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빛 능선 " 詩作 note

세월의 흐름을 막을 사람은 없다. 계절이 바뀌는 걸 멈출 사람은 없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 건 만고의 진리다. 아무리 좋은 시절이라 해도 지나가기 마련이고, 엄청나게 힘겨운 날들도 결국 때가 되면 뒤를 보이며 그 흔적만 남기우기 마련이다. 아마도 그렇기에 우리는 내일을 기다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모양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있기에 꿈이라도 꾸면서 버거운 현실을 너끈히 견딜 수 있을 게다.

세월이 영 흐르지 않는 세상이라면 이미 그건 고인 물처럼 썩어질 따름이다. 썩고 또 썩어 온 세상에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온통 썩은 형상만이 누리에 가득 널려 있는 지옥도는, 상상만으로도 우리를 소름 돋게 한다. 우리의 내일은 당연히 희망이어야 한다.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누가 뭐래도 행복과 사랑이 넘쳐나는 신세계여야 한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내일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달빛 능선에 서서 생각해본다.

우리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행동으로 미래를 예비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물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주어지게 된다. 곰곰 고민해보니 도무지 설렁설렁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기대심리도 없이, 되어가는대로 대충 만들어갈 미래가 아니라는 말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두 눈 똑똑히 뜨고, 앞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지상 최대의 과제가 당장 우리의 어깨에 달려있음을 명심하자. 지금이 바로 그 때다. 긴장하자.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람다운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조건이나 위상 보다는, 내재된 인품이나 천성이 사람의 인격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어야 한다. 남에게 애써 드러내고자 하는 외형적인 모습 보다는, 보이지 않더라도 남을 감화시키고 감동을 줄 수 있는 내형적인 모습이 더 바람직한 인격도야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모름지기 사람은 사람다워야 하는 것이다.

인문학을 우리 삶의 부분으로 조명한 ‘안하림’ 작가는 언제나 주관적인 나와 객관적인 나 사이에는 인문적 사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과정 중에는 주체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인간은 스스로 주체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낸 자신의 존재를 주체로 인식한다.

그런 점에서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존재가 된다. 이런 의타적인 성향은 인간관계를 수단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자기 자신을 스스로 느끼고 이해하면서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 가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는 자기보호 본능이 강하고 타인에게 자신의 내면을 숨기려는 경향을 가진다. 이를테면 타인이 인정할 만한 것만 보여주고,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비교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신뢰한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이 타인에 의해 상처 받는 이유도 상대는 눈에 보이는 객체이고, 주체인 자신은 실체를 느끼지 못하는 불확실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상대가 하는 말이나 행동은 분명하게 보이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는 주체성을 느끼지 못해서다.

그렇다고 주체성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주체가 강해질수록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사이의 괴리는 더 커져가고, 자칫하면 고착관념화 되어 소통하기 힘든 자기 안에 갇힐 수 있다.따라서 주관적인 나와 객관적인 나 사이에는 반드시 인문적 사유가 필요하다. 사유를 잘못 이해하면 양심에 내 맡기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다. 양심이 어느 정도 인간을 자각하게 할 수는 있지만 사유를 통해 깨닫는 것과는 다르다.

사유는 나라는 주체를 넘어 형이상학의 관점에서 알아차리는 인식의 세계이고, 언제든 제한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나 이상의 그 무엇을 처음부터 요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무엇으로 나를 증명해 보일 수 있을지 많은 철학자들이 고민했을 것이고, 그 고민의 결과물들이 고전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의문과 질문 앞에서 이렇다 할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살아있는 인간은 찾지 못하고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이고, 죽은 자만이 그 답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야 하며, 그 대답 없는 질문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주관과 객관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하는 ‘나’인 것이다.

참다운 가치관은 이미 고착화 되어 있는 가치의 재인식이 아니고, 변화하는 관점으로 재조명되는 새롭게 설정된 가치를 표방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어떤 가치는 절대적으로 굳어진 진리가 아니고, 상대적으로 그 가치의 질이 떨어지거나 상승할 수도 있다는 것이 진리의 아이러니다. 우리의 관점을 상황변화에 따라 변화시키는 적응능력이 필요한 이유다.

최근의 보도를 보면 ‘뉴욕시장’에서 은 가격이 4.5% 상승하며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해 들어 은값은 22%나 급등했다. 이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18%인 금을 압도하는 수치다. 전문가들은 아직도 은 가격이 매우 저평가된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은은 전체 수요의 절반 가량을 산업 수요가 차지하고 있어 산업 측면의 수요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은 가격은 전 세계 제조업 경기의 선행지표다. 즉, 제조업 경기가 좋아질 것 같으면 은 가격이 먼저 상승을 한다. 또한 은 가격은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아서 중국 경제가 안정화될 조짐을 보이면 수요가 올라가며, 가격이 상승하게 된다. 그래서 계속되는 은 가격의 상승을 보고 향후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경기 전망이 밝은 편이라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현재 태양광 발전이 확산되면서 은 수요가 증가하고, 아시아 보석 시장에서도 은 수요가 늘고 있으며, 전 세계가 마이너스금리와 디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금과 은 매입으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은 가격 상승의 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은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은값 조정이 있을 때마다 은을 사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반대되는 의견도 있다. 은 가격은 2011년 고점을 찍은 뒤 하락세를 지속해왔고 은 수급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 아니며, 최근 지나치게 은 가격이 내려갔다고 본 중국 투자자들이 은을 사재기한 영향도 있다는 의견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은의 가치가 금의 가치를 추월할 정도로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를 끈다. 재테크의 대상에 관한 고정관념을 조금은 바꿔야 할 시기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발달된 문명이나 과학기술은, 불과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아무도 꿈꾸지 못했던, 그야말로 이상향이었을 뿐이지만, 지금은 나날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주위의 환경이 낯설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그토록 변화무쌍한 현실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인간의 능력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대책이 없다. 아무리 백세 인생이라 하면서 인간 수명의 연장에 비례하고자 차원과 수준을 높이기 위해 애를 쓰지만, 진정한 건강과 무병장수의 꿈은 말 그대로 요원하기만 하다.

사업을 하는 지인의 어머니는 98세에 돌아가셨다. 말년에 형님 내외가 어머니를 모셨는데,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자꾸 집을 나가 길을 잃어버리고, 이상한 행동을 해서 형님과 형수가 무척 힘들어 했다. 둘째 아들인 지인은 그 당시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이혼을 하고 혼자 노숙인처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형수에게 전화를 걸어 찾아뵙겠다고 말했다. 형수는 어머니에게 그 말을 전했고, 둘째 아들이 온다는 말에 어머니는 들떠서 어쩔 줄 몰랐다. 저녁 시간이 되어도 둘째 아들이 오지 않자 할 수 없이 어머니 식사를 먼저 차려 드렸다. 그런데 어머니가 식사를 하는 척하며 음식들을 몰래 주머니에 넣는 것이었다. 가족들이 보고 놀라서 말렸지만, 어머니는 악을 쓰며 맨손으로 뜨거운 찌개 속의 건더기들까지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누가 빼앗기라도 할까 봐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밤이 되어서야 둘째 아들이 왔고, “어머니, 저 왔습니다.” 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어머니가 방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온통 한데 뒤섞인 음식들을 꺼내놓으며 말했다. “아가, 배고프지? 식기 전에 어서 먹으렴.”

어머니의 손을 봤더니 뜨거운 찌개를 주머니에 넣느라 여기저기 데어 물집이 잡혀 있었다. 아들은 명치께가 찌르듯 아파서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저 어머니를 덥석 안았다. 어머니는 다른 것은 다 몰라도 둘째 아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나 보다. 어머니는 자식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서는 내 한 몸 부스러지는 것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아무 희망 없이 살아가던 지인은 어머니의 그 물집 잡힌 손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고 생수 배달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튼실한 중소기업을 일궈내고 당당히 일어섰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참 지났지만 지금도 힘든 날이면 어머니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고 했다. “아가, 배고프지? 식기 전에 어서 먹으렴.”

‘송정림’의 ‘참 좋은 사람을 만났습니다’를 보면 우리 주변의 가슴 뭉클한 실화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참 가치관을 형성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는,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대하면서 필자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언젠가 나도 온전한 정신을 잃어버리고, 어쩌면 아무 것도 기억 못하는 치매환자가 될 지도 모른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가능한 모든 것들을 나만의 기억의 창고에 넣는 대신, 글이나 PC, 사이버공간에라도 차근차근 담아놓아야겠다.’

진정한 가치관은 개인적인 견해나 판단으로 결론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흐뭇한 감동과 애잔한 울림을 선사하는 사연이 바로 가치관을 빚어올리는 틀이다. 어느 해 가을, 지방의 한 교도소에서 재소자 체육대회가 열렸다. 다른 때와는 달리 20년 이상 복역한 수인들은 물론, 모범수의 가족까지 초청된 특별행사였다.

운동회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운동장 가득 울려 퍼졌다. “본인은 아무쪼록 오늘 이 행사가 탈 없이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오랫동안 가족과 격리됐던 재소자들에게도, 무덤보다 더 깊은 마음의 감옥에 갇혀 살아온 가족들에게도 그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미 지난 며칠간 예선을 치른 구기종목의 결승전을 시작으로, 각 취업장 별 각축전과 열띤 응원전이 벌어졌다.

달리기를 할 때도, 줄다리기를 할 때도, 얼마나 열심인지 마치 초등학교 운동회를 방불케 했다. 여기저기서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잘한다. 내 아들… 이겨라! 이겨라!” “여보, 힘내요… 힘내!” 뭐니 뭐니 해도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부모님을 등에 업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효도관광 달리기 대회였다.

그런데 참가자들이 하나 둘 출발선상에 모이면서 한껏 고조됐던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푸른 수의를 입은 선수들이 그 쓸쓸한 등을 부모님 앞에 내밀었고 마침내 출발신호가 떨어졌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달리는 주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들의 눈물을 훔쳐 주느라 당신 눈가의 눈물을 닦지 못하는 어머니… 아들의 축 처진 등이 안쓰러워 차마 업히지 못하는 아버지….

교도소 운동장은 이내 울음바다로 변해버렸다. 아니, 서로가 골인지점에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려고 애를 쓰는 듯한 이상한 경주였다. 그것은 결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상의 레이스였다. 그들이 원한 건 1등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함께 있는 시간을 단 1초라도 연장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언제나 추구하는 1등이라는 가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차지하려는 그 1등의 자리가 이처럼 무의미한 가치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 삶의 얼굴이다. 비단 보여지는 어떤 가치만이 진실로 추구해야 하는 목표점이 되어서는 안된다. 때로는 보여지지 않는 또 다른 얼굴이 우리의 삶을 더욱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참다운 의미가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삶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종합예술이다.

삶은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벌이는 흥겨운 한 마당 굿판이다. 장단에 따라서 춤을 추고, 창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한껏 신명을 돋구는, 흥정과 거래가 쌓여가는 장터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만들어야 한다. 더 흥겹고 신나는 삶을 위해서 긴 여정에 기꺼이 동행해줄 동반자들을 사귀어야 한다. 삶의 매력이며, 삶의 정답인 행복을 위해 맞잡은 손에 더 힘을 주어야 한다.

좋은 사람을 눈에 담으면 사랑을 느끼고, 좋은 사람을 마음에 담으면 온기가 느껴진다. 좋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향기가 느껴지고,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은 일만 생긴다. 웃는 얼굴에는 가난이 없다. 그런데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표정엔 웃음이 없어서 안타깝다. 고통과 좌절도, 실패와 분노도, 노여움과 가난도, 웃으면서 세상을 보면 다 우습게 보인다. 그래서 웃고 사는 한, 결코 가난해지지 않는다. 백 번의 신음 소리 보다는 한 번의 웃음 소리가 그 인생을 유익하게 하고, 복되게 살 수 있게 한다.

연약한 사람에겐 언제나 슬픔만 있고, 위대한 사람에겐 언제나 웃음만 있다. 더 잘 웃는 것이 더 잘 사는 길이고 더 큰 복을 누리는 비결이다. 얼굴에 웃음이 퍼지면 저절로 마음이 부유해진다. 내가 웃어야 거울도 따라 웃듯이 상대방도 따라 웃는다. 그래서 웃는 자에겐 친구가 따르고, 동지가 따르고, 사람이 따를 것이므로, 최종 결승라인에 설 때는 가난도 이겨내고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오늘의 시작노트를 정리하면서 필자는 부언한다.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을 제가 아는 달빛 능선에 초대합니다. 그 능선에 함께 서서 우리의 삶을, 우리의 오늘을, 마음의 눈으로 진솔하게 바라보세요. 그리고 우리의 내일을 위한 참다운 가치관을 빚어나가고자 힘 쓰는 데 인색하지 마세요. 우리의 삶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현재는 그래서 소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