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작로 " 詩作 note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참으로 바쁘다. 아침이라 남들처럼 엉겁결에 눈을 뜨고는, 하는 일도 별로 없이 겅중거리다보면 하마 저녁나절인 일상이 정신없이 반복된다. 이룬 것도 없이 지는 해가 아쉽고 야속타. 이렇게 빨라도 되는 건가? 누군가 그랬다. 시간의 빠르기는 그 사람의 나이에 비례한다고. 그래서 젊은 시절에는 좀처럼 흐르지 않던 시간이 늙어갈수록 속도를 내게 되고, 황혼결에 이르러서는 이윽고 쏜 살같이 지나친다는 것이 인지상정이리라.

필자의 나이 어느덧 한 갑자가 훌쩍 지나고보니, 이제야 비로소 조금은 실감이 난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 하루를 시작하면서는 이런저런 생각과 계획으로 제법 머리가 돌아가지만 일상에 쫓겨, 시간에 끌려 헤매다보면 이미 쏜 살같이 시간이 흘러 급기야 도망치듯 해가 진다. 그러니 이 노릇을 어찌하랴? 무심한 하늘에 대고 탓을 돌려야 하는 건지, 세상의 인심에서 이유를 찾아야 하는 건지 도무지 방향설정이 안되고, 영 갈피를 못잡겠다.

지금이야 이럴진대, 그렇다면 필자의 지나온 세월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 많던 청춘의 시간들을 얼마나 아끼고 절약하면서 보람있게 사용했는가? 아니면, 길고 길던 젊은 시절에는 무얼 하고서 이제 와서 시간의 빠르기만을 탄하고 있는 건가?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신랄하게 비판이라도 할 양으로 작심하고 물어본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느냐? 너의 어제는, 너의 오늘은, 너의 내일은 과연 너의 것이냐?”

한참을 기다려보지만 답이 있을 리 만무다. 하마 썩어빠진 머리로 무슨 답을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적당히 망가지고 허물어진 의식으로 어찌 현명한 답변이 장만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가? 그저 막막할 따름이다. 그렇게 단정을 짓고 무심하게 바라보니, 거울 속의 추레한 초로의 늙은이가 참으로 불쌍하다. 삶의 조각을 부여잡고 몸부림치는 잣다른 위인이 너무도 안됐다. 그래서 허무하다. 허무할 따름이다. 그냥 하염없이 허무하다. 이게 삶일까?

‘신작로(新作路)’라는 단어는 요즘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필자가 어렸을 적에는 대부분의 국도나 지방도가 비포장도로였다. 더구나 강원도 시골에서는 포장도로를 찾아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당시에는 그저 대도시에나 가야 그 근처 일원에 깔려있는 포장도로에 마냥 신기해 했던 기억이다. 그 때 우리는 새로 난 길, 쭉 뻗은 길을 신작로라고 불렀다.

그 신작로를 따라 걷노라면 먼지도 전혀 안 나고, 길 가운데 잔 돌이 없어서 발바닥이 하나도 안 아파 무척 신기했었다. 어린 마음에도 감동에 겨워,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걸어가면서 길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 곁에 본래부터 놓여져 있던 꾸불꾸불한 옛 길을 건너다 보면서 비교를 하곤 했다. 나쁜 길에 만족하지 말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편하고 보기가 좋다는 걸 깨우친 스스로의 공부였다.

어린 마음에 느꼈던 그 강렬한 추억이 훗날 삶의 무수한 길을 걸어오면서, 스스로에게 신작로를 내야 한다는 사명감과 강박관념으로까지 이어진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남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 답습하기보다는 미개척의 길, 모험심을 요구하는 새 길로 필자의 삶을 이끌었던 것 같다. 그것이 결국은 개인적인 삶을, 변화무쌍하고 거치른 황야를 헤매는 보헤미안의 삶으로 변모시키는 험난한 지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소위 신작로라는 길은 경우에 따라서 잘 닦여진 편한 길이 아니라, 힘겹고 벅찬 선구자의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는 한 평생이 걸린다는 지혜는, 결국 필자의 한 평생을 들여서야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고 본다. 그러니 정작 이제 와서 돌이킬 수 있을 리도 없음이다. 그리고 이 진실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필자처럼 살지 말라고 당부하고도 싶지만, 정작 그 누군가가 필자의 말을 믿어줄 지는 의문이다.

어차피 인간의 삶이란 그런 거니까, 삶의 굴레는 그렇게 뻔한 진리를 머금고 있지만, 아무도 직접 겪기 이전에는 자신의 일로 인정하지 않는 우매한 아집으로, 세파를 헤치고 나아가는 항해가 바로 삶의 본질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면 된다. 예컨대 다른 사람들의 삶의 색깔이 어떻든 그게 중요하진 않다. 당장 놓여진 자신의 일상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의 엮음이, 조금이라도 덜 후회스럽기 위한 몸부림이 요구되는 시점이거늘, 어찌 한 눈을 팔고 있단 말인가?

허기사 그렇게 의미를 정리하고 보니, 새 봄의 목전에서 풀어내는 넋두리 치고는 너무 심하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거늘, 파르란 새 싹이 움돋는 계절 봄이건만, 어째서 주제나 소재를 이렇게 음습한 걸로 선정해놓고, 하릴없는 투정이나 부리고 있는 겐가? 이제 손가락질 받기 전에 떨쳐 일어나 밖으로 나서자. 하늘을 보고, 자연을 보고, 계절을 보자. 봄을 바라보자. 봄 속의 자신을 바라보자. 그리고 봄을 살아가기 시작하자.

벌써 세상은 봄 천지다. 봄의 전령들이 활짝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일상에 쫓겨, 세상에 찌들어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봄은 우리 곁에 온전하게 똬리를 틀었다. 세상이 완전 선거판으로 물들어 정치가 뒤죽박죽이 되었지만, 불경기로 인해 경제가 꼬여 먹고 살기가 급급해 졌지만, 온갖 잔혹한 사건사고들이 빈발하는 사회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지만, 정신없이 국내외 정세가 얽혀져 우리를 어지럽히지만, 그래도 이런 우리네 삶 속으로 봄은 왔다. 우리에게 소망과 꿈을 심어주기 위해서 의연하게, 당당하게 봄은 찾아와주었다.

떠들썩한 봄꽃 명소도 좋지만 봄빛으로 채워진, 이제는 고요한 봄의 정취를 느낄 곳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시장 바닥 같은 꽃축제를 갈 것인가? 매화 향이 그윽한 산사를 갈 것인가? 고민은 잠시다. 어차피 우중충한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필자는 잠깐의 궁리 끝에 마음먹고 길을 잡았다. 망설임 없이 차를 몰아 가장 먼저 가볼 곳이 있었다. 맞다. 멀지 않은 곳에 명소가 있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매화가 꽃망울을 활짝 터뜨리기 시작하는 ‘치악산’ 자락을 찾아야할 때였다.

치악산 뒷 켠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영원사’ 일원에 피는 매화는 이 시기 일부 지역 여행자들 사이에서 큰 주목을 받는다. ‘납월매(臘月梅)’라는 별명을 가진 이 매화는 섣달을 뜻하는 납월에 피고 진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매화 군락지로 향하려면 계곡 위에 놓인 돌다리를 하나 건너야 하는데, 그 아름다움이 너무 소박해 걷기에 조심스럽다. 그보다 먼저 멀리서 보아도, 채 겨울옷을 벗지 못하고, 흑백사진 속에 일부분만 붉은 색을 칠한 듯한 매화가 눈에 확 들어온다. 그냥 붉은 게 아니라 보라색이 약간 더 들어있는 고급진 빛깔이다.

나무마다 꽃이 팝콘처럼 터져 있다. 웅웅거리는 벌들의 소리는 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못해 잠을 부르는 나른함을 전해준다. 군락지를 한참 둘러보다 보면 “아하!” 하는 느낌이 절로 드는 이유다. 산골마을을 내려다보는 치악산 중턱 이 곳은 오목하게 들어가 봄바람을 막아준다. 슬그머니 군락지를 벗어나도 어디서든 봄꽃 세상이다. 할머니 어릴 적 동네 같은 고샅길을 걷다 보면 담벼락 곳곳에 올라온 푸릇한 풀잎에서 봄의 정취가 물씬 피어오른다. 이제 어디에도 봄이다. 그러나 서둘러라… 봄날은 곧 간다.

내친 길에 조금 더 차를 몰아 ‘청풍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필자가 잘 아는 곳에 동백이 핀다. 물론 동백나무숲이야 전국에 많고 많다. 수백~수천그루가 산자락을 덮은 곳도 있고, 남해안 섬들에도 널렸다. 가로수로 심어진 곳도 지천이다. 그런 울창한 숲에 비하면야 사실 호반 인근에 무리지은 동백숲은 그리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곳의 동백숲이 봄철 여행지로 돋보이는 건, 호반의 언덕에 자리잡은 아담한 정원 같은 숲, 탁 트인 전망, 그리고 소나무숲이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호반의 가장자리에 함께 있기 때문이다. 동백꽃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는 3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다. 그런데 올 봄에는 서둘러 찾아온 필자를 반겨서인지 이미 동백숲은 나무마다 막 꽃송이들이 우후죽순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탐화객 한 사람이 “일찍 핀 일부 꽃들이 최근 냉해를 입기도 했는데, 만개하는 시기는 4월 초순”이라며 “60~70% 개화한 때를 절정기로 친다”고 뀌띔을 해주었다. 바람에 시달려온 동백나무들은 고목들이라도 키가 2~3m 가량이다. 옆으로 퍼져 자라나면서, 나무들 밑으론 어둑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4월이 되면 송이 째 떨어져내린 동백꽃송이들이 깔려 어둠을 밝혀줄 터이다. 동백이 만개하고 난 이후 그곳에서는 개나리도 활짝 핀다.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필자가 좋아하는 길이 어디 신작로 뿐이랴? 바람 순해지고 볕 고와져 폭신해진 흙 길 밟고 걷고 싶을 때는 참지 못하고 맨 발로 달려나가는 게 또한 필자다. ‘한국관광공사’가 ‘3월 걷기 좋은 꽃맞이 여행길’로 선정한 추천명소 중에서도 가장 으뜸길이 게서 멀지 않았다. 이름도 재미난, ‘병방산’ 허리를 오르는 ‘뱅뱅이길’이 바로 이웃마을이나 마찬가지인 강원도 ‘정선’에 있으니 찾지 않을 수 없었다.

1974년 ‘동강’ 강변을 통행할 수 있는 ‘호박길(동강로)’이 생기기 전까지 ‘귤암리’ 주민들이 ‘정선 5일장’에서 구매한 생필품과 비료, 시멘트 등의 물산을 운반하던 길이라고 한다. 쉽게 오르기 위해 산허리를 뱅글뱅글 돌아가는 형태라 이 길은 ‘뱅뱅이재’로 불렸다. 한 편으로는 ‘귤암리 옛길’로도 알려져있다. 풍경 참 좋다. 특히 ‘병방치’에서 보는 동강의 풍광은 먹먹한 가슴을 뻥 뚫어 준다.

깎아지른 산세를 따라 뱅뱅 돌아가는 옛 길은 동강 변 ‘할미꽃마을’까지 뻗어있다. 할미꽃은 3월 하순에 만개한다. 작은 키에 만감을 담은 할미꽃의 향연도 볼 만 하다. 문득 눈을 들어 길 옆으로 바라보면 봄마다 세상을 노랗게 물들이는 산수유 물결도 가득하다. 산수유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병방산 정상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쉬엄쉬엄 걸을 수 있다. 3월 말이면 재 너머까지 이어진 산수유군락이 노오란 꽃을 가득 피워 장관을 이룬다.

산수유꽃은 ‘지속과 불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변치않는 사랑을 맹세하기 위해 산수유꽃과 열매를 연인에게 선물하는 풍습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길의 끝자락에서는 언뜻 한 켠으로 이어지는 편백나무숲도 덤으로 만난다. 그야말로 보이는 족족 장관이요 천혜의 절경이다. 더 이상은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직접 가서 느껴야 하는 멋과 맛이 지천인 무릉도원이 바로 거기다. 행운은 멀리 있지 않다. 얼른 찾아가보자.

그렇게 봄의 대자연 속에 빠져있으면 영락없이 자신이 봄의 한 부분인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게도 된다. 마치 스스로가 봄을 만들어내는 창조자이며, 자연을 빚는 장인이라도 된 것 같은 뿌듯한 망상에 푹 빠져들게도 된다. 하지만 미상불 곧 깨고 말 망상이라 하더라도 그런 종류의 망상이라면 괜챦다. 아름답고자 하는 마음이거늘, 꿈을 꾸는 환희이거늘 뉘라서 그 망상을 탓할 수 있으리요? 봄의 조각이면 어떻고, 봄 자체라면 또 어떨까? 그저 시절 좋은 봄인데 말이다. 한껏 사랑하고픈.

지금 우리에게는 2016년 3월 하순의, 목하 무르익은 봄이 찾아와 있는 거다. 점, 선, 면 의 3차원으로 이루어진 우리들은 공간(4차원)의 세계는 전혀 알지를 못한다. 그런 원대한 진리는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차원의 밖이다. 그러므로 알아서도 안된다. 영원히 감추어져 있어야만, 내일을 위해 작은 희망을 안고 부단히 노력하는 가운데, 때로는 좌절도, 때로는 성취감도 맛보며 깨달아갈 것이다. 어차피 삶이란 깨달음인 것을 알아야 한다.

새로운 봄이거늘 이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다잡아 살아가야 할까? 가장 먼저 나를 사랑하도록 해보자.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데 다른 누가 나를 사랑하겠는가? 그런 이후에 다음 단계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자. 그들은 모두 나와 같이 귀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고 나면 다음에는 나 보다 나이 많은 어른을 공경하자. 누구나 머지않아 우주의 법칙에 따라 차례로 멸할텐데, 늙어가는 것이 남의 일만은 아니다. 그 누구도 늙어지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니 매사에 순응하되, 나이 든 어른을 설득시키려 하지는 말자. 가능하면 변화하는 질서를 잘 설명하고 이해를 시키자. 끝내 이해를 못한다면 그거야 말로 그 어른의 깨달음의 부족일 것이다.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이지만, 그럼에도 살아온 삶이 쉽게 바뀌어지지는 않을테니까, 억지로 변화시키려 들지는 말자. 비단 그것이 마치 검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어리석음일지라도 그건 당사자의 책임이다. 그저 마음을 열고 소통하면 그걸로 된다.

다른 사람이 좀 부족하거나 몸이 아프다 하더라도 무시하거나 혐오하지도 말자. 우리도 어느날 불의의 사고로 불구가 되거나 예기치 못하게 장애가 올 수 있다. 이렇듯 다른 사람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행동을 일삼다가 우리가, 우리 가족이 언젠가 그와 같은 일을 겪게 된다면 그 때는 어찌할 것인가? 세상사는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그 기회와 위기가 주어진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이웃이 가진 것이 없다고 무시하지도 말자. 혹 아는가?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어느날 그 사람이 로또에 당첨될지도, 그래서 팔자가 순식간에 바뀔지도 모르는 거다. 우리는 누구든지 공평하게 올 때도 빈손이요, 갈 때도 빈손인 것을 자각하자. 또한 위만 바라보며 살지도 말자. 가진 것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 편리할 뿐이다. 그리고 그 댓가는 빨리 멸한다는 거다. 그곳에는 욕심과 오만, 권위, 이기심만 가득하니까 말이다. 웃음과 기쁨, 성취는 낮은 데(없음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살면서 가능하다면 성내지도 말자. 웃고 살기에도 부족한 삶이다. 백세인생이라니까 잘 해야 100년은 살까? 그러니 미운 사람을 만들지 말자. 혹여 무의식 중에라도 그런 사람을 보게 되면 자신의 마음만 괴로울테니까 말이다. 지금 찾아와준 이 봄에 우리가 꼭 지니고 가야할 것은 ‘건강한 육신’, ‘사랑하는 마음’, ‘넘치는 웃음’, ‘희망찬 내일’, ‘정겨운 가족(이웃)’, 그리고 ‘소중한 꿈’이다.

살펴보니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가진 것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다. 창가에 비추는 따스한 태양, 바로 우리의 것이다. 산야에 싹트는 푸르른 초목, 우리의 것이다. 저 푸른 창공도 우리의 것이다. 푸른 물결, 춤추는 바다도 우리의 것이다.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도 우리의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숨 쉬는 공기도 우리의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은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와, 느낄 수 있는 마음 뿐이면 된다.

우리가 이런 것을 소유하면서 지불해야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런 것을 누리면서 지켜야할 의무는 있다. 우리 삶을 사는 동안 빌려 쓰는 것이니 훗날 돌려줘야 하겠다. 우리는 마땅히 이것들을 자녀에게 물려줘야 되는 거다. 그런 착한 마음을, 나누면서 공유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심성을 지닌 우리의 2016년 봄은, 밝고 순수한 세상과 아름다운 누리를 일구어가는 우리 모두의 찬란한 봄의 이름으로 빛난다.

이제는 밖에 지천으로 깔린 봄을 가슴 속에 소중하게 담을 때다. 더 늦기 전에 자신을 봄 속으로 담글 때다. 그렇게 가슴으로 가득 봄이 오면 가슴 속에서도 노랗고 빨간 꽃들이 지천으로 필까? 파아란 하늘 아래 연한 바람이 불고, 연녹색 환희로 가슴은 벅찰까? 오손도손 웃음 소리가 들리고, 포근한 정이 가슴 가득 보드랍게 쌓일까?

순수했던 어릴 적엔 정말 몰랐었다. 마음에 오솔길이 있었고, 마음에 꽃길도 있었고, 그 마음의 한 켠에 신작로도 만들어져 있었음을 말이다. 그리곤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마음에도 겨울이 길어 찬바람 불고, 마음에도 슬픔이 많아 꽃이 진다는 걸 말이다. 아무래도 내일은 태양을 하나 따서 불을 지펴야겠다. 봄의 햇살을 빌려 가슴에 심어야겠다.

언 땅을 녹이고, 언 마음을 녹이고, 아직도 남아있는 차가운 겨울을 단숨에 떨쳐내고, 정녕 환희로운 꽃잎같은 봄 하나 만들어 피워내야겠다. 마음에 푸르른 숲 만들며 봄바람처럼 살아가야겠다. 꿈결같은 그 숲길 나란히 걸으며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어야겠다. 온통 물들은 봄을 진실한 가슴으로 살아가야겠다. 봄으로 난 신작로를 따라 가없는 삶의 길을 걸어가야겠다. 누구라도 좋으니 한 사람, 손 잡고 함께 길 걸었으면 좋겠다. 봄이 있는 한 언제까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