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설날 새벽에 쓰는 일기

겨울새벽이 성급하기도 하네
마분지 한장 붙인 듯 했던 까만 창
보고있는 동안
잿빛, 연회백빛 엷어지며
겨울새벽 안개 밀치고 다가오네

안개틈으로 샛길은 보여,
조신한 겨울나무 달큼하게 눈향기 뿜어
검갈색 가지 살랑 흔드네

삽상한 공기
천개의 손가락 살갗 어루만져 감겨오면
옷 모두 벗어버리고
겨울새벽으로 걷고 싶네

저절로 호흡 깊어져
하얀 풍경 신경줄 타고
몸속 흘러오는 새벽시간엔
단 하나만이 간절하여서

지금,
시를 짓고 싶네

내가 왜 여기 와있는 걸까 ?

사랑 외 어떤 것에도
끝내 삶 걸 수 없으며
다른 걸 위해선 내 한부분도 나누어주기 싫은
이 이기심 안고 -

허공에 긴 선 그어보네
이건 바람,
이건 산,
이건 안개, 이건 이건....
이것은 겨울새벽의 찬 공기,
머릿속에서 이미지들 미친 듯 맴도네

다시 세상 돌아가
책상앞 앉으면 아득히 사라질
이미지들이, 시상들이,
맹렬히 그리워지네, 하면

나 빨리 돌아가고 싶네, 가서
시 짓고 싶네, 그토록
사랑하고 싶네, 다
사랑하고 싶어지네, 뜨겁게

로맨스 그레이 불태우고 싶어지네
불태움, 불태움....
눈에 보이는 어떤 사물들과,
살갗 감겨오는 안개의 촉수들과,
산기슭 따라 파헤쳐지는 찰흙 질감들과,
어두운 보랏빛 뭉개지는 건너편 겨울새벽의 저 산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