그 때 생각나는대로, 혹은 내용 중에서 언뜻 호감이 가는 구절이 있으면 그것이 제목으로 채택되어진다. 그렇다고 성의가 없다거나 제목을 무시해서는 아니다. 어차피 제목은 본문에서 잉태된다. 억지로 쥐어짜 시의 밖에서 또 다른 언어를 빌려오려고 애쓸 필요가 없이, 시의 안에서 애착이 가는 시어를 골라 함축성 있고 간결하게 표현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아무튼 그런 필자의 버릇을 감안한다면, 이 시의 제목은 나름 특별한 의미가 있다. 길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뭔지 모를 사연이 숨겨진 듯한 냄새가 난다. 맞다. 이 시는 비교적 특별하다. 필자의 아주 어렵고 암울하던 어떤 시절의 고백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어떤 고백보다도 강렬할 수밖에 없다. 절실하고 애처로운 심사가 오롯이 담겨있다. 물론 독자들은 자세히 모른다. 내면에 깔린 간절한 염원과 바람을 차마 밖으로는 드러내지 못하는 독백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시절에는 정말 날개를 달고 창공을 비상하고 싶었을 거다. 온통 절망 뿐인 삶 중에 한 줄기 빛이 비추어지기를, 너무나도 애절하게 그리워하며 기다리던 날들의 일기였던 것 같다. 절망! 예컨대 그건 사람을 죽이는 비수다. 육체적인 고통이나 장애가 사람의 삶을 어디까지 제한하면서 옭죄이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무참한 삶의 시험이 바로 정신적인 아픔과 제약이다. 무너져내리는 정신의 근간은 기본적인 삶의 궤도를 짓밟는다.

그리하여 차츰차츰 어둠과 파멸의 길로 사람을 이끌어간다. 그렇게 가장 낮은 지저의 세계로 추락한 사람이라면,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는 자체로 진실한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애초에 힘들고, 겨우 연명하는 목숨줄도 이미 존중받을 가치는 상실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전환점이 마련되어 재생의 계기가 부여되지 않는 한, 바란다고 해서 절망의 질곡에서 벗어나기란 실로 요원하다. 그만큼 깊이 빨판을 들이밀고 흡입하는 절망의 촉수는 가히 천하무적이다.

일단 절망이라는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본인과 외부의 노력이 기술적으로 조합되어져야 한다. 무조건적인 희망을 주입한다거나 위로를 한다고 해서 절망을 치유할 수는 없다. 그렇게 쉽게 벗어날 절망의 질곡이라면 애초 겁을 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적절한 처방과 대화로 풀어가면 될테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항구적인 치료와 만족한 결과를 위해서는 훨씬 더 복잡하고 체계적인 처방과 대처가 요구되는 것이다.

‘절망 독서’라는 제목의 ‘가시라기 히로키(頭木弘樹)’의 신간서적이 있다.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이 책이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저자는 ‘쓰쿠바대학’ 재학 도중 난치병을 선고받고 13년간 투병 생활을 했다. 자신을 찾아온 절망의 시기를 책과 이야기를 통해 견뎠으며,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현재 문학소개자의 삶을 살고 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절망을 경험한다. 한번 좌절을 겪게 되면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언제 극복이 될지 쉽게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저 좀 더 희망을 갖고, 재빨리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기만 하면 될까? 긴 좌절의 시간을 건너온 저자는 절망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섣부른 격려나 희망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서둘러 절망을 극복하려 하지 마세요!” 라고 말한다. 바다 깊이 잠수했을 때 갑자기 수면 위로 올라가면 잠수병에 걸리는 것처럼, 극복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절망 독서’를 권한다. 슬플 때 슬픈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달래는 것처럼, 마음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에는 “이것은 내 이야기다”, “나만이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다” 하는 책과 이야기를 만났을 때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절망과 마주한 이들에게 건네는 안내서이자, 저자의 절실한 경험이 녹아 있는 공감의 책이다.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 매컬러스’ 등 저자에게 힘이 되어준 소설, 시, 음악,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작품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 역시 자신의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와 만나게 될 것이다.

- 사람에게는 누구나 인생 이야기의 각본을 고쳐 써야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절망적인 일 때문에 각본을 고쳐 써야 할 때는 무척 곤란합니다. 인생이 혼란스러워지고, 원래의 인생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어서 새 인생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럴 때 어떻게든 각본을 고쳐 써서 그 후의 인생을 살아가려면 각본 수정에 참고가 될 만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카프카가 말하는 “필요한 책”이며, “고통스러운 불행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 아닐까요?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 즉 이제까지의 이야기에 사로잡혀 굳어버린 마음을 “부수는 도끼”로서의 절망의 책 말입니다. -

책의 1부 ‘절망의 시기에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책은 “내 기분은 아무도 몰라!”라고 외치는 절망적인 마음을 알아준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조차 잘 모르는 석연치 않은 감정까지 “바로 이거야!” 라며 감동할 정도로 훌륭하게 말로 표현해준다. 절망하고 고독에 빠졌을 때, 그런 기분을 말로 표현해주는 책을 읽으면 그것만으로도 절망이나 고독이 어느 정도 치유되는 것이라는 친절한 안내가 이 책의 상큼한 매력이다. 오랜만에 접한 사이다같은 책에, 필자는 읽다가 울다가 하면서 날밤을 샜다.

그러나 혹시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요새 누가 소설을 읽어?” 혹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야기를 왜 읽어?” 아니면 “만들어진 이야기가 뭐가 재미있어?” “책보다 재미있는 것이 이토록 많은 세상에서 하필이면 고리타분하게 소설이라니, 이런 걸 굳이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책 말고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고, 아예 절망이라는 이름조차 거부하는 자신 있는 삶을 살면 되는 거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라고.

하지만 당신도 어린 시절에는 분명 온갖 이야기들을 좋아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개념이나 범례를 이해하는 힘이 없는 아이들은,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복잡한 내용을 보다 흥미롭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어른이 된 당신은 실용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이야기를 점점 멀리 한다. 그렇다면 정말 어른에게는 이야기가 필요 없을까?

여기 멍게 한 마리가 있다. 멍게는 평생 거처로 삼을 만한 바위나 산호초를 찾아 바다를 떠돈다. 이 탐색을 위해 어린 멍게는 작은 뇌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적당한 장소를 찾아 뿌리를 내리는 순간, 멍게에게는 뇌가 필요 없어진다. 때문에 멍게는 안식처를 찾은 후 스스로 자신의 뇌를 먹어치운다고 한다. 어른이 되어 더 이상 이야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멍게의 이러한 행동과 비슷하다.

그저 자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몇 가지 알량한 정보를 손에 넣었다며, 더 이상 이야기가 필요 없다고 한다면 당신의 인생은 그냥 물 속 어딘가 자리잡은 멍게 한 마리와 무엇이 다를까? 현실적인 것이 좋다며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일수록 진짜 현실에 직면하면 쉽게 무너진다. 인생을 뒤흔드는 불행. 그것으로 점철된 것이 진짜 현실의 삶이니까 말이다.

당신의 인생에도 지금, 혹은 가까운 미래에 크고 작은 절망은 반드시 온다. 바로 그 순간이 당신 인생 이야기의 각본을 고쳐 써야 할 순간이다. 그리고 그 인생 이야기의 각본은 그간 접한 이야기를 통해서만 수정될 수 있다. 나 자신이 세상에 혼자 있다고,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고 느껴질 때, 이야기는 바로 그 절망의 순간에 당신 안에서 홀연히 나타날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비단 이 책이 아니더라도 당신의 삶에 이야기를 만들어줄 다른 사람의 이야기들을 접해야 하는 이유다.

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필자가 초대하는 짧은 이야기의 세계 속으로 빠져보자. 이야기를 통한 내 삶의 힐링을 기대하며, 어쩌면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을지도 모를 내 삶 속에 치유의 숨결을 불어넣어줄 전환점을 위해서 이야기는 이어진다. 한 청년이 집을 떠나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떠나기 전 날, 큰 거울이 있는 거실로 아들을 부른 후에 물었다.

“네 얼굴을 잔뜩 찡그린 후 거울을 보렴, 어떤 기분이 드니?” “글쎄요. 제 얼굴이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데요.” “그럼 거울에 비친 모습을 웃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버지의 질문에 청년은 대답했다. “제가 웃으면 되지요.” 그러자 아버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사람들을 상대할 땐 언제나 거울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거라. 거울이 스스로 웃을 수 없듯이 상대방도 그냥 웃는 법이 없지. 아들아, 상대방을 웃게 하려면 먼저 미소를 지어야 한다. 어떤 불친절한 사람에게도 미소 지을 수 있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란다.”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 지금 입가에 웃음을 지어보자. 억지로라도 한 번쯤은 하하하 웃어보자. 절망의 유혹에 시달리는 나에게도, 나를 바라보는 상대방에게도 미소를 통해 행복이 찾아올 것이다.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희망이 다가서기를 기다린다면 희망의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면 된다. 희망은 오늘도 닮은 얼굴을 찾아 헤맨다.

오랜 시간 힘들게 모은 돈으로 빵 가게를 개업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진열장에 놓여 있는 빵만 보고 있어도 배가 불렀고, 손님이 많은 날은 입가에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그런 그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열 살배기 어린 딸이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가장 맛있게 만들어진 빵을 두 봉지 챙겨 학교 가는 딸아이에게 간식으로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따끈한 빵을 진열대로 하나둘 옮겨놓다가 금방 딸이 놓고 간 준비물을 발견하곤 뒤를 쫓았다.

멀리서 딸을 본 그는 딸의 행동에 놀라고 말았다. 딸아이가 편의점 주변에서 폐지를 수거하는 할머니에게 빵 두 봉지를 드리고 가는 것이었다. 빵을 받은 할머니는 딸아이를 보고 익숙한 듯 고맙다며 감사함을 표현했다. 딸아이는 그동안 매일 아침 아빠에게 간식으로 받은 빵 두 봉지를 폐지를 수거하는 할머니에게 드렸던 것이다. 멀리서 딸의 행동을 지켜본 그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는 다음 날부터 딸아이가 가져갈 두 봉지의 빵과 함께 할머니께 드릴 빵도 따로 만들어 주었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남을 위하는 마음 하나에서 시작된다.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의 씨앗 하나가 떨어지면 배려심이 자라고 행동이 나오며, 습관이 되고 참된 인생이 된다. 남들에게 베푸는 일만큼 행복하고 고귀한 일은 없다. 오늘부터 그 대열에 합류해보는 건 어떨까? 절망으로부터 탈출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더 바람직한 삶의 공식임을 명심하자.

지난 6월 8일, 아파트 외벽 도색작업을 하던 작업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고소공포증을 잊기 위해 틀어놓은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며 주민 서 아무개 씨가 홧김에 밧줄을 끊어 작업자 중 한 명인 김 아무개 씨를 추락시킨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이로 인해 다섯 아이의 아빠인 김 씨는 안타깝게도 세상과 영영 이별하고 말았다. 김 씨에겐 칠순 노모와 아내,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부터 27개월 된 아이까지 다섯 아이가 있었다.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은 김 씨 가족은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앞으로의 생계가 막막한 형편이 되어 버렸다. 더욱 마음 아픈 것은 아빠의 죽음을 모르는 27개월 된 딸 아이가 “아빠가 언제 오느냐?”고 묻는 것이다. 그 말이 나오면 어머니 가슴은 더욱 미어진다고 한다.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살았던 김 씨의 명복을 빌며, 아이들이 좌절하지 않길 소망한다.

둘째 딸이 쓴 ‘하늘로 보낸 편지’가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아빠, 하늘에서도 우리 가족하고, 나 잘 지켜봐 줄 거지? 나랑 언니가 아빠 역할 도맡아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아빠만큼은 못하겠지만, 엄마도 우리가 잘 책임질게. 아빠, 여기서는 너무 고생하면서 살았으니까 올라가서는 편하게 아프지 말고 있어! 아빠, 우리 독수리 오남매들 땜에 고생 많이 했지? 고마운 아빠 얼굴, 목소리 꼭 기억할게. 그리고 내가 팔 못 주물러주고 아빠 보내서 정말 미안해. 다음에 보면 내가 팔 백만 번 주물러 드릴게요. 아빠. 사랑해요. 진짜 많이 사랑해요.”

옛날 어느 도시에 소문난 효자가 살고 있었다. 그 도시 효자는 시골에 이름난 효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시골 효자의 집은 오래된 초가집이었는데 조금 기다리니 한 젊은이가 나무 한 짐을 지고 들어왔다. 그러자 부엌에 있던 노모가 부리나케 뛰어나와 아들의 나무 짐을 받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황급히 뛰어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대야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물을 떠 왔다.

어머니는 아들을 마루에 앉히고는 열심히 아들의 발을 씻겼다. 모자는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도시 효자가 온 것도 모르고 한참을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를 지켜보던 도시 효자가 시골 효자에게 한마디 했다. “여보게, 어떻게 기력도 없으신 어머니께 발을 씻겨달라고 하는가? 효자라는 소문을 잘못 들은 것 같군.” 그러자 시골 효자가 말했다. “저는 효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어머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기쁘게 해드립니다.”

이 말을 듣는 도시 효자는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 생각대로 부모님을 공경해 왔음을 알았다. 부모님의 얼굴에는 저 시골 효자의 어머니 같은 환한 웃음이 없었던 것이다. 참된 효는 좋은 잠자리와 음식, 많은 용돈에 있지 않다. 그보다 부모님의 뜻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해드리는 것, 그분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 거기에서 참된 효가 시작된다. “물레를 돌리게 해도 효도일 수 있고, 잔칫상을 차려 드려도 불효일 수 있다.”는 유대 격언이 있다.

오래전 미국 워싱턴 주 ‘클라이드 힐’이라는 마을에서는 동전 던지기를 통해 시장을 선출한 적이 있다. 선거 결과 두 후보 모두 576표씩 똑같이 나오자 선거관리 위원회는 동전을 던져 결정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어처구니 없다며 항의를 해왔다. “어떻게 이런 방법으로 시장을 뽑는단 말이오?” 그때 선거관리 위원장이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어리석은 방법이라고 나무라지 마십시오. 한 사람, 단 한 사람만 더 투표에 참여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사실 그것은 모두의 책임이었기 때문이다.사람은 본질적으로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 한 개인이기 전에 누군가의 자녀이고, 누군가의 부모이며 형제다. 또한 하나의 직장, 마을, 지역, 나라에 속한 구성원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떤 개인도 우리라는 이름으로 만든 여러 문제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 경제, 사회, 환경 각 분야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주인의식을 가지고 깨어 있자.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다음 세상이 부끄럽지 않도록각자의 자리에서 의무와 권리를 다하자. 오늘의 우리의 삶이 희망과 기쁨으로만 충만할 수는 없다. 비단 희망의 자리에 아직은 어둠이, 기쁨 대신 괴로움이, 그리고 내일을 향한 걸음 보다는 주저앉아서 아파하는 중단의 현실이 훨씬 선명하게 우리를 짓누른다 해도, 우리에게 영원한 절망은 없다. 어려운 이 때가 지나가면 언젠가는 우리를 위한 희망의 새 날이 온다는 믿음으로 앞을 향해 굳건한 걸음을 떼자. 우리게는 내일이 있다. 희망찬 내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 어떤 고백 보다도 강렬한 고백 " 詩作 note 닫기
 | 배경이미지 새로적용  | |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나 좀 날자

날 수만 있다면 한번만 더,
꼭 한번만 더 날아보자

빌어먹을 이 몸 가루되어도 좋으니
내게 날개를 다오
저 푸른 창공 마음껏 비상할 수 있는
날개 달아다오

자유로워진다는 건 어떤 맛일까 ?
난 곧잘 자문하곤 하지
멋지게 날아
병원에서 쑤욱 빠져나간다 치고,
그곳 역시 또 다른
좀 더 큰
병원에 지나지 않을 지언정

이 비좁은 세계 협량한 룰 따라
꾸역꾸역 살아가면서도
옥죄고 탁한 공기마저
딱히 고통으로 느끼지 않는 기색은
아직 끝나지 않은 꿈있음의 고백이니

내게 날개를 다오
나 좀 다시 날아보자
날아 날아서
꿈에 그리던 소풍으로,
스토리 있어 쫘악 펼치는 여행으로,
황홀한 자유의 그 찬란한 파격으로,

나아갈 꿈
꾸고싶음임을
나 지금 고백하느니

 | 배경이미지 새로적용  | | 글자 크게 글자 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