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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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출판 예정 두번째 詩集의 제목입니다.

林森의 인생에 있어서 또다른 전환점이 되는 시기의 시작인
2008년 후반기부터 2010년 전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인 양
정말 많은 量의 詩를 짓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의 나날을 헤쳐나오면서
量産된 詩이니만큼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비감어린 내용과
칙칙한 파스텔톤 색깔의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의 방랑자 다운 林森의 詩心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우는 詩語의 조화가
오묘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는지라,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고
한 데 어울려 함께 눈물짓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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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봄에 쓰는 쓸쓸한 늦가을 일기 *



시작노트

" 늦봄에 쓰는 쓸쓸한 늦가을 일기 " 詩作 note

오늘 하루가 시작된다. 목하 봄은 저물고 여름이 열리고 있다. 이름이 늦봄인지 초여름인지 분명한 구분이 되지 않는 계절이 바로 이즈막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한 계절의 혼돈 가운데 있거늘, 이런 저런 국내외의 혼란스러운 정세들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하루 하루 무탈하게 살아내는 일들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면 어느 것 하나 시원한 내용의 기삿거리도 없어서, 요즘은 뉴스라고 하는 걸 접한다는 일도 아예 짜증 그 자체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의 망령에 너무 오래 시달리다 보니 바람직하지 못한 이력이 붙어서일까, 지금은 보통의 국민들조차 배짱만 늘어서 당국의 조치에 제대로 순응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이다. 봄이면 뭐가 다르고 여름이면 또 어떻단 말인가? 가을이건 겨울이건, 숫제 계절 감각마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일상이라 암담한 심사에 하늘만 올려다본다. 그러다가는, 막상 그렇다 해도 멈출 순 없는 노릇이니, 좀 쉬었다 싶으면 다시 힘을 내서 일어나야 하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이려니 하면서, 오늘도 스스로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운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닥 시원스럽지 않다 해도, 잘난 척 하는 위정자들의 행태가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 해도, 돌고 도는 세상사는 그냥 그대로 흘러가는 것, 구태여 순리에 역행하고, 날 세운 심사로 이치를 재단하려 들 일도 아니요, 세상 등지고 홀로 고고한 외톨이가 되려고 애 쓸 일도 아니다. 좀 모자란 사람은 힘 내라고 끌어주고, 지쳐 넘어진 사람은 일어나라고 밀어주면서, 한 데 어울려 그냥 살아갈 일이다.

‘정저지와(井底之蛙)’라는 말이 있다.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말해줄 수 없다는 뜻으로 중국 고사 ‘장자’에 나오는 말이다. 내가 보는 세상이 가장 크고,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가장 위대하고, 내가 뛰고 있는 세상이 가장 빠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우물 속에서 보는 하늘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진짜 하늘을 설명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우물 속에 있는 개구리에게는 바다에 대하여 설명할 수가 없다. 그 개구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우물이라는 공간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 여름만 살다 가는 여름 곤충에게는 찬 얼음에 대해 설명을 해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편협한 지식인에게는 진정한 도의 세계를 설명해 줄 수가 없다. 그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장자’는 이 고사를 통해 세 가지의 집착과 한계를 파괴하고자 충고하고 있다. ‘하나는,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을 파괴하자. 둘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을 파괴하자. 셋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파괴하자.’이다.

즉, 우물안에 있는 개구리는 ‘공간’에 구속되어 있고, 여름 벌레는 ‘시간’에 걸려 있고, 지식인은 ‘지식’의 그물에 걸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도 이 세 가지 그물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알량한 학벌과 지식으로 어느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 지식의 그물! 좁은 회사와 연줄에 얽혀 있는 공간의 그물! 눈 앞의 이익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볼 줄 모르는 시간의 그물! 이런 그물들을 걷어내지 않는다면 진정한 승자로 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내가 보는 하늘만 옳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보는 하늘도 인정해주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런가 하면 ‘득도다조(得道多助)’라는 말도 있다. 강한 사람은 힘이 센 사람도 아니고, 지위가 높은 사람도, 엄청난 부를 소유하거나 학력이 높은 사람도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도와주는(助) 사람이 많은(多) 사람이다. 아무리 힘센 사람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사람을 이기지는 못한다. 그 사람이 잘 되기를, 쓰러지지 않기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많으면 그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맹자’는,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이 많게 되기 위해서는 인심을 얻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평소에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만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득도다조(得道多助)라고 한다. 즉, ‘도를 얻은 사람은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라는 뜻이다. 평소에 남에게 베풀고 인간답게 살았기에 그가 잘 되기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여기서 ‘도(道)’란 사람의 마음이다. 득도(道)란 산에 가서 도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는 뜻이다. 지도자가 ‘도’를 얻었다는 것은 민심을 얻었다는 것이고, 기업가가 ‘도’를 얻었다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평소에 주위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고 배려해 주었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평소에 사람의 마음을 얻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 되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그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과연 득도다조에 자신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서, 멋진 인생 꼭 한 번 살아보기 위해 애쓸 일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이 감사하는 일이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두려움을 모른다. 감사하는 마음은 빛이 어둠을 뒤덮어 버리듯 두려움을 뒤덮을 수 있다. 둘째, 감사하는 마음은 거만해지지 않도록 막아준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조용하고 겸손한 인간을 만든다. 삶이 선사한 조그만 선물에도 기뻐하게 만든다.

삶이 선사한 조그만 선물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시험에 걸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조그만 선물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에게만 그 다음, 더 큰 선물이 주어지는 것이 하늘의 섭리이니까 말이다. 작은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에게 하늘은 결코 더 큰 일을 맡기지 않는다. 범사에 감사! 만복(萬福)의 근원이 감사하는 마음에 있다는 걸 명심하도록 하자.

우리 삶은 많은 조각으로 이루어진 모자이크와 같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몇 안 되는 큰 돌, 즉 중요한 것은 소중하게 여기고 작은 돌에게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돌이 없다면 우리 진리의 그림은 완전한 작품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대체로 크기와 부피로 평가하는 것에 익숙해 있다. 그러나 진정한 가치는 크기나 부피에 있지 않다. 물론 큰 돌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작은 돌이 곳곳에서 빛을 내야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큰 돌 틈새에서 환하게 빛나는 작은 돌을 우리는 보석이라 부른다. 그래서 작은 돌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유익이란 지식이 될 수 있고, 지혜도 될 수 있고, 물건도 될 수 있고, 돈도 될 수 있다. 또, 웃음도 될 수 있고, 칭찬도 될 수 있다. 어떤 모양이든 유익이 되게 한다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유익이 될 만한 일들을 얼마나 할까? 그 유익은 바로, 다름 아닌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하였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용서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사랑이 있는 곳에는 절망에서 희망이, 어둠에서 빛이, 슬픔에서 기쁨이, 의심에서 믿음이, 상처에서 용서가, 욕심에서 감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이 있는 곳에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결국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는 평화와 행복이 깃들게 된다. 그런데 잊어서는 안 되는 게 있으니 바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이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먼저 주는 사랑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몇 번이나 읽어도 언제나 깊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리 부모님을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한다 해도 자기 자신보다는 덜 사랑하기 마련인데 한낱 미물인 연어와 가물치의 삶은 숭고하기만 하다. 깊은 바다에서 사는 어미 연어는 알을 낳은 후 한 쪽을 지키고 앉아 있게 되는데, 이는 갓 부화되어 나온 새끼들이 아직 먹이를 찾을 줄 몰라 어미의 살코기에 의존해 성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미 연어는 극심한 고통을 참아내며 새끼들이 맘껏 자신의 살을 뜯어먹게 내버려 둔다. 새끼들은 그렇게 성장하고, 어미는 결국 뼈만 남게 되어가니, 소리 없이 세상의 가장 위대한 모성애를 설명해 주고 있다. 그래서 연어를 ‘모성애의 물고기’라고 한다. 또한 가물치는 알을 낳은 후 바로 실명하여 먹이를 찾을 수 없어, 그저 배고픔을 참는 수 밖에 없다고 하는데, 부화되어 나온 수천 마리의 새끼들이 천부적으로 이를 깨닫고는 어미가 굶어 죽는 것을 볼 수 없어, 한 마리씩 자진하여 어미 입으로 들어가 어미의 굶주린 배를 채워준다고 한다.

그렇게 새끼들의 희생에 의존하다 시간이 지나, 어미가 다시 눈을 뜰 때 쯤이면 남은 새끼의 양은 십분의 일 조차도 안 된다고 하며, 대부분은 자신의 어린 생명을 어미를 위해 희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물치를 ‘효자 물고기’라고 한다. 두 물고기들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본다. 살아가면서 우린 모두 이 두 가지 역할을 다 하게 된다.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하찮은 이 물고기들 보다 잘 하고 있는지, 연어 같은 모성애는 있으면서, 가물치 같은 효심을 가지고 있지 못한 자식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김이율’의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 중에서 발췌한 글을 올려본다. “창밖의 구름이 참 예쁘더라, 그래서 전화했어.” “농담하지 말고 왜 전화했어?” “그냥. 생각나서 했다니까.” “싱겁기는.... 바쁘니까 끊어.”

“오늘 끝나고 뭐해?” “뭐하긴 뭐해, 야근이지. 집에 뭔 일 있어?” “아뇨. 그냥 했어요.” “쓸 데 없이.”

“밥은 잘 먹고 다니지? 차 조심 하고.” “알았어요. 돈 부쳤는데 받으셨죠? 하실 말씀 있으세요?” “그냥 해봤어.” “회의 들어가요. 담에 해요.”

혹시 ‘그냥’이란 말의 의미를 아는가? 그냥이란 말 속에는 수천, 수만 개의 간절한 그리움들이 숨겨져 있다. 네가 그립다, 네가 보고 싶다, 네가 걱정된다, 너랑 말하고 싶다, 너와 함께 하고 싶다, 너의 손을 잡고 싶다, 너랑 놀고 싶다, 너를 사랑한다, 나 지금 많이 힘들다, 나의 마음을 알아줘라, 나 외롭다, 나 눈물 난다, 나 네가 지금 필요하다....

그냥! 그냥은 그냥이 아니다. 우리를 부르는 애달픈 목소리다. 오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가슴 시린 날이다. 그냥 가슴에 묻어야 할 많은 이야기들이 하늘에 떠다닌다.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의 지저귐을 들어보라. 내일이면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보라. 내일이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보라. 내일이면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임을 알게 되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놀라운 기적 같은 일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헬렌 켈러(Helen Keller)’의 말이다. 소중한 오늘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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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봄 가는 소리도 맘 쓸쓸키는
가을 찜쪄먹을 걸,
눈감은 꿈속으로
한놈 두놈 까마귀 나타나면 숲
이내 피폐해지고 가을끝 뭉텅 와버리리라

축제의 박수 치기 위해
저마다 색색 손바닥 물들여 찬란하던 나뭇잎
갑자기 떠나고

가을비 젖은 길 가 낙엽의 굴욕으로
숨 몰아쉬면
지켜본 나는 한층 쓸쓸할텐데,

가을바람 연실 그 낙엽 긁어모아
발아래로 내던지면
성가신 나는 더욱 쓸쓸할텐데,

범람한 흙탕물 잠겼다 탈수된 양
가을숲
건조한 회갈색꿈 되어져도

산,
들,
마른 억새풀숲,
구름사이 은빛햇살에서도 새하얀 섬광 일으키느니
이제 곧 겨울 오리라

나무는 왜
추울수록 옷벗어 내꼰지는지 정녕 모를 일이다
나는
봄 가는 소리에도 이리 옷 껴입거늘 -

옳지,
봄이 가는 거라면,
가을 저무는 거라면,
몇톨 안남았을 들판의 낟알이나
쪼아먹으러 가야겠구나
쓸쓸하게, 쓸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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