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예상하고 있는 출판 계획 상으로 보자면
세번째 詩集이 될 詩들의 묶음입니다.

2010년 후반기부터 2012년 봄까지의 詩를 모았습니다.

역시 힘든 세상살이의 단면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고달프고 버거운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새롭게 거듭나는 미래의 또 다른 삶과
행복의 추구에 관한
보헤미안 林森의 깨달음의 속내가
절절하게 배어나고 있습니다.

비단 詩人 만의 이야기가 아닌
세상 모두의 이야기이며,

그렇기에 누구나가 스스로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여기면서
차례 차례 감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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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 가치 *



시작노트

" 존재 가치 " 詩作 note

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법정 기념일로 정한 날이다.
기념식 공식 행사에서는 ‘장애인인권 헌장낭독’, ‘장애인복지 유공자에 대한 훈·포장과 표창’이 수여되며, 야외행사에서는 특집방송, 풍선을 이용한 모형 만들기, 얼굴 페인팅 등 놀이마당이 열리고, 종교단체·기업·사회단체 등이 마련한 먹거리가 무료로 제공되기도 한다.
특히 1997년부터 ‘올해의 장애극복상’을 제정해 장애를 훌륭하게 극복하는 장애인을 발굴 시상함으로써 장애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는 한편, 4월 20일부터 1주일 동안을 장애인 주간으로 정해 각 지방자치단체 및 장애인 단체별로 체육대회를 비롯한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펼친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수는 비공식적으로 집계해보면 언어, 시각, 청각, 지체 등 모두 400여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열 명 중 한 사람 정도는 어떤 부류이든 장애인으로서,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이웃과 사회인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신체만 건강하면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장애인에 관한 생각의 부담 자체를 스스로 경시하는 버릇이 있다.
장애인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신체의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어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나 곰곰히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아무런 장애 하나 없이 심신 모두가 건강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
우리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존재 가치는 충분히 숭고하고 소중한 것임을 너무 쉽게 망각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존재 가치라는 제목의 내면에 깃들어있는 위대함까지도 값싸게 치부하면서 말이다.
우리 주변에서 마주치는 장애인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동정의 모습도 갖지만, 반면에 업신여기거나 불쾌하게 대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이다.
그런 수모와 멸시를 받아가며 살아가는 장애인 본인의 모멸감과 괴로움이야 오죽하겠는가 ?

필자에겐 가슴에 옹이처럼 남몰래 아픔을 느끼게 하던 다섯 살 위의 누님이 한 분 계시다.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 중에 태어나 미처 보살핌을 받을 겨를도 없었고, 순식간에 천연두[마마]라는 병마에 사로잡혀서는 그 후유증으로 얼굴 전체와 신체 일부가 심한 곰보가 되었으며, 입술과 코도 흉하게 일그러지는 장애인이 된 문자라는 이름의 누님이다.
세상에 곱게 태어난 보람도 없이, 모습이 점점 이상해져가는 어린 아기를 부여잡고 천지신명께 간절한 기도로 애원하며 가슴 태웠을 할머니와 부모님의 저 깊은 가슴엔 어떤 강이 흐르고 있었을까 ?
자기 자신이 변해가는 운명도 모르고 초롱초롱한 눈망울 굴리며 웃음지었을 누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 목이 메며 눈물이 맺히곤 한다.
그 어린 생명이 1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너무나 가혹한 선고를 하던, 당시 군의관 앞에서 억장이 무너지셨다던 할머니의 예전 모습도 종종 아련하게 그려진다.
인명은 재천이라던가 ?
하늘은 아무 죄도 없는 어린 생명을 부모님으로부터 차마 앗아가지는 않았다.
지극한 정성과 은덕으로, 비록 장애인의 얼굴은 되어버렸지만 병마로부터 벗어나 건강은 회복되고, 그 뒤로는 무탈하게 자라났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손가락질 때문에 차마 학교에는 보내지를 못하였다.
그런데도 당돌한 우리 누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전혀 좌절하거나 의기소침하지 않고 오히려 누구보다도 명랑 쾌활하게 성장하였다.
또한 남이 버린 책과 공책을 어디선가 얻어와서는, 혼자 독학으로 열심히 글을 깨치고 읽으며 노력을 계속하여 어엿한 문학소녀로 거듭날 수 있었다.
비록 남들처럼 학교 졸업장이나 동창생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 어떤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들보다도 훨씬 예쁘게 글씨를 쓰며, 영어나 한문까지도 떠듬거릴망정 거의 해독을 하는 수준에 다다른 것이다.
그렇게 자라던 누님이 사춘기에 접어들게 되고, 자아를 터득하면서부터 겪었던 고뇌와 절망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었고, 차마 글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방황과 포기로 이어지면서 몇 번에 걸친 자살시도와 가출 등이 반복되고, 주위의 가족들이나 친지들을 정말 암울하게도, 혹은 지치게도 만들던 누님의 삐뚤어진 행동과 일그러진 모습은 당시 어린 필자의 눈으로 봐도, 문자 그대로 비상구 없는 어둠의 늪이었었다.
자포자기한 누님의 가슴을 무엇으로 채우면 좋을지, 가족들은 한 아픔이 되어 얼마나 울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기적같은 행운의 소식이 왔다.
하늘도 저 가엾은 한 마리 양을 아주 잊지는 않았나보다.
누님에게 중매가 들어온 것이다.
알고보니 결혼하겠다는 그 남자도 누님과 똑같이 천연두를 앓은 장애인이었다.
오히려 누님보다도 더 심한 곰보에다가 한 쪽 눈까지 없는 중증의 상태였다.
그러나 사지가 멀쩡하고 힘은 센 그 남자와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누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한 눈에 결심을 하였다.
왼 손의 아픔을 오른 손이 대신하듯 둘이는 만나자 마자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백년가약을 약속하게 되었고, 일사천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급속도로 일이 진행되어 조촐한 혼례식도 치르게 되었다.
당시 집례를 맡으셨던 신부님은 그들을 향해 “오늘 신랑 신부는 세상에 두 번 태어난 것”이라고 표현하셨던 듯 하다.
45년 이상이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뛴다.
그렇게 산골오지로 시집을 간 누나가 알콩달콩 금슬 좋게 시집살이를 잘 하면서 첫 아들을 낳았을 때 아버지는 펑 펑 눈물을 흘리시며 대성통곡을 하셨었다.
그리고 타지의 고모님께 전화를 걸어 큰 소리로 외치시던 절규의 소리는 아직도 또렷하다.
“누님, 누님 ! 우리 문자가 글쎄 아들을 낳았대요. 아들을....”
지금은 손자 손녀들과 더불어 안락한 노후를 사실 수 있는 터전을 잘 닦아놓으셨지만, 아직도 그저 평온하고 편안한 삶 보다는 이골난 농사일 그게 뭐라고, 오로지 흙이 전부라고 믿으시면서 쉬지 않고 일하시는 중에 교회의 장로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는 매형과, 침침한 눈으로도 마을의 살림은 도맡아서 꾸려나가시는 부녀회장 누님의 청춘같은 삶의 모습은 영원한 필자의 자랑이며 긍지이다.

일전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길 가에 놓여진 팻말에 우연히 눈길이 갔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우의 승하차를 도와주세요.” 라는 내용의 알림판이었는데 누군가가 ‘장애우’의 ‘우’라는 글자를 두 줄로 지우고 옆에 ‘인’이라는 글자로 바꾸어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장애인’과 ‘장애우’의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한참 생각해보았다.
장애우는 장애를 가진 친구라는 뜻이지만 실제 장애인들의 입장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장애를 가진 친구라는 표현이 다소 측은해 보인다는 점이다.
둘째는 나이가 많은 장애인에게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셋째는 자기가 자신을 스스로 지칭할 때 친구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종합해보니 장애우라는 표현보다 장애인이 훨씬 더 보기 좋은 표현인 것 같았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함께 부르는 호칭도 신경써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장애를 가졌다는 특수한 제한점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
사람들도 각기 다르듯이 장애인도 마찬가지이다.
장애인은 마치 모두 동일한 인격을 소유하고 있는 단순한 존재라고 착각하지 말고, 그들의 인격을 각각 존중해주며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들을 만나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연스러움으로 대하고, 그들이 요구할 때만 도움을 주고, 그들 스스로 해낼 수 있게 성원해야 한다.
동정이나 과잉 친절을 베풀려고 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것은 그들이 보기엔 쓸데없는 참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섣불리 그들의 능력과 관심에 대해 앞질러 생각하다가는, 그게 얼마나 잘못된 판단인지 곧장 놀라게 될 것이다.
요즘 들어 우리사회가 장애인에 대해 얼마나 벽을 쌓고 살고 있는지 금새 느낄 수 있다.
사실은 호칭이나 표현에 얽매이기보다는 얼마나 더 그들에게 가깝고 친근하게, 말이나 글이 아닌 행동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그들이 어떠한 벽에 막혀있는지 알 것이고, 그 벽을 그들 스스로 허물 수 있게 옆에서 조력하는 협력자도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살펴보니 필자가 타고 있던 버스는 장애인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였다.
하지만 실제로 장애인들이 버스에 승차하는 걸 별로 본 적이 없다.
타고 내릴 때 시간이 많이 걸려, 우리나라의 빨리빨리를 지향하는 사람들로부터는 시선이 따가울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노약자석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50년 후의 당신을 생각해보세요.”라는 글귀가 유난히도 기억에 남는다.
예전 ‘클론’의 ‘강원래’라는 가수가 이런 말을 했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기분 나쁜 말일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론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존재하는 이 세상에, 내가 평생 건강할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장애자, 정신병자, 불구자’ 등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 아직도 현재 법률 용어로 자주 쓰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가 조사한 ‘장애인 비하 법률용어 현황’에 따르면 장애인 비어가 나타난 법령은 57개, 행정규칙은 83개로 집계됐다.
‘국가법령정보센터’를 통해 검색된 비하 용어는 ‘정신병자, 맹인, 불구자, 간질병자, 장애자, 농아자, 심신상실, 심신미약, 심신박약’ 등 9개다.
‘장애자’는 헌법뿐만 아니라 형법, 형사소송법, 치료감호법,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 등 법률에 14차례나 등장했다.
이 단어는 법무부 예규,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고시, 공정거래위원회 인사관리 규정 등 행정규칙에도 무려 61차례나 나타났다.
‘정신병자’는 국립산림과학원 예규, 통일부 훈령, 법무부 예규 등에, ‘불구자’는 한국전력거래소 내규, ‘간질병자’는 국토교통부 훈령에 포함됐다.
스페셜올림픽위는 “장애인을 낮잡는 의미가 뚜렷하거나 논란의 소지가 있는 단어 25개를 선정해 검색한 결과”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일부는 순화된 대체 언어가 있지만 쓰이지 않고 있고, 일부는 순화할지를 둘러싸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례”라고 덧붙였다.
‘장애자, 불구자, 맹인’은 항간에서 비하하는 의미가 붙은 용어로 이미 ‘장애인, 시각 장애인’으로 순화된지 오래된 용어다.
스페셜올림픽위는 또 “일각에서 ‘정신병자’의 경우는 ‘지적 장애인’을 칭하는 경우가 있어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 편 ‘농아자, 심신상실, 심신미약, 간질병자, 심신박약’ 등을 비하용어로 볼지는 장애인단체를 포함한 사회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는 언어 표현을 순화해, 장애인이 사회 일원으로 당당하게 자리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단체는 블루 캠페인에서 언어 순화와 태도 변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자며 약속 열 가지를 권하고 있다.
비주체적이라는 편견이 보이는 ‘장애우’ 대신 ‘장애인’이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쓸 것, 장애인의 반대말로 ‘정상인’이 아닌 ‘비장애인’이라는 말을 사용할 것, 힐끗거리거나 딱하다는 듯 혀를 차지 않을 것, ‘지적장애인’에게 반말하지 말 것, 장애를 ‘앓는다’고 하지 말고 ‘갖고 있다’고 표현할 것 등이 주요 권고다.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 하나가 이렇게 중요한 관계의 요인이나 통계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아흐 빠하…”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천애재활원’에서 울려나는 단말마의 외침소리였다.
김모(46·여)씨는 아버지 김모(79)씨를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 김씨도 “정말 내 딸이 맞냐 ?”며 딸을 안고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이 30년 전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 집에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이후 처음이었다.
어려서부터 뇌병변장애 2급을 앓은 김씨는 혼자 집을 나가서는 동네 어딘가에 앉아있다가 동네 사람의 손에 이끌려 집에 돌아오기 일쑤였다.
16세가 된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집을 나간 김씨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강원도에서 흘러흘러 서울까지 온 김씨는 부녀보호소에서 잠시 생활하다가 정신지체 장애인 보호시설인 ‘천애재활원’에 입소하게 됐다.
재활원은 이름·나이·고향 중 어느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김씨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법원의 허가를 받아 새 호적을 만들어줬다.
서울 ‘노원경찰서’에 김씨의 입소 신고도 했다.
경찰은 강화된 ‘실종아동보호법’에 따라 2006년 김씨의 DNA를 실종아동기관에 등록했다.
지난 해 아버지 김씨는 죽기 전 딸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에서 “요새는 DNA 대조를 통해 아주 오래 전에 잃어버린 사람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터였다.
딸을 찾을 수 있을지 하루하루 마음을 졸이며 보내던 김씨는 며칠 전 경찰서로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 대조 실험을 통해 유전자가 일치하는 여성이 서울 한 재활원에서 지내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김씨는 이날 동네 사람의 차를 얻어타고 재활원으로 한 달음에 달려왔고 두 사람은 30년 만에 재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당분간 함께 살지는 않기로 했다.
물고기를 손질하며 겨우 생활을 꾸려나가는 아버지 김씨의 형편에, 딸을 부양하면서 치료비까지 마련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아버지 김씨가 재활원에 자주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재활원 관계자는 “딸 김씨가 종종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고 했었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겠다.”며 “두 사람이 함께 살지는 못하더라도 재회하게 된 것은 정말 잘된 일”이라고 즐거워 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광주 동부교육청’ 산하 ‘장애학생 상설모니터단’ 정기회의 개최를 막 시작할 즈음에 회의를 주관하던 장학사가 침통한 얼굴로 가슴 아픈 소식을 전하자 장내 분위기는 순간 숙연해지고 말았다.
아들(5세)의 발달장애를 고민하던 부부가 함께 동반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으로, 아이의 아빠가 쓴 유서에는 엄마·아빠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에 힘들어하는 부모의 비통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통상 발달장애라 함은 정신적 장애의 한 유형으로, 이는 다시 지능지수가 70이하인 지적장애와 소아청소년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자폐성 장애로 분류되는데, 문제는 증세가 심각한 중증일 경우, 자해하고 소리 지르고 울고 때리는 과잉행동으로 인해, 1:1 대응이 필요하기에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 모두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중증 발달장애인과 가족에게 절박한 보호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며 별도의 생계 지원 방안도 마련돼 있지 않아, 그 책임을 온전히 장애인 본인과 가족에게만 지우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대통령도 최근 국무회의 석상에서 중증장애인 보호와 지원을 위한 조속한 대책 마련을 지시한 바 있다.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보호시설 종사자나 그 가족 중 일부는 성폭력과 학대 등 범죄의 유혹에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
지난 2011년 개봉한 영화 ‘도가니’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의 현실을 낱낱이 고발하여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일으킨 바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여 경찰은 지난해부터 4대악 중 하나인 ‘성폭력·가정폭력 근절’이라는 대명제 아래 지자체·장애인협회 등 유관기관·단체와 활발한 교류 협력을 통해 장애인 인권보호를 위한 구체적 정책들을 단계적으로 시행해 나가고 있다.
예컨대 ‘장애인 성폭력대책협의회’를 구성, 장애인 거주 시설에 대한 정례 방문을 통해 성폭력 실태 점검과 예방교육을 시행하는 한편, 장애학생이 재학 중인 특수학교·학급에 대해서는 교육청 관계자와 공동으로 현장 모니터링을 실시함으로써 제2의 도가니 사건 재발 방지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전문가 그룹으로 구성된 가정폭력 전담팀은 일반 가정뿐만 아니라, 장애아동 학대를 비롯해 장애인 구성원을 둔 가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에 대해서도 재발 방지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인권 보호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관심과 배려이다.
즉 장애라는 이유로 평생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이들과 그 가족들이 느끼는 남모를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서울 도봉구 소재 장애인시설 관계자의 인권침해와 보조금 횡령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장애인에 대한 우리사회의 관심이 멀어진다면 언제든지 그들은 다시 탐욕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전형적 예를 또다시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어차피 장애인이 없는 세상은 없을 수가 없겠지만, 바라기에는 우리 모두의 한결같은 성원과 의지를 모아 장애인이 전혀 불편함이나 차별을 느끼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려, 서로 화합하면서 살아가는 바람직한 세상이 하루 빨리 이룩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을 지면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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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창문 덜컹이면요
세상 모든 문들 닫히는 소리 들려나고요

낯선 세계속 던져진 예감에
여린 가슴 쥐어뜯기는 이 느낌은요

황홀한 인간세 추억 수려한 눈동자
여전히 밤이면 별빛 부서지네요

저항인지, 은둔인지,
판타지 뿌리는 진실 앞세우니
우리네 현실 함께 꾸는 꿈
합리성 상상없인 존재치 않아요

존재를 할 수 없지요
존재, 존재 가치

심장 퉁퉁 붓는 감동 묵직하거늘
먹먹하도록 핏빛 물든 가슴
더 말해 감정 혼란케 하느니
덜 말해 여백 남기려 하는,

이 공분의 심사 말고는
존재랄 것도 없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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