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며 추억이며 " 詩作 note

바야흐로 여름의 문턱이다. 그러고 보니 계절의 여왕이랍시고 천하를 호령하며, 만고에 이어질 듯한 기세 등등으로 으스대던 5월도, 어언 그 꼬리를 보이고 있구나. 이렇게 속절없이 또 하나의 계절이 지나보다. 이룬 것도 없이, 남긴 것도 없이 우리 삶에서의 소중한 봄 하나가 스러진다. 허기사 다음 계절을 또 살아내야 하는 우리네에게는, 가는 계절의 인사 따위는 관심도 미련도 없다. 그저 허겁지겁 오는 계절을 맞이할 따름이다.

문득 서글픈 생각도 든다. 이토록 정신줄 놓고 하루를 아등바등 산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에 대단한 보람과 자랑이 평생의 이력으로 붙여지려나? 얼마나 멋드러진 삶의 지표를 설정하려고 이리도 분주하게 하룻날들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살아제끼는 건지, 이제는 아주 조금만이라도 멈추어 서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좀 가져보고 싶다. ‘삶의 여유’라는 제목으로.

기왕지사 봄을 보내고 새로운 계절 여름을 몸으로 맞이할 양이라면, 봄이 주는 상큼한 멧세지 하나 쯤은 기억에 각인시켜야 할텐데, 그래서 삶의 좌우명으로 삼을 푯대 하나 정도는 장만해야 하겠는데, 글쎄다. 우리는 지금 어디 쯤에 서 있는 걸까? 무슨 생각으로 내일을 바라보며, 참다운 소망을 가꾸어야 하는 걸까? 곰곰히 생각에 몰두해보는 아침이다.

‘물 때 오른 그릇 뒷면 / 그릇 뒤를 잘 닦는 일이 다른 그릇 앞을 닦는 것이네요 / 내가 그릇이라면, / 서로 포개져 기다리는 일이 더 많은 빈 그릇이라면, / 내 뒷면도 잘 닦아야 하겠네요’ 이상은 ‘윤미라 시인’의 ‘그릇을 닦으며’ 라는 동시에서 발췌한 일부 구절이다. 필자가 이 시를 처음 접한 것은 작고한 ‘채희동’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묵상집에서 였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각종 언론에는, 화려하고 멋진 사람들이 무너지는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자세하게 기술할 필요는 없지만, 그 때도 저명한 사람들의 무수한 명성이 하루 아침에 무너져내렸다. 그 사람들의 앞태는 근사했으나 뒤태는 퍽이나 추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정작 뒤태는 본인만 모르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역시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고 근사한 사람이기를 바라며 살아왔다. 그리고 꽤나 앞태가 좋다는 평가를 받으며 살았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스스로가 깨닫게 되고 발견하게 된 뒤태는, 믿어왔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웃는 얼굴에는 애써 감춘 미움이, 호의적인 말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숨어있었다. 필자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사실은 이 시는 마지막 구절이 참 좋다. 단연 압권이다. ‘어머니, 내 뒤의 얼룩 말해주셔요’ 끝은 이거다. 얼룩을 말해달란다. 누구의 어머니든지 모든 세상의 어머니들은 조심스럽게 사실을 일깨워준다. 자식이지만, 사랑하는 자식이지만 본인이 느꼈던 아픈 감정들을 들으며, 우리에게서 우리가 거부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건 어머니가 아니면 누구도 해줄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좋다.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서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시와 함께 걷는 묵상길’이라는 부제를 지니고 있는 ‘채희동’의 이 수필 묵상집은 약 10년 전인 2005년 10월에 출판되었다. 시처럼 신처럼 깨어 있는 삶을 살고자 했던 채희동이, 세상을 떠나기 전 18개월 동안 '생활 성서'에 실었던 글과, 그 외 다른 잡지에 실었던 글들을 한 데 모아 엮은 유고집이다.

시는 머리의 언어가 아니라 가슴의 언어다. 그러기에 가슴이 살아 있지 않고서는 아무도 시를 읽을 수 없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평소 성서를 읽는 마음으로 한 편의 시를 읽고 묵상하며, 가슴으로 느껴지는 언어들을 꾸밈없이 기록한 묵상 글을 만나볼 수 있다. 물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기는 하지만 그런 선입관 없이 읽으면, 또한 아주 쉽사리 감동에 빠져들 수 있는 좋은 글이 듬뿍 담겨있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사람은 서로의 앞모습을 바라보고 사는 존재라고. 그래서 앞모습을 가꾸기 위해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고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하며 자신의 앞모습을 가꾸는 데 온갖 정성을 들인다. 심지어 앞모습을 더 잘 꾸미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오늘 시인은 설거지를 하면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그것은 설거지를 해놓고 보니, 그릇의 뒤가 다른 그릇의 앞이었다는 사실이다. 실상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누구도 깨닫지를 못하고 살아간다.

어쩌면 사람의 관계란 서로의 앞모습을 바라보고 사는 일보다는, 나의 뒤와 너의 앞이 서로 포개져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머물던 자리에 누군가가 다시 찾아오고, 네가 서있던 자리에 다시 내가 서게 되는 것, 그래서 앞모습이 아름다운 사람보다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더 좋은 건가 보다.

어쩌면 그릇의 안은 우리 마음이요, 그릇의 뒤는 우리의 생활이라 할 수도 있겠다. 아무리 그릇의 안쪽(마음)을 잘 닦았다 하더라도 그릇 뒤쪽(생활)이 더러우면, 그 그릇(사람)은 제대로 닦여졌다 할 수 없다. 또 그릇의 뒤쪽을 잘 닦았다 하더라도 그릇의 안을 닦지 않았다면, 그 그릇은 온전히 닦여진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그릇의 안과 밖은 하나요, 사람의 마음과 생활은 하나다.

세상에는 나 혼자만 존재할 수도 없고 살아갈 수도 없다. 퍼즐처럼 저마다의 색깔과 모양으로 한껏 어우러진 모습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한다면 그릇의 안과 밖, 내 앞모습과 뒷모습, 내 마음과 생활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만족스런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외적인 것에만 너무 많은 관심을 쏟고 살아 왔다. 사람의 눈만을 의식하고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우리의 뒷모습이다. 잠시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고 가릴 수 있겠지만 우리의 속마음은 숨길 수 없다. 보이는 앞모습과 함께 보이지 않는 뒷모습 까지도 아름답다면, 그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서 있는 모습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우리의 떠난 자리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어야 하겠다. 그릇을 닦는 마음으로 우리의 뒷모습도 앞모습처럼 아름답고 깨끗하게 닦는 하루가 되길 기원해본다.

불과 시 한 편에서 정말 많은 것을 깨닫고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이것이 시의 마력일 것이다. 좋은 시는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선도한다. 그래서 시는 그 자체로 일상이다. 어려운 시어로, 구절로 표현되어있지만, 그 내면에서 제시하는 바는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단조로운 우리의 삶, 그 본연이다. 그렇게 시는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쓰여지고 읽혀져야 한다.

얼마 전에 읽은 책 중에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아는 이들에게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인데, 2007년 19살의 나이로 아프리카 ‘우간다’로 건너가 지금 열네 명의 현지 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우고 있는 ‘케이티 데이비스’라는 미국 아가씨의 이야기다. 이미 알고 있던 제목이었던지라, 처음엔 바람 쐬러 간 서점의 제일 앞 자리에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망설이지 않고 구입해서 기쁜 마음으로 안고 돌아 왔다.

어린 나이에 평안함과 안락함을 버리고 우간다의 아이들을 입양하여 키우게 된 그녀의 삶을 마주하고는 그지없이 먹먹해졌다. 조그마한 봉사에도 드러내지 못하여 안달하고,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아의 자만감에 빠져 자신의 행위를 들춰내며 자랑하던, 가식적이고 얄팍한 이데아에 큰 울림이 되어진 계기였다. 단적으로, 이 책은 하늘의 사랑을 힘입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환경을 초월한 천국이 임한다는 진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다. 읽는 내내 이 아가씨의 충만한 삶이 부러웠다.

“나는 102 명의 고아원 아이들이 모두 한 데 모여 찬양하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한 시간 남짓 찬양할 때 아이들은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웃고 울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기도를 했다. 아이들은 신을 만나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신의 임재를 강력하게 느꼈다. 예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감동과 충만이 나를 압도했다.

늦은 밤 아이들을 재우며 사랑에 감격해서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난다. 신이 이 지극히 작은 자들까지도 특별한 목적을 위해 창조하셨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사랑을 갈구하는 커다란 커피색 눈망울들, 기대감이 듬뿍 묻은 예쁜 얼굴들을 보며 내가 할 일은 그저 사랑해주는 것임을 깨달았다.”

얼마나 멋지고 고아한 실상인가? ‘가장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성현의 겸손한 가르침이 눈물나게 생각나는 하루였다. 아울러 ‘금이라 해서 다 반짝이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한 철학자 ‘J. R. R 톨킨’의 말이 떠올랐다. 맞는 말이다. 막연하게 반짝이는 것을 구한다고 해서 모두가 금은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금이라 해서 다 반짝이는 것은 아니며, 헤매는 자라고 해서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더 좋은 길을 찾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오래 되었어도 강한 것은 시들지 않고, 깊은 뿌리에는 서리가 닿지 못한다. 그만큼 확고한 진리라면 어떤 환경이나 영향에 의해서도 좌우되지 않고, 오직 변치 않는 정도의 길을 걷게 될 수 있다. 또한 타버린 재에서 새로이 불길이 일고, 어두운 그림자에서 빛이 솟구칠 것이니, 속단이나 섣부른 결론은 스스로를 족쇄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케이티의 어린 시절은 세상 사람이 부러워 할 만한 것을 다 가진 유복한 환경이었다. 학급 회장이면서 학교의 퀸카, 반에서 1등, 꽃미남 남자친구, 브랜드 신발, 잘 빠진 스포츠카,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부모님까지.... 그야 말로 상류층의 선택받은 삶이었다. 그런 그녀가 하늘의 뜻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비록 그녀의 인생 계획은 틀어졌지만, 하늘의 뜻이 그녀의 계획 보다 훨씬 좋았다고도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들은 다 사라졌지만, 대신 정말로 좋은 것들을 다 얻었다고 한다. 이 세상 보다 좋은 곳에서 온 평안과 기쁨도 맘껏 경험했다고 한다. 케이티가 처음 입양의 축복 속으로 빠져들게 된 계기를 보면, 그 시작은 비극이다.

처음엔 그냥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아프리카의 한 지역으로 떠났던 봉사활동이었는데, 돌아와서도 자꾸 생각이 나서 마침내 혼자 다시 그곳을 찾게 된다. 그런데 작은 진흙집에 머물며 자매들과 함께 생활하던 중에 폭우로 집이 무너지게 된다. 그러면서 아홉 살인 큰 딸이 벽돌에 깔려 크게 다치게 된다. 아버지는 에이즈로 죽고, 어머니는 도망가고, 아홉 살의 딸은 가장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세 아이를 돌보며 사랑을 하게 되었지만, 복잡하고 까다로운 입양 과정과 절차에 엄두가 나지 않아 고민하면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 혼란스러운 가운데 대책없이 막연하게 하늘에 기도만 하고 있었다. 그 때 그 일이 벌어졌는데, 수줍음 많은 다섯 살 배기 ‘스코비아’가 까치발로 케이티를 찾아와서, 10분 가까이 아무 말도 없이 그윽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이는 이윽고 수없이 망설였던 질문을 던진다.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쏙 빠져들어갈 것처럼 커다란 갈색 눈망울의 스코비아의 말을 듣고, 케이티는 목구멍까지 가득 차있던 답이 자연스레 입밖으로 나왔다. “그래, 내가 네 엄마야.”

물론 구태여 멀리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어야만 그 사랑이 가치 있고 빛난다는 건 아니다. 우리의 가까운 이웃들의 터전 가운데에도, 잘 살펴보면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그늘진 곳이 너무나 많다. 우리가 외면하고 팽개친 그들의 삶의 터에도, 작고 소박한 행복과 기쁨의 웃음소리가 솟아나게 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는 있다. 우리가 잘 모르고 있을 뿐이다. 아니, 대다수는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는다. 새삼스럽게 귀찮고 성가신 일을 더 만들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니까.

필자는 기회 있을 때 마다 인간의 가장 큰 미덕인 사랑에 대해 역설을 한다. 거창하고 웅장한 사랑을 말함이 아니다. 사소하고 손쉬운 일상에서 나눌 수 있고, 베풀 수 있는 사랑의 존재 이유를 피력하곤 한다. 어떤 댓가나 결과를 수반하는 사랑의 조건이나, 체계적인 사랑의 과정을 설계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냥 숨 쉬듯이 미처 알아차릴 새도 없이, 나누는 게 사랑이다.

예전에 소품이나 잡화 등을 판매하는 가게를 운영했던 적이 있다. 수년 동안 참 많은 손님들을 만났다. 그 가운데 특히 아름다운 기억으로 자리잡은 손님들이 많다. 그 중 한 분의 이야기다. 어느날 저녁 무렵에 사십대로 보이는 남자 손님이 가게로 들어왔다. 아내는 얼른 “어서 오세요.” 하고 반갑게 맞았다. 그런데 손님은 남성용 물건 대신, 가게 안 쪽에 있는 여자 지갑이 진열된 곳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더니 따로 보아둔 지갑이 있는지 아내에게 지갑의 모양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다행히 손님이 원하는 것과 비슷한 물건이 있어, 손님은 그것을 사기로 결정했다. 요금을 치른 다음 손님은 만원 짜리를 한참 세더니 방금 구입한 지갑에 그 돈을 넣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부인에게 전화를 하는 모양이다.

“내가 지갑을 샀는데 지금 시장입구로 나와요.” 아내는 “지갑만 사드려도 좋아하실텐데 돈까지 그렇게 많이 넣어주세요? 부인 생일이신가 봐요?” 하면서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손님은 “아니예요. 우리 집사람이 지갑을 잃어버리고 집에 와서 너무나도 상심하고 우울해 하기에 위로해주려구요. 잃어버린 것과 같은 지갑에 잃어버린 만큼의 돈을 넣었으니, 그 일을 깨끗이 잊고 힘내라구요.” 하며 빙그레 웃었다.

잠시 뒤 손님은 곱게 포장된 지갑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기 위해 가게 문을 나섰다. 아내는 그 손님이 나간 문 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필자도 작은 감동이 밀려와 가슴이 두근거렸다.

입장을 바꿔보면 어떻게 했을까? 지갑을 사주기는 커녕, 지갑 하나 제대로 간수 못한다고,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 핀잔이나 하고 말았겠지 하니 쓴 웃음이 난다. 그 뒤 필자는 누군가 실수를 하면 그 때의 손님을 떠올린다. 상대를 먼저 헤아리는 마음, 그것이 바로 사랑의 시작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영원히 남겨질 꿈과 추억의 이야기, 그것이 사랑의 결론이다. 두고 두고 꺼내서 되새김해도 질리지 않고, 늘 새로운 소망과 평안을 가져다주는 신선한 충격과 깨우침이 바로 사랑의 끝자락이다. 이럴 계획은 아니었는데, 막상 5월이 저물고, 6월의 시작이 목전에 다다르고 보니 갑자기 세월을 돌아보고 싶다. 과연 얼마만큼 와 있는 건지.... 계절, 그 끝은 보이는 건지....

살아온 나날을 다 평가하긴 이를지 모르지만, 다듬지 못해 빛 바랜 사진첩을 펼쳐보며 뜻 모를 미소와 한숨을 내쉰다. 여기 저기서 삶의 편린들을 조각해보고, 이미지들을 모아보고.... 시간을 병 속에 모아둘 수 있다면 필자가 제일 먼저 하고픈 건, 영원한 세월이 흐를 때까지 하루 하루를 모아 두었다가, 사랑으로 미래로 함께 보내는 것이다.

만일 그 하루들을 영원히 지속시킬 수 있다면, 만일 말로써 소원을 이룰 수 있다면, 하루 하루를 보석처럼 모아두었다 다시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보내련만, 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나면 그 일들을 할 시간이 충분치 않을 것 같아서, 이곳 저곳 두리번거린 끝에야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고픈 소망이 바로 사랑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만일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과 꿈들만 담아두는 상자가 있다면, 그 상자 속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을 것을, 그 소망과 꿈들이 전부 사랑에 의해서만 이루어졌구나 하는 기억 외엔.... 그리고 꿈이며 추억이며, 그런 소중한 것들이 모두 사랑으로만 비롯되었구나 하는 생각 외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