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출판 예정 두번째 詩集의 제목입니다.

林森의 인생에 있어서 또다른 전환점이 되는 시기의 시작인
2008년 후반기부터 2010년 전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인 양
정말 많은 量의 詩를 짓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의 나날을 헤쳐나오면서
量産된 詩이니만큼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비감어린 내용과
칙칙한 파스텔톤 색깔의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의 방랑자 다운 林森의 詩心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우는 詩語의 조화가
오묘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는지라,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고
한 데 어울려 함께 눈물짓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 ]

위로 이동

* 어머니의 날들 *



시작노트

" 어머니의 날들 " 詩作 note

올해도 버릇처럼 별다른 감동이나 느낌 없이 5월 8일 어버이날을 흘려보냈다. 특별한 이벤트나 거창한 행사 없이 그냥 조용하게,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 뵙고 향기 없는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며, 과일 껍질을 까서 어머니의 입에 넣어드리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그렇게 일어나서 그렇게 돌아왔다.

침을 흘리면서 과일을 잡수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렇게 불효를 해도 되는 건가 하는 자책에 슬그머니 눈시울이 붉어져왔다. 필자의 연로하신 부모님은 지금 두 분 다 시설입소등급을 보유하신 상태이고, 현재 강원도 홍천의 한 요양원에서 기거하신다. 그동안 어떻게 해서든지 집에서 모셔보려고 애를 썼으나, 판에 박힌 핑계이겠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이 녹록치를 않아서 부득불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우선은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필자나 형제들의 입장에서, 하반신이 마비되어 거동이 거의 불가능하신 어머니나, 허리를 굽히시기도 버거우실 정도로 심한 통증에 시달리시는 아버지를, 24시간 곁에서 돌봐드릴 수 있는 상황이 못되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리고 재가요양보호사의 케어를 받는 것도 시간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런 저런 방도를 모색하던 끝에 결국은 요양시설에 입소하시는 걸로 결론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적당한 시설을 찾기 위해 몇 번의 입소와 귀가를 반복하여 시도하시던 끝에 지금의 시설에서 임시 둥지를 트신 지가 이제 한 달여 정도 된다.

매주 거르지 않고 문안은 드리고 있지만, 언제나 돌아서서 나오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고, 뒤에서 누군가가 목덜미를 잡아당기는 것 같아서 쭈뼛거리게 된다.

어떤 때는 일이 바빠서 부모님께 가는 일정이 상당히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 소요경비나 다른 지출사항들이 만만치 않아서 신경이 쓰일 때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필자의 친구들이나 동료들의 부모님께서는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신 분이 대다수라는 걸 생각하면, 아직도 생존해서 곁에 머물러주시는 부모님 때문에 갑자기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기운이 절로 난다.

언제까지 부모님께서 이 모자란 아들의 방문을 기다리다가 반겨 맞아주실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어버이날에 필자는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벅찬 행복을 지금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단 카네이션 뿐이랴? 그러고보니 어머니께서 예전 젊은 시절에는 꽃을 참 좋아하셨었는데. 다음 방문 시에는 예쁜 봄꽃을 한 다발 사다 드려야겠다. 비록 거의 말씀은 못하시지만, 아직도 고운 미소를 머금고 언제나 그윽한 눈길로 이 아들을 바라보시면서, 어머니께서는 또 엄청 좋아하시겠지.


● 1904년 시애틀에서 ‘어머니날’ 행사 첫 개최

1900년대 초 미국 ‘버지니아주 웹스터’ 마을에 ‘안나 자이비스’란 소녀가 어머니와 단란하게 살았었는데, 불행하게도 어느날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게 되었다. 소녀는 어머니의 장례를 엄숙히 치르고 그 산소 주위에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시던 카네이션 꽃을 심었었다. 그리고 항상 어머니 생전에 잘 모시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안나는 그 후 어머니를 잘 모시자는 운동을 벌여서 1904년에 ‘시애틀’에서 ‘어머니날’ 행사가 처음 개최되었다.

그리하여 이 날에는 어머님이 살아계신 분은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드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분은 흰 카네이션을 달게 되었는데, 이것이 최초로 ‘어머니날’이 생기게 된 유래이며 카네이션꽃을 달아드리는 아름다운 전통의 시초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에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정하였으며, 그 뒤 1972년에 명칭을 ‘어버이날’로 바꾸어 국가적인 행사로 삼고 있다. 제정 목적은 범국민적 효사상 앙양과 전통 가족제도의 계승 발전은 물론, 사회와 이웃에 모범이 되는 효행자, 전통 모범 가정, 장한 어버이를 발굴해 포상·격려하는 데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행사를 주관하며, 포상 대상자를 각계 각층에서 고루 선발해 효사상의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지방 및 기관 특성에 맞게 행사의 다양화와 내실화를 추진하는 데 중점을 두고 각 시·도 및 시·군·구 등 기관별로 기념식을 실시한다.

올 해는 세월호참사로 인해 대부분의 기념행사나 축제가 취소되었고, 분위기도 차분하게 가라앉아 조용하게 각 가정별로 어버이날을 보냈지만, 실은 겉으로 드러난 화려하고 떠들썩한 어떤 행사가 중요한 게 아니고,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부모님과 어르신들에 대한 존경과 효성의 마음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항(옛 팽목항)에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가 하루 종일 몰아쳤었다. 그곳에 전북지역의 학부모들이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오후에 진도항을 찾아갔다.

가슴에 붉은 카네이션을 달아야하는 어버이날이지만, 자녀들 영정에 흰 국화꽃을 놓아야 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들은 마치 자신의 자녀를 잃은 듯 통곡했다.

이후 학부모들은 “내 새끼들아 정말 미안하다, 미안해” “하루빨리 돌아오렴” 등의 문구가 적힌 노란 종이배를 바다에 띄웠다고 한다. 한 켠으로 숙연해지면서, 우리 국민들의 따스한 마음씨와 서로를 격려하는 인정이 아직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위안이 된다.

희망이 아주 사라진 건 아닌가보다. 비록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큰 슬픔과 아픔이 온 나라를 뒤덮었지만, 그래서 도저히 돌파구를 찾기 힘들 정도의 절망과 암흑의 구렁텅이에 침몰되어버렸지만, 우리는 이제 다시 힘을 내서 일어서야 한다.

넘어진 이웃에게 손을 내밀고, 뒤쳐진 이웃을 이끌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나아갈 새로운 길은 항상 열려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이 밝은 희망의 대로라는 것도 새삼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소중한 삶과 고귀한 생명을 어떻게 아끼고 가꾸어야 하는지 우리는 지금 다시 되새겨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 뿐인 목숨을 어떤 모습으로 잘 만들어가야 할지 이제는 정말 곰곰 생각해보아야 한다.

● 마치 자신의 자녀를 잃은 듯 대성통곡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 피리’의 캐릭터 ‘파파게노’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목을 매려고 한다. 그 때 세 명의 요정이 나타나 그를 말린다. “죽음의 유혹을 물리치고, 희망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는 노래를 듣고, ‘파파게노’는 요정들과 노래를 부르면서 활기찬 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이를 ‘파파게노의 효과’라고 한다.

심리적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은 ‘베르테르 효과’ 대신 ‘파파게노의 효과’를 생각하면서 죽음의 유혹을 물리치고 희망찬 삶을 살도록 스스로 인지하여야 할 사명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일반적인 진리가 실생활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노년층에게 더욱 큰 반영으로 작용된다는 점이다.

언젠가 조선일보에 기재된 기사를 보니 우리나라의 두 명 중 한 명이 자살을 늘 생각하는 빈곤층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노인의 자살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최악이라는 보도내용을 보고 필자는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자살의 원인은 복합적인 사회 환경에서 일어난다고 본다. 즉 상대적인 경제적 빈곤과 조직으로부터 내몰림을 당함으로, 외로움의 극치로 인한 우울증, 좌절된 효능감, 미래에 대한 희망 상실감 등이 융합되어 자살하게 된다.

“한 조각의 희망만 있다면 자살하지 않는다”라는 어떤 심리학자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할 수만 있다면 사랑과 소망의 전도사가 되어 소중한 생명 지킴이의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언젠가 탤런트 ‘차인표 씨’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인간 삶의 메뉴에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살은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자살은 결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세상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생명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자살하는 사람이 급증하여 자살률 1위의 중증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에 그의 진심 어린 호소는 많은 이의 자살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놨다. 소중하고도 소중한 우리의 생명을 우리가 스스로 지키고 가꾸어나가는 아름다운 삶의 자세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그는 평소 삶의 실천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 우리의 삶 속에 소중한 생각을 심어보자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정녕 소중한 것임을 알고 싶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삶 속에 소중한 생각을 심어보자. 그러기 위해서라면 덜 미워하고 더 사랑하자. 덜 가지고 더 행복해하자. 눈물을 흘리는 대신 웃도록 노력하자. 다가오지 않은 내일을 두려워하는 대신 오늘을 열심히 살자. 잘못된 결정을 후회하는 대신 새로운 결정을 내리자.

실패를 안타까워하는 대신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자. 아프다고 말하는 대신 아픔을 견디어내자. 바쁘다고 말하는 대신 쌓인 일을 하나씩 해 나가자.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걱정하는 대신 나 자신에게 어떻게 보일까 생각하자.

남들의 잘못을 용서하는 대신 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자. 갖지 못함을 불평하는 대신 베풀지 못함을 마음 아파 하자. 죽음을 두려워하는 대신 살아 있음을 기쁘게 즐기자.

지금 이 시간도 우리에겐 정말 소중한 삶의 일부일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아름답게 쓰여지길 간절한 사랑과 함께 소망해본다. 그렇게 살자고 스스로에게 약속을 해본다.


약속이란 무엇이냐고 물으면 모를 사람이 없고 이해 못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약속의 참뜻을 분명히 알아야 하고, 또한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한다.국어사전을 보면 약속은 ‘장래에 할 일에 관해 상대방과 서로 언약하여 정하는 것’이라고 씌여있다.

약속은 희망을 만들고 희망은 사랑을 낳는다. 세상에 갓 태어난 어린 생명은 사랑과 사랑의 약속, 실천의 열매다. 그렇다. 사람은 맨 처음의 태어남도 약속에서 시작되고, 아침부터 일과가 끝날 때까지의 생활은 무언의 약속을 실행하는 과정이다.

약속으로 태어나고, 약속을 위해 살다가, 약속대로 떠나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사람에게 미래의 약속이 없으면 의욕도 없고 발전도 없으며, 살아갈 희망과 의미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약속 때문에 온갖 역경을 참고 견디며 몸부림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도 잘 생각해보면 약속할 줄 아는 동물이요, 약속을 이행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삶의 규범을 뜻한다. 부모와 자식간의 약속, 형제간의 약속, 친구간의 약속, 스승과 제자의 약속, 이웃과 이웃간의 약속, 임금과 신하와의 약속, 정부와 국민간의 약속, 나라와 나라 사이의 약속 등이 거미줄처럼 엮여진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약속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모두 중요한 것이다. 약속이 안지켜지고 룰이 깨질 때 불평 불만 불신을 낳고 다툼이 일어나며 전쟁이 발발한다. 동양 윤리에서는 약속을 지키는 것은 신의를 뜻하며, 신의를 생명처럼 여겼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고사가 있다. 중국 전국시대 때의 이야기이다. 은나라에 ‘미생’이라는 선비가 있었는데 하루는 사랑하는 여인을 다리 아래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미생이 약속시간이 지나도록 기다려도 여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때마침 큰 비가 내려 강물은 점점 불어났다. 미생은 위험한 줄 알면서도 계속 여인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는 약속을 지키려다 죽은 것이다. 현대인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물이 불어난다면 다리 위로 올라와서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깊이 음미해야 할 것은 이 선비의 융통성 없는 행동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약속과 신의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겨 지킨 그 정신인 것이다.

필자는 오늘도 생명을 주신 부모님을 생각한다. 약속의 중요성과 희망의 의미를 심어주신 부모님의 사랑을 돌아본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 필자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어주는 직업을 갖게 양육해주신 부모님의 깊은 은덕을 감사한다.

세상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말에 의해서 움직인다. 어린아이는 지각이 부족해서 부모가 어떤 말을 하든지 그 말대로 행동을 한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자기 마음에 드는 말을 선택하여 따른다.

청개구리는 엄마의 말과 반대되는 행동을 해서 엄마 청개구리를 화병으로 죽게 하였다. 사람들은 동화 속의 어린 청개구리를 어리석다고 비웃는다. 그런데 자신들도 똑같은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 즉, 자신의 마음에 새겨야 할 아름답고 선한 말들은 다 버리고, 자기 인생을 슬프고 비참하게 하는 말들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우리들의 마음에 새겨진 말들은 누구의 말일까? 혹시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이나 괴롭히던 사람들의 말이 아닐까? 또 어떠한 내용들이 우리 마음에 새겨져 있을까? 혹여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었던 말들이 아닐까?

우리의 마음에 새겨진 말들은 우리의 행동 기준이 되고 생활 습관이 된다. 혼을 내는 아버지의 말이 마음에 새겨진 사람은 반항적인 인생을 살아간다. 어머니의 잔소리를 마음에 새긴 사람은 습관적인 무관심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우리의 마음에 말을 새기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 마음의 길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에 새겨야 할 아름다운 말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일생동안 우리를 염려하며 사랑해주는 부모와 형제, 친구와 이웃, 성현들의 말....

이 좋은 말들은 관심을 두지 않고 우리에게 상처를 입혔던 말, 가시처럼 찌르는 말, 실수의 말, 오해의 말들을 마음에 새기고는, 두고두고 되새기며, 비만 오면 울어대는 청개구리처럼 주기적으로 원망과 탄식을 뿜어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탄식과 원망은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상처와 아픔을 준다. 이제 우리는 이 악한 말들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제부터 아름다운 말들을 마음에 새기는 연습이 필요하다.

상대를 속상하게 하는 말, 고함소리, 불평, 상처를 입히는 말, 화내는 말, 잔소리들은 빨리 잊어버리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넓게 하는 말,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말, 행복하게 하는 말, 기분 좋은 말을 마음에 새기고 그러한 말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어야 한다.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감사의 말을,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을, 근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평안의 말을, 잡담으로 가득한 사람에게는 진실의 말을, 선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칭찬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져서 그들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고, 또한 그들의 말은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삶에 생명수가 될 아름다운 말로 우리 삶을 수놓아가는 오늘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그런 희망과 약속의 다짐으로 오늘도 살아간다.


" 어머니의 날들 " 詩作 note 닫기
 | 배경이미지 새로적용  | |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내 어머니 핼쓱한 얼굴에 차츰
까무스름히 여름 오르기 시작할 때,

어머니 눈빛에 고이는 서늘한 한숨과 체념
익숙한 친구로 삼아
지긋지긋하고 낯선
비일상에서 구해낼 그날

어머니 이마에 주름진 여름의 하늘
벌겋게 달아올랐다가
하이야니 부서지곤 할 그날

어머니 발길 해연히 조금씩 멀어질 적
가슴엔 핏물같은 쓰라림
퐁퐁 솟아날 그날

깊은 수렁에 내려놓은 어머니 체념
젖은 사다리 타고 여물기 시작할
먼 산의 계절

포기,
혹은 묵인의 안개속 침몰하면서
발작처럼 우울이 나를 후려쳐
심한 그리움으로 신열 앓는 요즈막의 표정들

사위는 온통 차거운 열기뿐이다
지금 여름의 시작이다
그리고 여기는 세월의 바닥이다

어머니는 그날로 한발짝 더
다가가셨을 게고

 | 배경이미지 새로적용  | | 글자 크게 글자 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