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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출판 예정 두번째 詩集의 제목입니다.

林森의 인생에 있어서 또다른 전환점이 되는 시기의 시작인
2008년 후반기부터 2010년 전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인 양
정말 많은 量의 詩를 짓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의 나날을 헤쳐나오면서
量産된 詩이니만큼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비감어린 내용과
칙칙한 파스텔톤 색깔의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의 방랑자 다운 林森의 詩心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우는 詩語의 조화가
오묘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는지라,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고
한 데 어울려 함께 눈물짓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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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 *



시작노트

" 풍경 " 詩作 note

바야흐로 한 해가 저문다. 목하 세모를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의미와 해묵은 진리의 얼굴로 다가선다. 한 해 동안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행적이, 기억이 새삼 파노라마처럼 세월의 흔적을 가슴 깊이 심어주고 있다.

얼마나 잘 살아냈는지, 어떻게 시간을 정복하고 조율하면서 주어진 삶을 알차게 메꾸었는지, 지나온 시간 시간들의 면면이 하나씩 스쳐지나간다. 울컥! 하고 뭔가가 치밀어오른다. 감동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미안하기도 한 그런 작은 감격들이 한 해의 일기장에 줄거리로 실린다.

그래, 이제는 정말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해야 하는 거다. 잘했든 못했든 지난 것은 덮어두자.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소망과 꿈의 사랑을 실어 또 다른 이야기들을 심기 시작하자.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숱한 숙제들이, 헤쳐나가야 할 난관들이, 어차피 해결되어져야 할 문제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가 예서 머뭇거릴 하등의 이유가 없다.

수레가 짐을 가득 싣고 길을 가고 있다. 서있는 빈 수레는 자리만 차지하는 수레지만, 짐을 싣고 가는 수레는 꿈을 싣는 수레가 된다. 사람은 사랑을 실어나르는 수레다. 그래서 사랑을 건네줄 또 다른 누군가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원할 때 이리저리 불려다니는 수레가 된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실어나를 짐을 찾지 못하면 쓸모없는 수레가 되고 만다.

미소로 위안을 주고, 좋은 대화 상대가 되어주고, 바쁠 때 작은 힘이 될 수 있고, 마음의 수레에 사랑을 가득 실어서 필요한 곳에 나눠준다면, 기쁨의 향기가 넘쳐흘러서 향기가 넘쳐나는 꽃수레가 된다. 따뜻한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은 그렇게 사랑을 실어나르는 꽃수레가 되는 것이다.

비단 연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저 두루 마음들이 분주하고, 웬지 모를 조바심과 불안감에 너나 할 것 없이 조급해지고 있는 이즈막, 과연 한 해를 어찌 마감할 것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되돌아 볼 것인가?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면, 조용히 자신과 마주앉아 올 한 해를 되짚어보며, 기억해야 할 일들을 다시 음미하면서, 차곡차곡 메모를 하는 걸로 송구영신의 준비를 해보는 것도, 진솔한 의미의 되새김에서 권장할 만 하다고 여겨진다.

지금은 집안의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그리고 밖에서 사회인으로서의 위치며 역할들에 대해, 한 해 동안 지내 온 일들을 잠시 숙연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여유도 필요하다. 우리는 늘 신년 계획은 거창하고 무성했었으나, 연말이면 되돌아보며 후회가 되는 일도, 반성해야 할 일들도 참으로 많이 남겨지는 것이 다반사이니, 아마도 그걸 인지상정이라 하는가 보다.

어찌 보면 언제나 반복되는 연중행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올 해는, 올 한 해 만큼이라도 후회나 반성을 하기보다, 참 잘했다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세모가 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봄직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고, 의욕을 다잡아, 있는 힘껏 완주하겠다는 각오의 울림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시점이다.

귀로 듣는 소리에는 그 자체에 힘이 있다. 소리만 들어도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으며, 그 소리에 사람의 몸은 반응을 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밤길을 걸어본 사람은, 주변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온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평안함을 주는 소리가 있으며, 듣기만 해도 불안해지는 소리가 있고, 때로는 미세한 소리가 생명을 살리기도 한다.

목소리는 사람 내면에 영적 상태가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시기하고 있으면 시기가, 저주하고 있으면 저주가, 사랑하고 있으면 사랑이, 또 행복해 하고 있으면 행복이 소리로 나타나는 것이다. 소리를 생각하자. 지금 내가 내는 소리가 어떤 소리인가를 생각한다면, 내 소리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고통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남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가 되돌아옴으로 해서 내 영혼을 평안하게 할 수 있는 행복의 시작인 것이다. 행복은 결코 멀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커다란 소리로 거대하게 울려나는 것은 아니다. 작은 일상에서, 소소한 주변에서, 소중하게 소담하게 숨어있는 행복을 캐내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 진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가 이행해야 하는 의무이며 책임인 것이다.

닦아야 할 유리창,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비록 허스름할지라도 그건 당신에게 집이 있다는 말이다. 매일 아침 만원버스로 힘들게 출근하고 있다면 그건 당신에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이다. 빨래를 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면 그건 당신에게 입을 옷이 그만큼 많다는 것일테고, 하루를 마칠 무렵, 온몸이 뻐근하고 피곤함을 느낀다면 그건 당신이 그만큼 오늘 하루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다.

어느날, 어머니를 한 번 업어보자. 어쩌면 너무 가벼워, 서글픔에 한 발짝조차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 그곳은 바로 당신의 집이다. 문득, 아버지의 옷을 한 번 털어보자. 무수히 헤쳤을 도시의 먼지가 눈물처럼 뚝뚝 떨어질지도 모른다.

장점에는 두 눈 크게 떠주는 대신, 단점에는 한 눈 슬쩍 감아버려 보자. 사실 행복한 가정은 우리가 삶에서 미리 누리는 천국이다. 무작정 헤어져버리자. 내 곁의 그들에게 상처주는 말들과, 무심코 내뱉는 나쁜 습관과는 오늘부터 단호하게 헤어져버리자.

가끔은 소심해지자. 나를 둘러싼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기뻐하는지 한 번, 꼼꼼하고 세세하게 헤아려보자. 옹기종기, 왁자지껄 좀 시끄럽고 비좁더라도 가족과 함께 있을 때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더 많은 행복을 느끼게 된다. 지금같은 연말에는, 지금처럼 무진장 추울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혹시 늘 내 곁에 있는 이들의 소중함에 무감각해져 있지는 않은가? 행여 너무 당연하게 생각되어 서로에게 무심하지는 않은가? 내가 있는 곳으로 당기기보다,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 사랑의 기본이라 생각한다.

세상은 당신이 보는대로, 느끼는대로 존재하게 마련이다. 어린 아이의 미소가 아름다운 건 당신 안에 동심이 있기 때문이다. 해맑은 아침햇살이 반가운 건 당신 안에 평화가 있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듣기 좋은 건 당신 안에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늘 감사한 건 당신 안에 겸손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당신이 바라보는대로, 당신이 느끼는대로 변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당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누구를 탓하고 누구에게 의지하겠는가? 오늘 마주친 사람들이 소중한 건 당신 안에 존경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삶이 늘 향기가 나는 건 당신 안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내 마음의 생김새대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한다. 혹여라도 누군가를, 또 무엇인가를 바라봄에 거슬림이 있다거나 분노가 일거든, 그 대상을 바라보던 시선을 내 안으로 끌어들여 보자. 반드시 내 안에 그 분노의 대상이 또 다른 나의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을 거다. 나를 끌어안고 사랑하자. 그 사랑으로 타인을 바라보자. 그 사랑이 나에게 무한의 에너지로 되돌아 올 것이다.

사랑과 행동은 정비례하는 것이 진리의 법칙이다. 갓난아이가 엄마에게 애정을 보이는 건 모유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따뜻한 신체 접촉 때문이라고 한다. 일상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를 느끼는 건 돈이나 물질적인 무엇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을 더불어 함께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마음 때문이다.

옷이 별로 없다면 헌 옷을 입으면 되고, 배가 고프면 물이라도 마시고 참을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오직 따뜻한 사람의 위안으로만 치유되는 것이다. 누군가 남몰래 가슴 아파하고 있다면 가만히 손을 잡아주자.

많이 아파하고 부족했던 우리가 이렇게 잘 자랄 수 있었던 건 차가운 우리의 손을 누군가가 따뜻하게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가슴을 보듬어주고,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더불어 함께 하는 따뜻한 마음은 언제나 내 마음과 당신의 마음 속에 있으니 숨어있는 그걸 찾아내자.

이제부터라도 가능한한 사랑하는 가족들과 스킨쉽을 많이 많이 하자. 말을 하기 보다 많이 들어주자. 외면하지 말고 따뜻한 시선을 고정시키자. 그게 바로 치유하는 마음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건강하면 나 또한 절로 건강해지는 법이다.

이제 시선을 가정으로부터 외부로 돌려보자. 우리는 정말 치열하게 처절하게 한 해를 살아왔다. 때로는 동료들과 거래처들과 이웃들과 서로 어울리고, 혹은 반목도 했지만, 그렇게 부대끼면서도 하루하루를 너끈히 살아냈다. 간혹 오해와 시기로 상대방과 얼굴 붉힌 적도 있었고, 모함과 분쟁으로 거리를 둔 적도 있었지만, 결국은 서로 화해하고 이해하면서, 다시 손 맞잡아 앞으로 나아가는 전진의 날들을 열심히 지내왔다.

필자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는, 어떤 모임이나 어떤 장소에 가든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는 사람이 한 명 있다. 특별히 잘생긴 외모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키가 크거나 유머감각이 뛰어난 편도 아니다. 하지만 몇 번의 만남에서 필자는 그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점을 한 가지 발견할 수 있었다.

필자가 느낀 그 사람의 특징 중에 하나는 말에 꿀을 발라서 한다는 점이다. 친절한 말투와 함께, 그 말에 상세하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고, 또 비유를 적절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 말은 딱딱하거나 누군가를 가르치는 식이 아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공감하는 것 같았다.

말은 인격을 나타내는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 당신이 참 근사하고 괜찮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딱딱하고 권위적인 말투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그와 반대되는 사람으로 판단할지도 모른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말에 대한 이 명언을 가슴에 새기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쓰는 당신이 되도록 노력하자. “부드러운 설득은 강한 위협보다 더 강하다.
전자는 사람을 녹이고 후자는 부수어 버릴 뿐이다.”

말하고 생각할 때마다 따스함이 느껴지는 단어가 하나 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이 단어가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올 때면 왠지 그 사람과 한층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에 푸근해진다. 난로 같은 훈훈함이 느껴지는 단어, 그 단어는 바로 ‘우리’라는 단어이다. 필자는 ‘나’, ‘너’라고 시작되는 말에서 보다 ‘우리’로 시작되는 말에 더 많은 애정을 느낀다.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 온전히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어깨와 어깨끼리, 가슴과 가슴끼리 맞대고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 세상에 나와 전혀 상관없는 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맑고 아름다워지리라 믿어본다. 필자는 잘 알고 있다. ‘나’, ‘너’라는 삭막한 말에 비한다면 ‘우리’라는 말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눈물겨운지를....

‘오늘’은 오늘로서 끝이다. ‘오늘’이 다시 돌아올 수는 없다. 수많은 ‘오늘’들이 모여서 우리의 삶을 이루지만, 그 ‘오늘’들은 모두가 다른 날들이다. 하나밖에 없는 가장 소중한 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이 날이다. 평생에 세 번 온다는 행운이 오는 날이, 첫사랑이 시작되는 날이, 훗날 후회하지 않으려면 무언가 시작해야 하는 날이, 열매를 거두기 위해 나무를 심어야 하는 날이, 보고 싶고 반가운 친구가 찾아오는 날이, 맺힌 것을 풀어야 하는 날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어쩌면 바로 ‘오늘’일지 모른다.

그러고보니 ‘오늘!’ 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연말의 날들이다. 오늘은 미래로 가는 길목이며, 평생을 좌우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오늘 하루를 시시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고,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성공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한 청년이 업무상으로 자주 들리던 회사에서 한 여사무원을 보면서 마음이 끌리어 흠모하게 되었다. 같은 사무실의 직원이 둘이 만나도록 도와주었다. 둘이서 만나던 날, 여자는 밝은 표정으로 남자를 만났지만 남자는 밝은 얼굴이 아니었다. 여자가 말을 걸면 겨우 대답하는 정도였고 데이트는 의미없이 끝났다.

실망한 그녀는 속히 잊을 수 있었지만 그 남자는 왠지 그 여자를 잊지 못해 하였다. 친구가 묻자 하는 말이 “나는 그 여자가 너무도 좋은데 나를 싫어 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생각 때문에 한 마디 말도 제대로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일을 낳고, 불행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불행이 뒤따르게 되어있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은, 평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희망을 갖는 자에게는 밝은 내일이 올 것이다.

조금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필자 나름의 연관성을 찾게 된다. 필자는 이상하게 직감같은 게 올 때가 있다. 예컨대 “왠지... 어쩌면...” 하는, 아주 작은 일상에서도 느껴지는 촉(觸)이다. 예를 들자면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왠지 지금 안전한 공간으로 옮겨 놓지 않으면 깨질 것 같아서.... 결과적으로 그거 틀림없이 깨진다. 떨어지든지, 부딪치든지, 하여튼 불안하다 느끼는 그 순간에 어떻게든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영락없다.

미루었던 것에 대한 후회를 꼭 하게 된다. 작은 일이야 까짓 것, 하고 웃어넘길 수 있지만 어떨 때는 미루었음으로 인한 대미지가 무척 클 때가 있다. 용기가 없어서일 때도, 시간이 촉박해서일 때도, 때론 게을러서 미루게 될 때도 있다.

하지만, 망설임이 단지 정지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삶을 도태시킨다면, 어쩌면 우린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많은 것을 미상불 잃게 될 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자. “Perhaps Today!”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잃어질 것들을.

침착하게 신중하게 묵은 해 마무리를 하고, 한 해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전환점이다. 자신을 살피면서 ‘Perhaps Today!’ 생업에 종사하는 가장들은 새 해의 설계를 더욱 더 잘 하고, 이 맘 때가 차라리 번잡하게 느껴질 주부들일지라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조촐한 연말파티 요리라도 준비하고, ‘Perhaps Today!’ 바로 오늘 해야 할 서로의 사랑은 내일로 미루지 말기를 바란다. 소중한 우리의 이 오늘은 새 해에도 다시 오지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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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하나,

항시
창문 열고 눈감으면
드넓은 추억의 모래밭 저 너머로부터 울컥
바다 달려들었고

풍경 둘,

언젠가
죄와벌에서 걸어나온 라스콜리니코프
빈자의 삶 형식 제시하면서
석양무렵 떼까마귀 장엄한 군무
회오리바람처럼 보여졌고

풍경 셋,

이내
해는 서쪽 하늘에 걸려
더 이상은 눈부실만큼 빛나지 않으며
새빨간 원으로 변하더니
붉은 빛 발하는 구름 덧칠하였고

풍경 넷,

이윽고
달빛 처연히 길 비추면
마치 그 길 가득
하얀 소금 흩뿌려놓은듯 장엄한 풍경
파노라마로 펼쳐졌고

하나, 둘, 셋, 넷,
풍경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이리라
해서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람은
더도 덜도 아닌
풍경의 일부분일 뿐,

삭막한 벽공 살벌한 진풍경 선사하면서도
하늘과 바다 변함없이 푸르기만 한데
풍경 늙어가 안개 자욱한 나의 시력
그렇게
서서히 저물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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