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2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예상하고 있는 출판 계획 상으로 보자면
세번째 詩集이 될 詩들의 묶음입니다.

2010년 후반기부터 2012년 봄까지의 詩를 모았습니다.

역시 힘든 세상살이의 단면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고달프고 버거운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새롭게 거듭나는 미래의 또 다른 삶과
행복의 추구에 관한
보헤미안 林森의 깨달음의 속내가
절절하게 배어나고 있습니다.

비단 詩人 만의 이야기가 아닌
세상 모두의 이야기이며,

그렇기에 누구나가 스스로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여기면서
차례 차례 감상하시면 됩니다.
[ ]

위로 이동

* 현충일 비감 (悲感) *



시작노트

" 현충일 비감 (悲感) " 詩作 note

6월은 절기상으로 초여름이다. 더위가 시작되는 여름의 초입이라 하건만, 유난히 올해는 5월 중순부터 거의 매일 기록을 경신하더니 이미 더위는 정점을 찍으면서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아마도 이번 여름에는, 웬만큼 각오를 다지지 않고 여간해서는 못 배길 것 같다. 어째서 날씨마저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갈팡질팡, 우왕좌왕 하면서 서민들을 못살게 군다. 마치 정치가들의 모양새다. 야속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뒤죽박죽인 인심 속으로도 어김 없이 호국의 달 6월은 다가왔다. 이번 주의 ‘현충일’을 필두로 하여, 곧 ‘민주항쟁 기념일’이 이어지고, 하순에는 ‘한국전쟁 기념일’도 들어있다. 이런 저런 이름의 기념일들을 해마다 보내는 가운데, 과시 우리는 얼마나 이 날들의 진정한 의미를 기억하고 있으며, 우리의 후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고, 갈고 닦으면서 애를 쓰고 있을까?

가뜩이나 살기에 너무 바빠서 죽을 지경인데, 미처 자신도 돌아보기 힘든 마당인데, 뜬금없이 무슨 나라의 일을 걱정하게 됐냐고 종주먹 들이대도 막상 딱히 대답할 말은 없다만은, 그래도 우리 나라가 어떻게 세워진 나라이며, 어떤 사연과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선진국의 반열에 이르기까지 건설된 나라라는 것 정도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어서는 안될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런 역사와 전통과 근본적인 홍익인간의 이념 정도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피력하고, 영원히 이어지도록 교육시켜야 하는 건데, 대관절 기성세대의 가치관이 지금 올바로 형성되어 있긴 있는 건지, 적나라하게는 파헤치기가 자못 두렵기만 하다. 이대로 주체성이나 자긍심조차 상실된 상태로 맥없이 자라난 아이들에게, 훗날 나라의 미래를 맡아달라고 당부할 엄두가 어찌 날 수 있을까? 한심하고 통탄할 지경이다.

애석하게도 현충일이 무엇인지, 민주항쟁 기념일이 어떤 날인지, 지금의 아이들은 일절 관심이 없다. 허기사 기성세대가 먼저 본을 보이지 않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런 기념일들이, 아이들에게 멋지고 기억할 만한 날로 각인될 리 없다. 그걸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물론 필자도 누구에게 내세울만 한 나라 사랑의 업적을 쌓았다거나, 평생 동안 부끄럽지 않게 나라를 위해 일했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 부끄럽게도 평소에는 조금도 나라에 관한 걱정이나 생각조차를 하지 않는다. 아니 할 겨를이 없다는 편이 더 적절하다. 그저 정치 쪽의 높은 사람들이 잘 알아서 하려니 하면서, 무관심을 표방하며 명분으로 삼는 못된 버릇이 들어있다. 실상 욕을 먹어서 마땅하다.

비록 그런 처지이지만, 때가 때이니 만큼 작심하고 한 번 호국의 의미를 되짚어보려고 한다. ‘현충일’은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 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기념일로서 매년 6월 6일이며,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의해서 오래 전부터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예부터 손이 없다는 ‘청명’과 ‘한식’에는 각각 사초(莎草)와 성묘(省墓)를 하고, 6월 6일 ‘망종(芒種)’에는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전해져 왔다. 또한 ‘고려 현종’ 5년 6월 6일에는 조정에서 장병(將兵)의 뼈를 집으로 봉송하여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농경사회에서는 보리가 익고 새롭게 모내기가 시작되는 망종을 가장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1956년 현충일 제정 당시 정부가 6월 6일을 현충일로 정했다고 알려져 있다.

현충일에는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각 가정이나 기관에서는 반기(半旗)를 게양하고, 아침 10시에는 전 국민이 사이렌 소리와 함께 1분간 묵념을 올려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의 명복을 빌며, ‘국립현충원’, ‘국립묘지’, ‘전쟁기념관’, ‘독립기념관’ 등 위령을 모신 곳을 방문하여 헌화한다.

미국에서는 5월 마지막 월요일을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로 정해 전몰자를 추도하는 행사를 거행한다. ‘데커레이션 데이(Decoration Day)’라고도 불리는 ‘전몰자 추도기념일’은 1865년 5월 30일 ‘남북전쟁(1861∼1865)’에서 전사한 사람들을 추도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 후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사람들도 함께 추도한다. 공휴일로 지정된 이 날은 대부분의 주에서는 5월 마지막 월요일이지만 남부 지역의 주에서는 4월 26일, 5월 10일, 6월 3일에 추도식을 거행하는 곳도 있다. 일본에서는 1963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8월 15일을 ‘종전기념일’로 정해 행사를 진행하였는데, 1982년 정부가 이날을 ‘전몰자를 추도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날’로 정의하였다.

외국의 사례까지도 그렇다 치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10일로 28주년을 맞게 되지만, 정작 그 날의 의미는 우리 국민들의 저조한 관심 속에 어느 새 잊혀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 국민 스스로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 6월 항쟁의 의미를 되새기고, 미래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6월 민주항쟁 기념일을 앞둔 지난 달 말, 어느 방송매체에서는 대전지역 중학교 3학년 학생 120명에게 6월 항쟁에 대해 물어봤다. “6월 항쟁 기념일이 언제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현충일, 현충일 아니예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충일 또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25일로 답한 학생이 4명 중 1명 꼴인 30명에 달했다. 날짜를 제대로 답한 학생들 역시 진실한 뜻 보다는 ‘달력’에서 본 게 전부라는 설명이다.

6월 항쟁을 “6.25 때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는 날”, “천안함 전사자들을 기리는 날”, “동학 농민운동이 일어난 날”로 알고 있는 일부의 답변들과도 무관치 않았다. 이날 6월 민주항쟁에 대해 정확하게 의미를 설명한 학생은 10명 남짓이다. 중학교 3학년이라면 초·중·고 전 과정에서 6월 항쟁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배울 수 있는 학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지도 않은 현대사조차도 제대로 학생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재의 교육실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전쟁’에 관한 인식은 어떨까?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위 38°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 전쟁’이라는 단편적인 해설 이외에 얼마나 더 진실하고 자세한 내막과 과정을, 우리의 아이들이 알고 있을까? 일명 ‘6·25전쟁[Korean Conflict, 六二五戰爭]’이라고 칭하는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 1, 2차 세계대전을 제외한 국지전 중에서는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치열하고 처절했던 동족상잔의 역사를 그 아이들이 제대로 알고는 있을까?

강대국들의 이해득실에 의해서 남북이 분단되고, 통치와 주권의 가장 근본적인 권리마저 외세에 의해 시름시름 이어지다가, 그들의 충돌과 야욕이 빚어낸 전쟁의 피해 당사자국이 되었으면서도, 피눈물을 삼키면서 아무 소리도 못했던 뼈아픈 과거가, 그리 오래지 않은 우리의 현대사였다는 걸 우리의 아이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이제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선지 불과 60여 년, 지난 달 하순에 당시의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휴전선 근처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강원도와 경기도가 맞닿아있는 민통선 부근 최북단의 지역에는 우거진 녹음이 5월 말의 시절을 대변하며 능청스럽게 흐드러지고 있었다.

민간인 통제구역은 생태계의 보고로 통한다. 숨겨진 청정 자연 속에는 희귀한 동식물이 살고 있고 한반도의 숨은 비경이 자리하고 있다. 초여름 빛나는 햇살 사이로 자연이 숨을 쉬는 곳,강원도 화천의 6월은 고요하고 신비로운 녹음의 세상이다. 세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땅에 숲과 물이 뒤엉기며 생태계의 향연을 만들어낸다.

화천 ‘양의대 습지’는 민통선 생태계 중에서도 단연 압권이다. 반세기 넘게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습지의 풍경은 몽환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이른 아침이면 아득한 물안개로, 한가로운 오후에는 물을 마시러 강변에 나서는 노루와 고라니의 발걸음으로, 낯선 세계에 들어선 듯한 감동을 전한다.

‘안동철교’에서 이어지는 12㎞ 습지대는 반세기 넘게 고스란히 간직돼 수달, 사향노루, 산양 등 천연기념물과 희귀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의대 습지 하류에는 ‘세계 평화의 종’, ‘비목공원’ 등이 들어선 ‘평화의 댐’이 있고, 북녘 땅을 가깝게 조망할 수 있는 ‘칠성전망대’도 화천 민통선 여행의 다른 축을 이룬다.

발걸음을 조금 돌려 짙은 녹음 사이로 싱그러운 햇살이 쏟아지는 초여름 숲 속을 걷는 일은 그 자체로 훌륭한 ‘생태 학습’이자, 최고의 ‘힐링 여행’이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강원도 양구의 깊은 골짜기를 흐르다가 굽은 한 부분이 절단되면서 만들어진 ‘두타연’은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와 푸르다 못해 검은 빛을 띠는 소, 그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싼 기암이 어우러져 천혜의 비경을 선사한다.

폭포 위 바위에 설치된 ‘관찰 데크’에 오르면 발 아래 절경이 펼쳐진다. 물이 맑고 깨끗한 두타연에는 오염되지 않은 곳에 산다는 열목어를 비롯해 다양한 물고기가 서식하고, 탐방로를 걷는 동안 금낭화, 큰꽃으아리 같은 들꽃은 물론 올괴불나무, 쪽동백, 회목나무 등 다양한 식물도 관찰할 수 있다. 한정된 시간이라 모든 절경을 다 돌아볼 수 없음이 안타까운 하루였다.

예컨대 이러한 절경들을 둘러보면서 새삼 우리 금수강산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더욱 소중한 우리 땅, 우리 하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감정일테니, 그야 말로 한민족의 피가 흐르는 우리 국민 모두는 한 가족이며, 결국 더불어 한 울타리 안에서 오손도손 살아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길이, 거창하고 대단한 노력과 업적을 필요로 하는 것만은 아니다. 비단 수줍게 피어나는 작은 들꽃 한 송이, 졸졸거리는 시냇물의 맑은 물줄기 하나에서 느끼는 감동과 정서가 오롯이 긍지와 보람으로 마음 속에 새겨질 때, 비로서 나라 사랑의 시작이 첫걸음을 떼는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다른 때와는 달리 숙연하고 정갈한 마음가짐을 추스르면서 보낸 하루였다. 돌아오는 길에서조차 시답쟎은 소재로 히히덕거리며 웃고 떠들기 보다는, 돌이켜보니 일행들과 입을 모아 나라 사랑에 관한 주제로 제법 심도있는 토론과 반성으로 의미를 곱씹은 ‘호국의 달 맞이 특별여정’이었던 것 같다.

슬픔과 아픔을 기억하고 되새겨보자는 말은, 무조건적으로 과거의 상처와 흔적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자학을 하자는 말이 아니다. 오늘의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나 행태가 전체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지적만도 아니다. 우리의 교육시스템이나 지도방법이 백년대계에 어긋난다는 훈계도 아니다. 다만 우리의 습성 중에 혹여 되짚어봐야 할 문제점이 있다면, 그걸 억지로 가리려 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당당하게 잘못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자는 필자의 사견이다.

우리의 내일이 더 밝고 튼튼하게 굳어지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이 성찰과 자기 분석의 시간이 필요한 때라는 걸 명심하자. 그렇게 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고귀하고 소중한 자산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심오한 철학과 사상을 얹어서 승계해주도록 해보자. 맑은 물은 제일 높은 곳에 있다는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흐르는 강물이 맑지 않아서 갑갑함을 느낀다면, 그 흐르는 강물 위에서 흐르고 있는 냇가로 가보자. 아래에 있는 강물보다는 한결 맑을 것이다.

흐르는 냇물보다도 더 맑은 물을 보고 싶다면, 흐르는 냇물에 물을 주고 있는 산 기슭 옹달샘으로 가보자. 냇물보다 더 시원하고, 냇물보다 더 맑은 물이 거기엔 있을 거다. 높은 곳에 오르면 오를수록 더 시원하고 더 맑은 물이 있을 거다. 그것이 자연이 주는 교훈이며 변치 않는 진리다. 하지만 더 맑은 물을 보고자 하여 더 높은 곳을 오를수록 짐도, 옷도 가벼워져야 함을 알아야 한다.

가끔은 잡다하고 번뇌로 시끌벅적한 세상에서 과감하게 나와보자. 그리고 가장 높은 곳으로 걸어오르자. 거기에는 질투, 모함, 욕심, 더러움, 불평, 불만 등이 섞여 혼탁한 물이 아닌 맑은 물, 맑은 옹달샘이 있을 거다. 하지만 그곳에 오를 때에는 무거운 짐도 더 버리고, 거추장스러운 옷도 더 가벼워져야 가장 맑은 물을 만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이웃들이 힘들 때마다 맘 놓고 찾아와도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그들을 지켜주면서, 그들의 그리움이 되어줄 수 있도록, 기왕이면 그런 하늘같은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사랑하는 우리의 이웃들이 세상을 씩씩하게 잘 살아가다가, 혹시라도 그러면 안 되겠지만, 정말 어쩌다가 혹여라도 힘이 들고 지칠 때가 있다면, 그럴 땐 우리가 이렇게 높은 곳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고, 고개 떨굼 대신 우리를 보아 달라고, 그렇게 우리는 한 자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그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하늘같은 사랑을 하도록 애써보자.

평상시에는 우리 스스로도 삶이 버거워 그들에게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을 향한 맘이 벅차오른다고 하여도, 우리가 그들에게 나누어주고 배려할 것이 하나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언젠가 우리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그 날에, 우리는 그제사 환한 미소로 그들을 반겨 줄 것임을,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들로 다시금 태어나게 해주겠노라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고백의 말을 해보자.

그러나 우리는, 마음을 다는 열지 않는 그들에게 지금 당장 우리를 보아 달라고, 우리가 지금 그들의 곁에 있노라고 말하지는 말자. 왜냐하면 세상의 지금 그 누구보다 그들의 행복을 바라며, 단지 하늘같은 사랑으로 그들을 기다리자는 까닭이다. 그들에게 베풀고 건네준 사랑이 그대로 메아리 되어, 반사광이 되어 우리 자신의 삶 속으로 소중하게 깃들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어떤 어려운 난관과 고난이 닥쳐올지라도 절대 변함이 없이 굳건하게 우리의 삶을 살아가보자.

그러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만 살면,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기쁜 마음으로 우리의 민족과 우리 나라를 사랑하는 첩경이 되어지는 것이다. 기쁨이 삶에 있어서 제일의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삶의 욕구이며, 삶의 힘이며, 또다시 삶의 힘이며, 또다시 삶의 가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쁜 마음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슬픔도, 분노도, 그 어떠한 고뇌도, 기쁨의 용광로에선 모두 용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기쁨의 넓이로 말하자면 온 누리에 차고, 작기로 말하자면 겨자씨 보다도 더 작아질 수 있을 것이다. 기쁨이 있는 곳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정을 느낄 때, 우리는 비로서 사랑을 잉태하고, 그것으로 세상은 살 만한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항상 슬프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마냥 슬프고, 항상 기쁘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늘 기쁨이 우리 곁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작은 것에도 눈물을 보이면 더 큰 눈물이 흐르고, 작은 것도 이겨내면 기쁜 미소가 담기게 마련이다. 마음 속에 담아 넣은 것이 무엇이건 더욱 소중하고 값진 것이듯이, 우리들의 마음 속에 담아두는 것들이 즐겁고 행복한 것들만 가득하다면 슬픔도 괴로움도 자라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온 슬픔들을 애써 기억하기 보다 소중했던 아름다운 시간들을 더많이 기억한다면 더욱 좋겠다. 성큼 다가온 여름의 하루, 그리고 호국의 달이라는 제목의 6월의 어느 하루인 오늘, 그냥 방치하고 외면하여 내버려두면 우리들의 마음 또한 조금은 우울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예서 그냥 맥없이 주저앉지는 말자. 떠오르는 태양에 붉게 물드는 온 세상 만물들을 경쾌한 몸짓으로 그리면서, 오늘도 미소 가득한 시간들을 열어가는 삶이기를 바라면서, 우리의 내일을 가슴에 가득 품어안고 그 내일로 전진하자.


" 현충일 비감 (悲感) " 詩作 note 닫기
 | 배경이미지 새로적용  | |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끊임없이 주절대는 입술 가장자리
지독한 피로, 물음표로 달리고
독백과 충고의 모호한 길목에서
분주한 말, 갈 곳 잃어 끊겼다

창밖에 서성이는 수상한 안개
썩은 냄새 함께, 무른 징후처럼 후각 자극하면
폐부 깊숙히 들이마신 안개
묘한 상념속 빠져들고

왜 안개에서는 썩은 냄새가 날까?
무한궤도의 영겁 한 자락
마치 죽음의 음모같이 다가오는 농밀한 회색입자들

만약 안개 속에 어떤 음모 도사리고 있다면
필시 나는 허둥대며
그 보이지 않는 음모의 덫 이미 걸려든 셈이다

이성 마비시킨 가공의 희열
청승맞은 비감 휘몰아 모조리 휩싸이게 하더니
결국 벽 향해 앉아
킹킹 울도록 만드는구나

오늘 현충일이라는 이름,
시간 더 지나면 그런 감정조차도
폐가의 잡초보다 씩씩하게 자라날 터이지만

 | 배경이미지 새로적용  | | 글자 크게 글자 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