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무리와 시작의 교차로에서 쉬어가기 " 詩作 note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개념이지만, 사람에 따라서 길기도 하고, 속절없이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이에게는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지루하게 여겨질 정도로 느려터질 수도 있다. 바쁘게 사는 사람은 언제나 시간을 쪼개서 살지만,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무료한 천덕꾸러기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 달리 느껴지고, 각자의 형편에 따라서 다르게 사용하는 것이 시간이지만 공통적으로 이 맘 때가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으로 분주하고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한 해의 삶이 어떠했는지 되돌아보아야 하고, 저질러놓았던 일들의 갈무리도 해야 하고, 혹여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들은 반성과 다짐으로 다시 이어가야 하는 대단원의 교차로가 바로 지금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연초에 세워놓았던 각종 계획이나 구상이 이런 저런 이유나 사정으로 인해서 비록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더라도, 아쉬운 미련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판단과 자기성찰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합리화나 핑계로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어, 이루지 못한 것에 타당성을 부여하려는 행위는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 중간에 목표나 목적이 변경되었을 수도 있고, 애초에 작심한 나름의 성공 전략에 어쩔 수 없이 수정을 기해야 했던 경우도 불가항력일 수 있지만, 예컨대 정확한 판세 분석과 대응책이 장만되어야 돌아오는 새 해의 행보에 또다른 실수나 혼선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꼭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사실 요즘은 각종 모임이나 단체의 연말 회동이 겹쳐져 사뭇 바쁜 것이 사실이다. 약속이 중복되니 어느 날은 이리저리 정신없이 거리를 쏘다니기도 한다. 평소에는 만나지 않던 사람들까지도 하필이면 이 시기에 약속을 몰아서 잡는지라 야속하기도 하지만 연락이 오고, 만남을 청하는 사람이 아직은 주변에 제법 많다는 의미가 스스로도 대견하여 솔찮게 청춘인 양 돌아치고 있음이다. 유난히 무더위가 심해서 고생을 하게 만든 올 여름처럼, 올 겨울은 추위가 길게 이어지고 최저기온이 기록을 경신할지도 모른다는 기상예보가 있어서 긴장이 되기도 하지만, 어차피 하루 이틀 이어질 겨울도 아니고 긴장한 채로 열심히 이겨낼 작정이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각종 미디어에서 올 해의 상 등을 수여하는 결산을 한다. ‘교수신문’에서는 2001년부터 매년 ‘올 해의 사자성어’를 연말기획으로 발표하고 있다. 올 해는 어떤 사자성어를 선정할지 아직은 선정을 안했지만 한 해 동안의 대한민국 사회상이 반영된다는 의미에서 세간의 관심이 지대하다. 2017년에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이 꼽혔는데 이는 “사악함을 깨고 바름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지난 해 사회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했었다. 올 해는 과연 어떠한 사자성어가 촌철살인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기대된다.

한 편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2018년 올해의 단어로 ‘toxic(유해한 또는 유독성의)’을 선정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사물·상황·관심사·사건을 설명할 때 이 단어와 함께 사용했다고 하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이들의 한 해가 안녕치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고단했던 모양이다. 특히 올 해에는 사회적으로도 험난한 파고가 많았었지만 우리 법조계에 사건 사고가 많아서 한숨 없이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한 해였다는 데에도 이견이 없을 것 같다.

‘법관탄핵’과 ‘특별재판부 설치’와도 같은, 귀를 의심하는 단어들이 횡행하는 요즘이니 더욱 그렇다. 그러다보니 연말이면 또 언론에 습관처럼 언급되는 희망과 기원의 사자성어 ‘강구연월(康衢煙月)’의 태평성대는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는 과연 있는 것인지, 우리 나라에도 대관절 그런 날은 오는 것인지 그저 두고 볼 뿐이다. 그냥 일상적으로 발표되는 사자성어라 여기지 말고 특히 사회를 선도하는 부류의 지도자들이라면 각자의 위치에서 겸허하게 듣고 돌아보는 계기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올 해의 추천위원 한 사람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는 사자성어를 제안했다. 짙은 안개 속에서 갈피를 못 잡는 상황을 가리키는 이 말은 원래 부정적인 뉘앙스가 아니었다. 한나라 때 ‘장해(張楷)’라는 사람이 도술로 사방 5리에 안개를 일으켜서 새롭게 펼쳐질 상황을 전혀 알 수 없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에서 이 말은 유래됐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오리무중의 남북관계와 주변국과의 새로운 외교, 그리고 요즘의 경제 상황을 부정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계 제로의 안개 이야기가 뜻하는 메시지는 대책 마련의 엄중함이다. 새롭게 전개될 상황에 대비해 각각의 시나리오를 짜고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책무가 정치, 경제 분야 리더들의 어깨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꿈 많던 어린 시절의 삶이란 스케치북에 형형 색색으로 꿈이
휘황 찬란하게 그려질 것 같았고, 해보고 싶은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도 많았다. 혈기 왕성한 청년 시절의 삶이란 스케치북에 거침없는 화필로 꿈이 활기차게 그려질 것 같았고, 이리로 저리로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났었다. 그리고 연륜이 쌓였다는 중년 시절엔 삶이란 스케치북에 세심하디 세심한 화필로 꿈을 빈틈없이 정확하게 그리려고 했었다. 조심 조심 실수할까봐 조바심으로 노심초사 했었다.

그렇게 나이 먹어서 이제는 기력이 떨어지는 노년을 코 앞에 두고 있다. 그렇기에 생각이 깊어지고 조심스러워진다. 그래서 올 연말에는 삶이란 스케치북에 아주 진한 물감으로 부끄러운 과거 그림자를 지우려 한다. 하나 두울 포기하면서 지난 날을 반성하고 후회하며 살아보려 한다. 삶이라는 스케치북에 지우고 싶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도록, 가급적 부끄러운 삶의 발자취는 남기지 말아야겠다. 더불어 행복한 삶을 그려봐야겠다. 아울러 남은 세월에 더 행복할 그림을 그려야겠다.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며 잘 살아가기 위한 그림을 그려봐야겠다.

참치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헤엄을 친다. 헤엄을 쳐서 물을 빨아 들여야만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이다. 헤엄을 친다는 것은 곧 숨을 쉰다는 것이며, 숨을 쉰다는 것은 곧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헤엄을 멈추면 그 순간 참치는 질식해서 죽는다. 잠을 잘 때에도 뇌만이 쉴 뿐 온 몸은 움직인다. 그래서 참치에게는 넓은 바다, 그리고 멀고 먼 세계의 바다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자미는 정반대다. 가만히 바다 밑 모래에 숨어 있거나 파도치는 대로 밀려다닌다.

헤엄을 친다기 보다 떠다닌다는 말이 적합하다. 눈 앞에 먹이가 나타나야만 비로소 몸을 움직인다. 그 중에서도 맘보라는 놈이 가장 게으른 것으로 꼽힌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넓은 바다에 살아도 가자미의 바다는 웅덩이와 다를 것이 없다. 참치인가 가자미인가 삶의 두 유형 중 어느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정답을 요구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운명은 가자미형에서 참치형으로 변화해간다는 것이다.

각 생물마다 특성이 있다. 그 특성과 다르면 돌연변이요, 괴물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아니다. 물론 각 개인마다의 주어진 달란트도 다르고 개성 또한 다르지만 우리에겐 지향성이란 것이 있다. 보다 더 큰 것을 바라보고, 보다 더 나은 곳으로 향하는 습성이다. 그리고 그 지향성이란 우리에게 목표를 부여하고 희망을 갖게 한다. 내가 얻을 수 없는 것을 지향함은 탐욕이요, 내가 노력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지향함은 성취욕이라 생각한다.

낮은 곳으로부터 좁 더 높은 곳을 향해, 좁은 곳으로부터 좁 더 넓고 밝은 곳을 향해, 하루 하루 나아지고 달라지는 선한 삶의 비젼을 갖고, 힘껏 생활 터전에서 노력하려는 의지가 우리를 더욱 발전시키고 향상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진다. 그렇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끼리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인간 관계의 기본이다. 인연 따라 마음을 일으키는 데 너무 좋아할 것도 너무 싫어할 것도 없다. 너무 좋아해도 괴롭고, 너무 미워해도 괴롭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고, 겪고 있는 모든 괴로움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 두 가지 분별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늙는 괴로움도 젊음을 좋아하는 데서 오고, 병의 괴로움도 건강을 좋아하는 데서 오며, 죽음 또한 삶을 좋아함, 즉 살고자 하는 집착에서 오고, 사랑의 아픔도 사람을 좋아하는 데서 오고, 가난의 괴로움도 부유함을 좋아하는 데서 오고, 이렇듯 모든 괴로움은 좋고 싫은 두 가지 분별로 인해 온다. 좋고 싫은 것만 없다면 괴로울 것도 없고 마음은 고요한 평화에 이른다.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고, 그냥 돌 처럼 무감각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사랑을 하되 집착이 없어야 하고, 미워하더라도 거기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마음이 그곳에 딱 머물러 집착하게 되면 그 때부터 분별의 괴로움은 시작된다. 아름다움은 눈으로 볼 수 있다. 아름다움은 만지거나 코로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아름다움을 감상하려면 향기도 멀리 하고, 감촉도 멀리 하고, 맛도 멀리 하고, 오직 눈으로만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꽃은 바라만 볼 때가 아름답다.

그러나 꽃의 감촉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코로 맡아지는 것도 아니다. 맛으로 알 수도 없다. 꽃의 감촉은 오직 만져봐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감촉은 눈을 감고 향기도 멀리하고 만짐으로써 느껴야 한다. 꽃은 감상하는 것이 좋다. 꽃은 향기로 말하는 것이다. 꽃은 아름다움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꽃은 느끼는 것이다. 진리도 이와 같다. 진리는 발전하는 방식이 따로 있다. 진리는 직접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꽃의 향기와 같다. 그러므로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경험으로 맛보는 것이다. 볼 것은 보고, 들을 것은 듣고, 향기로운 것은 향기로 맡는 아름다운 진실이 드러나는 연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해마다 반복되는 그저 그런 마무리가 아닌, 올 해는 정말 삶에 색다른 기쁨과 만족을 심어주고, 마치 기적처럼 새 해의 소망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 모두의 축복된 연말의 날들이 이어졌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