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1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네번째 가상詩集입니다.

2012년 봄부터 씌여진 詩들입니다.
實驗詩적인 성격의 習作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역사의 章입니다.

처음 詩人의 길에 入門한 이래로
이제껏 40년 이상을 지어온 詩이지만 아직도
정확한 詩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품어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풍운아로 떠돌며
詩의 본질을 찾아 헤매고 있는
詩人 林森의 애환이 드러나 있습니다.

林森의 고행은 그래서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쭈욱 ~~

詩人의 멍에를 天刑으로 걸머지고 있는 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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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될 줄 알았거든 *



시작노트

" 될 줄 알았거든 " 詩作 note

모름지기 인간은 착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자신이 생각하는 건 전부 옳고, 스스로 행한 처신은 모두가 정당방위이고, 자기자신의 삶의 방법이 가장 바람직한 정도라고 여기면서 살아가는 가소로운 집착, 어쩔 수 없이 치졸한 이 모습을 우리는 인격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인격을 높이기 위해서 남의 권리나 처지는 아랑곳 하지 않으면서, 욕심껏 세상을 재단하고 가늠하는 것을 일컬어 인권이라고 칭한다. 또한 그 인권을 더욱 드높이고 자존심과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부리는 각종 술수와 모략을 통틀어서, 우리는 인간관계라고 이름한다.

그렇게 선명한 명찰 달린 가슴팍을 내밀면서, 뒷짐 지고 고개 빳빳이 처든 얼굴로 거만하게 숨쉬는 걸 가리켜, 우리는 인생이라고 제목 붙여놓았다.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게 고작 이기적이고 자기주관적인 본능의 행위를 일컬음이다. 곱씹어보니 우습고도 슬픈 진실이다. 제아무리 멋진 미사여구로 치장을 하고, 되도 않는 궤변으로 합리화를 시켜본들 어차피 진실의 답은 모르는 것, 어리석고 우매한 인간들은 당장 내일의 삶도 모르면서 오늘을 거들먹거리고 있으니, 어찌 근시안적이고 측은한 짓거리가 아닐까?

“될 줄 알았거든.” 정말로 그리 될 줄 알았기에 이리 행동했거든... 사실은 그리 될 걸로 믿고 이리 처신할 수밖에 없었거든... 실상 그리 되지 않을 걸 미리 알았더라면 진즉에 달리 판단했겠지... 이미 지난 일들을 후회하고 탓한들 무슨 소용 있겠냐만, 그래도 우리네 삶이라는 게 어차피 만만한 건 아니고, 당장 밀어닥칠 내일조차 오리무중이기에 확률도 예측도 터무니없다 알면서도, 그리 될 줄 알고 밀어부치는 시행착오를 거듭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작은 자유라도 얻고 싶어서,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부담과 업보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자유롭게 도전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라도 이루고 싶어서, 버릇처럼 운명처럼 무의식까지도 발버둥치면서, 우리는 오늘도 작은 빛 품고 지켜보고 있는 내일을 향해 발걸음을 뗀다. 그래야만 작은 행복이라도 쟁취할 것이라는, 막연하고 아련한 기대를 소중히 쓸어담고 우리는 고단하고 험난한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돈과 시간에서 자유로운 인생 1인 기업 실전편’이라는 책이 출간되자마자 화제거리로 등장했다. 저자 ‘이승준’은 돈과 시간에서의 자유를 꿈꾸며 도전한 여러 분야의 영업과 사업에서 다섯 번의 절망적인 실패를 겪은 경험자다. 그러다가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도전한 1인 기업으로, 돈과 시간에서의 자유를 모두 쟁취한 역전의 1인 기업가다. 현재 ‘네이버’에서 1인 기업가 커뮤니티인 ‘일인 기업가들의 공부방 (약칭:일기공)’을 운영 중이다.

운영 중인 일기공 카페를 통해 수백 명의 수강생과 수많은 돈과 시간에서 자유로운 1인 기업가들을 탄생시켰으며, 1인 기업에 특화된 실전 온라인, 모바일 마케팅 전략, 기획 전문가로 예비 1인 기업가들을 돕고 있는 저자는 “1인 기업으로 진짜 당신의 인생을 시작할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라고 주장한다. “순간의 안정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소비되는 부품으로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돈과 시간에서 자유로운 인생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지금 하는 일의 대가가 온전히 자신에게 오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누구나 돈과 시간에서 자유로운 인생을 꿈꾼다.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돈을 벌지 않아도 되면 좋겠고,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렇다면 정녕 그런 바람을 실현할 수는 없을까? 당연히 있다! 지금까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속해 돈을 벌며 살아왔다면, 실은 ‘이제부터는 사업을, 그것도 1인 기업을 시작해야 한다!’ 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거나, 썩 친숙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 막 이 책을 접하고 1인 기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면, 1인 기업이 아직은 낯설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되지도 않을 것이다. ‘단순히 혼자 일하면서 돈을 벌면 1인 기업일까? 그렇다면 프리랜서와는 어떻게 다를까?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진짜 방법이 있는 것인가?’ 이런 고민만 하다가 현실에 안주하며 흘러가는 대로, 다시 자유롭지 못한 삶으로 돌아오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명확하게 1인 기업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일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축해 나아가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금수저인 사람들도 있으나 그런 이들보다 지식을 쌓고 공부해 사업체를 키워나간 사업자들의 플랫폼과 영향력이 훨씬 크다. 지금 1인 기업으로 월 수천만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온라인, 모바일 상에서 수만, 수십만 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업가 중 부모를 잘 만나서 이런 위치까지 오른 사람을 저자는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마음 속에서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이 진짜 맞는 것인가? 앞으로 변해가는 미래에도 나와 주위 사람들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지켜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과 ‘진짜 내 인생을 찾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플랫폼 시스템형 1인 기업’, ‘세일즈 커넥팅형 1인 기업’, ‘퍼스널 브랜딩형 1인 기업’, ‘트리니티형 1인 기업’에 대한 개념과 실체화 예시 등은 이미 칼럼을 통해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각 사업자의 시스템과 현황을 낱낱이 파헤쳐야 하는지라 책에 소개해도 될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고 하면서, 저자는 ‘돈과 시간에서 자유로운 인생 1인 기업 기본 편’을 읽어본 많은 독자들이 1인 기업가로서 꿈과 의지를 불태우지만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몰라 고민하는 모습들을 계속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꿈이 자신을 통해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점점 커졌기에 이번 실전 편 출간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시대의 트렌드로 자리매김된 1인 기업을 재조명하고 경제계의 중심 축으로 인식하는 센스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지니고 있어야 할 바람직한 눈치의 정점이다. 옛날 어느 나라의 왕이 전국에 방을 붙였다. ‘능력만 있다면 귀족이 아니라 평민이라도 벼슬을 내린다.’ 그러자 나라 안의 많은 사람들이 궁궐로 속속 모여들었다. 그런데 왕이 갑자기 이른 새벽 시간에 궁궐 앞에서 시험을 보겠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제 시간에 시험을 치르러 오지 못했다.

한 편, 이른 새벽부터 왕궁 앞에 모여 시험을 치르기 위해 기다렸으나 해가 떠도 왕궁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성미가 급한 사람들은 성문을 두드려보았으나 반응이 없자 투덜대며 돌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려 정오가 지나서야 궁궐의 문이 열리고 시험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험지를 받아든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촛불과 태양 중 어느 것이 더 밝을까요?’ ‘바닷물의 맛은 짤까요, 달까요?’ 질문지에는 너무도 간단하고 상식적인 문제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뛰어난 학식을 갖춘 자신들을 왕이 우롱한다며 화를 내면서 시험장에서 나오거나 대충 답을 써냈다. 시험이 끝나고 왕은 그 이상한 시험지에 꼼꼼히 답을 쓴 사람들을 모아 말했다. “너희들은 이른 시간에 정확히 나오는 성실함을 보였고, 오랜 시간을 침착하고 인내하며 기다렸고, 다소 황당한 질문에도 최선을 다해 답을 적었다.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 인내심이 있는 사람, 원만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 바로 내가 원하는 인재다. 너희 모두에게 벼슬을 내릴테니 나라를 위해 힘써주기 바란다.”

자신의 진정한 성품은 아무리 잘 포장하고 숨기려 해도, 결국 본 모습은 밖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일상 속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드러나는 나의 모습이 과연 어떠한지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됨은 그 사람의 행동거지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지, 그 사람이 하는 자기소개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 아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성실하고 근면하게 임하고, 인내심과 겸양의 마음을 잘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자신이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는 부지런함까지 겸비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사는 충분한 첩경의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교사의 고백이 잔잔한 매듭을 만들었다. “저는 특수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남들과 틀린 아이들이 아니라 남들과 조금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특수학교 교사들은 생각하시는 것처럼 모두가 넓은 이타심과 봉사 정신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교사들과 똑같이 철저한 직업윤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생들이 사회로 진출하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저희 아이들을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 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희 아이들은 교육이 필요한 ‘학생’입니다. 간혹 나의 소중한 학생들을 마치 정신질환자처럼 대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너무 힘들고 슬픕니다. 장애 학생들은 비장애 학생들보다 현장학습이 많은 편입니다. 더 많은 상황에서 더 많은 사람과 만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현장학습을 갈 때는 ‘사회화 훈련’의 목적으로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지하철에서 내렸을 때 한 취객이 내지른 말은 너무나 충격이었습니다. ‘비켜, 이 병신아!’ 그러고는 휙 가버리고 마는 취객에게 사과를 받기는커녕, 한 마디 항의도 못한 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아직 교사가 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저에게 다른 선임 선생님들께서,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이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저의 짧은 편지가 공개된다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너희가 있어 너무 행복하고 너희를 너무 사랑해. 그리고 너희의 앞에서는 나약한 선생님이 되지 않을 거야. 너희들은 내 소중한 학생들이니깐.’ 정말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우리 사회가 조금만 더 따뜻하고, 조금만 더 사랑스러워진다면 참 좋겠다. 아직은 그래도 살만 한 세상이라는 말들이 도처에서 들려나와 꽃향기처럼 누리로 퍼져나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나는 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오롯한 인간이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기꺼이 하겠다.” 라는 ‘헬렌 컬러’의 마음의 소리가 필자의 마음 속에서 새삼 들려난다.

겉으로 보여지는 현상이나 사물로 진실과 가치를 평가하거나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슈퍼리치 전문기자 ‘로버트 프랭크’가 쓴 ‘리치스탄’이란 책에 이런 일화가 나온다. “엄청난 부자가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아들과 산책을 나갔다. 문득 자동차가 사고 싶어 고급차 매장에 들어갔다. 하지만 자동차 판매원은 허름한 옷차림의 이 부자를 쫓아버린다. 자신이 파는 고급차를 살만 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정확히 생각나진 않지만 이 슈퍼리치는 자동차 매장을 나오면서 아들에게 ‘양복은 부자들에게 고용된 사람들이나 입는 것’이란 취지의 말을 한다. 고용된 직장인들은 출근할 때 회사에서 원하는 대로 옷을 입어야 하고,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차림에 신경 써야 한다. 반면 부자들은 거의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청바지에 까만 터틀넥을 유니폼처럼 입고 다녔던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나, ‘월가’의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들 앞에서도 후드티를 입고 나타났던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를 보면서 리치스탄의 이 일화가 떠올랐다.

옷차림을 보고 부자다, 아니다를 판단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때는 지나치게 겉치레나 옷맵시에만 신경 쓰느라, 실질적인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돌이켜보자는 이야기다. 또한 내 마음에서 시키는 자유의사를 포기하고 남들의 눈이나 환경, 여건 때문에 억지로 옷을 차려입어야 한다면, 그건 자기만족은 커녕 자신감을 저해하는 중요 요인만 되고 만다는 결론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겉모습으로 사람의 격과 질을 가늠하려 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충언이기도 하다. 어차피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길고도 먼 삶의 여정을 가는 징검다리요 주춧돌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만남과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둘의 조화에 의해서 세상이 발전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한다. 만남은 하늘에 속한 일이고, 관계는 땅에 속한 일이다. 세상은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며 제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자연이 있듯이, 만남과 관계가 잘 조화된 사람의 인생은 아름답다.

만남에 대한 책임은 하늘에 있고, 관계에 대한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속한 관계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매일 만나는 사람들을 소중한 인격체로 인식해야 한다. 따뜻한 관계와 아름다운 관계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맺기 위해 수고하는 사람에게만 생겨난다. 좋은 관계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관계는 대가를 치를 때 만들어지는 결과다.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준 사람들인 부모, 자녀, 형제, 이웃, 친구, 동료... 이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것들이 투자되어야 한다.

좋은 것을 투자하면 반드시 좋은 관계가 맺어진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면, 우리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엄마의 웃음을 마음에 담아본다. 그러면 어느새 마음은 평안해진다. 불안해질 때마다 아빠의 믿음직한 웃음으로 인해 든든함을 얻는다. 순간순간 그려지는 사랑하는 이의 웃음은 삶의 샘물 같다. 우리를 바라보며, 우리의 못난 모습까지도 웃음으로 안아주는 이들이 있어 우리는 행복한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함박웃음 지어 힘이 되고 싶은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이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다. 산삼도 원래는 잡초였을 거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 금방 잡초가 될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내야 할 자신만의 삶이 있다. 자신이 가야할 길, 그 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가야 잡초가 안된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면 잡초가 되어간다. 엄밀한 의미로 삶에 실패는 없는 것이다. 단지 자신이 가야할 길을 잃어버린 것,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자리에 있어서 잡초가 되었을 뿐이다.

시를 쓰고 소설을 쓰면서 삶의 꽃을 피우는 인생도 있고, 사진을 찍으면서 꽃을 피우고 가는 인생도 있으니, 각자 저마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자리를 발견하는 것이 참 삶의 시작일 것이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 살다보면 그런 날 있지 않은가? 문득 떠나고 싶고, 문득 만나고 싶은... 가슴에 피어오르는 감춰두었던 사연 하나 숨 죽여 누르며, 태연한 척 그렇게 침묵하던 날,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고독이 밀려와 어떤 사람의 향기가 몹시 그리운,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차 한 잔 나누다보면 외로운 가슴을 채워줄 향기 가득한 사람을 만나고 싶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찬 바람이 대지를 흔들어 깨우고 눈 덮인 나뭇가지에 살포시 입맞춤하는 그 계절에, 몹시도 그리운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늘 자기의 짐이 크고 무겁다며, 다른 사람들의 짐은 작고 가벼워 보이는데 우리의 짐만 왜 이렇게 크고 무거우냐며, 늘 불평과 불만을 쉬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보기에 작고 가벼워 보이는 짐을 지고 가는 사람 역시, 당신과 같은 생각에 불평과 불만을 쉬지 않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지금 당신이 지고 있는 짐이 크고 무거워, 가볍고 작은 다른 짐으로 바꿔서 지고 싶겠지만, 그러나 지금 자신이 지고 가는 짐이 정작 자기에게는 가장 작고 가볍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사람은 늘 자기의 짐이 크고 무겁다며, 불평과 불만 속에서 헤매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건 지금의 내가 있게 만든 자양분이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원동력이었다. 설사 그 모습이 초라하고 누추했더라도 더 많은 사랑과 꿈을 잉태하기 위한 준비였음을 나는 안다. 그래서 이제부터 나는 나의 웃는 모습을 그리고 싶다. 내 얼굴에 웃음이 없다면 내 초라한 그림을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나는 가장 먼저 밝은 웃음을 화폭에 그려 넣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남을 대접하는 따뜻한 나의 손을 그리고 싶다. 나의 이익만을 위하여 안으로만 뻗는 부끄러운 손이 아니라 남의 어려움에 조그만 도움이라도 전하는 손, 남의 아픔을 감싸주는 손, 남의 눈물을 닦아주는 나의 작은 손을 내 모습의 그림에 그려 넣을 것이다. 또한 나는 내 모습을 주위와 어울리도록 그릴 것이다. 내 모습이 튀어나와 이웃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과 환경에 잘 어울리도록 내 모습의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 후에 나는 내 가슴의 사랑을 그리고 싶다. 미움과 무관심의 메마른 가슴보다 촉촉한 사랑의 물기가 스며있는 사랑의 가슴을 화폭에 넓게 그려 넣을 것이다. 그리고나서 나는 내 얼굴에 땀방울을 그리고 싶다. 땀방울이 많이 맺힐수록 내 이름의 아름다운 열매들이 때마다 풍요롭게 맺힌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맺히는 땀방울을 방울 방울 자랑스럽게 내 모습의 그림에 그려 넣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소박한 내 모습을 그리고 싶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거칠지 않고 부드러운, 내가 하는 일에 잘 어울리는, 건강하고 활기찬 내 모습을 그림에 그려 넣을 것이다. 나는 내 모습의 작은 그림들을 모아 커다란 내 일생의 액자에 담을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림들을 보면서 나를 아름답게 한 웃음, 사랑, 성실, 소박함, 감사, 조화를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린 내 모습의 그림은 그래서 아름다울 것이다.

세상을 향한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듬뿍 담아서 그 그림들을 하늘로 하늘로 날려 보낼 것이다. 세상이 내게 준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세상을 위해 줄 수 있는 마음 허락된다면 인색하지 않게 아낌없이, 기꺼이 다 보내줄 것이다. “될 줄 알았거든” 하면서 속단과 경솔로 빚어졌던 과거의 실수와 과오를 경험삼아, 다시는 후회나 반성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진실의 얼굴을 그려 넣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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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난
될 줄 알았거든,
능력도 의지도 믿음도
풀 풀 차고넘치는 데다
사랑까지 꽉 채웠거늘
부족함 무에 있을손 ?

운명보다도 더 모질어빠진
회오리로 다가선
이별의 혼수상태에
휘감기기 전에는....

분무기로 물 뿌리곤
게다가 반딧불 비추어 겨우
일곱색 무지개 걸어놓은
삐에로의 무대라면
그래도 나만 한 됨됨이 없을진대

깜냥 껏 울대 높여
밤새 쉬쟎고 주절대던
고백의 목소리가
거품으로 스러져가던 날,
구슬픈 울림의 그날에

한 그루 감람나무로
뿌리 붙박고 서더니 이내
손수건인 양 하릴없이
잎 흔들리고,
향 흩어지고,
너 떠나가고,

영원히 가고 -
그래도 정말이지 한 번은
뒤돌아 볼 줄 알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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