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예상하고 있는 출판 계획 상으로 보자면
세번째 詩集이 될 詩들의 묶음입니다.

2010년 후반기부터 2012년 봄까지의 詩를 모았습니다.

역시 힘든 세상살이의 단면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고달프고 버거운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새롭게 거듭나는 미래의 또 다른 삶과
행복의 추구에 관한
보헤미안 林森의 깨달음의 속내가
절절하게 배어나고 있습니다.

비단 詩人 만의 이야기가 아닌
세상 모두의 이야기이며,

그렇기에 누구나가 스스로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여기면서
차례 차례 감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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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를테면 *



시작노트

" 이를테면 " 詩作 note

“로테여, 적어도 나는 당신 때문에 죽는다는 행복과 당신을 위해서 이 몸을 바친다는 행복을 누리고 싶소. 당신의 생활에 평화와 기쁨이 다시 돌아온다면 나는 기꺼이 용감하게 죽겠소. 아아, 그러나 친근한 사람을 위해 피를 뿌리고 그 죽음에 의해서 새로운 수백 배의 생명을 북돋운다는 것은 오직 소수의 고귀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되었던 것이오.”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의 저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젊은 연인들 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그려 오늘날까지도 명작의 하나로 칭송받고 있는 작품이다. 1774년 출간돼 일약 베스트셀러가 된 이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 ‘베르테르’는 여자 주인공 ‘로테’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그녀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실의와 고독감에 빠져 끝내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이 소설은 당시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면서 유럽 전역에서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베르테르에게 공감한 젊은이들은 그를 따라 자살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심지어 이 때문에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발간이 중단되는 일까지 생기기도 했다.

이처럼 자신이 모델로 삼거나 존경하던 인물, 또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따라서 시도하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한다. 다른 말로 ‘자살 전염’ 또는 ‘모방 자살’, ‘동조 자살’ 이라고도 한다.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필립스(David Phillips)’가 붙인 말로, 그는 20년 동안 자살을 연구하면서 유명인의 자살이 언론에 보도된 뒤, 자살률이 급증함을 발견하였다.

TV, 신문과 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거나 영화, 드라마, 혹은 책과 같이 친숙하게 수용되거나 인터넷과 같이 손쉬운 정보교류의 수단이 되는 매체들이 유명인의 자살을 다루었을 때 자살사건이 증가하는 경향은 엄연히 존재한다. 대중매체에서 자살의 묘사는 자살을 친숙하고 일반적인 사건으로 생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살에 대한 환상이나 낭만을 심어주기도 한다. 자살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자살을 문제 해결의 한 가지 수단으로 여기게 만들고, 모방자살을 유발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04년 홍콩 스타 ‘장국영’이 ‘만우절’날 거짓말처럼 저 세상으로 가 버렸을 때, 또 예전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고 ‘최진실’ 씨가 자살로 유명을 달리했을 때 자살률이 갑작스레 높아졌던 바 있다. 이것이 바로 ‘베르테르 효과’인 것이다. 이런 모방자살은 특히 청소년에게서 쉽게 나타난다. 또한, 자살한 유명인과 나이, 성별 등이 비슷할수록 모방률이 높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접한 자살 사건과 동일한 방법을 통해 자살 행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매체에서 접하는 자살 사건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청소년들에게 문제해결 방법의 하나로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모방의 심리적 기전은 사회학습이론의 관점에서 대중이 자살한 유명인을 자신과 동일시 할 경우, 모방행동이 높다고 한다. 또한 자살을 보도하는 미디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자살을 억제하는 능력을 약화시켜 자살행동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또한, 자살행위를 영웅시 하거나 미화하는 맥락의 미디어 보도는 이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살행동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미디어에서 자살에 대해 보도를 할 때는 그에 따른 영향과 파장을 고려해서 보도내용과 표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우선 자살에 대한 미디어의 보도는 그 양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보도가 필요한 경우에는 언론보도의 원칙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정말 꽃다운, 꽃같은, 아니 말 그대로 꽃인 ‘설리’에 이어 이제 ‘구하라’까지 극단의 방법을 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그녀들이 그 길을 선택한 건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불과 40여 일을 사이에 두고 세상을 떠난 두 동료의 죽음에 팬들은 베르테르 효과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 자살률은 지난 2017년 기준 23.0명으로 OECD에서 3위를 기록했다. 심리부검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극단적 선택 사망자는 1인당 평균 4.9개의 생애 스트레스 사건이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이러한 원인을 단적으로 표현할 수도 없고, 정확하게 그에 대한 분석을 할 수도 없다. 너무나도 자극적이고, 한 방의 이슈만을 찾아다니는 언론의 무책임한 횡포가 진정한 이유인지, 아니면 무분별한 인터넷이나 SNS 상의 악플러들이 원흉인지, 제시할 만한 확실한 근거나 증빙할 만한 원인은 찾을 길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익명 뒤에 숨어서, 또는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어 직업이라는 허울에 의존하는 소수의 극악한 만행이, 피어나는 꽃을 떨어지게 만들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 결과에 대해서, 또는 경과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들이 많다.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부류들이 대중매체에 출연하여 나름 주장을 펼치고는 있지만, 모두 가소롭고 허황된 이야기들만 남발하고 있다. 경험을 앞세우고, 연구자료를 제시하면서 무슨 통계조사 하듯이 가볍게 추측과 단정을 쏟아내는 그네들의 한심한 작태에 한숨만 나올 따름이다. 그냥 조용히 입 좀 다물었으면 좋겠다. 하나같이 스스로의 잘못임을 시인하고, 고개 숙여 사죄하면서 침묵으로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늘로 가는 길에 외롭지 않도록, 춥지 않도록, 정말 마음으로 따스하게 감싸주고, 저 세상에서는 슬픔이 없고, 아픔이 없기를 기원해주어야 한다. 마지막 가는 길이지만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에 품어 안고 기억해줘야 할 우리들의 꽃들이 진 것이다. 그녀들은 너무도 허망하게, 지나치게 아깝게, 그토록 짧고 처절한 삶을 마감했다. 우리들의 심장에 멍에를 남겨두고 꽃들은 이제 갈 길로 갔다. 아주 갔다. 그러니 이제는 잊어야 할 때다. 그러나 끝까지, 세상 끝날 까지라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 힘을 모아, 마음을 모두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벌써 세모의 기분이 든다. 물론 아직도 한 달 이상이 남아 있으니 연말이라고 이름 하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분명히 여기 저기에서 불쑥 송년의 느낌이 묻어난다. 거리에서, 일상에서, 차가운 초겨울바람 속에서 우리는 송년의 향기를 맡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2019년도 필시 레임덕 병에 걸렸다. 벌써부터 신년 달력을 말아쥐고 종종걸음치는 인파들도 섞여 있음이다. 올 한 해를 어찌 살았는가 하고 조심스레 시절을 뒤돌아보기 시작한다. 올 한 해를 어떻게 갈무리해야 할까 하며 서서히 세월을 매조지하게 된다.

지난 주에는 엄청나게 바쁜 주말을 보냈다. 금요일에는 양재동에 위치한 ‘더케이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오후 7시부터 3시간 동안 진행된 슈퍼디바 ‘적우’의 디너 콘서트에, 행사를 주관한 매니지먼트사의 인연으로 초대되어 모처럼 격조 높은 송년 행사의 서막을 열었다. 토요일에는 아침부터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이동하여 ‘겨레의 집 큰 마당’에서 오후 6시까지 숨 가쁘게 거행된 ‘유관순열사 건국훈장 1등급 대한민국장 추서기념 국민대축제’에, 어떤 초청가수의 배려로 초대되어 태극기를 흔들면서 열심히 성원을 보내다가 늦은 밤에 상경을 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오후 2시부터 ‘마포중앙도서관 6층 대강당’에서 진행된 제 6회 ‘자랑스런 한국인 인물대상, 세계 명품브랜드 대상’ 시상식과, 계속 거행된 ‘사단법인 한국기자연합회’ 창립총회 및 발기인대회에 연속으로 참석하였다가, 이어지는 만찬까지 접대를 받고 돌아왔다. 필자가 관련되어 있는 언론사도 회원사로 소속되어 있었기에, 회원의 표찰을 달고 구석진 좌석에 자리할 수 있었다. 늘 일정한 틀과 계획된 규격 하에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필자의 입장으로는 참으로 분주하고 버거운 스케줄이라서 소화해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렇게 소비한 시간 대신에, 할 일을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덕분에 밤잠을 그만큼 덜 자야 하는 고충이 뒤따르는 건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반대급부였다. 그렇지만 그렇게 모처럼 일상의 틀이 깨어진 피곤함과 어수선함은, 어쩌면 또 다른 활력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도 여기저기서 잊지 않고 필자를 찾아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실은 감지덕지할 노릇이다. 이미 스스로를 살펴볼진대 반 쯤은 퇴물이나 마찬가지고, 누군가가 불러주지 않는다 하여 딱히 서운할 것도 아닌데, 연말이라고 각종 행사에 이름 석자 걸고 기웃거릴 여지가 남아 있음은 그래도 행복한 일 아니겠는가?

앞으로 남은 한 달여 동안에 송년 행사가 어찌 어찌 이어질 지는 모르는 일이고, 또한 이리도 분주함이 내년에도 재현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겠으나, 지금 주어진 하루 하루에 최선을 다 할 따름이다. 성의를 기울여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도리라고 여기면서, 시간이 아깝지 않게 알토란같은 날들을 보낸 지난 주말이었다. 그러자니 느끼는 바도 많았다. 삶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마음의 평화에 대한 문제다.

우리는 곧잘 삶의 고통에 대해 외부의 것들에 그 원인을 돌리지만, 사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다. ‘틱낫한’은 우리의 마음을 밭에 비유한다. 그 밭에는 기쁨, 사랑, 이해, 즐거움, 희망과 같은 긍정적인 씨앗이 있는가 하면, 두려움과 분노, 미움, 절망, 시기, 외로움, 그리고 건강치 못한 집착 등과 같은 부정적인 씨앗이 있다. 과연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조용히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고, 일기를 쓰는 것도 좋다. 평소에 무엇인가에 마음이 자꾸 끌리거나 관심이 있다면 무시하지 말고 잘 관찰하고, 우리와의 연관성을 찾아보자. 그것은 우리가 한 평생을 바쳐 간절히 원하는 무엇인가를 찾기 위한 열쇠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사랑일 수도 있고, 우정일 수도 있다. 이 두 가지는 어찌 보면 상통하는 부분도 있지만 상반되는 부분이 더 많이 있다. 결론적으로 닮은 꼴이지만 반대의 입장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분명한 사랑과 우정의 차이점을 정확히 구분지어 제시하기도 한다.

사랑은 느낌이고, 우정은 이해다. 사랑을 따르면 우정은 축복을 빌고, 우정을 따르면 사랑은 눈물을 흘린다. 사랑은 술을 찾게 하는 것이고, 우정은 같이 마셔주는 것이다. 우정은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고, 사랑은 꾸미면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사랑은 눈물 짓게 하는 것이고, 우정은 웃음 짓게 하는 것이다. 우정은 무얼 할까 같이 찾는 것이고, 사랑은 조용히 곁에 머무르는 것이다. 사랑은 언제 떠날지 불안한 것이며, 우정은 항상 옆에 있는 것이다. 우정은 좋아한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사랑은 사랑한다고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정은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며, 사랑은 혼자 속으로만 끙끙 앓는 것이다. 우정은 만나고 싶을 때 부르는 것이고, 사랑은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우정은 편하게 만나서 아무 생각 없이 얘기하지만, 사랑은 어렵게 만나서 고르고 고른 단어로 얘기하는 것이다. 우정은 뒤통수치면서 장난치는 것이고, 사랑은 멀리서 슬쩍 보는 것이다. 우정은 주고받는 것이지만, 사랑은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다. 우정은 언제나 느낌표이지만, 사랑은 언제나 물움표이다.

우정은 같이 걸어가는 것이고, 사랑은 같이 걸어가는 걸 꿈꾸는 것이다. 죽고 싶다는 말에 우정은 술 한 잔 쏘는 것이고, 사랑은 혼자 속 태우는 것이다. 우정은 어려울 때 알게 되고, 사랑은 아침에 눈 뜰 때 알게 된다. 우정은 여러 명과도 같이 하지만, 사랑은 오직 한 사람과 같이 하는 것이다. 우정은 화를 내다가도 화해하는 것이고, 사랑은 화내는 모습까지도 귀엽다고 하는 것이다. 우정은 같이 있을 때 즐거운 것이지만, 사랑은 잠깐의 스침에도 며칠 간 맘 조이는 것이다.

우정은 목욕탕에서 등 밀어주는 것이지만, 사랑은 손 한 번 잡는 것에도 가슴이 요동치는 것이다. 우정은 쉽게 빨리 이루어져도 오래 가지만, 사랑은 오랜 기간 어렵게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항상 위태롭다. 도움을 줄 때 우정은 친구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지만, 사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것이다. 죽음 앞에서 우정은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며, 사랑은 삶에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 밖에도 사랑과 우정의 상반되는 개념을 열거하라면 아마도 밤을 새워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두 가지가 다 없어서는 안 될 마음의 끌림이며 베풂이라는 것이다.

해 질 녘 농부가 수확을 마치고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장면, 바로 프랑스의 화가 ‘밀레’의 ‘만종’에 그려진 유명한 이미지다. 밀레는 지금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화가였지만 처음부터 그의 그림이 널리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그의 그림을 눈여겨 봐왔던 것은 평론가들이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가라’의 사상가 ‘루소’였다. 작품이 팔리지 않아 가난에 허덕이던 밀레에게 어느 날 루소가 찾아왔다.

“여보게, 드디어 자네의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났네.” 밀레는 친구 루소의 말에 기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의아했다. 왜냐하면, 그 때까지 밀레는 작품을 팔아본 적이 별로 없는 무명화가였기 때문이었다. “여보게, 좋은 소식이 있네. 내가 화랑에 자네의 그림을 소개했더니 적극적으로 구입의사를 밝히더군, 이것 봐, 나더러 그림을 골라 달라고 선금을 맡기더라니까.” 루소는 이렇게 말하며 밀레에게 300프랑을 건네주었다.

입에 풀칠할 길이 없어 막막하던 밀레에게 그 돈은 생명줄이었다. 또 자신의 그림이 인정받고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리하여 밀레는 생활에 안정을 찾게 되었고, 보다 그림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후 밀레의 작품은 진짜로 화단의 호평을 받아 비싼 값에 팔리기 시작하였다. 경제적 여유를 찾게 된 밀레는 친구 루소를 찾아갔다. 그런데 몇 년 전에 루소가 남의 부탁이라면서 사간 그 그림이 그의 거실 벽에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밀레는 그제야 친구 루소의 깊은 배려의 마음을 알고, 그 고마움에 눈물을 글썽였다. 가난에 찌들어 있는 친구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사려 깊은 루소는 남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그림을 사주었던 것이다. 인간관계를 열어주는 젊은 날의 이런 소중한 우정은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밑거름이 된다. 또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인간 본연의 아름다운 향기가 묻어있다. 이런 경우에 단편적으로 우정과 사랑을 구분지으려 하는 건 부질없음이다.

“봐줘라, 좀 봐줘.” 라는 말은 필자의 어머니가 제일 많이 쓰시던 말씀이었다. 서로 봐주니깐 우리는 살아있는 거라고, 그런 게 가족이고 친구고 사랑이라고,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필자는 별로 달가워 하지 않았다. 정의도 없고, 교훈도 없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이제 이나마 나이를 먹어서 황혼녘이 멀리 건너다 보이기 시작하던 어느 순간, 필자는 어머니의 말씀을 다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봐주는 거, 친구끼리, 사랑하는 사람끼리, 가족끼리, 아니면 그냥 사람끼리 서로 봐주는 거, 그게 진정한 사랑의 표상이라고 여긴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사랑스러움이다. 사랑스러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정성스러움에서 나온다. 그리고 정성스러움과 사랑스러움은 바라보는 이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한다. 사랑스러움, 정성스러움, 아름다움.... 왜 그래야 하는가? 사랑스운 것, 정성스러운 것, 아름다운 것은 감동을 준다. 마음 속에 잔잔한 감동이 인다. 그렇게 하늘을 감동시키고, 자연을 감동시키고, 인간을 감동시키도록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아직은 완전한 겨울의 가운데라는 인식은 다소 낯설은 겨울밤이다. 그래도 이 주간이 지나면 날씨가 급하게 많이 추워진다고 한다. 정말로 이른바 송년 초입인 것 같지 않은가? 연말로 다가서는 이즈음에 가족 친지들, 또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서로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로에게 감동을 주는 그런 날들이 되기를 바란다. 생각만으로도 절로 마음이 따사로워지는 느낌, 그런 향기로운 멋이 물씬 풍겨나는 송년지절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겨울 밤이 익어가고 있다. 뜨거운 과일차나 꽃차로 기분 전환하면서 문득 지친 영육에 휴식을 주고 싶다. 아주 가까운 사람과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면서, 계절과일로 비타민 섭취도 하는 여유로운 밤이 되기를 바란다. 비록 빛나지 않은 어둠일 뿐이라서 지금 이 시간, 내일에 대한 확신이나 강렬한 꿈은 잘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삶을, 사랑을, 그리고 행복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평화의 음악 들으면서, 곱게 곱게 송년을 준비하는 겨울, 그런 오늘 밤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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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내면이란
얼마나 다양한 수납의 칸들을 가졌으며
그 뿌리는 또
얼마나 질기고 깊은 것이게 ?

허긴 한결같은 양상은 아닐 걸
시간이란
인간 삶 변하게 하고
인간 모습조차 변하게 하니까

입술 터뜨린 나팔꽃도
시간 지나면 쪼그라뜨릴 것을,
뭘 몰라 무식하면 더 용감하다고
또강또강 말 뱉고나니
그제사 덴겁한 듯 하루 접히고

적극적 내러티브 주체인 척 무게잡으면서
조잔부리 삼아
말로 먹고 산 삶이었는데

벼란간
죽음 도구이자 죽음 상징인
오늘이 찾아왔거든

자기만의 마음방에서 나오는 과정
끌림 감정 붙잡고서,
그래서

커다란 선인장위 내놓인 어린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끝없이 스스로의 어딘가
핥고 또 핥았어

이를테면 혀....
같은 걸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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