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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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출판 예정 두번째 詩集의 제목입니다.

林森의 인생에 있어서 또다른 전환점이 되는 시기의 시작인
2008년 후반기부터 2010년 전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인 양
정말 많은 量의 詩를 짓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의 나날을 헤쳐나오면서
量産된 詩이니만큼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비감어린 내용과
칙칙한 파스텔톤 색깔의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의 방랑자 다운 林森의 詩心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우는 詩語의 조화가
오묘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는지라,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고
한 데 어울려 함께 눈물짓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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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쪼롱 - 웽웽웽 - *



시작노트

" 쪼롱 - 웽웽웽 - " 詩作 note

문득 새벽잠에서 깨어났다. 달게 자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깨웠다. 초겨울을 알리는 바람이었을까? 신새벽의 신선한 공기였을까? 아니면 새벽 속에 자리한 시간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초겨울 신새벽의 시간을 살아가는 대자연이었나? 대자연속의 나무이거나, 밤새이거나, 혹은 많은 사람들의 호흡소리였거나....

아무튼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웠음에 틀림없다. 그렇기에 깊은 잠에서 화들짝 놀라 빠져나왔겠거니. 대화를 하자고, 이야기를 나누자고, 소리죽여 가만히 나를 잡아당기는 무엇. 확실하지는 않은 그 무엇과 대화를 해볼까 작심하게 된다. 기왕지사 잠도 다 달아났으니 오늘은 ‘대화’로 필자의 화두를 던진다.

미국 ‘디트로이트시’에 가난하지만 아주 성실한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하루에 열 시간씩 직장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낡은 창고를 개조한 연구실에서 자동차연구로 밤을 지새우곤 했다. 그의 아버지를 포함한 많은 동네 사람들은 그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그는 실망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자신을 믿어주는 단 한 사람, 그의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꼭 성공할 거예요. 전 믿어요, 언젠가는 당신의 꿈을 이루실 거예요.” 아내는 늦은 밤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남편 곁에서 말없이 석유램프로 불을 비쳐주면서 격려했다.

그러던 어느날, 낡은 창고에서 연구에 몰두하던 그 젊은 기사는 기쁨에 넘쳐 아내를 끌어안으며 소리친다. “우리가 해냈어, 여보. 우리가 드디어 자동차를 만들어냈다고!” 그날 고요한 새벽거리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엔진 소리에 잠이 깬 동네 사람들은 모두 창밖을 내다보고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안개가 걷히지 않은 새벽 거리를 그 젊은 기사가 아내와 함께 네 개의 바퀴가 달린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바로 미국의 ‘포드 자동차회사’를 설립한 ‘헨리 포드’였다.

그가 노년이 되었을 때 “만약 당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 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아내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나도 상관없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힘든 시기에 큰 힘이 되어준 아내의 고마움은 평생의 가장 소중한 행복이며 재산이었다. 어려울 때 마다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서 새로운 힘을 얻고, 난관을 극복한 그의 영원한 힘의 근원은 바로 대화였던 것이다.

이 경우와는 달리 부부가 서로 섭섭한 마음에서 상처를 주고 받는 이유는 내 편에서 일방적으로 요구했던 일들이 채워지지 않을 때 생겨나게 된다. 행복한 부부들은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서로에게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주는 부부이다. 이 원리가 삶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부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것은 “이기적인 본성에 끌려가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할 것인가? 아니면 진실된 사랑의 법칙에 순응함으로써 먼저 사랑을 주면서 행복을 선물로 받을 것인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결단이다. 우리는 지금 바로 결단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비단 너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그리고 누구나 해야 하는 선택과 결정의 시간이다. 왜냐 하면 우리는 하나같이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그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필자도 한 평생, 모범적이며 단란한 가정생활을 영위하면서 살아오지는 못한 듯 싶다. 언제나 내 주장과 의견만을 내세우며 강압적으로 주입시키려 들었고, 괴팍한 성격을 무조건 아내가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서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심사숙고하지 않고, 경거망동하듯이 급하게 저지르고나서 후회하는 실수의 악순환이 거듭되는 삶이었다. 그러면서도 대화를 할 때는 귀찮아하면서, 성의 있는 답변이나 설명은 생략하려고 했다. 자연히 거리감이 생기게 되고, 그것이 쌓여가면서 아내에게 큰 상처와 앙금이 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경솔함이, 스스로 행복한 가정의 축을 무너뜨린다는 것을 깨닫는 데 수십년이 걸린 셈이다.

부부지간에도 대화의 요령과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덕목이라는 건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 주지의 사실이다. 모름지기 대화는 스스로를 깨우치고 발전시키는 배움의 과정이다. ‘베른트 피셰츠리더’는 말했다. “자기 이야기만 하면서 배울 수 있는 건 없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대화를 한다. 눈을 뜨고 있는 동안에는 싫든 좋든 숱하게 대화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는 한은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필수적이고 그들과의 소통을 위한 대화가 수반되는 것도 필연적인 인과이다.

대개는 힘들이지 않고 이런 저런 대화를 해나간다. 서로 필요한 부분을 이야기하거나 시사, 날씨, 취미 등 무난한 화제를 골라 형식적인 이야기를 이어가거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등 즐거운 대화를 해나갈 수 있다.

문제는 서로 다른 감정이 부딪치는 순간,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해야 하는 순간, 어떤 의견이나 주장을 주입시키거나 설득을 해야 하는 순간,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처럼 대화가 정말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당신은 어떤가? 부부간에 서로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칠 때, 상사가 바보같은 지시를 할 때, 뜻밖에 시누이나 처형의 짜증섞인 비난을 들을 때, 오랜만에 찾아온 동창이 보험에 들어달라고 요구할 때, 동료가 나에 대해 말도 안되는 비방을 담아 투서한 것을 알았을 때, 자녀가 몇 시간째 텔레비전만 보면서도 오히려 큰 소리 칠 때, 상대방의 과실이 분명한 추돌사고에서 오히려 상대방이 큰 소리로 길거리에서 드러누울 때, 당신은 과연 어떤 식으로 이 난감한 대화를 풀어나갈 것인가?

“말 잘하는 사람 보다는 잘 말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 있다. 대화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게 아니다. 두 사람 이상이 서로를 향하여 할 말들을 하고, 감정의 교류가 수반되면서도 마음이 상하거나 자존심을 다치지 말아야 한다. 즉 마음이 통해야 하는 것이다. 대화하고 나서 “내가 이겼어.”라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은 실패한 대화다.

진정한 대화는 너와 나의 입장이 만나 또 다른 나를 만드는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내 감정도 이해받을 수 있는 그런 대화 말이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이 무례하고 이기적이고 염치없기 때문에 불쾌한 대화가 되었다는 독선적이고 편협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자. 감정을 폭발시켜 활화산같은 분노를 쏟아버리거나, 차라리 침묵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충분한 대화를 통해 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나야 했는지 설명하고, 상대방의 입장도 들어주어야 한다.

침묵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해 미봉책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뒤에서 험담하며 비판한다고 하여 나아지는 건 단지 내 기분일 뿐, 사태는 개선되는 것이 전혀 없다. 우리는 정말 ‘대화가 필요한’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형식적인 대화를 나누는 피상적 관계로만 채워진 인생이라면 얼마나 우울하고 외롭겠는가!

예전에 ‘대화가 필요해’라는 개그 프로그램이 있었다. 세 식구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데 그동안 서로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없고 대화가 없었는지 드러내는 내용들이었던 것 같다. 이 코너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였다. 가족일수록, 부부일수록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고 이해를 해주는 진솔한 대화가 절실하게 부족한 것이 절박한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정말 ‘대화가 필요’하다.

물론 누구나 대화를 잘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매끄럽게 자기의 주장을 펼치는 연설가나, 논쟁 도중에 상대방의 기를, 말 몇 마디로 팍 꺾어놓는 이른바 독설가들을 보노라면 정말로 부러워지기까지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건만 누구나 대화를 하면서 살아가면서도 아무나 대화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대화를 잘 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평생의 숙제인 것도 역시 변치 않는 진리이다. 게다가 잠시 잠깐의 대화가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좀더 유리한 거래를 성사시켜야 하는 비즈니스에서도, 상대의 마음을 훔쳐야 하는 연애에서도 순간순간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대화의 기술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이끌 수 있는 대화 능력은, 결국 자신을 성공으로 이끄는 핵심 경쟁력이 된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옛 말도 있다. 대화를 잘하면 삶이 바뀌고, 삶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허기사 몇 가지의 포인트를 지적해주면서 방법을 제시했다고 해서 순식간에 대화의 기술이 는다거나 요령을 완벽하게 터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늘 대화의 중요성과, 스스로에게 대화의 방법을 각인시키면서 노력하는 자세를 견지한다면, 그렇게 부단한 담금질로 나아간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더 나은 대화의 귀재라는 평판을 언젠가는 받게 된다는 사실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핵심적인 몇 가지 사항을 짚어보자.

첫 번째로 ‘내가 옳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직 나 자신만의 결론과 주장에 몰두하여, 귀를 막고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너와 나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를 먼저 진심으로 이해하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우선은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들어야 내 말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로 감정이 소중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참거나 회피한다고 해서 감정까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감정의 원인은 자기 스스로에게 있다. 감정을 조율하고 감싸주는 노력이 대화 중에도 항상 필요하다. 그래서 대화 후에 어떤 앙금이나 후회나 미련 따위가 일절 남아있지 않게끔 조절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감정도 소중하다. 억지로 대답을 강요하거나, 강제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동원하여 억압적인 승낙을 유도하는 것은, 훗날 또 다른 간극과 분란의 불씨를 심어놓는 우매한 소치임을 명심해야 한다.

세 번째로 독설가들과 세상을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걸 인정하는 마음가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호시탐탐 나의 허점을 파고 들려고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고 험담을 즐기며, 이유없는 입방아질이나 헛소리를 생산해내는 공장이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언제나 하이에나같은 그들과 이 세상을 공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모든 평판이나 소문이 나를 겨누고 있다면, 나에게도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경우에는 피하려 하지 말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물론 근원지를 찾아서 결사적으로 논쟁을 하거나, 소문의 발원자를 추적하여 엄하게 단죄하라는 말이 아니다. 스스로가 원인 제공자임을 자각하게 되었다면 그 원인을 쿨하게 인정하고, 다시 스스로의 언행으로 보여줌으로써 잘못된 소문이었음을 모두에게 인지시키고, 오히려 더 좋은 원인을 제공하려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네 번째로 거절을 잘해야 인생이 편안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거절은 쉽지 않다. 그러나 거절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경우 상황에 따라 부드럽게 거절하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 또 하나의 탁월한 지혜이다. 거절의 기술이 전체 대화의 기술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거절을 할 때는 길게 변명하거나 부연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말자. 그것이 오히려 상대방의 기분을 더 상하게 만들 수도 있다. 가족간에도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거절이 또 다른 기회와 선택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어줄 수도 있다. 비단 무조건적인 허락이나 수긍만이 가족의 화목과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울러 전문가라 해서 주눅 들 필요는 없다는 것도 기억하자. 확실한 자신의 의견만 있으면 비단 조리있고 거창한 해설을 곁들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전달 될 수 있으니, 절대 망설이지 말고 당당하게 거절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끝으로 거절하기 어려우면 시간을 벌어야 한다. 무한정 시간을 끌라는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즉석에서 답변을 하기 정말 어려운 상황도 있다. 이 경우에는 무리수를 두어 억지로 신속한 답변을 내려 결론짓지 말고, 약간의 시간을 벌어서, 분위기를 극점으로부터 조금 끌어내린 후에 거절할 수 있는, 유연한 대처의 방법론도 권장할 만 하다.

연전에 필자는 지면을 통해 ‘3.2.1.법칙’에 대하여 기술한 적이 있다. 필자도 평소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다보니 대인관계가 굉장히 삭막해 졌었다. 본인은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이 나쁘거나 이해심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거였다. 그런데 가만히 자신을 살펴보니 실상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기 보다 자신의 말만 많이 하는 거였다.

그래서 만든 법칙이 ‘3.2.1. 법칙’이라고 했다. “3분 들어주고, 2분 맞장구치고, 1분 내말 하고.” 그랬더니 마음이 열려 대인관계가 좋아지는 거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대인관계는 물론, 사업도 더 잘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고백을 했었다.

비극은 3분 자기 말하고, 2분 비난하고, 1분 정도 겨우 들어주는 데서 시작한다. 그것을 반대로 하니까 세상이 달라지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연륜이 쌓여 조금은 여유롭고 느긋하게, 나보다는 남을 먼저 헤아리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이어야 함을 익히 알면서도 분위기에 젖고 감정에 열중하다보면 잠시 깜빡 잊게 되곤 한다.

뭐 꼭 위의 글처럼 3, 2, 1 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반, 또 반 만큼만 들어주고 말할 수 있다면 나이 먹어가면서 좋은 인간관계를 함에 있어서 그리 큰 어려움은 없을 듯 싶기도 하다.

경기가 나쁘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전처럼 흥청거리는 분위기가 많이 없어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연말을 불과 한 달여 앞둔 11월말인지라 누구나 좋은 모임의 자리가 한 둘 정도는 있을 듯 하다. 꼭 개인적인 인간관계가 아니라 하더라도 사람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또한 사회활동에 필요한 자기발전을 위해서도, 이러한 대화의 기술은 반드시 필요할 듯 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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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롱 -
어디에선지,
자지않고 목청껏 밤새 한마리
적막한 주위 고독한 채 울려주다

창살 사이론 누리 삼켜버린 어둠
검은 살 드러내고
하마 다가와있으며
다시 귀 기울이면 뚝 ! 그쳤다가
기이한 이명으로
귓속 파고드는 울림

결곡한 자세 그대로 그렇게
희끗한 머리 걸맞게 고비늙어 보기 좋은
무서리의 계절 앞두고
부화 위해서는 따라야 하는 고통,

어둠이 밝음 삼키는 건 필경 일시적이리니
이 밤만이라도
고결한 척, 거룩한 척은 말라

한꺼풀 벗겨놓으면
냄새나는 한움큼 불과한 몸뚱아리,
너무도 요란하여 외려 적적한
공간인지라
촌스럽게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땀

웽웽웽 -
어둠속 밤의 소리,
무수한 울부짖음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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