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청으로 들리는 " 詩作 note

이만큼 살아보고 나니 이제사 새삼스레 느껴지는 바가 있다. 삶이라는 게 정작 마음 먹은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지경으로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저 하루 하루를 열심히 메꾸어가는 것이 더도 덜도 아닌 삶의 지름길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에게 균등하고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이지만, 그것이 결과로 이어지는 데에는 어쩔 수 없이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고, 그 간극은 영원히 누구도 어찌할 수가 없다.

한 마디로 세월은 흐르는대로 맡겨두면서, 그냥 현실속에서 작으나마 소망과 기쁨과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거다. 그렇게 죽어가는 것이 최상이라는 거다. 먼 미래나,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희망을 기다리며, 막연한 꿈을 씹으면서 오늘을 사는 방법이 그리 현명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꿈을 꾸지 말라는 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현실을 대하는 정확한 생각과 바른 마음가짐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옛날의 틀에 스스로를 얽매거나, 과거의 흔적에 붙잡혀서 변화하는 시절에 순응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한 순간에 소외되고 버림받은 패배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모름지기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여 발빠른 대처와 처세를 익히는 것이 현실적으로 슬기롭게 잘 살아가는 노하우임은 분명하다.

이제 며칠 후면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의 하나인 설이 된다. 올 해는 날짜를 조금만 조정하면 최장 9일간의 연휴를 만끽할 수 있다고 하여, 많은 직장인들이 머리를 싸매고 골몰하고 있다. 달콤한 휴식과 명절의 환희가 겹쳐서, 고향방문과 가족의 재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 절호의 찬스가 될 것 같다.

문득 오래 전의 시골 설 풍경이 생각난다. 눈을 감으면 수많은 추억과 회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리운 시절들, 아련한 기억들이 감성과 더불어 콧잔등 시큰한 정서를 자극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 설이 되면 할머니께선 꼭 엿을 만드셨다. 설날엔 떡과 함께 내놓으시던 맑은 갈색엿에 떡을 찍어 먹곤 하였는데, 대개 설이 되기 삼사일 전에 만드시곤 했다.

밖에서 놀다 돌아오면 달큰한 냄새가 집안에 가득하고, 할머니께선 아궁이의 불을 돋우시며 대막대로 열심히 솥안을 젓고 계셨다. 부엌으로 들어가면 아궁이의 장작불을 보라시거나, 어쩔 때는 대막대로 엿을 저으라고도 하셨다. 어린 마음에도 그저 신이 나고 들떠서 열심히 저었던 기억이다.

그 막대를 엿죽방망이라 불렀는데, 처음엔 부뚜막이 따뜻해서 좋다가 조금 오래 젓다 보면 올라오는 열기로 해서 뜨겁기도 하고, 팔도 아프고 하여 게으름을 피우면 할머니께서 야단을 치시곤 했다. 엿은 얼마나 잘 젓느냐에 따라 잘되고 못되고 한다는 것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앞에서 할머니께서 빙빙 돌려젓던 엿죽방망이를 따라 눈이 같이 따라 돌던 어린 날, 설을 맞는 가장 큰 기쁨이 이 엿을 먹는 일이었던 것 같다.

엿은 보리를 물에 담궈 싹을 틔워 말린 엿기름을 맷돌에 갈아 분말을 만드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갈아진 엿기름을 가는 채로 쳐내어 더 고운 분말로 만들고, 물에 풀어 엿기름물을 만든다. 그런 다음 꼬슬꼬슬하게 밥을 하여 엿기름물에 밥을 담궈 삭히게 되는데, 이렇게 대여섯 시간 삭히면 밥알이 하나 둘 뜨기 시작하고, 이내 밥알들이 송송 거의 다 뜨면 퍼내어 체를 받치고 짜낸다.

이 때 엿물을 짜낸 밥찌꺼기가 엿밥인데, 친구들과 어울려 이 엿밥을 훔쳐다 먹고 배가 아파 데굴데굴 구르던 일이 생각이 난다. 짜낸 엿물은 허여스름한데 이 물을 솥에 붓고 고게(달이게) 된다. 이 고는 작업이 중요한데 불이 조금만 세어도 엿물이 끓어넘치고, 바닥에선 눌어버리게 되므로 불을 알맞게 하여 은근하게 달이되, 엿죽방망이로 계속 저어 엉킴이 없이 고루고루 달여지게 해야 한다. 아궁이에선 쉴 새 없이 통장작불이 타오르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무쇠솥에서는 엿물이 뽀글뽀글 끓기를, 한 밤이 이슥토록 고다가 엿죽방망이를 위로 들어보면 엿물이 또로록 떨어지는데, 이 엿으로 강정을 만들며, 떨어진 끝이 말리면 이 때의 엿은 물엿으로 먹으면 된다.

이 물엿을 넓적한 반대기에 부어서 식힌 다음 우동가락 뽑듯이 늘이고 뭉치고, 뭉치고 늘이기를 반복하면 하얀색 가락엿으로 변하게 된다. 이 가락엿을 한 입 크기로 잘라 밀가루를 묻혀놓았다가 손님상에 내놓기도 하고, 물엿을 덧입혀 콩을 묻히거나 깨를 묻히면 콩엿이나 깨엿이 된다. 사탕이나 과자가 귀하던 시절인지라 아이들도 사탕 하면 의례 엿을 생각하였고, 엿을 실컷 먹을 수 있는 설날은 다른 어느 날 보다도 기다려지는 즐거운 날이었다.

요즘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보면 호박엿이나 가락엿이 엿목판에 놓여 팔리고 있는 걸 본다. 하지만 맛깔스러움을 느낄 수도 없고, 얼른 사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문명의 이기로 인한 편위주의의 늪속에 갇힌 바 되어, 마치 물엿처럼 끊이지 않고 흘러내리던 끈끈한 인정과 어린 시절 감싸고 있던 훈훈한 분위기들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제조기술이 발달하여 더 맛있게, 곱게, 좋게, 그리고 짧은 시간 내에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자꾸만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짙어지는 것은 분명 향수만은 아니고, 우리의 옛 풍습에 대한 애착과 뿌리정신이, 땅속으로 흐르고 있는 물줄기처럼 우리 가슴 깊이 흐르고 있음이 아닐까 하는데, 분명 필자만의 착각은 아니리라.

막연하게 변모하는 현대의 생활 패턴에, 맹목적으로 자신을 맞추어가는 노력만이 삶의 지혜는 필경 아닐 것이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옛 것에 묻어있는 은근하면서도 속 깊은 흥취와 정념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어색한 몸짓으로 현대의 물결속에서 밀리고 있는 우리의 것들이 참주인이 되어, 의젓하게 자리잡고 앉아 흔들림 없이 우리의 속으로 녹아들게 할 비책이 절실하다.

언제나 설날이나 추석같은 명절날이 되면 예전에는 보도 듣도 못했던 갈등이나 다툼이 비일비재하게 도처에서 일어나는 것이 새로운 풍속도가 되어졌다. 물론 설날이라고 하여 반드시 조상님들을 위한 차례상을 차리고, 오손도손 일가친척이 다 모여 앉아 부모의 은덕을 기리는 정담을 나누는 날로 설정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비단 그 날이 아니라면 다른 어느 날을 선정해서 한 자리에 모이게 할 수는 있다는 말인가? 정작 각자의 삶에 시달리며 분주하게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마치 느림의 미학처럼 여겨지는 고향의 회동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니 그냥 이날 하루라도 천편일률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작심하고 부모형제와 고향이 모두 하나로 더불어 어울리는 그런 날이라고 여긴다면 참 좋겠다.

설날 때 쫄쫄 굶은 조상귀신들이 모여 서로 신세를 한탄했다. 씩씩거리며 한 조상귀신이 말했다. “설날 제사 음식 먹으러 후손 집에 가보니 아, 글쎄 이 녀석들이 교통체증 때문에 처갓집에 갈 때 차 막힌다고, 새벽에 벌써 지들끼리 편한 시간에 차례를 지내버렸지 뭔가? 가보니 설거지도 끝나고 다 가버리고 없었어.”

두 번째 분통터진 조상귀신이 말했다. “자넨 그래도 나은 편이여, 나는 후손 집에 가보니 집이 텅 비었더라구. 알고 보니 해외여행 가서 거기서 제사를 지냈다는 거야. 거길 내가 어떻게 알고 찾아가누?”

아까부터 찡그리고 앉은 다른 조상귀신, “상은 잘 받았는데 택배로 온 음식이 죄다 상해서 그냥 물만 한 그릇 먹고 왔어.”

뿔난 또 다른 귀신, “나쁜 놈들! 호텔에서 지낸다기에 거기까지 따라 갔더니, 전부 프라스틱 음식으로 차려서 이빨만 다치고 왔네.”

열 받은 다른 조상귀신이 힘없이 말했다. “난 말야. 아예 후손 집에 가지도 않았어. 후손들이 인터넷인가 뭔가로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나도 힘들게 후손 집에 갈 필요 없이 편하게 근처 PC방으로 갔었지.” “그래, 인터넷으로라도 차례상을 받았나?” “먼저 카페에 회원가입을 해야 된다잖아. 귀신이 어떻게 회원가입을 하노? 귀신이라고 가입을 시켜 줘야 말이지! 에이 망할 놈들!”

요즈음의 세태를 풍자하는 농담이라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그저 씁쓸하고 속이 좋지 않아 실소가 터진다. 어쩌다가 이런 종류의 농담이 낯설지 않고, 누구나 알아듣고 낄낄거리는 유머로 되어버렸는지, 한 켠으로 생각해보면 통탄할 노릇이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예전의 모습이 그대로 이어져서는 물론 안될 것이다. 쉬지 않고 들이닥치는 손님들 접대를 위해서 끊임없이 상을 차리고, 며칠 동안 잠시의 휴식도 없이 시달려야 했던 우리의 여인네들, 안식구들, 며느리들. 그리고 명절의 끝에는 뒤따르는 명절증후군으로 예기치 않던 파국까지 치닫기도 하는 우리 가정들. 분명히 그런 상황은 우리가 지양해야 할 폐습임에는 틀림이 없다.

최근 젊은 부부사이에 가사 분담이 일상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명절만 되면 남편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으면서 접대만 받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명절에 모인 집안어른들에 의해 기존의 가부장적 남성중심 문화가 일시적으로 강화되기 때문이다.

또 명절 때만 만나는 시댁 식구와의 서먹한 관계에다, 대화중 나오는 남편 형제, 자식들에 대한 각종 비교에 의해 자신이 공개적으로 비교 평가받고 있다는 부담감이 일시에 작용하게 된다. 이중에는 전업주부와 맞벌이부부인 며느리들간의 가사분담 논란도 있어, 종전의 시댁과의 갈등에 이어 며느리간의 갈등도 주요 요소가 되고 있다.

한편, 종교적인 갈등도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데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문제를 두고 형제간, 고부간의 갈등이 점차 확산되고 있기도 하며, 심할 경우엔 이혼에까지 다다르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명절에 나타나는 각종 현상에 대해 과거 며느리들은 일종의 사회현상으로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자세였던 점에 비해, 최근 젊은 여성들로서는 시댁식구와의 교류가 부족한데다가 가부장적인 과거 가치관에 대한 반발이 함께 일어나면서, 모든 일에 짜증이 나고 명절후에 몸살이 나서 며칠간 고생하는 등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수반되게 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시부모와 떨어져 살던 가정에서는, 최근 들어 명절에 시댁에 가기를 꺼리는 아내 때문에 몇 년 째 명절에 부모댁에 안가는 상황도 발생하는 등, 과거에 흔치 않던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또 명절에 시댁에만 가고 친정에는 가보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남편과의 갈등이 고조되어, 명절 이후 부부싸움이 잦아지는 일도 늘고 있다.

명절에 의해 발생하는 각종 스트레스는 대부분 단시일 내에 해결되기도 하나, 상황이 반복되면서 부담을 느끼는 아내에 의해 가정불화나 시댁과의 갈등이 장기화되고, 심지어 파국에 이르는 경우도 점차 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명절증후군의 원인은 가부장적 문화와 좋은 며느리 강박관념에 반발하는 신세대 부부와 구세대 어른들간의 가치관 단절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예컨대 명절증후군은 명절을 지내고 나서 생기는 질환만은 아니다. 그리고 단편적으로 여성들에게만 해당하는 상황도 아니다. 명절을 전후하여 누구나 부담과 걱정과 예민해지는 신경으로 인해서 생겨날 수 있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이른바 명절 때문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생기는 것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문화증후군으로 볼 수 있다.

시댁에 내려가야 하는 부담을 가진 며느리에서부터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하는 남편, 명절이 끝난 후 자식을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이런 명절 증후군이 찾아올 수 있다. 환자들은 머리나 배가 아프거나 소화가 안 되는 증상에서부터, 목에 뭔가 걸린 것 같고, 온몸에 힘이 없는 등의 증상을 호소한다. 이들 증상은 뭐라고 꼭 집어서 설명하기 어려운 게 특징이다.

심한 경우 명절을 전후해 남편 얼굴만 봐도 울화가 치밀고 자꾸 신경질을 부리게 되는 여성도 있다. 이런 여성들은 명절 직후에도 심한 몸살이 오거나 요통, 두통, 복통을 많이 호소한다. 심한 경우에는 하혈한다든지, 얼굴이나 손발 등의 감각이 이상해지기도 한다는 게 관련 전문의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명절에 남편의 마음은 편한 것도 아니다. 극도로 날카로워지는 아내의 기분을 맞추는 게 무척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아내와 자꾸 다투게 되다 보면 자기도 역시 기분이 우울해져 명절증후군을 겪기 십상이다. 이런 명절증후군을 최소화하려면 가족 모두 생각을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가족들 모두가 편을 갈라서 고스톱이나 윷놀이로 내기를 해서, 진 편은 상차리기나 설거지하기, 심부름하기 등 여러 가지 명목을 붙여 일을 나눠 보는 방안을 명절 증후군 극복 방안의 하나로 제안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여자들의 일 부담을 줄이고 가족들 모두가 명절 준비에 참여함으로써 가족 공동구성원으로서의 유대감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도한 일에 시달리는 여자들에 대한 가족들의 이해와 배려, 그리고 일을 나누려는 자발적인 협조의식이다.

가족 모두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바쁜 여자들을 위해 시장을 대신 봐주거나 집안청소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일을 나누려는 자세가 도움이 된다. 또한 휴식시간에는 찜질방이나 노래방 등에서 스트레스를 함께 풀 수 있는 시간을 할애해 주는 것도 방법이다. 또 쉬는 시간에는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는 심호흡과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되도록 편안한 자세를 취하도록 해주는 게 좋다.

일을 할 때도 주위 사람들과 흥미 있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심리적인 부담감이 쌓이지 않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명절증후군을 호소하는 것은 비단 며느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명절 후 시골에 남겨진 부모님도 명절증후군이 찾아올 수 있다. 명절이 끝난 후 자식들이 없는 빈 자리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거나, 우울감 때문에 식사도 잘 못하는 부모님도 있다. 노인들은 주로 소화 장애와 두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시부모의 명절증후군을 덜어주려면 명절이 끝난 뒤 부모님께 자주 안부 전화를 해야 한다.그 이후에도 가급적 이른 시일내에 부모님을 다시 찾아, 사소한 문제라도 부모님과 상의하고 조언을 구하면서 존재감을 각인시켜 드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무튼 즐겁고 행복하자고, 또한 가족들 간의 정과 화목한 사랑을 북돋우자고 명절이 있는 건데 역효과가 나고, 오히려 명절로 인하여 서로 간에 반목과 갈등만 증폭된다면 이는 더할 나위 없이 불행한 일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영원한 진리가 하나 있다. 누구나 부모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자식이었다. 당연히 누군가의 자식은 언젠가는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 시절에 따라 입장이 바뀌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을 항상 지니고 살아가도록 애쓰는 것에 노력할 일이다. 그렇게 자애와 양보로 바라보면 화평치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부모의 마음가짐으로 항상 죄인처럼 살자. 그럼 된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세상보다 더 큰 생명을 자식에게 주었으니 부모 사랑이 얼마나 크냐고 하지만, 평생을 몸 부닥쳐 살아 왔어도 도무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이 물살 빠른 시간 한 복판에 저 핏덩이들을 혼자 세워 놓았으니, 예서 더 큰 죄가 어디 있나.

말하기 좋게 사람들은, 한 평생 자식을 감싸주니 부모 품이 얼마나 넓으냐고 하지만, 이 나이 먹도록 애를 써 보았지만 어차피 인간은 이 땅에 홀로 서 있는 서늘함. 다 보듬을 수 없는 줄 잘 알면서 이 너른 세상에 저 어린 것들을 툭툭 던져 놓았으니 이 보다 더 매정한 일이 어디 있나. 그러니 부모야 한 평생 죄인처럼 사는 수 밖에.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짐인 줄 뻔히 알면서 저 어린 것들 어깨 위에 생명을 짐 지워 놓았으니 말이다. 서른이 훌쩍 넘은 자식을 바라보면서 잠시라도 출타할 때면 염려스럽고, 곁에 있으면 오늘 하루도 무사함에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이제 성장했으니 독립시켜야지, 내가 독립해야지, 말은 쉬우면서도 껍데기 뚜욱 떨어져 나앉기가 쉽지 않으니, 다스림이 어려움 또한 죄인에게 주어지는 필연의 고통인 듯 하다. 수년 전, 격리생활로 내몰린 적이 있었다. 꽤나 오랜 기간 갇혔더랬었다. 얼마나 힘겨우면 죽을까....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자식에게 큰 짐을 지워준 댓가로 부모는 너무 많은 기쁨을 돌려 받는다. 문득 불공정 거래란 생각이 든다. 거래라는 표현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과연, 온전한 부모의 도리를 잘 감당하고 있는 걸까?’ 자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야겠다.

목하 설명절을 앞두고 있다. 조금 무거운 주제를 서술한 듯 하다. 그렇지만 백 번 천 번을 말해도 모자람이 넘치는 말이다. 가족간의, 또 부모 자식간의 서로 사랑, 우리에게 주어진 절대적 의무라 생각한다. 올 해는 명절 계획수립을 잘해야겠다. 그래서 해피 명절이 되었으면 한다. 서로를 향한 측은지심으로 애틋한 사랑으로 보듬어주면서, 이를테면 환청으로 들리는 일체의 망령된 소리들을 모조리 잠재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