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예상하고 있는 출판 계획 상으로 보자면
세번째 詩集이 될 詩들의 묶음입니다.

2010년 후반기부터 2012년 봄까지의 詩를 모았습니다.

역시 힘든 세상살이의 단면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고달프고 버거운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새롭게 거듭나는 미래의 또 다른 삶과
행복의 추구에 관한
보헤미안 林森의 깨달음의 속내가
절절하게 배어나고 있습니다.

비단 詩人 만의 이야기가 아닌
세상 모두의 이야기이며,

그렇기에 누구나가 스스로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여기면서
차례 차례 감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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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



시작노트

" 숲 " 詩作 note

계절은 색으로 대변된다. 봄이 초록색이라면 여름은 파란색, 가을은 붉은색, 그리고 겨울은 하얀색 정도다. 본래 색에 대한 개념이 그렇다 하니 필자가 시비를 걸 수는 없다. 그렇다손쳐도 사실 봄을 초록색으로 단정 짓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오히려 여름이 초록에 가깝고 봄은 노란색으로 표현하는 편이 더 가깝다. 개나리꽃이나 산수유꽃, 유채꽃이 만발한 들판이나 산자락을 상상해보면 예외 없이 누리가 온통 샛노랄 뿐이다.

허기사 꽃마다 색깔이 다르고, 피어난 모양새가 다르니 봄을 한 가지 색으로 압축시키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시시때때로 피는 꽃 색깔이 다르니, 봄은 마치 변검을 공연하는 중국의 경극배우들처럼 변화무쌍하고, 보기에 화려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중에는 지금처럼 예기치 않게 돌아앉아 하얀색으로 물드는 산야가 있으니 우리는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듬성듬성 무리 짓지 않은 척 하면서, 온 산을 하얗게 물들이는 이름 모를 들꽃들을 눈여겨 보다보면, 정말 말로는 다 표현 못할 신비하고 은은한 정취마저 느끼게 된다. 이것이 또한 잊지 못할 봄의 숨겨진 진면목이다. 문득 꽃을 주제로 하여 생각을 이어가다보니 어떤 색이던지 형태던지 막론하고, 모든 꽃이란 꽃에는 다 날아드는 영원한 친구, 나비와 벌을 떠올려보게 된다.

물론 완전히 다는 아니다. 역사 속에 보면 나비 없는 꽃에 관한 비사도 더러 있기는 하다. 특히 ‘삼국유사’에 보면 ‘선덕여왕조’에 선덕여왕이 미리 깨달은 일 세 가지인 ‘지기삼사(知幾三事)’가 수록되어 있다. 여왕의 즉위년인 632년, ‘당 태종’은 빨강, 자주, 하얀색의 모란 그림과 그 씨앗을 선물로 보냈다. 왕은 이를 보고 “이 꽃은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는데, 씨앗을 심어보니 과연 그랬다.

훗날 신하들이 이 일을 물어보니 왕은 “꽃 그림에 나비가 없었다. 이는 향기가 없음을 의미하며 곧 남편이 없는 나를 희롱한 것이다.”라고 답했다. ‘일연’은 이 고사를 소개한 뒤, 당 태종이 신라에 세 여왕, 즉 ‘선덕, 진덕, 진성’이 있을 것으로 미리 짐작한 점도 함께 칭찬하고 있다. 아무튼 꽃에는 당연히 나비나 벌이 꼬이게 마련이고, 그래야 자연의 섭리대로 종족이 번창하기 마련이다.

이와 같이 특별한 경우의 꽃이라서 벌이나 나비가 따르지 않는 상황도 간혹 있을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러한 근본 논리를 뒤집는 실태가 현대 사회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는 데에 경악을 금할 길 없다.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 내 멸망할 것이다.” 라고 한 천재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예언은 과연 들어맞는 것일까? 지구촌 곳곳에서 꿀벌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몇 해 전 미국 ‘농무부’가 발표한 통계치에 따르면, 한 해 겨울 동안 미국 꿀벌 군집의 31%가 줄었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 사라진 꿀벌의 수는 80만 마리에 이른다. 2006년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유럽에서도 그 전 해에 22%의 꿀벌 군집이 없어졌다. 영국은 심각하게도 꿀벌 개체 수가 25년 사이에 절반으로 감소한 상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꿀벌은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작물 중 71종의 ‘수분(꽃가루받이 :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에 붙는 현상)작용’을 돕는다. 꽃 사이를 꿀벌이 부지런히 오가며 꽃가루를 옮겨주는 덕에 열매를 맺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2억년 간 지구 생태계를 지켜온 꿀벌이 떼죽음을 당한다는 건 곧 식물의 번식이 멈춰져서 생태계 질서가 무너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꿀벌이 세계 농업에 기여하는 가치는 2,030억 달러(약 224조 원)에 달한다. 미국에서 꿀벌의 꽃가루받이 활동에 의지하는 농업은 200억 달러(약 21조 8,000억 원)로 추산된다. 꿀벌에 100% 의존하는 작물은 아몬드, 당근, 양파 등이다. 세계적인 환경단체 ‘어스 워치’는 “대체 불가능한 생물 5종 가운데 꿀벌은 첫 번째 종”이라고 발표한 바도 있다.

귀중한 꿀과 밀랍을 주는 꿀벌은 누에와 함께 인류에게 사육된 가장 오래된 곤충이다. 고대 ‘로마인’은 이를 사육해서 꿀로 밀주를 만들었는데, 밀주는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켜 준다고 하였으며 ‘게르만인’도 오래전부터 밀주를 알았었다. 한 편 꿀벌은 농가에게 귀중한 재산이었기 때문에, 그 보호는 엄격한 법에 의해서 규정되었는데, 17세기 독일의 ‘라우엔부르크’의 법률에서는 이를 훔치는 자는 사형에 처해졌다.

꿀벌은 도둑맞거나 무리로 도망가거나 사멸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동방박사의 참배의 날(1월 6일)’에 정결한 소금을 벌집 앞에 두거나, ‘성탁절(2월 2일)’에 양초를 가지고 벌집상자 주위를 걷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꿀벌에서는 선악을 구별하는 힘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여서, 음탕한 여자나 젊은이는 찔린다고 하였으며, 예언의 능력을 가진다고도 하였다.

가을 꿀벌의 모습에서 겨울의 추위를 알 수 있다던지, 벌이 한꺼번에 많이 죽으면 역병이나 재앙이 일어난다고도 하였다. 또한 꿀벌은 죽음과 불사, 근면, 웅변 등과 결부되기도 하였다. 꿀벌은 식물과 협력하며 살아온 사회적 동물이다. 식물은 꿀과 꽃가루를 주고, 꿀벌은 꽃가루받이를 제공해 생태계의 균형을 맞춰왔다. 꿀벌은 서로 수정이 가능한 종류의 꽃가루를 찾아서 꽃가루받이를 시켜주는데, 이는 나비 등 다른 곤충에서는 없는 꿀벌만의 독특한 습성이다.

매년 늦봄이면 여왕벌과 꿀벌 집단은 새로운 집을 찾는 분봉을 한다. 늘어난 개체 수 때문에 3분의 1은 옛 집에 남고, 3분의 2는 새 집을 찾아 떠난다. 1만여 마리의 벌떼는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 먼저 수백 마리의 나이 든 벌이 집터를 찾아 헤매는 정찰벌 역할을 한다. 주변 약 70㎢를 뒤져 10여개의 어두운 구멍을 찾아 후보지로 올린다. 이 새 집터를 동료들에게 알리기 위해 ‘8’자 모양을 그리며 엉덩이춤을 춘다.

엉덩이를 흔드는 시간은 비행 거리와 비례한다. 1초 동안 윙윙 소리를 내며 춤을 췄다면 1㎞를 날아왔다는 뜻이다. 엉덩이춤을 추는 각도는 태양을 기준으로 벌집 밖에서의 비행 각도를 의미한다. 춤의 움직임을 해독한 다른 벌들은 오차 없이 새 집을 찾아간다. 입구가 작고 내부는 큰 집을 선호하는 꿀벌은 정찰벌 300~500마리가 각각의 후보지 앞에서 추는 춤으로 격렬한 토론을 벌인 끝에 새 집터를 고른다.

꿀벌은 이렇게 2억년을 진화 없이 살아왔다. 이들은 복부에서 내뿜는 밀랍(양초의 원료)으로 육각 형태의 집을 짓는다. 다른 벌들이 나무를 갉아 탑을 쌓듯 집을 짓는 것과 다르다. 꿀벌의 수명은 50일 안팎. 여왕벌이 하루에 낳는 2,000여개의 알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부지런히 꽃가루를 실어 나른다. 꿀벌이 알을 품은 뒤 날씨가 따뜻해지면 산란 시기가 온다.

유정란에서는 암벌, 무정란에서는 숫벌이 태어난다. 32~36도의 더운 날씨일 때만 애벌레들이 성충으로 자랄 수 있는데, 밀랍집은 고온일 때 녹아내린다. 이 때문에 꿀벌은 한여름에도 쉼 없이 날갯짓을 해 벌집의 온도를 낮춘다. 이 시기를 버티고 나면 꿀벌은 군집당 5만~6만 마리로 개체 수가 대폭 증가한다.

꿀벌의 떼죽음 사례가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05년 무렵부터다. 당시 1억 5,000만 마리의 벌을 돌보던 미국의 한 양봉업자는 충격에 휩싸였다. 단 몇 주 만에 돌보던 벌의 50%에 이르는 4,000개의 벌통을 잃었기 때문이다. 다른 양봉업자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60~70%에 이르는 벌을 잃은 이도 있었다. 2006년과 2007년 말, 2008년 겨울에도 벌들은 한꺼번에 사라졌다. 전례도 없고,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현상을 일컬어 학계에서는 ‘벌집 군집 붕괴현상(CCD : Colony Collapse Disorder)’이라고 불렀다.

미국 36개 주에서 벌집 군집 중 3분의 1 이상이 사라졌고, 유럽 일부 지역과 인도, 브라질 등에서도 발견됐다. 과거에도 꿀벌이 집단 폐사한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시적인 현상들이었다. 1620년대 ‘바로아 응에’라는 벌레, 1970년대 ‘검은여왕벌 바이러스’ 등의 전염병, 벌들의 늑대라 불리는 ‘벌집나방’ 등 수많은 적이 벌을 공격, 떼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던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렇지만 자연 상태에서 집단 폐사를 겪은 벌들은 그들만의 생존 본능으로 곧 개체 수를 회복했다. 그런데 CCD는 자연 폐사와 다르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했다. 2007년부터 지속적으로 해마다 평균 30%의 꿀벌이 줄어들고 있다. ‘유엔 환경계획’은 긴급 보고를 통해 “세계에서 꿀벌이 감소하는 현상이 심각하며, 꿀벌 감소 현상이 빨라질 경우 생태계 교란은 물론 세계 식량 안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CCD의 원인은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도시화’를 가장 유력한 폐사 요인으로 보고 있다. 생존의 근간이 되던 산과 숲, 나무와 꽃이 사라지면서 꿀벌들이 집을 잃고 헤매다가 죽거나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된다는 것이다. 휴대폰 등 이동통신 기기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꿀벌의 이상 행동을 유발, 정상적인 군집생활을 망쳐 떼죽음에 이르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스위스 생물학자이자 꿀벌 전문가인 ‘다니엘 파브르’는 벌집 안에 휴대폰을 놓아두고 꿀벌의 반응을 관찰하다가, 전화가 통화 모드에 있을 때 꿀벌이 ‘일벌 장단’이라는 특이한 소리를 내는 것을 알아냈다. 이 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드문 현상으로 일부 개체가 새로운 벌집을 만들어 옮기는 분봉 시기가 아닐 때 이 같은 소리가 나면 군집 내 혼란이 발생, 군집이 붕괴한다고 했다.

유럽에서는 살충제를 주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포유류에는 거의 독성이 없고 곤충에만 작용하는 살충제가 무분별하게 쓰이면서 꿀벌의 신경계를 교란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관련 연구를 진행한 ‘일리노이대’ 교수진은 “죽은 벌에서 100가지가 넘는 살충제 및 화학 약품, 기생충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꿀벌의 개체 수 감소 원인으로 지목된 ‘네오코티노이드’ 계열의 살충제 3종에 대해 2년간 사용 금지 조치를 내렸다. 꿀벌 감소를 이유로 살충제 사용을 금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말부터 시행된 이 조치는 꿀벌이 많이 꼬이는 특정 작물에 우선 적용되며 일반 가정의 정원에서도 사용이 금지된다.

미국 농무부도 2000년대부터 ‘코넬대’ 등과 손잡고 꿀벌 실종의 원인을 찾고 있다. 농무부는 “꿀벌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질병과 기생충, 살충제, 먹이 부족, 종 다양성 부족 등이 꿀벌의 생존을 어렵게 하는 총체적 난국 상황”이라고 밝혔다. 사실은 이미 드러난 어떤 상황을 분석해서 대책을 강구한다는 건 한 마디로 미련한 짓이다. 원인과 대책은 언제나 한 묶음이다. 원인 제공의 확실한 근거를 파악하지 않은 대책 수립은 그야말로 공염불이다.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이라는 제목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의 작가인 ‘로완 제이콥슨(Jacobsen, Rowan)’은 굉장한 내공을 자랑한다.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는 아주 좁은 분야의 특정한 사건인 ‘꿀벌의 집단 사망’을 가지고 300쪽이 넘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벌이나 자연과학, 환경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사리 읽을 수 있는 이런 책을 쓴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다큐멘터리의 내용과 추리소설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은 벌들이 죽어나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곧이어 벌들의 화려했던 과거의 삶이 조명되면서, 순수한 영혼을 갖고 있는 이 벌들을 죽인 범인이 과연 누구인지 궁금하게 된다. 용의선상에 오른 ‘핸드폰(전파의 방해)’, ‘꿀벌응에(벌에 기생하는 벌레)’, ‘제초제’, ‘항생제’, ‘액상과당’, ‘꽃가루받이 비지니스’ 등은 당당하게 알리바이를 대고 법망을 피해서 유유히 사라진다.

시체는 있는데, 범인이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사건이 되는가 싶었는데, 작가는 아주 참신하게 범인을 지목한다. 앞서 나왔던 용의자 모두를 공범으로 엮어버린다. 더 나아가 모든 악의 근원인 ‘인간의 탐욕’이 벌 집단 사망의 배후에 있다는 논리를 펼친다. 책을 읽는 필자 자신이 엉겁결에 범인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인정하기 싫고, 졸지에 행복하지도 않은 결말이 나버린다.

작가는 꿀벌이 처한 스트레스 상황을 의인화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당신은 충혈된 눈으로 전국을 날아다니고, 아침 식사로는 콜라를 마시고, 기력을 충전한다. 임대한 차를 끌고 업무 회의에 참석하러 나선다. 그런데 아뿔싸! 내비게이션이 고장 나서 길을 헤맸다. 회의에는 초조하고 긴장된 모습으로 뒤늦게 참석한다. 위궤양이 도진데다 항생제도 듣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하고 화장실로 향해야 한다.

게다가 양탄자에서 벼룩이 튀어 양말 속으로 들어온다. 회의 중간에 방역 요원들이 들어와서 회의실 안에 흰 연기를 살포하자 당신은 구토를 일으킨다. 회의 내내 무능했던 당신은 기대했던 판매 계약도 성사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회의에 가야 하므로 그 문제를 신경 쓸 겨를도 없다. 실제로 밤 늦게까지 회의를 하고 나서 다시금 충혈된 눈으로 집으로 향해야 한다.

차분히 앉아 식사할 시간도 없어서 운전 중에 도넛 몇 개를 허겁지겁 먹어 치운다. 이런 생활을 하면 몸 상태가 나빠진다. 소화해낼 수 없는 근무 일정 때문에 늘 초조할 뿐 아니라 수면 부족과 당분이 가득한 식사, 그리고 화학물질로 인한 오염 때문에 면역 체계가 약화된다. 병치레가 잦아지면서 업무 능력도 계속 곤두박질친다.

일을 마치고 아내와 잠자리에 들어도 로맨틱한 밤에는 전혀 마음이 없다. “아이가 학습 장애를 겪는 것 같은데 어쩌지?” 따위의 일로 머릿속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내 얘기인가?” 싶은데, 사실은 벌들이 처한 상황이 저렇다는 얘기다. 불쌍한 꿀벌들이 죽는 이유가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약화였다니 참으로 어이없었지만, 그 모든 게 돈을 향한 인간의 욕심에 근거하고 있다는 게 더 어이없고 슬펐다.

옛날 마지막 예비군 훈련 때 벌에 쏘여 아팠던 기억 때문인지, 벌은 웬만해선 좋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예전만큼 벌이 밉지는 않다. 오히려 “나중에 늙어서 양봉이나 해볼까?” 라는 얄팍한 생각도 들게 만들어줬다. 쥐, 뱀, 모기와 같이 무조건 싫은 것들도 다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조건 싫지 않을까 싶어지기까지 한다.

벌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습득해온 여러 기술(춤, 비행술, 페로몬을 통한 의사소통), 직접 만든 독특한 생산품(꿀, 밀랍, 로열젤리)과 아울러 벌집의 놀라운 사회적 구조로 볼 때, 벌은 어떤 면에서 인간과 완전히 다른 지능을 지니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점은 충분히 탐구해볼 가치가 있다. 벌은 다른 생명체들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독특한 존재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자연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그 자애로운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는 있다. 과거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살았고, 우리라고 해서 나중에까지 지금처럼 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지금 우리는 약육강식을 바탕으로 한 파괴적인 경제와 사회 체제 속에서 살고 있다. 이를 대체할 진정한 대안은 바로 자연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것이 사라져가는 벌을 살리는 첩경이 될 것이고, 나아가서는 자연을 되살리는 원천적인 대안이 될 첫걸음이다.

오늘은 생각지 않게 시작노트가 생물학 강의를 모방하여, 재미없는 교재처럼 이어졌다. 그러나 실은 필자가 모처럼 작심하고 칼럼 비슷하게 근거들을 추슬러 열거한 것임을 고백한다. 인간의 삶은 자연에서 비롯된다. 자연의 구성원은 하나같이 소중하다. 소중한 개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입장에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생존을 이어가며 경쟁하는 것이 모든 섭리의 기초다. 기초가 튼튼하다면 그 뒤에 이어지는 과정은 자연히 튼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튼튼한 과정들이 촘촘히 엮여져서 역사를 이룬다. 어떤 역사를 막론하고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다. 승리와 패배, 번성과 쇠락, 지속과 단절 등은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 마치 동면의 양 면처럼 가까이에 실존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와 직결된다. 그것이 순리다. 순리로 이어지는 역사는 영원하다. 영원의 숨결은 자연 속에 살아있다. 자연을 보존하고 가꾸는 마음에서 영원을 바라보는 맑은 눈동자가 빛난다. 자연의 위대함이 돋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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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보다도 잎 아름다운 이 시절이라
연초록 신록 하루가 다르니
늑장부리던 창밖 아까시까지 안간 힘
새잎 미느라 제법 부산타

세월 막혀 내게 뵈진 않아도
먼 고향,
휑하던 그 숲도 산록 하냥 우거져
이제 더는 뉘게도 속살 안보여줄 터이지만

눈시린 순백색 자태
유난히 하얀꽃들 환하게 밝히고 있겠거니
그 숲 정녕 정녕코 그리웁고나

귀룽나무 팥배나무에 산사 산돌배나무,
아그배 야광나무 대롱대롱 하얀송이들이거나,
작은 가지따라 다소곳 피어나는
고깔모양 꽃망울들
계곡 바위틈 매화말발도리꽃이거나,

가만 있자,
또 무엇
그 숲 지천으로 있었더라 ? 아무튼....

지금은 하얀꽃들 맵시일랑 하얗게 하얗게 자라나
순결한 그 숲 저 깊은 데서
하이얀 조화 역사 사부작이 피워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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