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출판 예정 두번째 詩集의 제목입니다.

林森의 인생에 있어서 또다른 전환점이 되는 시기의 시작인
2008년 후반기부터 2010년 전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인 양
정말 많은 量의 詩를 짓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의 나날을 헤쳐나오면서
量産된 詩이니만큼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비감어린 내용과
칙칙한 파스텔톤 색깔의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의 방랑자 다운 林森의 詩心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우는 詩語의 조화가
오묘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는지라,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고
한 데 어울려 함께 눈물짓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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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



시작노트

" 시간 " 詩作 note

이 시도 어쩐지 만만챦은 배경이 깔린 시 같다. 많이도 음습하고 무척이나 퇴폐적인 기운이 배어있는, 어쩌면 읽기조차 싫어지는 시다. 모름지기 시라고 하는 게 읽는 이들로 하여금 소망과 꿈을 실어주거나, 다정다감한 마음이 샘솟게 만들어주는 매력이 있어야 하는 건데. 아니면 금방 보고 나서도 또 보고 싶을 정도로, 다분히 사랑스러운 시어로 엮여져야 하는 건데, 필자의 시는 왜 대부분이 이렇게 칙칙하고 고뇌와 원한만 가득 가득 들어차 있는 겐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혼자 세상의 모든 고민을 다 짊어진 듯한 필자의 시풍은 아주 어렸던 시절부터 형성되었던 듯 싶다. 녹록치 않은 가정 환경과 살림살이로 어렵게 학교 공부를 마친 필자의 삶은 일찍부터 비교적 순탄치만은 않았다. 안정되고 미래가 보장된 학창시절을 보냈다기 보다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그날 그날을 생계와 학업을 병행하는 치열한 생존 경쟁의 시절을 살아왔다고 여겨진, 축복받지 못한 삶의 시작점이었다. 아마도 세파에 일찍 노출되었다고 할 수 있는 처지였던 것 같다.

그렇게 고통과 번민을 남보다 일찍 알게 되다 보니 생각이 많아지고, 돌파구나 피난처를 필요로 하는 생각의 탈출로는 자연스럽게 낙서나 넉두리의 되새김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버릇들이 모아지고 자라나더니 어느날부터 소위 시라고 하는 모듬체로 형성되어진 것이다. 어찌 보면 핑계일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게 굳어진 필자의 시풍은 반백 년을 지나, 회갑을 넘긴 이즈막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어두운 색깔의 시를 자아내는 오래된 버릇으로 굳어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어둠에 일찍 물든 시풍은 그 후 인생의 굴곡을 넘을 때 마다 여지 없이 어두운 시들을 양산해냈다. 오히려 밝고 흥겨운 시절에는 시를 짓지 못하다가, 버겁고 힘겨운 삶의 질곡에서는 쥐어짜듯 시들을 쏟아내곤 하니 이야말로 음침한 시의 향연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어쨌든 그렇게 필자의 시는 독자들에게 외면당하고 버려질 수 밖에 없는 길을 스스로 걸었다.

이 시도 정말 견디기 힘든 어떤 시절의 고백이었기에, 지금 되돌아보면 새삼 살 떨리는 기억이 새록이 되살아나 소름끼치지만, 아마도 다른 이들은 전혀 모르리라. 또 한심하게 그 타령이겠거니, 하고 코웃음 칠지 모를진대, 필자의 이 시절은 아득하고 암담했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 시절에 건진 것이 하나 있다면 필자 자신의 모습을 정말 철저하게 분석하고, 신랄하게 파헤치는 마음으로 되돌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의 본질과 근본적인 품성은 물론이고, 근원적인 미움과 사랑의 인과를 파헤치며 처절하게 반성하고 후회했던 어떤 시절의 이야기가 이 시로 표현되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진한 번민의 결과로 해답을 찾았다거나 방향을 잡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냥 그런 시기를 거치면서 훌쩍 자라난 자아가 또 다른 필자의 얼굴을 발견하는 횡재를 얻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인문학의 거장으로 불러도 무방한 ‘안하림’ 작가는, “고대부터 아니 어쩌면 태초부터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인간은 존재성을 느끼면서도 스스로 형상을 볼 수 없는 것에 안타까운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수선화’의 속명 ‘나르키수스’다. ‘그리스 신화’에 연못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의 아름다움에 반해 물 속에 빠져 목숨을 잃은 ‘나르시소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수선화는 ‘고결, 자만, 자아도취’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꽃말에서 알 수 있듯이 수선화는 거울에 빠져 사는 여인을 비교해도 무방할 것 같다. 자만한 것을 가리킨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수선화와 여인들의 거울 사랑은 어딘지 모르게 상관관계가 있는 듯 하다. 이렇듯 자기 얼굴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리고 그건, 생물학적으로도 확실한 근거가 있다.

눈을 통해 받아들이는 외부 시각 자극은 모두 뇌의 뒤쪽 부분에서 받아들이는데, 유일하게 얼굴만은 감정을 담당하는 측두엽에서 처리한다. 그래서 타인은 물론 자신의 얼굴이 다른 피사체에 비해 훨씬 더 큰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에서도 오직 자기 얼굴을 먼저 인식한다.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면서 하는 반응, 즉 감정적 반응이 극대화되는 것을 뜻한다.

이렇듯 지금 유행하고 있는 셀카도 어쩌면 기술과 융합한 자기인식인 동시에 관계적 욕구의 표현이다. SNS 열풍과 함께 셀카가 이제 생활 속 일상이 되어버린 셀카족(셀피)들이 많다. 세상은 문화와 함께 변화를 거듭하고 진보된 기술과 함께 셀카 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자칫 본질이 빠진 현상으로 왜곡되어 현상만을 사고 파는 물질 문명의 폐허가 확산될까 우려된다.

시작노트의 방향이 조금 다른 쪽으로 빠지는 듯 하긴 하지만, 물론 때마침 불고 있는, 인문학의 회귀 바람은 우리 시대가 지나치게 현상적으로 치우치는 것을 우려한 순리의 개입이 아닐 수 없다.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를 찾고 있는 인문학을 셀카라는 현상과 함께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들이는 사람이야말로 신인류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삶 곳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어깨 위에 나의 짐이 아닌 것을 올려놓으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럴 때 선을 긋고 짐을 받지 않겠다는 단호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단호해진다는 것은 불친절하고 비인간적이며, 제 잘못도 모르는 뻔뻔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판단이 들 때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안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떤 때는 미움받을 각오를 해서라도 단호해져야 한다. 원하지 않을 일을 하면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단호할 때 우리는 문제에 충실하면서 우리 자신과 권리를 지킬 수 있다. 소극적일 때는 문제를 회피하며 자신을 잘못된 방향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반면에 공격적일 때는 남을 비판하며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릴지도 모른다. 단호한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이 대화의 단절이나 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대화와 교류의 본질을 내포하고 있다면, 우리의 대인관계가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흘러야 할까? 또한 우리의 태도와 처세의 바람직한 방향은 어디일까? 이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조지프 게이브 소니어(Joseph Gabe Sonnier)’는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포트베어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이다. 매일 아침 등교길의 아이들을 맞는 그는 이곳에서 33년 째 재직 중이다. 사실 1982년 이 학교에서 그가 맡은 첫 직업은 청소부였다. 고교 졸업 후 아버지가 평생을 해오신 일을 물려받게 된 것이다. 그러던 1985년 어느 날, 당시 교장 선생님이 그를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청소부는 정직한 직업이지. 그러나 난 자네의 무한한 잠재력을 믿네.
시험지를 줍기 보다는, 채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보네.”

그리고 15년이 흘렀지만 조지프는 이 운명적인 조언을 잊지 않고 있었다. 서른 아홉 살의 나이에 조지프는 ‘루이지애나 대학교’에 입학한다. 청소부로 돈을 벌면서, 동시에 공부를 하는 스케쥴은 끔직한 일이었다. 오전 5시부터 7시까지는 학교 청소를 하고 대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은 후, 다시 학교로 돌아와 청소 및 잡일을 하며 1일 8시간 근무를 채워야 했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부족한 공부를 보충해야 했다.

2008년 조지프는 드디어 교육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자신이 청소했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된다. 그리고 2013년 11월, 그는 자신이 청소했던 이 학교의 교장이 된다.
그가 매일 아침에 맞는 아이들의 부모들은 그가 젊은 시절 교실청소를 해주었던 그 아이들이었다. 조지프 게이브 소니어 교장은 말한다. “누군가의 잠재력을 믿는다면, 말해주세요. 중요한 것은 어디서 시작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끝내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정하여 틀을 만들어놓고 가두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지적하기 전에 미리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껴서, 도전조차 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겸손이나 양보를 미덕으로 하는 삶의 자세라고 여기면서 우유부단한 성격과 흐리멍텅한 의지를 합리화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요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의지력과 목표의식이 뚜렷한 삶의 태도가 바로 확실한 미래를 약속하는 보증수표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삶의 열쇠다.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자신과 대화를 할 때가 있다. 지금 잘 하고 있는 건가? 오늘의 삶이 정말 최선이었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이, 자신의 평소 인상이 분위기를 좋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건가? 거울을 보면서 묻고 답한다. 결코 만족할 만한 답은 얻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하루의 삶을 반성해보고, 내일의 삶을 계획할 수 있어서 좋다.

우리가 즐겨 쓰는 “첫 인상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은 남녀관계에서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직장에서도 첫 인상이 좋은 사람은 커피라도 한 잔 뽑아주고 싶지만, 첫 인상이 나쁜 사람은 이유 없이 거리감이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바라는 대로, 첫 만남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면 다음의 10가지를 기억해 보면 어떨까?

우선은 ‘적절한 옷의 힘’을 신경 써야 한다. 옷은 만남의 TPO(시간 장소 목적)에 맞게 입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너무 차려입는 옷차림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음으로 신경 쓸 일은 ‘눈맞춤의 힘’이다.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상대방의 눈을 보며 대화해야 한다. 눈과 눈을 마주보는 것이 글로벌 에티켓임을 명심하자.

그 다음이 바로 ‘악수의 힘’이다. 만났을 때와 헤어질 때 악수를 하자. 그리고 그 악수에 힘을 실어야 한다. 손 끝을 대충 잡고 흔드는 일은 금물이다. ‘미소의 힘’도 잊어서는 안된다. 악수 하고 손을 잡을 때 마다 우리는 미소를 지어야 한다. 한국인은 알고 보면 정말 친절하고 따뜻한데 첫 인상은 무섭다고 외국인들은 말한다. 절대 비웃는 듯한 느낌은 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또 신경 쓸 일이 ‘향기의 힘’이다. 나만의 향으로 인상을 남겨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짙은 화장과 마찬가지로 너무 진한 향은 거부감의 대상이다. 하지만 체취와 잘 녹아든 은은한 향기는 남녀를 불문하고 한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듣기의 힘’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말하기보다 더 많이 들어야 한다. 자기 얘기를 잘 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반면,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이는 갈수록 줄고 있다.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기본점수는 따게 된다.

그리고는 ‘자연스러움의 힘’이다. 자신의 참모습을 보여주며 언행을 편하게 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관심의 힘’도 기억할 일이다. 상대의 일과 취미 등에 대해 물어본다. 관심사에 대해서 묻는 순간 서로간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마법의 타임이 온다. 상대적으로 ‘모름의 힘’도 또한 중요하다. 아는 체 하기보다 모르는 척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PR시대라지만 여전히 겸손은 미덕이다. 혼자 다 아는 척 하지 말고 상대방에게 협조를 구하듯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신경 써야 할 것이 ‘전념의 힘’이다. 대화할 때는 전적으로 상대에게 전념해야 한다. 이야기하면서 시계를 보거나, 다리를 덜덜 떨거나, 창 밖에만 시선을 둔다면 상대를 무시하는 인상을 준다. 딴 짓하지 말고 대화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무척 중요하다. 만일 이러한 몇 가지의 필요사항들을 숙지하고 착실하게 이행하면서 대인관계에 임한다면 반드시 그 사람은 성공한 대화를 만들어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누구나 사랑의 밭이 마련되어 있다. 이 밭은 사랑으로만 가꾸어지는 밭이다. 사랑해서 가꾸면 기름진 옥토의 밭이 되지만, 좀 소홀히 하고 사랑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잡초가 무성히 자라서 황무지로 변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랑이라는 마음의 밭에 대해 오해를 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 사랑의 밭을 황폐하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사랑의 밭이 타인의 사랑을 받음으로서만 가꿀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의 마음의 밭은 타인의 사랑에 의해서 가꾸어지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스스로가 사랑함으로서 더 기름지게 가꿀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된다. 진정한 사랑은 받는 사랑이 아니라 주는 사랑이고, 사랑의 행복감은 받을 때보다 줄 때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스런 사람들, 그 사람들은 자녀들이 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자기만의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있음으로서 자기 자신이 있고, 그 사람이 있음으로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그 사람이 떠나고 난 뒤에야 느낀다면 참 마음 아픈 일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준다는 것과 받는다는 것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사랑으로 서로가 서로를 채워가는 과정이기에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마음을 소중하게 가꾸어가는 사람에게 새삼스럽게 사랑의 일을 말한다는 건 필요 없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자칫하면 잊기 쉬운 것이 가장 기본적인 마음이다. 그리고 그 기본을 이루고 있는 것이 사랑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야 말로 우리의 참 모습을 찾아가는 지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을 통한 자신의 발견이야 말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첫 걸음이다.

‘비가 그렇게 내리고 눈이 그렇게 내리고 또, 강물이 그렇게 흘러가도 바다가 넘치지 않는 건
물고기들이 먹어서이겠지.’ 어느 초등학생의 동시다. 보통의 어른들은 생각을 복잡하게 하고 행동을 이익에 맞춰 하게 되며, 치우친 생각으로 판단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아이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며 판단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생각나지 않던 것이 생각나며, 판단할 수 없던 것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에디슨’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은 바로 어린아이의 마음이다.” 라고 말했다.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고, 거울에서조차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필자같이 어리석은 어른들에게 가르쳐야 할, 현재를 살아가는 가장 바람직한 마음가짐이 바로 동심의 눈이다. 어린 아이의 마음이다.

- 2023년 4월 13일에 열어봐! 발신인 테일러 스미스, 수신인 테일러 스미스 “오늘 기도는 했어? 비행기는 타 봤니? 다른 나라엔 가 봤어? 닥터 후는 아직도 TV에서 방영해? - 중략 -
내가 지금 이 편지를 쓰고 나서 10년이 지났다는 거 알지? 살다 보면 좋고 나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야. 그게 삶의 이치이고, 넌 그저 거기에 맞춰 살아야 해. 넌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그럼 안녕, 테일러 스미스가.” -

미국 ‘테네시 주 존슨 시티’에 살던 12세 ‘테일러’는 그렇게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 궁금한 것도 많고, 20대가 돼서 10대인 자신에게 조언도 많이 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나 소녀는 결국 편지를 보지 못하게 된다. 소녀가 편지를 쓰고 1년이 지나 급성 폐렴으로 너무도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삶을 살다 간 딸의 존재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부모님이 발견한 편지를 인터넷에 공개했다. 편지는 많은 사람의 눈시울을 적셨고, 감동을 주었다.

오늘은 10년 뒤 자신에게 편지를 한 번 써보자. 10년 후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지만, 10년 뒤 자신에게 편지를 쓸 때만큼은 가장 확신에 차 있고, 희망에 부풀어 있을 것이다. 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희망을 줄 수 있다. 흐르는 시간에 잠식당하지 않고, 그 시간을 정복하여 소망과 꿈의 내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우리의 삶으로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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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어
창 밖 밤비 그친지도 오래
그걸 바라보고 있는지도 그 보다 오래
이 자세로, 어둠 속에
어둠과 하나된지도 그 보다 더 오래
더 더 오래

여긴 어디일까 ?
뿌우연 바다속처럼 낯설어진 이 방
정지된 시간
본래 시간이란 없어, 시간은 애초 존재하지 않아
다만 네가 시간은 있는 거라 우기는 거지
시간 가두기 위해 시계 만들더니
나중엔 수갑도 만들어내고

죄 지은 자는 시간으로 죗값 치르게 하고
죄 없는 자는 시간 팔아 밥벌이 시킨다면서
가소롭게도, 너는

거대하고 더러운 벌레 배 밑에 깔린 듯
어둠 속에서 몸 뒤척인다
그것은 시간이라는 이름의 벌레야
기다리면.... 정말,
더럽게 안가는 게 시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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