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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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출판 예정 두번째 詩集의 제목입니다.

林森의 인생에 있어서 또다른 전환점이 되는 시기의 시작인
2008년 후반기부터 2010년 전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인 양
정말 많은 量의 詩를 짓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의 나날을 헤쳐나오면서
量産된 詩이니만큼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비감어린 내용과
칙칙한 파스텔톤 색깔의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의 방랑자 다운 林森의 詩心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우는 詩語의 조화가
오묘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는지라,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고
한 데 어울려 함께 눈물짓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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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넋에 피는 *



시작노트

" 내 넋에 피는 " 詩作 note

미상불 금년에도 이제 봄노래는 이쯤에서 그만 할 때가 되었다. 목하 봄꽃들이 눈꽃 흩뿌리며 잦아들고 있다. 산과 들은 이제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번져가는 연초록 새순들 세상이다. 실상 절기상으로는 아직도 봄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듯도 하긴 한데, 내리쬐는 햇볕의 기세가 이리도 등등함이나 바람의 후덥지근함으로 미루어, 봄이야기 계속 하다간 시절 뒤처진 팔푼이로 손가락질 받게 생겼다.

그렇더라도 이번 주만이라도 더 봄의 느낌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그리고나선 필자도 과감하게 두꺼운 옷 벗어던지고 여름 맞이하러 나설 참이다. 미처 피어나지 못하고 밍기적거리며 늦장부리던 봄의 전령사들 휘몰아서 이참에 죄다 만개하도록, 한 마당 근사하게 여한없이 벌려주고나서, 봄의 뒷꼭지에 대고 작별을 고하자는 게 필자의 배려다.

한 편, 지금도 겨울의 질곡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했는지, 쏠쏠하니 차가운 기운 제법 남아있는 이 머리 속에, 좀더 싱그러운 생동의 봄 햇살 듬뿍 쐬어주고 먹여주고 나누어주고 심어주고, 파아란 넋으로 부활시킨 연후에, 읊어대는 넋두리의 색깔도 한층 화사하게 단장시킨 연후에, 그리하여 영육 좀더 더워진 이후에, 뜨거운 폭염과 슬슬 벗해보기 시작하리라.

달아오른다는 것,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진행한다는 의미와 상통하지만, 그렇다손쳐도 그것이 곧 절정이나 결말과 가깝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냥 상태가 그렇다는, 다시 말해서 어떤 과정이 조금 깊어진 상황일 뿐이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것이고, 이미 뎁혀진 현황이 곧바로 식어지거나 다시금 차가워질 수도 있는 것이 일반적인 진리요 일상이다.

길게 이어질 것 같은 여름이지만 결국 한 철 기승을 부리다가는 바로 가을바람에 잠식당하는 계절의 변화가 시사하는 바가 클지니, 잘 살펴보면 그대로 인간사의 축소판이며 바로 판박이 닮은 꼴이다. 영원할 듯 하던 권력이나 부귀영화가 물거품처럼 사그러지고, 언제나 승리자이며 성공자 쪽의 반열에 자리매김 될 거라는 자부심으로,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오만과 독선의 소유자도 잠깐의 실수로 걷잡을 수 없는 구렁텅이로 추락하는 경우를 우리는 비일비재하게 목격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았던가? 당장 내일의 삶의 처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우리네의 한계를 깨닫고, 언제나 겸손하고 근면성실하게 오늘 펼쳐진 삶을 대하는 태도가 요구되는 이유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듯이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것이 운명이요, 팔자소관이니 말이다.

그렇게 매일 매일을 최선을 다할 일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다시 가고, 여름의 숨결이 문득 느껴지는 어떤 문의 초입에 들어서기까지, 시간의 흐름을 미리 감지하고 스스로 조절한 이가 과연 있었던가? 새 해 들어서 온갖 계획과 목표로 지저분하고 어지럽던 다이어리가, 슬슬 공백이나 여백으로 남아지기 시작하는 근래에 와서야 아차 하는 심정이 드는 것이 어찌 필자만의 한탄이겠는가?

누가 뭐래도 지금은 신록이 무성해지는 계절의 여왕 5월이다. 그럼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이며, 우리가 느끼고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솟는다.”는 ‘노천명’ 시인의 ‘푸른 5월’ 탄성처럼 “5월의 창공이여! 나의 태양이여!”를 맘껏 외치고 싶어지는데 이 신명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신록이 눈시릴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가는 이 시절. 무엇보다 가정의 소중함을 찬찬히 되새겨보게 하는 달이다. 생명을 낳고 기르는 계절적 특성 때문일까?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지나서 입양의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들이 줄서서 차례로 다가온다. 해마다 이맘 때면 가정의 소중함과 가족 구성원의 진실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는 것이 마치 통과일례로 되어 있다. 물론 어찌 이 때 뿐이랴만은, 아무튼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가정과 가족을 더욱 깊이 숙고해야 할 것임은 당연지사다.

가화만사성이렷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저절로 술술 풀린다. 이는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진리다. “왕이든 농부든 가정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한 ‘괴테’의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오는 때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삶의 고향인 가정의 참 뜻을 인지하고, 삶의 본산인 가정을 기억하자는 취지의 서적은 이미 많이 출간되어있기 때문에, 특별히 꼭 집어서 어떤 책이 권장할 만한 책이라고 추천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도 그 중에 2009년에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은 책을 한 권 소개하려고 한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사춘기 소녀의 여행기 ‘두 개의 달 위를 걷다’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미국 청소년 문학계의 거장 ‘샤론 크리치’의 작품으로, 열세 살 소녀 ‘살라망카’가,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엄마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을 하면서 슬픔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뉴베리상’, ‘미국 어린이도서상’, ‘스마티즈 북상’, ‘영국독서협회상’ 등을 수상한 세계적인 작품이다.

삼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긴 여정을 담은 로드무비 형식의 이 소설은 삶과 죽음, 이별과 아픔, 이해와 용서, 성장의 고통 등의 묵직한 주제를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려나간다. ‘살라망카’의 여행 이야기와 ‘피비’의 가족 이야기에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더해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또한 여러 모습의 가정을 등장시켜 그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가족사를 들려준다.

내용 중에 등장하는 “그의 모카신을 신고 두 개의 달 위를 걸어 볼 때까지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마세요.”라는 인디언 속담은, 불가능한 일을 할 때까지 그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작가는 특히 피비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선입견일 뿐이며, 누구에게나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음을 보여준다.

어떤 특정한 시기에 특별한 일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선택과 실천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서있는 쪽에서 바라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고사성어로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는데 가볍게 흘려들을 말은 아니다.

회사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두 젊은이가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스승을 찾아가 의견을 물었다. 스승은 눈을 감고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자 스승은 한 마디를 던졌다. “밥 한 그릇일 뿐이다.” 스승은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회사에 돌아오자마자 한 젊은이는 사직서를 던지고 고향으로 돌아갔고, 다른 젊은이는 그대로 회사에 남았다.

눈 깜짝할 새에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었던 젊은이는 현대적인 농업기술을 받아들이고 품종 개량에 힘써 농업전문가가 되었다. 또 회사에 남아있던 젊은이는 화가 나도 참고, 열심히 일하는 틈틈이 공부도 해서 그 회사의 사장이 되어있었다.

어느날 두 사람은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다. “그날 스승님이 ‘밥 한 그릇일 뿐이다’ 라고 하셨을 때 나는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다면 구태여 그 일을 꽉 붙잡고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로 들리더군,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었네만 자네는 왜 그냥 있었는가?”

“내게는 스승님 말씀이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밥 한 그릇을 벌기 위해서니 사장이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일을 시키든, 참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렸거든. 정말 이상하지? 스승님은 우리에게 똑같이 ‘밥 한 그릇일 뿐이다’ 라고 하셨는데...”

결국 두 사람은 스승을 다시 찾아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았다. 늙은 스승은 여전히 눈을 감고 아무 말도 없었다. 그리고 반나절 만에 또 한 마디를 던졌다. “한갓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는 역시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요는 어떤 방향으로 해석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든지 관계없이 그 상황에서 최상의 결론으로 노력해가는 자세와 연관짓는 마음가짐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앞에 놓여있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그 자체를 사랑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삶의 자세가 가장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우리 모두의 의무이며 책임있는 행동이다. 살아가면서 사랑해야 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더없이 행복한 일이다. 그 벅찬 감정이 인생에 희열을 안겨주며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꿈의 성질이 어떤 것이든 인간은 꿈을 꾸는 한, 또한 꿈을 안은 한 아름답다. 꿈은 팽팽한 현악기처럼 아름다운 음율을 내기 위해 삶을 긴장시키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의 작은 것까지 모두 아름다운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노래한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사랑하고, 너무 많은 사람을 욕심내는 것 같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벅찬 일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인생은 문제의 시작과 끝을 되풀이하며 종착역에 이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험악한 바위 틈에 피어오른 한 송이 꽃을 볼 수 있음이 삶의 비밀이기도 하다.

그리웠던 곳에서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마주보면 마음이 마냥 포근해진다. 사람이 행복한 것은 그리운 곳과 보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어줄 줄 모르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이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함으로써 자신이 자신다울 수 있었다면 그 사랑이 바로 참사랑일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삶 그 자체이다. 사랑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환상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환상은 언제나 삶을 멀리 하게 하고 이성을 마비시키며, 현명한 사람들의 냉철한 정신을 흐리멍텅하게 만들어 놓고 떠나가는 연기와 같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한 삶으로서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삶이 고되고 힘겨울지라도 그 자체로서 사랑을 받아들이고 함께 사랑 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참된 삶을 살아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삶은 언제 어디서 어떠한 불행이 닥쳐올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서로가 어떤 삶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자세이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을 때,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쳤을 때,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하도 서러웠을 때, 꼬박 며칠 밤을 가슴 쓸어내리며 울어야 했을 때, 그래도 무슨 미련이 남았다고 살고 싶었을 때, 어디로든 떠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어 짚시처럼 허공에 발을 내딛는 긴 시간 동안을 지내면서 마침내 사람들은 알게 된다.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사람이 없었으며, 사랑받고 싶어도 사랑해 줄 사람이 없었으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필요했으며, 필요한 누군가가 자신의 사랑이어야 했을 때, 그립다는 것이 그래서, 아프다는 것이 그대로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다는 것을 혼자가 되고, 알아졌을 때에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노라’, 그 모질게 내 뱉은 말조차 이제는 자신이 없어 하면서, 긴 아픔을 가진 사람은 이윽고 안다. 그나마 사랑했기에 그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을, 그것마저 없었을 땐 숨을 쉬는 고통조차 자신의 것이 아닌 빈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서 사람은 비로서 거듭나게 된다. 어떤 사랑을 막론하고 삶의 주제는, 화두는, 심장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알면서 사랑을 다시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의 본질은 자신의 깨달음에서 기인한다. 살면서 누구에게 밟힌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억울하고 서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된다면, 그 밟힘은 충분히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다. 산에 오르다 보면 꼭 밟고 지나는 나무가 있다. 다른 나무는 길에서 비켜서서 마음껏 쑥쑥 자라는데 이 나무만은 지나가는 등산객들에게 밟히면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간다.

하지만 이 나무는 길 밖에 서있는 나무를 부러워하거나 자기 처지를 한탄하지 않는다. 이 나무는 말한다. “너희들은 잎이 무성하고 멋지지만 난 너희들이 부럽지 않아. 나는 사람들을 알아. 그들을 느끼고 사랑할 수도 있어. 비록 앉은뱅이지만 사람들은 나로 인해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노래를 부르며 산에 오르지. 나는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어. 이 기쁨이 얼마나 큰지 너희들은 아마 모를꺼야.” 문득 생각나는 글이라서 적어본다.

행복처럼 우리의 주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없다. 우리에게 불행은 객관적인 현실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언제나 주관적인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B.브랭클린’은 사람의 행복을 허리가 잘룩한 고무풍선에 비유했다. 고무풍선의 한쪽을 행복의 공간으로, 다른 한쪽을 욕망의 공간으로 생각하자고 했다. 중간에 잡고 있던 손으로 욕망의 공간을 줄이면 행복은 그만큼 커지고, 욕망의 공간을 늘이면 행복은 꼭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것이 삶의 비밀이라고 말했다.

행복을 찾아가는 길은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갖거나, 욕망을 줄이거나 하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그 방법 중에서 사람들은 욕망을 줄이는 가능한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갖으려고 하는 어려운 방법으로 행복을 얻으려고 하기에, 그의 삶에서 행복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법칙이 있듯, 살아가는 일에도 법칙이 없을 수 없다. 행복한 생활을 위해 이런 법칙을 따라 볼 일이다. 먼저 ‘산울림의 법칙’이다. 한 소년이 엄마 품에 안겨 울먹거리며 말했다. “엄마, 산이 날 보고 자꾸 바보라 그래요.”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물었다. “네가 뭐라고 했는데?” 아이가 대답했다. “야, 이 바보야!” 순간 엄마가 빙그레 웃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그러면 내일은 산에 가서 ‘야, 이 천재야!’하고 외쳐보렴.” 그러자 정말로 산이 소리쳐 주었다. “야, 이 천재야!”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대접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황금율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실과 바늘의 법칙’이다. 삶이란 실과 바늘의 악장이라 할 수 있다. 바늘이 너무 빨리 가면 실이 끊어지고 바늘이 너무 느리면 실은 엉키고 만다. 그렇다고 바늘 대신 실을 잡아당기면 실과 바늘은 따로 놀게 된다. 더구나 실과 바늘은 자신의 역할을 바꿀 수도 없고 바꾸어서도 안 된다. 실과 바늘의 조화, 여기에 삶에 있어서 화합의 비밀이 있다.

다음은 ‘수영의 법칙’이다. 수영을 배워 물 속에 뛰어드는 사람은 없다. 모두들 물 속에 뛰어들어 수영을 익힌다. 마찬가지로 부부간에도 사랑의 이치를 다 배워 결혼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통해 사랑의 이치를 깨우쳐가게 된다. 그러므로 피차 미숙함을 전제하고 살아갈 때 서로 인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타이어의 법칙’이다. 사막의 모래에서 차가 빠져 나오는 방법은 타이어의 바람을 빼는 일이다. 공기를 빼면 타이어가 평평해져서 바퀴 표면이 넓어지기 때문에 모래 구덩이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피차가 갈등의 모래사막에 빠져 헤맬 때 즉시 자존심과 자신의 고집이라는 바람을 빼는 일이다. 그러면 둘 다 살 수 있다.

다음은 ‘김치의 법칙’이다. 배추는 5번 이상 죽어서야 김치가 된다. 땅에서 뽑힐 때, 칼로 배추의 배를 가를 때, 소금에 절일 때, 매운 고추와 젓갈과 마늘의 양념에 버무러질 때, 그리고 입 안에서 씹힐 때, 그래서 입안에서 김치라는 새 생명으로 거듭난다. 행복이란 맛을 내기 위해 스스로 죽고 죽어야 한다. 그래야 행복이 피어난다.

그리고 ‘고객의 법칙’이다. 고객에게는 절대 화를 낼 수 없다. 항상 미소로 맞이해야 한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재빨리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삶이란 서로를 고객으로 여겨 살 때만 멋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만나는 사람은 나의 마지막 고객이라 여겨라. 거기에 삶의 행복한 관계를 이어가는 해답이 있다.

필자는 여기에 조미료의 법칙을 추가하고 싶다. 단지 맛 그 자체로서가 아닌, 어딘 가에 녹아들어 그 맛을 완성시키는 조미료 말이다. 좋은 글, 좋은 생각은 난무하지만 그것을 삶에 적용해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듣지 않는 것 보다는 듣는 것이 낫고, 듣고 또 듣다보면,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듯 어느 사이 우리 삶에 녹아들어 무한한 힘을 발휘할 거라 생각한다.

마치 삐걱거리는 바퀴에 뿌리는 윤활유처럼 삶이 고단하고 지칠 때, 또 무엇인가를 결단해야 할 때에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연장같은, 혹은 보약같은, 필자의 제언들이 교과서가, 참고서가, 지침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봄이 영글어 터지기 직전이다. 흐드러진 공간이 너무 좋은 5월의 또 하루를 시작하면서, 욕망의 부피를 고무풍선 누르듯이 꼬옥 눌러 행복의 크기를 더 크게 키우면서, 살짝 미소 한 번 지어 보자. 시작이 아름다우면 하루가 내내 아름답다. 오늘도 우리 모두가 반드시 행복한 날로 누릴 수 있기를, 가는 봄의 햇살에 사랑의 마음 흠씬 담아 진솔하게 기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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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넋에 봄은 차라리
인간사 부침 조롱하며
멀리서 찾아왔구나,
피어나는 풍광 수려함으로 눈초리 은유하는데

나 이 가절 놓치지 않으려면
망각의 강 건너 건너까지
피어나는 봄 노래해야 해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사람과 사랑,
진솔하며 가벼운 울림 속내에
다층적 접근 시도하면
비극조차 신선한 반전으로 또 피어나고

생명 살리는
새로운 연장선상에도
헌신의 모태로 양각되어 피던 사람과 사랑,

내 넋에 비록 아직은 서리 서리 서리꽃 피나
창밖으론 동그란
희망 하나 넌지시 피고
청명한 봄바람 어깨 툭 치고 지나가며
사위에 흩뿌리는 위로와 소망 멧세지

넌 제법 잘 살았어, 그리고
모두 잘 될거야, 그럼 된거지

내심
이만하면 고단한 삶 잘 버틴 건가 하는
생각 피어나 가슴 먹먹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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