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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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출판 예정 두번째 詩集의 제목입니다.

林森의 인생에 있어서 또다른 전환점이 되는 시기의 시작인
2008년 후반기부터 2010년 전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인 양
정말 많은 量의 詩를 짓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의 나날을 헤쳐나오면서
量産된 詩이니만큼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비감어린 내용과
칙칙한 파스텔톤 색깔의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의 방랑자 다운 林森의 詩心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우는 詩語의 조화가
오묘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는지라,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고
한 데 어울려 함께 눈물짓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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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의 계절 *



시작노트

" 신비의 계절 " 詩作 note

신비로운 게 어디 계절 뿐이랴 ?
사람이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산다는 사실 또한 신비로움의 극치이거늘....
비단 삶의 허무를 노래하는 철학자나 염세시인이 아닌 범부라 하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삶의 고뇌와 허무에 관해 딴에는 제법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도 있을 법 하고 더러는 자신의 삶의 중심에서 한 걸음 비껴서서 한껏 객관적인 관조의 시선으로 자신을 돌아본 적도 혹 있기는 있으리라.
물론 어떤 답을 찾자고 그리하는 것이 아닐테고 막연하게 지금의 삶을 그대로 누리기 싫어서 다른 방도를 모색하려고 사잇길을 놓는 터수로 그리함도 역시 아님이다.
그냥 그렇게 간혹 자신의 것이지만 잘 모르는 삶의 본질을 반추하고 지나온 행적을 곱씹어보는 행위에서 자신도 채 알지 못하던 행복이나 기쁨을 되찾아 맛볼 수 있는 계기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소망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딱부러지게 올바른 왕도가 철길처럼 놓여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며, 어제보다는 좀더 나은 오늘이, 오늘보다는 더 좋은 내일의 삶이 되기를 염원하며 부단한 이어달리기를 해나가는 것이 바로 사람이 숨쉬는 삶의 목표이다.
정의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삶과 비교하여 과연 얼마만큼 가치 있고 즐거운 결과와 보람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매 순간마다 세상의 유혹과 적당한 타협의 계기가, 선택하지 말아야 할 반대급부적인 요건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숙제이고 보면 그 선택 여하에 따라서 삶의 질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또한 늘 긴장과 각성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야생원숭이 두 마리를 잡아다가 잘 훈련시켜 돈을 좀 벌어보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재주넘는 훈련을 시켰는데 재주를 한 번 넘으면 복숭아 한 개를 주고 두 번 넘으면 두 개를 주었다.
그 중 한 마리는 시키는 대로 잘 해서 적잖은 복숭아를 받아먹었지만 다른 한 마리는 재주를 넘지도 않았고 복숭아를 먹을 생각도 하지를 않았다.
아무리 채찍을 때려도 막무가내였다.
그렇게 보름쯤 지나자 재주넘기를 잘하는 원숭이는 복숭아를 먹어서 살이 포동포동 쪘지만 굶으면서도 재주를 거부했던 원숭이는 피골이 상접해졌다.
잔뜩 약이 오른 주인은 말 안듣는 원숭이를 내다버렸다.
그러자 쫓겨난 원숭이는 자유롭게 숲속을 누비며 복숭아는 물론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따먹을 수 있었지만 재주넘기 잘하는 원숭이는 주인에게 끌려다니며 길거리에서 하루 종일 재주넘기를 해야 했다.
“우선 먹기에는 감이 달다” 라는 말이 있다.
눈앞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온갖 세상의 좋게 보이는 것들이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면 좋게 보이는 것, 입에 넣으면 맛을 자극하는 것, 귀로 들으면 솔깃한 것들이 우리를 잠시도 그냥 버려두지 않는다.
세상은 감각기관을 자극하면서 유혹하기도 하고 편안하게 사는 방법으로 유혹하기도 한다.
세상은 그 유혹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은 바보가 되기 싫어서라도 유혹의 손길에 쉽게 넘어가고 만다.
그러나 온갖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고 눈앞의 이익에 현혹되지 않는 사람이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이기고 성공이라는 열매를 얻을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자고나면 새로운 것이 생산되고 스위치만 켜면 한 순간에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알 수 있는 초고속 정보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몇십 년 전만 해도 시골에서는 동네의 가장 중요한 뉴스를 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마을에 공동으로 마련되어 있던 우물가였다.
아침에 우물에 물을 길러 가서 밤새 일어난 일들의 소식을 접하곤 했다.
그 당시 우물은 정보의 원산지였고 소식의 창고였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우물가의 정취를 맛볼 수는 없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편리한 세상을 살면서도 어쩌면 우리는 이웃간에 온정의 고갈을 느끼고 피곤해하며, 외로움에 젖어 무언가를 갈급해하고 있다.
분명히 모든 것이 풍요로워졌음에도 목말라 하는 이유는 혹시 매일 이어지는 삶 속에서 아무런 기쁨이나 의미를 건지지 못하고 빈 우물 속에 두레박만 남기는 반복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신중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부도 명예도 쾌락도 원하는 대로 쟁취할 수 있는 현대의 삶에서 왜 갈증을 느끼는가 ?
그것은 바로 참다운 행복의 척도를 정할 수 있는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우물 속에 가득 담겨있는 물은 길어 올리지 못하고 빈 두레박질만 일삼는 우리의 반복된 삶은 결국 고독하고 편협한 현대인의 서글픈 자화상임을 얼른 깨달아서 자성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금 도전하는 신선한 삶의 모습에 진정한 해갈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새롭게 꾸는 꿈을 새 삶의 밑거름으로 삼아서 하루 하루를 진실과 사랑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면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자세로 신비한 진리의 삶을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삶이 될 것이다.
우리의 주변에는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있지만 그 중에서도 요즘 우리 사회적 문제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실업자문제이다.
직장이 없는 실업자도 문제이지만 직장이 있으면서도 별다른 욕구나 목표가 없는 사람들의 경우는 잠재적 실업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고 한다.
사람의 몸은 심장이 멈출 때 죽지만 사람의 정신은 꿈을 잃을 때 죽는다.
몸은 살아있지만 이미 40 ~ 50대에 정신이 죽은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가 ?
살아있다고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의미 없이 숨을 쉬고 눈을 뜨고 있을 뿐인 것이다.
늙음과 젊음을 구분하는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바로 목표라고 한다.
삶의 목표가 있는 사람은 청년이고 목표가 없는 사람은 노인이다.
30대에 벌써 정신적으로 노인이 된 사람이 있고 육체적인 나이로는 70대이지만 아직 싱싱한 젊음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늙지 않는 비결을 몸소 실천하면서 신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리더라고 부를 수 있다.
리더는 비전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비전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키는 가교이다.
또한 조직이나 단체나 개인들을 모두 하나로 집약시키고 묶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가난한 어촌에 불과하던 싱가포르가 오늘날 최고 경쟁력을 자랑하는 선진국이 된것은 ‘리콴유’라는 걸출한 인물의 리더쉽 덕분이다.
그가 국민들에게 제시한 목표가 바로 미래로 향한 출발점이었다.
당시로는 황당한 목표였지만 그는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는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후 총리로 취임하면서 국가의 미래상과 나아갈 바를 이렇게 제시했다.
“나는 싱가포르를 1. 2. 3. 4. 5.의 나라로 만들겠습니다.
1명의 부인, 2명의 자녀, 3개의 침실을 가진 집에서 4바퀴 달린 자동차를 굴리고 주당 500달러 이상의 1인당 소득을 실현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해 국민들의 협조와 노력을 부탁드립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항구에만 있는 배는 배가 아니다.
항해라는 배의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목표를 가지고 안주의 틀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개척지를 탐색할 때 삶은 비로서 신비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비한 의미야말로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근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신비는 사전적인 해석으로 보자면 ‘일이나 현상 따위가 사람의 힘이나 지혜 또는 보통의 이론이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묘함. 또는 그런 일이나 비밀’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설명된다.
또한 ‘신비롭다’는 ‘사람의 힘이나 지혜가 미치지 못할 정도로 신기하고 묘한 느낌이 있다’라고 하여 불가사의한 상황을 일컬어 지칭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 본래의 뜻과 같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어떤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요즘은 너무 많은 신비로운 일들이 주위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또한 그다지 신비스럽지 않은 상황에까지 신비롭다는 표현이 적용되다보니 신비는 그냥 보통보다 좀 나은 정도의 상태로 여기게도 되었고 이제는 아예 신비가 일상의 한 부분이 될 정도로 이미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튼 우리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신비한 잠재능력과 사고방식이 내면에 깃들어있기 때문에 이것을 빨리 깨닫고 범상치 않은 삶의 여정에 적용시킬 수만 있다면 기쁨과 행복의 크기를 몇 갑절 올리기도 그리 힘든 일은 아닐 것이다.

요즘은 유난히 중년이라는 낱말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계절의 탓도 있겠지만 중년의 끝자락에 자리매김 되어있다는 자각 때문이리라.
사실은 중년이라는 호칭 그 안에는 기쁨보다 아픔이, 즐거움보다는 서글픔이 진하게 깔려 있어 종종 울컥하는 느낌이 필자를 당혹케 하곤 했었다.
빠른 시간의 흐름 속에 벌써 불혹의 나이를 살같이 지나쳐서 지천명도 끝나가는 아쉬움의 시간으로 다가서고 있는 자신을 회고해본다.
젊은 날들의 회상, 앞으로의 남은 날들을 보면 지나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이 짧다는 두려움이 내포되어 있음을 잘 알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중년이란 것은 참으로 신비스런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젊음은 예쁘고 화려하지만 중년은 아름답고 신비스럽다.
지나간 삶 속에 외로움이 무엇인지 알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며, 추억을 가꿀 줄도 알면서 고독의 의미도 잘 알고 있는 나이가 예컨대 중년이다.
오늘의 가치를, 내일을 준비하는 여유가 있기에 더 깊이 있게 생각할 줄 알기 때문이다.
높고 높은 파아란 하늘처럼, 뜨거운 폭염을 가셔내고 빨간 병풍으로 산을 물들인 늦가을 풍경처럼 중년의 모습은 그렇게 아름답다.
또한 그 풍경에는 익힌 세월에서의 따뜻한 배려가 있고, 다른 이들을 껴안는 정겨운 온기가 있으며, 자신을 추스릴 수 있는 진솔한 자신감이 있고, 항상 고여서 흐르는 유려한 사랑의 강물이 있기 때문이다.
중년, 그 신비스런 아름다움....
가을의 뒤편, 만추의 여울목에서도 서로 서로를 사랑하면서 배려할 줄 아는 여유의 중년이라는 길을 조용히 걷고 싶다.
환한 가을햇살을 함께 나누며, 본연의 아픔은 뒤로한 채 진실한 행복을 신비롭게 간직하면서 남아있는 삶을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행복은 이루지 못할 근사한 말이 아니다.
행복은 마음 속 깊은 데 숨어 있는 진실이며 행동하는 양심이다.
행복은 남에게 나눠줌으로써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나눔으로써 채워지는 진정 신비로운 것이다.
따라서 베푸는 만큼 행복의 양도 그만큼 많아진다.
행복은 또 스스로 만족하는 데에 의미가 있으므로 남보다 나은 점에서 행복을 구한다면 영원히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한두 가지 나은 점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열 가지 전부가 남보다 뛰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복이란 남과 비교해서 찾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자족의 삶에 그 해답이 있음을 아는 게 보다 중요하다.
종종 중요한 메모를 해두었다가 찾는데 한참이나 걸렸던 경험이 있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생각, 나의 옷들엔 주머니가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었다.
바지에서 티셔츠, 스웨터에까지 수많은 주머니들을 일일이 들쳐보느라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유난히 빈번한 이유는 필자가 좀 덜 떨어져서일까 ?
어쨌든 이 주머니들이 우리가 성장하고 적당히 사회에 길들여져가면서 갖게 되는 욕망, 욕심이라는 주머니는 아닌가 하고 비추어보았다.
어린 시절엔 최소한의 것으로도 만족하던 것이 이제는 자꾸 “더, 더 !” 라는 소리만을 외칠 뿐 쉽게 만족할 줄 모르는 실태가 우리의 주머니로 고정되어진 듯 해서 못내 서글프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마지막에 입게되는 옷,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이제 마음의 욕심이란 주머니를 헐거이 모두 비워내고, 할 수만 있다면 그 없음의 여유로움으로 중년의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신비의 계절에 어울리는 생각과 격에 맞는 행동으로 이웃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아울러 자신도 더불어서 행복을 느끼는 중년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만추의 하늘을 우러르며 새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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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향 깊을수록 달빛 어두워
고샅길 선율 가득
더욱 자지러지는 풀벌레 울음,
밤하늘 가로질러 욕망의 수돗가에 흐르던
젖빛 은하수 깃 접음이려니

기갈나게 하는 건 암담한 앞날이었고
멈추어 있어도 쉼없이 꿈틀거리는 심연의 바다,
그 바다는 하늘 향해 항거의 몸짓 보이다가
이내 제 몸 열어 하늘 온통 들이마셔
점점 하늘로 변해가지

하늘은 바다 그리워 바다로 달려들고 -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기억의 반추
떠올리고 생각하고 또
또 떠올리는,
생각의 미늘 끝나는 저 처녀지로 별 보내면
죽은별 향한 애절한 그리움

그 속에서
당신은 수천 수만갈래의 빛 되어
내 감은 눈가으로 신비롭게 내리꽂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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