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2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예상하고 있는 출판 계획 상으로 보자면
세번째 詩集이 될 詩들의 묶음입니다.

2010년 후반기부터 2012년 봄까지의 詩를 모았습니다.

역시 힘든 세상살이의 단면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고달프고 버거운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새롭게 거듭나는 미래의 또 다른 삶과
행복의 추구에 관한
보헤미안 林森의 깨달음의 속내가
절절하게 배어나고 있습니다.

비단 詩人 만의 이야기가 아닌
세상 모두의 이야기이며,

그렇기에 누구나가 스스로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여기면서
차례 차례 감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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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이염 *



시작노트

" 중이염 " 詩作 note

필자의 오래된 지병 중에 하나가 귓병이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중이염’이라고 하는 병명은 필자를 천형처럼 따라 다녔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생각이 안 나지만 아무튼 초등학교 시절에도 툭하면 솜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고 여름 한 철을 살아야 했던 기억은 있다. 청운의 꿈을 안고 국가의 간성이 되리라고 했던 학창시절 진학의 염원도 중이염 때문에 할 수 없이 접어야 했고, 군 중간에 최고의 특수부대 용사가 되고자 지원했던 수중폭파요원 선발과정도 결국은 귀로 인해서 중도에 포기하기도 했다.

군 생활 도중에도 수시로 본의 아니게,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통합병원 신세를 진 경우도 부지기수고, 급기야 긴급한 수술로 양쪽 고막을 다 드러내기에 이르렀었다. 그러다보니 신체검사에서 청각 기능은 언제나 필자의 핸디캡이었다. 물론 다른 신체적 조건이 월등하거나 엄청나게 건강한 체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대로 평균 이상은 유지하면서 비교적 우월하게 살아왔는데 유독 귀 만은 어찌된 영문인지 영 신통치가 않았다.

그러면서 그럭저럭 나이 들어가는 와중에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거, 상대적으로 눈치 코치가 균형적으로 발달되다 보니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다거나 손해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필자의 귀가 특별히 좋지 않다는 사실 자체도 가족이나 친한 지인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일절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필자의 방어 본능과 포장 의식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발휘되어왔다.

그래도 수시로 재발되는 증상과 그 때 마다 점점 더 나빠지는 상황은 어쩔 수 없는지라, 몇 해 전에는 급기야 양 쪽 고막을 다 인공 고막으로 교체하기에 다다랐다. 그런데도 아직은 보청기 신세를 지지 않고 들을 수 있으니 참 다행인 셈이다. 옛 말에 “사람의 통증 중에서 귀 아프고 이 아픈 게 최고다.” 라고 했는데 아마도 필자는 그 말을 완전 공감하는 대표적인 부류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시는 10여년 전에,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중이염이 재발되어 극심한 통증에 시달릴 적에 지은 시다.

지금에 와서 당시의 통증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온전히 기억해내서 적당한 비교 언어를 제시하기는 힘들지만,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리 소름이 돋는 걸 보니 아마도 꽤나 힘겹고 아팠던 듯 하다. 게다가 바로 조치를 취해 치료를 하거나 통증을 완화시키는 노력을 하기도 여의치 않았던지라 더욱 더 시름겹고 안타까웠을 게다. 앞으로 남은 삶 중에 어떤 부위가 어떻게 이상증세를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의 그 자지러지는 고통을 이미 경험한 필자로서는, 앞으로는 너끈히 참아낼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참기 힘든 시절이나 상황을 견뎌낸 기억들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비교해서 그 아픔의 정도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지만, 누구나 어렵고 벅찬 현실을 참고 인내하면서 나름 삶의 노하우로 삼거나 내일을 향한 소망을 다지는 밑거름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소중하게 모아 성공으로 향하는 이정표를 세우기도 한다. 2018년 3월 31일, 청주 ‘충청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TFC 드림 5 한일전’에서 한국의 ‘장정혁 선수’는 일본의 신예 천재 권투선수 ‘니시카와 야마토’에게 펀치 세례를 받고 피투성이가 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장정혁 선수의 패배가 확실시되고 있을 때 장정혁 선수는 상대에게 다시 돌진했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상대방 선수에게 연속펀치를 성공시켜 프로 데뷔전에서 역전 KO승을 거두고 말았다. “난 한 번 목숨을 걸어 봤기 때문에, 이 정도는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도저히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좌절된 상황에서 어떻게 다시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었냐는 질문에 대한 장정혁 선수의 대답이었다.

북한에서 굶주림과 죽음을 피해 엄마와 함께 차가운 ‘두만강’을 헤엄치던 당시 장정혁 선수는 고작 12살 소년이었다. 더욱이 죽음을 무릅쓰고 도착한 낯선 중국에서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몸이 마르고 키가 작아 당했던 괴롭힘은 너무도 가혹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으로, 엄마와 그리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헌 옷과 물이 든 페트병을 큰 포대에 넣어 만든 샌드백을 매일 두드리며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자 했다.

중국에서 국적도 신분증도 없는 싸움 잘하는 남자는 폭력과 범죄의 유혹이 그림자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그는 엇나가지 않았다. 권투선수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언제나 가슴에 품고, 2012년 한국에 정착한 후에도 수산시장에서 새벽같이 일하며 몸을 단련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노력에 노력을 더하여 프로 권투선수로서 승리를 거두었다.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 주저앉아 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은 보통 다른 탓을 하기 마련이다. 장정혁 선수의 주변에는 굶주림, 폭력, 가난, 범죄, 그리고 죽음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까지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그것들에 지지 않았다. 장정혁 선수의 노력이 특별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낸다.”고 한 ‘루크레티우스’의 말을 기억하자.

어떤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항상 올바른 정신자세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설사 자신의 여건이나 처지가 보통 사람들에 비해 뒤처진다거나 부족하다 해서 결과가 반드시 그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현재의 상태가 다른 사람 보다 앞서 있다고 해서 교만하거나 겸손하지 못한 처세를 일삼는다면, 뒤따라오는 결과도 결코 낙관할 수는 없다. 한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가고 있었다.

선비는 자신의 학식에 대해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어 장원급제 할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어느 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큰 강을 건너던 중 선비는 노를 젓는 뱃사공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이보게 사공, 논어를 읽어 보았는가?” 사공은 선비의 질문에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논어라니요? 그게 무슨 책입니까?” 사공의 대답에 선비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논어를 모르다니, 그건 지금 몸 만 살아있지 자네의 정신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네.”

그 순간 큰 바람이 불어와 물결이 계속 출렁거렸다. 그리고 나룻배가 휘청거리자 사공이 말했다. “선비님, 혹시 헤엄을 칠 줄 아십니까?” 배가 뒤집힐까 두려워 사색이 된 선비가 말했다. “난 평생 글공부만 해서 헤엄을 칠 줄 모르네.” 그 말에 사공이 피식 웃으며 선비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만약 이 배가 물결에 뒤집힌다면 선비님은 정신 만 살아있고 몸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다행히 배는 무사히 강 건너편에 도착했다. 그리고 배 위에서 크게 깨달은 선비는 학문보다 인격을 더 쌓은 후 과거시험을 보겠다고 다시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지식과 많은 재산, 잘 단련된 몸과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반드시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교만함은 부족한 부분을 항상 눈에서 가리지만, 겸손은 그 부족한 부분을 새로 채우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사람에게는 그토록 결점이 많은 것은 아니다. 결점의 대부분은 거만한 태도에서 나온다. 먼저 거만한 태도를 버리자. 그러면 많은 결점이 스스로 고쳐질 것이다. 지혜로운 태도는 우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이 지닐 수 있는 요건이다. 지나친 자존감과 넘치는 자신감이 자칫 자신의 진정한 삶의 태도를 해칠 수 있음을 명심하고 자중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슬기롭게 살아가는 방법은 오랜 경험과 축적된 겸양에서 비롯된다.

예술계의 거장이었던 ‘미켈란젤로’는 키가 작아서 4m가 넘는 ‘다비드상’을 조각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3단 가설물을 오르내리며 먹지도 씻지도 못하고, 엄청난 양의 대리석가루를 들이마시며 고군분투한 결과 세기의 걸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당시 ‘피렌체 행정부’의 수반이었던 ‘소델리니’가 다비드상을 조각 중인 미켈란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의 작품은 정말 훌륭합니다. 그런데 코가 지나치게 높고 커서, 전체 조각상과 조화가 안 되는 게 흠이네요.”

이 말을 들은 미켈란젤로는 날카로운 정을 다비드의 코에 대고 망치질을 했다. 정을 때리는 망치 소리와 함께 대리석 가루들이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사실 다비드의 코에는 손도 대지 않고, 손 안에 미리 쥐고 있던 대리석 가루를 조금씩 떨어트리고 있었다. 그리고 망치를 내려놓은 미켈란젤로를 향해서 소델리니는 크게 만족하며 말했다. “이제야 당신의 작품에 생명력이 감도는 것 같아 좋네요. 내 말 대로 하니까 작품이 훨씬 훌륭해졌습니다.”

어떤 일을 하면서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은 중요하다. 만약 미켈란젤로가 정말로 코를 낮추는 작업을 시도했거나, 아니면 고집을 부리며 버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을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완벽한 조화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혜란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여행을 한 후, 스스로 지혜를 발견해야 한다.

또한 절실하게 염원하고 간절히 원한다면 우리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있다. 자신의 역할은 적당히 대충 추스리면서 좋은 결과만을 바란다고 해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한 청년이 세상을 둘러보고 싶어 혼자서 배낭여행을 떠났다. 평소 상상하던 것과 사뭇 다른 세상의 모습을 보며, 기존의 잘못된 선입관을 돌아보고 갱생하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청년은 특히 산골 마을의 모습이 너무도 좋았다.

도시나 넓은 평야에서는 수확할 수 없는 특수 작물을 재배하면서 그들만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멋진 모습들을 보며 여기저기 발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여행을 하던 청년은 어떤 산골짜기에서 이전 마을들보다 제법 큰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큰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마을은 황폐하기 짝이 없었다. 고장 난 트랙터와 농기구들이 길에 버려져 있고, 떨어진 문짝이나 무너진 담벼락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다른 마을처럼 활기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저 하늘만 쳐다보며 무기력한 사람들만 보였다. 청년은 마을 사람에게 이 마을의 분위기가 왜 이런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저 골짜기 위 쪽에 발전소하고 커다란 댐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머잖아 여기가 몽땅 수몰돼서 마을이 사라질 거야. 어차피 없어질 집하고 밭을 누가 돌보겠어. 우리 마을에는 내년이 없으니까...” 이미 정해진 내일의 결론을 알고 있다면 새로운 꿈이나 희망은 생겨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우리도 때가 되면 반드시 이 세상을 떠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언젠가 끝나고 잊혀지는 인생이라고, 그저 의미 없는 삶을 살 수는 없다. 미래의 희망을 가꾸지 않으면 현재를 살아가는 힘을 잃게 된다.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내일은 알 수 없는 두려운 존재이기만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 희망을 만들어가고, 오늘을 살면서 내일이라는 미래를 준비한다. 미래는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1940년 미국 ‘테네시주’ 북부 ‘클라크스빌’의 슬럼가에서 22형제 중 20번 째로 태어난 여자아이가 있었다. 미숙아였고 4세 때 ‘폐렴’과 ‘성홍열’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가 마비되었다. 가족들은 아이의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아다녔다. 나중에는 물리치료를 배워서 집에서 재활운동을 하게 되었다. 가족의 헌신 덕분에 8세 때는 일어설 수 있게 되었고, 11세 때에는 보조기구마저 벗어 던졌다. 아이는 의사에게 당당히 말했다. “저는 육상 선수가 되어서 달리고 싶어요.”

그렇게 열다섯 살이 된 아이는 놀랍게도 육상경기에 출전하였으며 육상코치에게 또다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선수가 되고 싶어요.” 이 아이는 바로 1960년 ‘로마올림픽’에 출전하여 100m / 200m / 4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 3관왕에 올랐다. 그리고 이듬해 1961년에는 100m 세계신기록까지 세운 ‘윌마 루돌프(Wilma Rudolph)’다. 이후 윌마는 육상코치, 스포츠 해설자 등으로 활약했으며 ‘윌마 루돌프 기금’을 조성하여 가난한 어린이들을 돕는 데에 힘썼다.

1994년 그녀는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윌마의 고향 마을에 있는 ‘국도 79호선’은 ‘윌마 루돌프 가로수길(Wilma Rudolph Boulevard)’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무리야. 할 수 없어. 포기해.” 시도하기도 전에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윌마 루돌프는 당당히 보여주었다. 지금 좌절에 빠져 있는가? 자신이 원하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극복한다면 분명 이루지 못할 꿈은 없다.

비참하고 힘겨운 오늘이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내일을 바라보는 ‘다온이’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다온이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 병원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다온이가 심장질환인 ‘폐동맥판 폐쇄증’이라는 희귀병을 진단받은 것입니다. 하늘이 노래지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아이에게 병이 있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게 찾아온 소중한 아이이고, 이 작은 천사에게는 아무 죄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또 한 번의 충격적인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온이가 설상가상으로 뇌에 주름이 펴지는 ‘밀러-디커 증후군’이라는 또 다른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은 아이에게 어찌 그렇게 가혹한 병을 주셨을까... 누가 뭐라 해도 하늘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습니다. 두 가지 희귀병으로 심장과 뇌에 이상이 있는 다온이는 걷지도, 말을 못할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어 매 순간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야 하고, 입으로 음식을 먹으면 폐로 넘어가기에 위를 통해서 모든 음식물과 약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주변 사람 모두가 포기하라고 말했습니다. 남편도 다온이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를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다온이는 하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이며, 저는 다온이의 하나밖에 없는 엄마니까요.

3살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하던 다온이가 올해 5살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다온이는 누워 있으며 걷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숨 쉬는 것도 힘들어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생리현상조차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 대소변도 장비를 이용해야 합니다. 5살이지만 생후 6개월 아기의 몸무게와 비슷할 만큼 매우 작고 마른 상태입니다.

그래도 조금씩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울지도 못하던 다온이가 이제는 싫을 때 얼굴을 찡그리고, 힘들 때 울음을 토해냅니다. 아무 반응이 없던 다온이가 반응을 보이니 너무 신기합니다. 가끔 저와 눈을 맞추기도 하는데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합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여러 차례 힘든 수술과 치료를 잘 견뎌준 다온이가 대견하기만 합니다.

앞으로 다온이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가끔 잠자고 있는 다온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다온이와 같은 병의 경우, 간혹 10대까지는 생존할 수 있다고 하는데 평생 생후 3~5개월 아기의 수준으로 살아간다고 하더군요. 다온이가 많이 힘들지 모르겠지만 저는 기도합니다. 이대로도 괜찮으니 살아만 있게 해달라고... 이대로도 괜찮으니 하루라도 더 저와 눈 맞출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저마다의 사명자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온이의 엄마입니다. 그게 저의 사명이자 길이고, 제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두렵습니다. 다온이를 끝까지 지켜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까 봐 무섭습니다. 제가 지금 눈이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미 한 쪽 눈은 실명이 되었고, 다른 눈 또한 언제 시력을 잃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앞을 볼 수 없으면 다온이와 눈을 맞출 수도 없는데, 다온이 곁에서 온전히 돌볼 수도 없는데.... 저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다온이의 치료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계속해서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고, 평생 복용해야 할 약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올해 8살 된 다온이 형, 하랑이... 아픈 동생을 걱정하고, 엄마를 걱정하는 하랑이도 돌봐줘야 하는데, 하랑이도 아픈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 때문인지 심리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두 아이의 유일한 버팀목인 엄마는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엄마가 경제활동을 할 수 없기에 정부에서 주는 수급비 100만 원만으로 치료비와 생활비를 모두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절망을 외치고 있을지라도 엄마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언젠가 다온이가 건강해지는 날이 꼭 올 거라고, 언젠가 두 아들과 함께 손잡고 나들이 가는 날이 꼭 올 거라고, 엄마는 우직하게 믿고 있다.

세상은 그런 거다. 어차피 산다는 건 그런 거다. 삶이라는 건 고해의 연속이다. 고달프고 험난한 여정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힘겹고 암울한 오늘을 산다고 해도 필경 우리의 내일에는 빛과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웃으면서 기꺼이 오늘을 견딘다. 누구의 아픔이 더 큰지, 누구의 슬픔이 더 진한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심성과 인간 본연의 자세를 유지하면서, 서로 서로 돕고 의지하며 함께 나아가는 내일로의 여정이 있어서 세상은 그래도 아직 살 만 한 거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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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고 차가운 바늘어둠 채워져
흔전만전 깔린 우울,
창밖은 하마 -

무저갱보다 더 깊이 추락시켜
감춘 평범함을,
결삭은듯한 보드라움을,
속에 보듬어 인정할 수 없는 느낌이지만

문 여니 이 안
가분가분한 고요 가득차있다

멀어진 세월 발걸음조차
눈앞 선연하고
모래 가득 넣은 자극들 주렁주렁 매달려
피로 온 몸 짓누르면
거미처럼 오므라들어 떨고있는 표정,

끝없이 파들어간 내면에서
밑바닥 만난 모양
저렇지 않을까 ?

깊은 곳에서 쥐어짜낸듯한 목소리에는
게으름 푹 빠져
회복하기 힘들만큼의 분노와 우울
엉기고 있느니 -

재발된 만성중이염
질질 새는 양쪽 귓구멍
뭉친 화장지 빡세게 틀어막고
밤 새 통증과 전쟁 벌일
준비는 이미 완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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