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예상하고 있는 출판 계획 상으로 보자면
세번째 詩集이 될 詩들의 묶음입니다.

2010년 후반기부터 2012년 봄까지의 詩를 모았습니다.

역시 힘든 세상살이의 단면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고달프고 버거운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새롭게 거듭나는 미래의 또 다른 삶과
행복의 추구에 관한
보헤미안 林森의 깨달음의 속내가
절절하게 배어나고 있습니다.

비단 詩人 만의 이야기가 아닌
세상 모두의 이야기이며,

그렇기에 누구나가 스스로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여기면서
차례 차례 감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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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燈) *



시작노트

" 등 (燈) " 詩作 note

어김없이 장마철은 돌아왔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계절이 지닌 버릇을 흐트러뜨리진 못한다. 그러니 여름의 한 가운데에는 의례히 장마가 끼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제나 저제나 하늘을 바라보며 비를 기다리는 농심들도 최소한의 믿는 구석은 있는 셈이다.

이러다보면 장마가 시작될테지, 그럼 자연스레 비는 내리겠지, 아니, 오히려 너무 많이 내려서 물난리가 날지도 모르니 아예 거기까지 대비해야겠지.... 그런데 어째 금년은 조짐이 심상챦다. 엊그제만 해도 저 아래 남녘에는 억수같이 쏟아지기도 했다던 폭우가, 여기 강원도 영서지방에는 찔끔 당나귀오줌 만큼 감질나게 흩뿌리고 말았다.

여태 가물어서 말라 비틀어진 작물들이 비맛 좀 보나 했더니 역시 또 비껴갔다. 정말 야속한 하늘이다. 정녕 원망스런 빗줄기다. 정작 내려줄 곳은 여기인데, 그동안 오매불망 목이 타게 기다린 지역은 바로 이곳이거늘, 어째 무심하기만 한 비는 엉뚱하게도 다른 데서, 그리도 바쁘게 콩타작 하듯 빈번하게 대지를 두드리고 있단 말인가? 하릴없는 짓거리로 이미 이골이난 하늘의 심술에, 강원도의 농민들은 넋을 잃고 앉았거늘....

그래도 아직 완전히 늦어버린 건 아니다. 비록 많이 지체되기는 했을 망정, 이제라도 푸짐하게 선심 한 번 쓰면, 그저 사람 좋은 우리 농민들은 다시금 하늘을 향해 행복한 목청 높여 만세를 불러댈 거다. 그러하니, 하늘이여. 산천초목에 푸른 힘 솟게 할 단비를, 꿀비를 흥건히 내려다오. 그렇게 온 대지를 적셔다오.

창 밖으로 건너다보이는 산자락을 멍하니 주시하다가 문득 점 하나를 발견했다. 그 점은 쏜 살같이 달려오면서 점점 커지더니 적당한 거리에서 하늘로 솟구친다.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수리매 한 마리가 창공을 유영한다. 바쁜 듯, 한가한 듯, 거센 날갯짓을 천지에 선보이다가는, 이내 활짝 날개를 펴고 멈춘 듯이 공중에 떠있기도 하면서 깜냥껏 누리를 조롱한다.

폼새가 제법 위엄있고 기상차다. 일개 금수에 지나지 않거늘, 녀석은 한동안 필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어 세상 천지를 돌아친지 어언 한 갑자 이상이 지났건만, 아직도 제 자리만 맴도는 필자의 모양새에 비해, 저 흔치않은 유영은 얼마나 행복 넘치고 멋드러진 삶의 표현인가?

날짐승이면 어떻고, 미물이면 또 어떠랴? 제약 없이, 구애받음 없이, 그저 순간의 생각이 시키는 대로 후회 없는 오늘을 살 수 있다면, 그게 비단 단 하루일지라도 행복하기에 나름의 의미가 있고, 거역하지 못할 숙명의 굴레를 깨는 환희가 깃들여질 수도 있는 노릇일텐데, 녀석이 한껏 부럽기만 하다. 문득 억제 못할 시샘에 창문을 급히 닫아 건다.

우리의 삶에서는 막연한 부러움이나 동경보다 더 절실한 바람들이 있다. 우선은 그게 먼저다. 멋없고 초라한 일상적 손발짓이라도 그것들이 모아져서 삶이 되고, 희망이 되고, 본질이 된다.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가장 절실한 생존의 밑거름이 된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가, 멍에가, 족쇄가, 차라리 우리에게는 낯익어서 살갑다.

때로는 자연의 조화가, 세월의 흐름이, 인연의 덧없음이 우리를 더욱 무기력하게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먼 추억의 인간성을 고이 간직하면서 이만큼 역사를 이어온, 발전을 일궈온, 터전을 닦아온, 우리네들이기에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난관과 역경이 닥쳐오더라도 결코 굴하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우리의 미래가 저기 있기에 예서 주저앉아 하늘만 원망하고 있을 수는 없다. 없으면 없는대로, 모자르면 모자란대로, 우리는 해낼 것이다. 우리는 잘 살아갈 것이다. 서로 협력하면서.

일순,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행복이란 과연 어떤 걸까? 맛으로 치면 단 맛? 고소한 맛? 아니면 그보다 더 좋은 어떤 감칠맛? 모양으로 표현한다면 동그란? 네모진? 아니면 별 모양처럼 아름다운? 소리로 하면 노래소리 같은? 웃음소리 같은? 아니면 아가의 옹알이 같은? 촉감으로 느끼자면 보드라운 솜털 같은? 듬직한 바위 같은? 아니면 시원한 물결 같은? 도무지 적당한 비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어렵다. 그래, 그냥 행복은 행복이다.

행복은 사전에 보면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풀이되어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왠지 무미건조하다. 가볍다. 행복을 너무 쉽게 취급하는 듯 해서 조금 서운하다. 그렇게 간단한 몇 마디 말로 대변할 수 없는, 커다란 마음이 분명히 행복의 또 다른 주머니 속에 들어있을 건데 말이다.

겉으로는 보여지지 않지만, 숨겨진 행복의 주머니 속에는 우리가 평생 가져도 모자라지 많을 무언가가 가득 들어있을 것 같다. 한꺼번에 다 꺼내놓으면 우리가 소중함을 모르고 흥청망청 써버릴까봐 하나씩 꺼내서 선물처럼 평생 우리에게 주는, 아름답고 귀중한 어떤 것이 들어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행복은 쉽사리 그 진실의 얼굴을 알 길이 없다. 그저 열심히 바라보면서 염원할 뿐이다. 그게 사람들이 할 일이다.

누구나 행복하면 기쁨의 감정이 들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하여 행복이 곧 기쁨은 아니다. 물론 기쁨은 행복의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행복=기쁨’의 등식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상을 받을 때는 기쁘지만, 그 기쁨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진다. 복권에 당첨될 때의 기쁨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오래가지 않는다.

기쁨은 시험을 잘 보거나, 게임에서 이기거나, 맛있는 식사나 쇼핑을 하는 것과 같은 사건에서 느끼는 일시적인 감정이다. 이러한 즐거운 일이 매일매일 반복된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상황에 금방 적응하기 때문이다.

‘행복(happiness)’에 대한 가장 인기 있는 정의는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이다. ‘안녕(安寧)’이란 평안하다는 의미인데,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특별한 사건이 없는 편안한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직장, 건강, 가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 삶에 대한 만족도가 중요하다.

물론 슬프고 괴로운 사람이 자기 인생에 만족할 리는 없고, 만족감에는 당연히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행복이란 ‘만족과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다.

미국과 일본 대학생들에게 작은 휴대용 컴퓨터를 나누어주고, 신호가 울릴 때마다 자신들의 감정 상태를 컴퓨터로 실시간 보고하도록 했다. 그 결과 일본 학생들은 미국 학생들보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하다는 보고가 많았으나, 미국 학생들은 선물을 받거나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을 때 더 많은 행복을 느꼈다.

미국인들은 일본인들에 비해 ‘행복하다(happy)’와 ‘흥분되다(excited)’를 비슷한 의미로 사용한다. 행복이 주관적인 만족감인 만큼, 문화에 따라 차이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현대인에게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더니, 나라나 계층에 관계 없이 돈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돈과 행복은 관계가 없다고 믿고 싶어 한다.

과연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돈과 행복의 관계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은 애매한 결론을 내린다. “부유한 사람들이 평균적인 수준의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증거는 없다. 부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지만, 가난은 불행을 가져다준다.” 이러한 결론은 부자라고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대중적인 정서를 배반하지 않으려는 표현이다.

다르게 말하면, 경제적으로 평균 수준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돈은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고, 중간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중요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뉴스를 보면 가끔 거액의 복권 당첨자들 이야기가 나온다. 대개 그들은 처음에는 돈벼락을 맞은 당첨 소식으로 나오고, 나중에는 패가망신한 소식으로 나온다.

이는 뜻밖의 횡재는 좋을 게 없다는 대중적인 믿음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반면 복권 당첨자들이 그 돈으로 말미암아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는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복권 당첨자들과 당첨되지 못한 사람들을 비교 연구한 바에 따르면, 당첨자들의 행복감이 더 높았다. 이처럼 진지한 노력 없이 행운으로 돈을 버는 복권 당첨과 같은 경우도 행복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돕는 상황을 표현한 거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고통을 겪어 본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행복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도와준다. 그리고 이들은 이타적인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행복을 더욱 키운다.

1976년에 12,000명 이상의 미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생의 목표를 조사한 다음, 19년 뒤 자신의 인생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해 봤더니, 부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했던 경우가 제일 불행했다. 물론 성공한 경우 그런대로 만족했지만, 대부분은 돈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했던 사람들보다 만족도가 낮았다.

돈은 행복에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는 불행해진다. 대부분 자신이 목표로 한 만큼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자기 인생에 만족하고, 남을 사랑하고 돌보는 천사들도 많다. 이들은 당연히 행복하다.

행복은 순간적인 감정이 아닌 장기간 지속되는 기분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이러한 성향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경우가 많다. 쌍둥이 집단을 연구하면 어떤 성향에 유전성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데, 개인이 행복감을 느끼는 성향의 20~50%는 타고난 것이라고 한다.

행복을 느끼도록 타고난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이들은 작은 것에도 만족한다. 만족이란 자기가 원한 것 중 얼마나 성취했나에 따라 결정되므로, 애초에 조금 원했다면 만족하기는 훨씬 쉽다. 그래서 ‘행복=가진 것/원하는 것’의 등식이 성립한다. 인도의 길거리 노숙자들은 미국 노숙자들보다 인생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높은데, 이 역시 인도 사람들이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아무튼 인간에게 있어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다. 정치사상 중에서도 마찬가지로 현세의 행복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플라톤(Piatn)’이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s)’와 같은 고전적 체계에서도 ‘행복(에우다이모니아)’은 궁극의 목적이었다.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만족하는가를 0~10점 중 어디에 해당하는가로 답하게 하면 대부분은 6~9점을 준다. 10점 만점을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10점 만점을 주는 사람들은 극단적인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극단적’이라는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불안이나 걱정이 전혀 없는 이들의 삶이 실은 대부분 결과가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행복을 계속 논하자면 정말 한도 끝도 없다. 소위 행복이라는 단어 하나가 가지는 의미는 세상과도 같다. 세월과도 같다. 역사라고 할 수도 있다. 행복은 영원한 삶의 시작이자 끝까지 불멸인 염원이니까 당연하게 방대할 수밖에 없는 화두이다.

1965년도에 상영된 프랑스 영화 ‘행복[Le Bonheur]’은 사랑에 관한 멜로드라마의 걸작으로 꼽힌다. 영화는 더없이 단란하고 화목해 보이던 한 가정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보여주며, 행복을 향한 인간의 집요한 욕망에 대해 중층적이고 논쟁적인 질문을 던진다.

‘행복’은 하나의 메시지가 아니라 수많은 질문을 남기는 영화다. 여기, 아내와 애인을 동시에 사랑하면서 행복해하는 남자가 있다. 그런 남자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꿈꾸는 두 여자가 있다. 아내는 결국 죽음을 맞고 그 자리를 애인이 채운다. 두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는 어떤 벌도 받지 않고, 애인과 새 가정을 꾸리며 새로운 행복을 맞이한다. 남자의 도발적인 가치관과 이 영화의 이상한 해피엔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영화에서 세 인물이 놓인 상황과 그들의 감정에는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비록 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도 영화는 이들을 이해 불가능한 악인이거나, 비정상적인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행복을 지키고, 행복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애쓰는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로 보인다.

그러므로 영화는 도덕적인 기준을 근거로 인물들의 행위와 선택을 판단하려는 영화가 아니다. 대신 여러 층위의 질문을 던져놓는다. 우선 이 영화에는 인간의 감정을 제도화하는 결혼과, 행복한 중산층 가정의 이미지에 대한 지독한 회의와 반문이 있다. 그리고 도덕이나 사회적 관습으로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적극적인 물음이 있다.

나아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질문까지 포괄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보편적인 가치로 쉽게 믿고 추구하는 ‘행복’에 얼마나 많은 모순과 어둠이 내재하는지 보여준다.
다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죽은 아내의 영혼이 무겁게 배회하고 있는 장면을 배치해, 영화적인 대구를 이루게 함으로써, 더없이 냉정한 태도로 행복에 대한 우리의 환상을 직시하게 한다.

아내의 죽음을 거쳐 애인에 의해 다시 복구된 가족의 형상을 보며, 우리는 첫 장면을 볼 때와 같은 따뜻함을 거의 느끼지는 못한다. 나아가 이 마지막 장면이 또 다른 ‘아내’의 비극을 예견하는 시작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행복이 지니고 있는 양면성을 신랄하게 파헤친 감성의 영화라고 불리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모름지기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곁, 행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행복하고 싶으면 행복한 마음을 가지면 된다. 그것이 행복의 시작이다. 그렇게 쉽게 가자. 가능하면 단순하게 행복을 꿈꾸자. 행복하다고 믿자. 지금.

힘들 땐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서 우리는 행복한 거다. 외로워 울고 싶을 때 소리쳐 부를 친구가 있는 우리는 행복한 거다.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할 머리가 있어 우리는 행복한 거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별의 따스함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기에 우리는 행복한 거다.

슬플 때 거울 보며 웃을 수 있는 미소가 있기에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목소리가 있기에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온 몸에 힘이 빠져 걷기도 힘들 때 기대어 쉴 수 있는 슬픔이 있기에 우리는 행복하다. 지금 비록 조금은 우울하지만자신보다 더 슬픈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발이 있어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가진 것 보잘 것 없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편지 하나 보낼 수 있는 힘이 있어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가슴 활짝 펴 작은 가슴으로, 나를 위해주는 사람을 마주 안아 감쌀 수 있어서 우리는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이토록 우리가 행복할 조건들은 너무나도 많다. 그런데도 우리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이건 삶에 대한 배신이며, 행복에 대한 직접적인 모욕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의무적으로 행복해야 한다. 자, 이제 나서보자. 가슴 가슴마다 행복한 등(燈)을 켜들고, 우리를 손짓하는 행복의 나라로 나아가자. 그리고 거기서 마음껏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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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의 풍경은 그렇게 돌올했어
핏물어린 눈으로 숱한 밤 지샜던 우리
지금 어느 세월의 강에 발 담그고 있는지,
나는 아직 그 강의 이름을 몰라

점점 커지는 알약을 삼킨 건지
가슴 터질듯 뻐근해오고 -

내일이 여러번 지나도
지금 이 생활 잊을 순 없겠지,
잊으려 애쓰는 한편으론
끝내 잊지 않으려 추악했던 날들
떠올려보기도 하겠지,

아무것도 붙들 게 없을 땐
상처도 힘 되는 시간이 있는데
세월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
나는 왜 사진을 볼 적마다 이다지도 눈물겨운가?
왜 모든 응시의 끝에는 슬픔 찰랑이는가?

스트레스 배설되고
달콤한 탈진감에 등 녹진해지니
여름밤 삽상한 바람
할랑할랑 불어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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