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2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출판 예정 두번째 詩集의 제목입니다.

林森의 인생에 있어서 또다른 전환점이 되는 시기의 시작인
2008년 후반기부터 2010년 전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인 양
정말 많은 量의 詩를 짓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의 나날을 헤쳐나오면서
量産된 詩이니만큼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비감어린 내용과
칙칙한 파스텔톤 색깔의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의 방랑자 다운 林森의 詩心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우는 詩語의 조화가
오묘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는지라,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고
한 데 어울려 함께 눈물짓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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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



시작노트

" 이야기 " 詩作 note

뭐라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그저 하늘만 올려다보며 원망과 탄식을 하면서 종주먹 들이댈 뿐이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필이면 식목일 전날, 가소로운 인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런 엄청난 재해를 내리시다니... 역사상 최대의 화마였다. 강원도 속초, 고성지역과 강릉 인근, 그리고 인제 지역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발화한 산불은 삽시간에 번져, 졸지간에 온 누리를 전소시켜버렸다. 강원도 현장대책본부의 잠정 집계에 따르면 피해면적은 고성·속초 250㏊, 강릉 옥계·동해 망상 250㏊, 인제 25㏊로 발표됐다.

이는 여의도 면적(290㏊)보다 크고, 축구장 면적(7천140㎡)의 735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나무 한 그루를 심고 가꾸어 푸르른 삼림으로 만드는 데 얼마나 긴 시간과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가를 익히 알고 있느니만큼, 이번의 이 참사는 필자의 고향 강원도를 일거에 초토화시킨, 그야말로 대재앙이었다. 물론 청정지역 강원도, 숲과 나무의 고장 강원도를 이렇게 망가뜨린 원인을 비단 사람이나 현실의 어떤 실수나 문제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 정부의 관계자들을 비롯한 소방당국, 군이나 경찰의 노력을 평가절하해서도 안 된다.

전신주 개폐기가 발화의 원인이라고 하는 고성산불, 한 밤중의 강풍을 타고 그 위력을 발한 강릉산불, 그러나 그저 무조건 대자연의 힘에 의한 결과,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의 저력으로 인한 실상이라고 체념하기에는 웬지 너무도 억울하고 답답할 따름이다. 불철주야 휴식도 없이 화재를 진압하고 사후 피해복구나 보상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노고도 충분히 빛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런 상황조차도 정쟁의 방편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일부 몰지각한 정치꾼들이나, 서로의 탓만 앞세우며 책임론 운운하는 무책임한 몰이배들이 기회를 틈타 득세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모습이 간간 언론에 표출되면서 씁쓸한 뒷맛을 남기게 한다. 보잘 것 없는 힘을 한데 모두어 하나의 목표로 매진해도 부족한 이 때, 어찌 개인의 영달과 명예를 위해 가소로운 행태를 일삼는 건지, 정말 후안무치하고 인면수심의 말종이라고 욕하고 싶다. 제발 이제라도 팔 걷어부치고, 모든 분쟁과 다툼을 중단하고 민생안정과 재발방지를 위한 대열에 동참하기를 바랄 뿐이다.

더 이상의 췌언으로 흥분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이렇게 분기탱천하여 세상을 향한 고언이랍시고 쏟아내고는 있지만, 필자가 스스로를 돌아볼 때 무력하고 무지한 소시민일 뿐인 걸, 누구를 탓하고 어떤 사람에게 시비를 걸 처지인가? 그냥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따름이다. 아무 것도 나서서 할 수 없음이 서럽고 또 서러울 따름이다. 당장 달려가서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미미한 힘이나마 보태고 싶으니, 어차피 지인 중에도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으니 이 글을 적고나서 즉시 연락을 취하고 움직여봐야겠구나.

필경 구태여 드러나지 않고 앞세우려 들지는 않지만 묵묵히 제 할 일 잘 하고, 남을 위해서 가진 것 모두 아낌없이 내어주기 잘 하는 우리 강원도민의 저력으로 이 난관을, 이 고난을,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이 엄청난 천벌을 딛고 일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할 따름이다. 내 이웃들이여! 형제들이여! 가족들이여! 힘을 내시라. 일어서시라. 그리고 손 맞잡고 극복하시라. 사랑하느니, 피같은 정으로 서로를 감싸안으며 등 토닥이는 당신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사랑하느니, 이렇게 절절이 사랑하느니.

눈의 아름다움은 잘 쌓이는[積] 데 있고, 구름의 아름다움은 머물지 않는 데 있으며, 달의 아름다움은 둥글었다 이지러졌다 하는 데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소리 없이 쌓이는 희디흰 눈의 고요와 침묵을 닮아 항상 내면을 환하게 밝히며, 하늘에 둥둥 떠가는 구름을 닮아 삶의 애증과 집착을 벗어 존재의 가벼움을 누리며, 차고 이우는 달을 닮아 채움과 비움이 자유자재로운 영혼으로 사는 데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부드러움이란 곧 유연함과 탄력성이 아닌가 싶다. 줏대 없음이나 변덕스러움이 아닌, 강한 것은 올곧음일 수도 있겠지만 더 강한 것에 의해 다칠 수도 있고, 깨어지거나 부러질 수도 있지만, 유연하고 탄력이 있는 것은 자신을 지키면서 더 크고 넓은 것들을 수용할 수가 있다. 생각의 반경이 넓은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강한 것은 크기나 모양새가 같거나 작은 것만을 담을 수 있지만, 부드럽고 유연한 것은 모양이 다르거나, 더 크다 하더라도 그 모양과 크기에 맞게 스스로를 변화시켜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허기사 필자는 딱히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OX 형의 인간이며 부러지는 성격인지라 세상사에서 아주 잘 다치는 편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음이다. 그러니 이 글을 적으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위의 글은 거의 도를 닦는 차원이지만, 그래도 한 번쯤 진지하게 읽어보면서 누구나 마음에 새겨봄도 괜챦을 듯 싶다. 그래서 마음의 평정을 누리는 오늘,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잠재력까지 끌어모아 행복한 내일의 꿈을 그리워하는 오늘, 조금이라도 편안한 하루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오늘이 되기를 바란다.

괴로움이나 슬픔이 없는 즐거움이나 기쁨은 있을 수 없다. 때로는 눈물 한 방울이 인생을 달콤하게 만든다. 그러니 가끔은 괴로움이나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 당신은 혹시, 자신의 인생이 온통 괴로움과 슬픔으로만 채색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 즐거움과 기쁨은 하나도 없이, 괴로움과 슬픔만을 껴안고 사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매콤한 카레보다 달콤한 단팥죽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인생에서도 쓰디 쓴 괴로움보다 달콤한 즐거움만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달콤함을 참을 필요는 없다. 달콤함은 훨씬 강해지는 법이다. 또한 쓰디 쓴 한약을 먹고 나면 사탕의 달콤함은 훨씬 강해진다. 그렇지만 인생의 진정한 달콤함은 쓰디 쓴 괴로움이나 슬픔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이야기들이 비록 쓰고 맵고 힘겨운 줄거리일지는 모르지만 참고 인내하며, 또 다른 소망의 내일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달콤하고 고소한 결실이, 보람이, 맛난 미래가 충만하게 들어차 있는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실수나 약점을 밝히려 애쓰지 말고,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기꺼이 보완하고 협력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섣불리 남을 험담하고, 없는 말을 만들어내며, 입에 바른 거짓을 일삼는 사람들을 경계하면서 인간관계에 심혈을 기울여 신중한 만남을 이어가야 한다. 입은 때로는 모든 재앙을 끌어들이는 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엄하게 지켜야 한다. 몸은 모든 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함부로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자주 날아다니는 새는 언젠가는 그물에 걸려 화를 당하게 되고, 가벼이 날뛰는 짐승은 언젠가는 화살에 맞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언행을 조심하자. 모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입을 놀리거나 원망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맹렬한 불길이 세상을 태워버리듯, 말을 삼가지 않으면 이것이 불길이 되어 종국에는 내 몸을 태우고 말 것이다. 사람들의 불행한 운명은 그 입에서부터 시작된다.

말이 많은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 허물이 있다. 남들이 그 사람의 말을 믿지 않고, 그 사람이 설명하는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고, 남의 미움을 사게 되고, 거짓말이 많게 되며, 남들을 싸우게 한다. 그러므로 오로지 입을 지키도록 하자. 망령되게 남을 증거하여 죄업에 들어가게 하지 말며, 남의 나쁜 말을 전하지 말며, 말로 서로 다투어 남의 뜻을 상하게 하지 말며,
듣지 않은 것을 들었다 하지 말며,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자.

악한 말은 자기에게도 해롭고 남에게도 해를 입히므로 피차가 다 해로운 것이다. 그러나 착한 말을 닦아 익히면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로워서 피차가 다 이로운 것이 된다. 상대의 마음이 어떤 모양인지 안다면 그림조각 맞추듯 이 마음과 그 마음을 빈 자리에 꼭 끼워 맞출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각각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 순간에도 수만 수천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 그 바람 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쉬운 듯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아마도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아닐까? 수많은 사람 중에 친구로 동료로 다가서서 신뢰를 얻는 것도 오랜 시간 동안 정성을 들여야 하는 법일진대, 이미 누군가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은 삶의 많은 이유 중에서 가장 큰 의미를 찾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입장을 고려하고 배려하면서 함께 써나가는 이야기들이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이 되는 것이고, 세상을 향기롭게 만드는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행복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4개의 동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중세의 격언이 있다. 여기서 4개의 동전은 ‘먹을 것을 살 동전’, ‘명예를 지키기 위한 동전’, ‘나라를 방어하기 위한 동전’, 그리고 ‘위험에 대비한 동전’을 일컫는다. 첫번 째 동전은 일상적인 가사 활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돈을 말하고, 두번 째 동전은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요청하는 가난한 자를 위한 성금을 의미하고, 세번 째 동전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왕에게 바쳐야 하는 돈이며, 네 번 째 동전은 가족에게 갑작스러운 불행이 닥쳤을 경우를 대비하여 냄비에 몰래 숨겨놓은 돈을 의미한다.

사랑만 먹고 살 수 있던가? 아니다. 사는 게 너무 버겁다 보면, 형편이 너무 어려우면 내가 사랑을 하긴 하는 건가? 하고 갸우뚱하게 된다.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에 문제가 생기니 절로 인색해 진다는 걸 필자는 실감하고 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 했던가? 혹간에는 그리 말들 하곤 한다. 우선 저축을. 하지만 그것 또한 궁핍한 이들에겐 여유이며 사치란 생각이 든다. 구호기부 또한 저축과 마찬가지고 말이다. 누군들 구제에 동참해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애석하게도 이건 필자의 경험담이다.

물론 특별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특별하신 분들은 말 그대로 아무나가 아니니, 아무나인 우리들이 흉내조차 낼 수 있겠는가만 그렇더라도, 그러한 마음의 여유를 갖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을 갖추는 일, 우리 삶에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 속물로 보일지언정 부인할 수 없다. 단, 기억해야 할 게 있다. 바로 ‘인생을 망치는 7가지 변명’이다. 먼저 “나도 알아요. 하지만 나도 사람이라고요.”이다. 다음으로는 “그게 잘못이란 건 알아요. 하지만‥‥”이다.

세번 째는 “그게 옳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이다. 네번 째는 “나야말로 진짜 불행한 사람이라고요.”이다. 다음은 “나도 한때는 내 가치관이 있는 사람이었다고요.”이다. 그리고는 “그건 특별한 사람이나 하는 거라고요.”이다. 마지막으로 “하다보니 그렇게 됐어요.”이다. 잘못임을 알았다면 그 잘못을 시인하고 고쳐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정정하고 용서를 받거나 수정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옳은 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은 모르는 것만도 못하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원망만 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운명이 어떠하든 그 운명의 방향키는 자신이 쥐고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망연자실하면서 넋을 놓고 있는 사이에 소중한 자신의 삶이 낭비되고 있다는 걸 자각해야 한다. 자신의 중요한 이야기를 자신이 자발적으로 쓰지 않고, 남들에 의해 각색되고, 원하지 않는 이야기로 써진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비참한 삶이라는 것과 동일한 맥락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필자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아름다움이 많다고 말한다. 물론 아름답지 못한 것도 많지만 나를 위해서 어두운 것을 말한다면 나도 마음이 어두워질 테니까 말이다. 슬픔도 괴로움도 말로 내뱉으면 즐겁지 못하고, 나의 심장과 세포를 쪼여들게 한다. 소심하고 조심성이 많고 세상 걱정을 혼자 다 하면서, 그러다가 혼자서 상처받고 혼자 위로하면서, 그렇게 삭인 것이 승화라 명명하곤 한다.

내 마음은 저 청명한 하늘을 향하지만 때로는 어두운 곳에 피는 악의 꽃처럼 되고도 싶다. 부정적으로 보고 싶은 적개심의 발로라 할까? 하지만, 나를 위하여 욕된 길을 버려야 하겠다. 나를 해치려는 사람을 미워해도 나의 몸만 더욱 아픔일 뿐이고, 그 사람은 반성은 커녕 오히려 기세등등하기만 하던 걸 보아왔다. 그렇더라도 나를 위하여 용서라는 멋진 단어를 사용하려고 한다. 그것이 이율배반이나 부조화일지라도 나를 위하여 그렇게 말하고 싶다.

언제나 사랑만이 세상의 가장 큰 힘이라고 부르짖으며, 나의 행동을 믿고 나의 의지를 믿으며 나에게 용기를 북돋우면서, 그것이 밝음으로 향하는 진실이라고 나에게 말하련다. 마음 안에 사랑을 키우는 것은 영혼을 살찌우지만, 마음 안에 미움을 키우는 것은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한다고는 하지만 실은 스스로를 자학하는 것과 같다. 사랑하는 감정은 기쁜 감정이지만 미워하는 감정은 아프고 괴로운 감정이다.

일 또한 그러하다. 기쁘게 임하는 것과 억지로 임하는 것이 다르다. 늘 강조해 왔지만 일의 능률도 다르고 성과 또한 다르다. 바로 긍정과 부정의 차이다. 어두움보다는 밝음을, 미움보다는 사랑을, 슬픔보다는 기쁨을 먼저 바라보고 내 것으로 만드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30층 빌딩에 전기가 나갔다. 같이 사는 남자 셋은 꼭대기 층까지 걸어가기로 합의했다. 자신들의 오피스텔이 바로 30층에 있었기 때문이다. 역할을 분담했다.

A 남자는 10층까지 가는 동안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재미나게 들려주었다. 모르는 사이 10층이었다. B 남자는 20층까지 오르는 동안 자신의 연애담을 질펀하게 쏟아 놓았다. 숨을 헉헉거렸지만 그냥저냥 20층이었다. 다음은 C 남자의 차례. 부동산을 어떻게 처리하며 동산은 어떻게 굴리는지 온갖 재테크의 비밀을 털어 놓는 사이 기진맥진한 대로 세 남자는 마침내(!) 30층에 도달했다. 등줄기에는 땀국물이 흐르고 얼굴은 벌개졌다가는 창백해졌다.

A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순간, 남자의 발목이 스르르 풀려버렸다. B와 C 남자는 어리둥절했다. A 남자가 말했다. “....열쇠가 없어! 차에 두고....” 이런 비슷한 글을 아마도 유머글에서 더러 접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나름의 삶의 목표를 갖고 살고 있다.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정열을 바쳐 일하고, 또 혼신의 힘을 다해 매진을 한다. 때로는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남을 해(害)하는 일조차 서슴치 않는 이들도 더러 있는 것 같다.

때로 수단, 방법에 너무 열중하다보면 우리가 정작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잊을 수가 있다. 이쯤에서 한 번쯤은 주머니를 더듬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지금 과연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위만 바라보다가 혹시 옆을 바라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중간 점검을 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괜챦을 것 같다. 나중에 주머니를 뒤졌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가 없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앙금이 빠진 단팥빵처럼, 이야기가 없는 삶이란 허무 그 자체다.

필자가 자주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우선 몸에게 물어보기를, 무슨 영양분이 더 좋은지가 아니라 세상의 그 누군가를 위해 내 몸은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머리에게 물어보기를, 배기량, 아파트 평수, 은행의 잔고가 아니라 사랑이나 우정이란 단어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다음으로 가슴에게 물어보기를, 금싸라기와 돈을 얼마나 품고 살아가는지가 아니라 어떤 감동이 그 안에 깃들어 있는지를 묻는다. 진지하게 물어보기를, 지금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인생은 뺏고 뺏기는, 피 튀기는 전쟁터인지, 아니면 아름다운 꽃동네로 봄소풍 나온 것인지를 물어본다.

우리 함께, 무어라 대답을 할까? 아름다운 꽃동네라고 힘껏 대답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오늘도 변함 없이 그런 이야기로 고운 하루 만들어 나가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에게 닥쳐온 이 현실이 역대급이고, 처참한 실상을 보여주는 엄중한 경고임을 인정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더욱 더 신중하고 진실한 이야기를 준비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는, 다시는 이런 엄청난 사건 사고가 우리의 아름다운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도록, 만반의 대비를 갖추고 오늘을 살아가기를 절절하게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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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그토록 그리워하고
이야기를 갈망하며
애초 난 왜 그리 살아왔을까 ?

스물네점도 겨운 시간지킴이
지금도 벌개진 하늘 아래 어딘가
숨겨진 수만개의 목숨줄들,

여전히 낯뜨거운 퍼포먼스로 전전긍긍
나름 곱디고운 꿈나래
펄럭이고들 있을테지

이제 버거운 이 밤 애면글면 새고나면
또다른 소통의 새벽
필경 밝아올테고
그리움은 새로운 길 되어
새로운 만남으로 꿈 세울텐데

언젠가 무너진 꿈으로 인해
낯선 세상 방치된 절연한 시발점
함께 숨겨놓은 쌈박한 인연
비밀스럽고 흡인력있는 대화로
또 불붙이면

가슴에 품었던 봄꽃
팔다리 옮겨 피어나며
아름다운 동행도 시작되리라

생각 한토막 한토막
명료한 문장되어 스스로 시를 짓는
오늘 이렇게 지겨운 밤도
내게는 엄청 특별한 삶,

시작과 끝이 있는 흐름으로 매듭만 풀면
감췄던 이야기
술술 쓰여져 갈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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