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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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출판 예정 두번째 詩集의 제목입니다.

林森의 인생에 있어서 또다른 전환점이 되는 시기의 시작인
2008년 후반기부터 2010년 전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인 양
정말 많은 量의 詩를 짓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의 나날을 헤쳐나오면서
量産된 詩이니만큼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비감어린 내용과
칙칙한 파스텔톤 색깔의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의 방랑자 다운 林森의 詩心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우는 詩語의 조화가
오묘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는지라,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고
한 데 어울려 함께 눈물짓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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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달 *



시작노트

" 낮달 " 詩作 note

끝이 없는 무저갱같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되는 일상에 지칠대로 지친다. 힘들고 버겁다는 생각조차도 어찌 보면 호강에 겨운 푸념일지도 모른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코로나19’의 확산이 목하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다. 이건 정말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파멸의 파노라마다. 마치 미리 준비되었던 어떤 폭탄을 터뜨린 것 마냥 퍼져나가는 파장의 속도나 범위가 상상을 초월한다. 바야흐로 인간의 무력함이 극에 달했다.

대처라고 하는 표현은 무색해졌다. 어느 나라도 적절한 조치나 대응을 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지 못하다. 이제까지 선진국입네, 경제 대국입네 하면서 거들먹거리던 나라들이 하나같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서로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이 와중에,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온 국민이 발 벗고 나섰던 우리 나라가 새삼 세계의 롤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따지고보면 애초에 이런 결과로 치달을 줄 예측했던 바다.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을 보더라도, 우리 국민들은 그동안 어떤 거센 난관이나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헤쳐나왔던 구렁텅이가 얼마나 많았던가를, 전쟁의 폐허조차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눈부신 발전의 주춧돌을 마련하고야 만 저력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국민성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이제 다시금 온 세계에 드러낸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잘 알다시피 모든 상황이 끝난 것이 아니다. 아니, 어찌보면 이제 또 다른 시작인지도 모른다. 각급 학교의 개학은 몇 차례 거듭하여 연기되어 실질적으로 비상국면이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부득불 재연장을 요구하고 있으며, 모든 해외 입국자들에게는 ‘의무 자가격리’가 강행되고 있다.

‘마스크 5부제’로 국민들의 불편함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으며,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에도 아직도 곳곳에서 집단발병을 비롯한 신규확진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그러니 조금도 마음의 여유를 되찾을 시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안다.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는 이 황량한 들판에서 작은 피난처라도 이미 마련한, 우리나라의 앞서가는 판단력과 결속력이 지금처럼 확고한 신념을 갖고 지속되는 한, 우리는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감히 시도하지 못하는 정책과 조치들은 단순한 정부 당국의 능력이 아니라 온 국민의 결집된 저력이기 때문에, 예컨대 누구도 쉽사리 따라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비록 너무나도 거센 이 바람에 나라가 경제적으로 흔들리고, 기본적으로 민생이 파탄나는 지경도 속출하며, 허리띠를 졸라매도 견디기 힘든 쪽배의 신세라서 처량하기만 한 현실이지만, 이 고비를 견디기만 하면, 모질게 감내하여 위기를 넘기고 나면, 우리의 내일에는 밝은 햇살이 다시 비춰질 것이라는 소망을 누구나 가져주기를 바랄 뿐이다.

언제까지 우리의 일상에서, 글 쓰는 사람들의 주제나 소재에서, 이 열병에 관련한 잔재가 사그러들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지나갈 이 현실들은 먼 세월이 흐른 뒤에도 가슴에 깊은 상흔으로 간직되리라. 그리고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교훈으로, 하늘의 경고로 머리에 진하게 각인되리라. 그렇지만 그래도 질 수는 없다. 넘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는 진리를 되새기며 오늘도 주먹 꼭 쥐고, 맵고도 매서운 현실에 과감히 맞서리라.

그런데 이 와중에 우리는 전혀 현 세태와 걸맞지 않은 또 하나의 생뚱맞은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마치 외계인들의 리그처럼 여겨지는 국회의원 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예년에도 지겹도록 경험했던 구태의연한 하이에나의 전략들이, 아니 이번에는 그 강도가 훨씬 더 센 외나무다리의 결투같은 절박한 대립들이 도처에서 딴에는 생동감 있게 펼쳐지고 있다. 그들에게는 지금 세계가 신음하는 이 절박한 현실 따위는 아랑곳 없다. 그저 당장 주어진 전투에서 승리하여 권력을 쟁취하고야 말겠다는 신념과 오기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런 편협한 작금의 사태를 바라보면서 쓴 웃음이 나지만 이 또한 현실이니 어찌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격세지감을 느끼면서 관망할 뿐이다.

고려대 ‘강병화’ 교수가 17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야생 들풀 100종과 4,439종의 씨앗을 모아 ‘종자은행’을 세웠다는 보도가 수년 전에 게재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기사의 끝에 실린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이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지요.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사람도 같다. 자기가 꼭 필요한 곳,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산삼보다 귀하고, 뻗어야 할 자리가 아닌데 다리 뻗고 뭉개면 잡초가 된다. 타고 난 아름다운 자질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잡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보리밭에 난 밀처럼, 자리를 가리지 못해 뽑히어 버려지는 삶이 얼마나 많을까? 그러나 우리 각자는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무 소중한 존재다. 우리 모두가 타고난 자신 만의 아름다운 자질을 맘껏 펼치어 들풀 같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산삼이라도 잡초가 될 수 있고, 이름 없는 들풀도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 현재 자기가 있는 자리가 가장 좋은 자리라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잔인하게도 사람은 백 번 잘 해줘도 한 번의 실수를 기억한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수많은 좋았던 기억보다 단 한 번의 서운함에 오해하고 실망하며 틀어지는 경우가 참 많다.

가능하다면 서운함보다, 함께 한 좋은 기억을 먼저 떠올릴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 되자. 먼저 고맙다고, 먼저 미안하다고 말한다면 사람 관계는 나빠지려고 해야 나빠질 수 없다. 사람 관계에서는 이기고 지는 것이 없다. 그러니 먼저 고맙다고,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자. 인터넷에서 많이 떠도는 이야기가 있다. 식사 후 적극적으로 밥값을 계산하는 이는 돈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돈보다 관계를 더 중히 생각하기 때문이고, 일할 때 주도적으로 하는 이는 바보스러워서 그런 게 아니라 책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다툰 후 먼저 사과하는 이는 잘못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당신을 아끼기 때문이다.

늘 나를 도와주려는 이는 빚진 게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기 때문이며, 늘 카톡이나 안부를 보내주는 이는 한가하고 할 일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마음 속에 늘 당신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보면서, 참 그럴 듯 하다고 여긴다. 쉽게 생각하면서 남을 무시하려 하기 보다는, 한 번 더 생각하면서 남을 바라보는 안목과 배려가 결국은 자신의 덕목과 인성을 배양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진나라로 가던 도중에 양식이 떨어져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적이 있다. ‘안회’가 가까스로 쌀을 구해와 밥을 지었다. 공자는 밥이 다 되었는지 알아보려고 부엌을 들여다보다가, 밥솥의 뚜껑을 열고 밥을 한 움큼 먹고 있는 안회의 모습을 보았다. 공자는 깜짝 놀랐다. 안회는 제자 가운데 도덕수양이 가장 잘되어 공자가 아끼는 학생이었다. 공자는 크게 실망하고 곧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이윽고 안회가 밥이 다 되었다고 하자 공자가 말했다.

“안회야, 내가 방금 꿈 속에서 선친을 뵈었는데 밥이 되거든 제일 먼저는 밥을 떠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하더구나.” 밥을 몰래 먹은 안회를 뉘우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 말을 들은 안회는 곧장 무릎을 꿇고 말했다. “스승님, 이 밥으로는 제사를 지낼 수가 없습니다. 제가 뚜껑을 연 순간 천장에서 흙덩이가 떨어졌습니다. 스승님께 드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 제가 그 흙부분을 이미 먹었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안회를 잠시나마 의심한 것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워 다른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전에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되지 못하는구나. 예전에 나는 나의 머리를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도 역시 완전히 믿을 것이 되지 못하는구나. 너희는 보고 들은 것이 꼭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명심하거라.” 성인 공자도 이렇게 오해를 했는데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때문에 귀로 직접 듣거나 눈으로 본 것이라고 해도 항상 심사숙고하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그 사건 자체에 대해 당사자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섣불리 결론을 내려 평생 후회할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렇게 일반적인 사람 관계에서도 심사숙고하고 매사에 신중을 기해야 하거늘 하물며 지역의 살림을 떠맡아 주민의 삶을 좌지우지할 선량을 천거해야 하는 마당임에야, 이런저런 시답잖은 인연으로 인정에 이끌려 아까운 주권을 버리지 말고, 정말로 진심을 다할 일꾼을 선택해야 할 일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이구즈만’은 어린 시절 음악학교에 입학했으나 음악공부보다 책 읽기에 몰입하여 희곡이란 희곡은 모두 섭렵했다. 그는 ‘비엔나 음악학교’ 시절 ‘주형기’란 영국 국적의 피아니스트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이구즈만은 음악학교를 졸업한 후 연주가 겸 작곡가가 되었고 주형기는 수많은 콩쿨을 우승하며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개인적인 명성의 한계에 달하자 그들은 방황하게 되었다. 주형기는 그러는 가운데 자신의 고민을 이구즈만과 공유했다.

그는 종교 음악을 제외한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현대에 공연되는 것처럼 무겁거나 엄숙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구즈만과 함께 클래식 음악을 쉽고 재미있게 표현하여 대중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A Little Nightmare Music’이란 타이틀의 공연을 시작했다. 그러자 반응도 꽤 좋아서 나중에는 세계 공연도 진행했다고 한다.

모든 예술은 함께 공유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한 싸구려 심리에서 시작한 예술은 가치가 덜 하겠지만, 공유할 수 없는 예술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며 예술 또한 사회적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외톨이인 사람은 예술적인 표현에도 서투를 수밖에 없다. 인간이 예술을 추구하는 이유는 혼자만 간직하려는 것이 아니라 표출하고 싶은 충동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만의 예술혼을 추구한다는 말을 필자는 신뢰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함께 하면서 꿈을 공유하고 그것을 현실로 실천했기에 그들은 세계적인 유명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동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스톤마운틴’이라는 도시에는 돔형의 화강암 잔구가 있다. 이 거대한 돌산은 세계 최대 화강암 노출광인데 이곳에는 남북전쟁 당시 세 명의 남군 영웅 기마상이 조각되어 있다. 높이 251m의 바위 꼭대기에는 리프트로나 올라갈 수 있는데 거기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아래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왼 쪽부터 ‘제퍼슨 데이비스’ 남군 연방 대통령, ‘롬바드 리’ 총사령관 및 ‘스톤 잭슨’ 장군의 모습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이 부조는 세 명의 조각가가 1916년부터 조각하여 1970년에 완성한 것이다. 미국 남부의 영웅들은 역사 가운데 잊혀져 가고 있었는데, 대평원 가운데 위엄을 드러내며 과거 남부의 애잔함을 표현하고 있다. 남부인들은 자신들이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을 활약을 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상처 위에 약을 바르면 새로운 살이 돋기 마련이므로 그들은 그런 역사를 헛되이 버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남부인들은 그러한 예술적 갈무리 속에서 새로운 부흥을 꾀했고 다시금 자긍심을 가지고 미국인의 일원들로서 활약하고 있다. 이런 예술적 작품이 없었다면 남부인들은 패배자란 의식을 가지고 살았을지 모른다. 예술은 그래서 중요하다. 학문도 예술처럼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표현을 시도한다. 이를테면, 어떤 의학자는 대중들에게 물은 많이 마실수록 좋다는 말을 한다. 이에 대한 논문도 있고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많은 의사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게 정말 옳기만 한 것일까? 왜냐하면, 너무 과하면 부작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비추어도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처럼 찜찜하게 여기고 이것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학자가 정말 있었던 모양이다. 네덜란드 ‘에라스무스 메디컬센터’의 ‘에와우트 호른’ 박사와 연구진은 혈액 중의 나트륨 농도 저하로 나타나는 ‘저나트륨혈증’이 사람을 넘어지게 만들고, 골절을 유발한다고 발표했다. 심한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는 발표를 한 것이다. 또 어떤 보고에 의하면,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익사 시의 증상과 동일한 현상이 발생했다고 한다.

한 번에 너무 많은 물을 마시게 되면 체내에 나트륨 농도가 급격히 떨어지므로 저나트륨혈증으로 발전한다. 혈액 중의 나트륨 농도가 떨어지면, 상승시키기 위해 혈액 내 수분이 감소하고 혈류의 양이 떨어져 혈압 저하나 현기증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결국 넘어지는 일이 발생한다. 이러한 학문적인 발견을 통해 볼 때, 함부로 속단하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는 학문은 대중을 위험에 빠뜨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예술이나 학문이나 악한 것은 배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지식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요구되는 과제이기도 하다.

‘우리의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인생은 ‘B(birth-출생)’로 시작해서 ‘D(death-죽음)’로 끝난다. 모든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한 시도 멈추지 않고 죽음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신이 B와 D 사이에 ‘C(choice-선택)’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며, 그 선택에 따라 우리의 삶과 미래는 결정되고 있다.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택들은 평생 자신의 행복과 불행의 조건들이다. 그리고 인생 전체를 통해 가장 중요한 신에 대한 결단은 영원과 결부되어지는 일생일대의 선택의 문제다. 이렇게 B에서 D로 가는 인생은 먼저 선택이라는 C를 통해 행복한 삶의 ‘기회(chance)’를 갖게 된다. 그 다음으로는 ‘변화(change)’라는 C를 통해 ‘기회(chance)’의 C를 얻게 된다. 신은 인간에게 태어남과 죽음에 대해 선택권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 밖의 것에는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그러나 선택을 할 때는 ‘얼음(ice)처럼 냉정하라’는 뜻에서 ‘Choice’ 안에 ‘ice’를 심어둔 것이다. 오늘 만약 당신의 하루 삶 속에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면 부디 후회 없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선택의 날에, 후회하지 않은 선택을 하려거든 어느 쪽에도 일방적으로 치우치지 말고, 중용과 중도를 우선으로 하는 겸양을 겸비한 인재를 선택하는 지혜로운 머리와 총기 있는 눈을 잘 벼르고 있길 바란다. 낮달처럼 제가 있을 자리를 망각한, 색바랜 존재 가치는 결코 누구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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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게, 구름조각인듯
파아란 하늘 사위스런 달 살몃
하마 며칠째
눈에 익을만큼 익은 정경인데도
때마다 달라

낮에 보는 하얀 달 하냥 낯서니
기묘한 느낌
말로는 못할 느낌, 이 느낌
가슴 시림같기도,
마음 설렘같기도

문득 새 한마리 푸드득
머리위 날면
쉬익! 작은 돌 던져보네
기겁하며 높이 날아올라
이내 낮달쪽으로 새 숨고

언젠가는 나도 날아오를 날 오겠지
바람처럼 혹은 저 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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