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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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출판 예정 두번째 詩集의 제목입니다.

林森의 인생에 있어서 또다른 전환점이 되는 시기의 시작인
2008년 후반기부터 2010년 전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인 양
정말 많은 量의 詩를 짓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의 나날을 헤쳐나오면서
量産된 詩이니만큼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비감어린 내용과
칙칙한 파스텔톤 색깔의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의 방랑자 다운 林森의 詩心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우는 詩語의 조화가
오묘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는지라,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고
한 데 어울려 함께 눈물짓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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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글게 둥글게 *



시작노트

" 둥글게 둥글게 " 詩作 note

“세상만사 둥글둥글 호박같은 세상 돌고 돌아...” 어떤 대중가요의 가사다. 필자가 젊었을 적 한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애창되었던 번안가요다. 당시에는 너나 할 것 없이 거리에서도 가정에서도 이 노래를 콧노래로 흥얼거렸을 정도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기억이다. 아마도 특별한 신경 쓰지 않고도 쉽게 암기할 수 있는 가사도 유행에 한 몫 했던 듯 싶다.

예컨대 지금 시국이 이 노래와 정말 잘 맞아 떨어지는 상황이다. 딱히 누구라고 지칭할 것도 없다. 서로 잘 났다고 우길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냥 이 노래처럼 둥글둥글 호박같이 이리저리 굴렀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젠 지칠만도 하건만 아직도 깎아야 할 모서리가 남아있고, 지금도 걸어야 할 딴지가 존재하는 건지, 참으로 여정이 길고도 멀다.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아서 국민들에게 안정을 찾아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직도 미련이 남아서 움켜쥐고 있는 사람들이나, 이 기회를 틈 타 어부지리를 꾀하려는 사람들이나 한심하기는 매 한 가지다. 어떻게 본인들만 모르는 겐지, 야산에 머리 처박은 꿩의 모양새라서 보기에 꼴 사납고, 한 마디로 싸잡아 폼새가 흉하기 그지 없다. 세상밖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빗대어 조롱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선량한 서민들과 타락한 지도층이 어울려 사는 나라’ 라고 말이다. 부끄럽다. 쥐 구멍을 찾고 싶다.

먼 옛날로 돌아가서 차라리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로 환원되었으면 좋겠다. 특출나지 않은 사람들끼리 올망졸망 모여 앉아, 좌담회 하듯이 나랏일에 머리 맞대고 숙의하는 동화같은 나라가 부럽다. 본인이 아니면 절대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죄다 보내버리고, 양보하고 봉사하는 겸양지덕만 오롯이 쌓아올린 사람스러운 사람들만 남아서, 그냥 아름다운 이야기로 정치 일기를 써내려가는 역사를 만들어보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허기사 꿈과 현실의 구별이 엄격한데 더 이상의 감상이나 착각에 사로잡혀있는 것도 위험한 발상일 테고, 이제부터라도 우선 생각이 바로잡힌, 만인의 호구인 필자가 먼저 정신줄울 잡아야겠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엊그제는 트인 광장에 나가서, 잠시 동안이지만 피켓을 높이 쳐들고 흔들어대며 1인 시위도 해보았고, 어두운 광야에 나서서 손에 손 잡고 촛불행진도 해보았으니 할 도리는 다 한 셈이다.

그렇거늘 아직도 세상은 도무지 바뀔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니, 이 작은 힘으로 세상을 바꾸기는 애저녁에 틀린 셈이고, 차근차근 스스로의 한계를 뒤돌아보면서 우선, 필자 자신이나 바꿔보도록 시도해 봐야겠다. 자! 그럼 무엇부터 시작해볼까나? 머리를 열고 뇌를 끄집어내볼까? 가슴을 절개해서 염통을 꺼내볼까? 배를 갈라서 오장육부를 전부 헤집어볼까? 그냥 겉으로 보이는 사지육신부터 전부 잘라내볼까? 갈기갈기 찢어 온 몸을 해부해볼까?

그렇게 하면 사람 자체가 좀 변할 재간이 있을까? 그렇게 해서 사람 자체가 변화하고 나면 이 어지러운 세상에 지금보다는 더 잘 적응할 수 있으려나? 불평과 불만 없이 기쁨과 행복으로, 오늘날 벌어지는 이 사태를 관망하면서 즐길 수 있으려나? 만일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야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스스로에게 칼질을 하리라. 기꺼이 죽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이 세상이 과연 찬란한 광명의 땅이라고, 하늘 향해 크게 소리치리라.

그런데 오늘 시작노트가 좀 이상하게 흐른다. 필자가 아마도 많이 흥분했는가 보다. 이러지 말자. 진정하고, 뛰는 가슴을 가라앉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과시 필자의 입에서는 사랑이라는 화두가 나와야 제 격인데. 필자의 머리로는 평화를 상상해야 어울리는데. 필자의 행동 하나하나에 깃드는 멧세지라면 의례껏 세상의 빛과 횃불이어야 하는데. 이토록 처절한 상처를 가슴에 가득 안고는 도대체 역할을 할 수가 없다. 도무지 도리를 이어갈 수가 없다. 도저히 의무를 이행할 수가 없다.

그러니 이 쯤에서 버리자. 과감하게 잊자. 그리고 거듭나자. 그냥 둥글게 둥글게 굴러가버리는 호박같은 세상인 것을. 필자야 엉절거리며 주저앉아 질척한 피똥을 내지르건 말건 누가 있어 관여하랴? 그래도 마지막 남은 양심은 있을 테니까 어쩌면 거기에 호소를 하면 될 것이다. 그 양심이 미약한 숨결이라도 이어가고 있다면 모름지기 사람의 마지막 도리는 하리라는 믿음에 다걸기를 해보자. 꿈이 남아있고, 기대가 살아있으니 아직 완전히 늦어버린 건 아닐 게다.

이렇게 파국이 찾아오지는 않을 거다. 일말의, 정말 한 올의 양심만이라도 남겨놓고 있었다면,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그의 측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꼬인 매듭을 풀어나갈 것이라는 확신에 마지막 남은 소망을 조심스레 얹어 놓는다. 엎어져 겨우 가쁜 숨 내쉬고 있는 조국에게 응급처치를 가하는 심정으로.

미국 제28대 대통령인 ‘윌슨’ 대통령에게 한 비서관이 찾아왔다. 그 비서관은 대통령에게, 격무에 시달려 너무 지쳤으니 잠시 업무를 접어두고 기분전환을 좀 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윌슨 대통령은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 상관이 허락하지 않으실 걸세.” 비서관은 의아해하며 대통령에게 다시 물었다. “지금 상관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러자 윌슨 대통령이 비서관에게 말했다. “그렇다네. 내 상관은 바로 나의 양심일세. 양심상 임무 수행에 매진할 수밖에 없기에 자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네.” 스스로가 책임지고 있는 자기 자신의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누구도, 어떠한 경우라도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 이것이 바로 양심의 사전적 의미다.

어떠한 길이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그러면 양심은 필경 자기 자신뿐 아니라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길로 인도해줄 것이다. “양심은 스스로 돌아보아 부끄럽지 않다는 자각을 갑옷 삼아 아무것도 두렵게 하지 않는 좋은 친구다.” 문학가 ‘단테’의 말이다.

기본적으로 어떤 성취를 이루기 전에 마음 속에 양심의 탑을 먼저 쌓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세상을 경영할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고 표현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양심이라는 조건을 외면한 채 오직 앞에 보이는 목표와 결과만을 위해 매진했다면, 자신을 먼저 경영하는 기초부터 다시 쌓기 시작해야 함이 바람직하다.

한 젊은이가 지혜를 얻기 위해서 현인을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런데 스승은 몇 달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어느 날 불만에 찬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저에게 왜 아무것도 안가르쳐 주십니까?” 스승은 제자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저기 벽돌 뒤에 많은 금괴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돌벽으로 막아두었으니 어떻게 꺼낼 수 있겠느냐?”

제자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망치로 돌벽을 깨뜨리고 꺼내면 됩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러면 하나 더 묻겠다. 여기 있는 이 닭의 알에서 생명을 꺼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제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품어주고 따뜻하게 해주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그러자 스승이 말했다. “그래, 그렇게 품어주고 사랑해주면 그 안에서 생명이 자라서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오게 된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망치로 껍질을 깨는 줄 알지. 물론 망치로 껍질을 깰 수는 있다. 그러나 망치로 깨서는 단 하나의 생명도 건질 수 없단다.” 사람의 마음은 강제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뜻하게 품어주고 사랑으로 기다려주어야 한다.

지금, 혹시 나 홀로 사랑을 하고 있는가? 그래서 상대의 마음을 얻고 싶은가? 그렇다면 상대를 좀 더 이해하고, 좀 더 안아주고, 좀 더 환하게 웃어주자. 어느새 그 안에 사랑이라는 생명이 꿈틀거릴 것이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모든 관계의 가장 우선하는 첫 째 조건이다. 그 이후에라야 비로소 세상을 향해 바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정식으로 띄어지게 되는 것이다.

비단 어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고 해도, 무조건적인 질타나 책망보다는, 그래서 궁지에 몰아넣고 사냥을 하기보다는, 관용과 기회를 줌으로써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더 나은 처리 방법이다. 따뜻한 관심과 용서야말로 경직되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진실한 무기이며, 강팍한 감정을 어루만지는 최선의 도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강력한 바람보다는 따뜻한 햇살이 꼭꼭 싸맨 외투를 벗기는 수단인 것이다. 이는 익히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특별한 습관을 지닌 할머니가 있었다. 그 할머니는 시장을 보러 가거나 잠깐 외출을 하더라도
꼭 금전출납부를 가지고 다니면서 자신의 지출을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 어느 날 이웃 사람이 궁금해서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지출하신 비용을 빠짐없이 그 장부에 다 기록하시나요?” 그러자 할머니가 대답했다. “아니요. 이 장부에는 나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위해 지출된 내용만 기록되어 있어요. 이를테면 단지 버스를 타기 싫어서 편한 택시를 탔다거나, 몸치장을 하기 위해서 지나친 지출을 했을 경우 그 내용을 적는 거라오.”

이웃 사람은 궁금해서 다시 물었다. “할머니, 그런 것들을 적어서 뭐 하시게요?” 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오늘 하루 나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찾는 동안에, 어디에서는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고, 나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 쓴 돈 만큼 보육원이나 양로원에 보내기 위해서 이렇게 하나하나 기록한답니다.”

이 세상에는 기본적인 것들조차 누리지 못하는 이웃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한 시대에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시대적 동지다. 다른 이웃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작은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 뿌릴 때 나에게도 몇 방울 묻는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끝도 없이 벌어지는, 보도 듣도 못하던 이 괴상망측한 ‘권력 놀음’, ‘시녀 흉내내기’의 작태는 대관절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나 어려움은 알 바 없다는, 일부 특권층의 이기주의와 자기 만족의 광적인 탐닉과 집착에서 시작된 망국의 병이 아름다운 삼천리 금수강산을 절망과 탄식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는 오늘의 이 현실이 개탄스러워, 전전긍긍하면서 밤잠 못 이루는 수많은 국민들에게 제언하고 싶다.

차라리 포기하고 넘어지는 게 지금 택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닐까 하고 체념하려 하는 억울한 서민들에게 권면하고 싶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주어야 할 조국의 위대한 거보를 이어야 하는, 거룩한 우리의 책무와 사명을 생각해서라도, 우리에게 닥쳐온 이 난관과 역경에 굴하지 말고, 그럴수록 힘을 내어 꿋꿋하게 이겨내자고. 그래서 모두가 더불어 승리할 찬란한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이다.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태권도 ‘미국’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렸을 때의 이야기다. 이 선발전은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중요한 경기였다. 두 여자 선수가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매트 위에서 두 선수는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한 선수가 경기 시작과 동시에 기권하고 매트에서 내려왔고, 뒤따라 내려온 상대 선수가 기권한 그 선수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날 경기를 포기한 선수는 한국계 미국인 ‘에스더 김’이었고, 그리고 뜻밖의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선수는 ‘케이 포’라는 선수였다. 케이 포 선수는 준결승전에서 다음 경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쳤다. 그 상태에서 경기했더라면 에스더 김 선수가 우승해서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런데 에스더 김 선수는 그 사실을 알고 그녀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경쟁자에게 올림픽 출전권을 양보한 것이다.

기자들이 올림픽 출전권을 포기한 이유를 묻자 그녀는 대답했다. “케이 포는 나보다 실력이 한 수 위에 있는 선수입니다. 나는 올림픽에 출전할 적임자에게 기회를 주었을 뿐입니다.” 이날 두 선수는 모두 승자가 되었다. 세상은 아름답게 지는 방법보다는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쉽게 볼 수 없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양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지금보다 한 뼘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양보가 때로는 성공의 가장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한다. 새겨볼 말이다. 아름다운 양보로 더 좋은 결과를 얻는 데 일조를 했다면 그것은 비단 다른 사람만의 성공이 아니다. 다함께 공유하는 성공의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는 법이다.

그런 작은 진리가 커다란 진실의 세상을 이룩하는 밑거름이 된다. 그런데 이런 기본 상식을 망각한 사람들이 있다. 하물며 우수하고 특별한 조건과 자격을 갖춘, 그리고 선택과 경쟁에서 이겨 승리자가 된, 소위 지도자라는 계층의 정치인들이 왜 이런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를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 것일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참으로 요지경 세상이다. 참으로 불쌍하기 짝이 없다.

조선 ‘숙종’ 때 ‘당하관’ 벼슬에 있던 ‘이관명’이 ‘암행어사’가 되어 ‘영남지방’을 시찰한 뒤 돌아왔다. 숙종이 여러 고을의 민폐가 없는지 묻자, 곧은 성품을 지닌 이관명은 망설임 없이 사실대로 대답했다. “황공하오나 한 가지만 아뢰옵나이다. ‘통영’에 소속된 섬 하나가 있는데, 무슨 일인지 대궐의 후궁 한 분의 소유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섬 관리의 수탈이 어찌나 심한지 백성들의 궁핍을 차마 눈으로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숙종은 화를 벌컥 내면서 책상을 내리쳤다. “과인이 그 조그만 섬 하나를 후궁에게 준 것이 그렇게도 불찰이란 말인가?” 갑자기 궐내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러나 이관명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다시 아뢰었다. “신은 어사로서 어명을 받들고 밖으로 나가 1년 동안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하의 지나친 행동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구 하나 전하의 거친 행동을 막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니 저를 비롯하여 이제껏 전하에게 직언하지 못한 대신들도 아울러 법으로 다스려주십시오.”

숙종은 여러 신하 앞에서 창피를 당하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자 곧 ‘승지’를 불러 전교를 쓰라고 명하였다. 신하들은 이관명에게 큰 벌이 내려질 것으로 알고 숨을 죽였다. 그런데 숙종은 전혀 뜻밖의 어명을 내렸다. “전 ‘수의어사’ 이관명에게 ‘부제학’을 제수한다.” 숙종의 분부에 승지는 깜짝 놀라면서도 머뭇거리면서 교지를 써내려갔다.

주위에 함께 있던 신하들도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도무지 어의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숙종이 다시 명했다. “아니다. 부제학 이관명에게 ‘홍문제학’을 제수한다.”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 승지만이 아니었다. 신하들은 저마다 웅성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에 또다시 숙종은 승지에게 명을 내렸다.

“아니다. 홍문제학 이관명에게 ‘예조참판’을 제수한다.” 숙종은 이관명을 가까이 불러들여 말했다. “경의 간언으로 이제 과인의 잘못을 깨달았소. 앞으로도 그와 같은 신념으로 짐의 잘못을 바로잡아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오.” 권력 앞에서 그릇된 것을 그릇되다 말하는 용기도 훌륭하지만 충직한 신하를 알아보는 숙종 임금의 안목도 훌륭한 것이었다.

정의를 외칠 수 있는 사회... 현자를 알아보는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 몇몇 무뢰배들에 의해 국정이 농단되지 않는 사회... 이것이 진정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아닐까? 그저 맥 놓고 호박같은 세상이나 바라지 않는, 둥글게 둥글게 돌고 도는, 적당히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고 체념 섞인 넋두리를 노박이로 늘어놓지 않는, 모두가 힘을 내서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사회, 이런 세상을 진실로 우리는 바란다.

‘세종대왕’은 말씀하셨다. “임금이 덕이 없고 정치를 잘못하면 하늘이 재앙을 보내 하늘이 경계시킨다고 하는데, 지금 가뭄이 극심하다. 대소 신료들은 제각기 위로 나의 잘못과 정령의 그릇된 것과, 아래로 백성들의 좋고 나쁨을 거리낌 없이 마음껏 직언하여,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걱정하는 나의 지극한 생각에 부응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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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품은 건 모두 둥글더라

알도 그렇고,
열매도 그렇고,
씨앗도 그렇고,

내 불알과
내 사랑하는 여인의 자궁도
모두 모두 둥글더라

태초, 생명 내려보낸 하늘도 둘글고
태양도 둥글고
달도 둥글더라

생명 키우는 대지도 바다도
하늘 경계로
둥근 울타리 드리우고 섰더라

인간 삶과 죽음 더불어 둥글고,
그런고로 죽음 없으면
삶도 무의미한데

죽음 싫거든
살 줄을 알거라 -
고함지르던 법정 둥근 머리통 사모하여
속삶 들여다보니,

나를 살게 만드는 요소와
나를 못살게 만드는 요소가
동전의 양면처럼
둥글게 둥글게 맞붙어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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