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출판 예정 두번째 詩集의 제목입니다.

林森의 인생에 있어서 또다른 전환점이 되는 시기의 시작인
2008년 후반기부터 2010년 전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인 양
정말 많은 量의 詩를 짓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의 나날을 헤쳐나오면서
量産된 詩이니만큼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비감어린 내용과
칙칙한 파스텔톤 색깔의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의 방랑자 다운 林森의 詩心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우는 詩語의 조화가
오묘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는지라,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고
한 데 어울려 함께 눈물짓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 ]

위로 이동

* 시간 속 시간 *



시작노트

" 시간 속 시간 " 詩作 note

청마의 해가 열리면서, 지난 해의 갈무리와 더불어 호기롭게 새 해의 계획을 세우고 소망을 장만하느라고 제법 호들갑을 떨던 것이 엊그제같은데 우왕좌왕 하다보니 벌써 한 달 이상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정말 빠른 것이 시간이다.
어느날은 아침부터 밤까지의 하루 해가 너무도 빨라 갈피를 잡을 수도 없다.
늘상 반복되는 일상임에도 때로는 유별나게 시간의 종적을 따라잡기가 힘들 정도이다.
그렇게 유난히도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느껴지는 날에는 나이를 먹어가는 게 보여지고, 세월처럼 덧없는 삶의 뒤안길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아 자못 심란하기까지 하다.
모름지기 시간은 우리의 기분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는 요물인가보다.
세상이 시작되면서부터 있었고 영원까지 그침없이 존재할 것이 시간이다.
언제나 시간은 있었고 지금도 열심히 흐르고 있으며, 훗날에도 쉬지 않고 길을 갈 것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주어지고 그래서 누구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결코 시간은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은 누군가가 마음 먹는대로 줄을 서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시간이 시간 자체의 임의대로 자유롭게 이어져가는 것이다.
그렇다, 시간은 내 속에 있지 않다, 바로 내가 시간 속에 있다.
시간은 사람들의 삶을 만들어주고 생명의 끈을 이어주는 대의의 존재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어지는 시간 중에 행복과 불행이 교차되고, 기쁨과 슬픔이 엇갈려 지나가며, 삶과 죽음이 희노애락을 담은 채 꾸준히 줄지어 흐르고 있다.

어느 방송에서 공감온도 100도C에 출연한 시각장애인 교사가 “인생에 있어서 막다른 길은 또 다른 길을 위한 과정” 이라는 강연을 하여 감동을 준 적이 있다.
비록 현재 오르막길이라고 하더라도 계속 오를 수만은 없고, 지금 내리막길에 서있다고 해서 인생이 완전히 막장에 다다른 것은 아니다.
모든 인생의 시간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다.
오르막에서는 조급함을 버리고 겸손하게, 내리막에서는 더 큰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힘차게 걸어야 한다.
흔히 사람들은 넘어지면 무너지려 하고, 무너지면 부서지는 줄로 알고 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보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넘어졌을 때 아픔을 참고 일어서면 또 다른 세상의 시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희망은 내가 일어나서 발견해야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삶에서 쓰리고 아픈 경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고통스런 시간이지만 사람은 인생의 내리막도 경험해봐야 한다.
넘어졌을 때 사람의 진면목이 나타난다.
넘어지는 순간 한 번에 무너져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 새롭게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결코 내리막을 두려워 하지 말자.
넘어져봐야 비로서 다시 일어서는 기쁨도 알 수 있다.
삶은 주어지는 것이지만 인생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리막에서 인내하고 기다리며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최후의 승리와 영광이 주어질 것이다.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다’는 말이나 ‘아무리 급해도 바늘 몸통에 실을 매달아 바느질을 할 수는 없다’는 말은 바로, 시간을 거스르지 않고 순리대로 세상의 이치에 적응하는 삶의 자세를 촉구하는, 선조의 지혜가 담긴 속담들이다.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시간의 낭비를 가장 엄격하게 경계하며 시간이 주는 혜택을 충분히 누리는 삶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지녀야 할 대표적인 덕목 중의 하나로 인내나 기다림 못지 않게 생각할 것이 끈기, 즉 꾸준함의 자세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오늘 제군들에게 가장 간단한 동작 하나를 제안하겠다. 자 ! 이렇게 팔을 들었다가 힘껏 뒤로 뿌리는 거다.”
그가 시범동작을 해보이고 나서 제자들에게 물었다.
“제군들은 이 동작을 매일 3백회 이상을 할 수 있겠는가 ?”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하나같이 웃으며 대답했다.
“까짓거 뭐 어려울 게 있다고 ?”
그로부터 한 달 뒤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팔 뿌리는 동작을 날마다 3백회 이상 한 사람 손을 들어보게.”
그러자 대부분의 제자들이 손을 들었다.
또 한 달이 지나서 물었을 때는 약 70퍼센트의 제자들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다른 바쁜 일들과 학습이 쉬임없이 이어지고 스승도 제자도 그 일에 대해서 더 이상은 거론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이 흐른 뒤 소크라테스는 불쑥 다시 같은 질문을 했고 그 많은 제자들 중에서 단 한 명만 손을 들었는데 그가 바로 훗날 명성을 떨친 철학자 ‘플라톤’이었다.
시간은 우리에게 망각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망각보다도 더 위험한 시간의 산물이 게으름과 타성이다.
초지일관하지 못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태만해지는 삶의 습관과, 그 자체조차도 잊어버리고 마는 천성적인 이기심과 합리화가 삶을 망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69번 버스가 교통사고를 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탑승객들은 모두 불시에 당한 사고로 피해를 입은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억울해 하는 세 부류의 승객들이 있다고 한다.
첫 번 째는 이미 출발한 버스를 죽을 힘을 다해 뛰어가서 겨우 멈추게 하고 부랴부랴 승차했던 승객이고, 두 번째는 전 정류장에서 하차해야 하는데 깜빡 졸다가 미처 못내리고 있던 승객이며, 세 번째는 69번을 96번으로 번호를 착각해서 잘못 승차한 승객이란다.
어찌보면 하찮은 유머에 불과한 이야기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삶이란 것이 본래 그렇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올바른 길이라 여겨 최선을 다해보지만 결과는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흐를 때가 있고, 어떤 일을 하다가 미처 주어진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여 지나치게 된 이후에 깨달아 후회하는 일도 다반사이며, 생각이나 판단을 잘못하거나 선택이 그릇되어 본의 아니게 엉뚱한 결론을 만들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것이 바로 삶의 모습이다.
이 모든 것들이 이미 지나친 시간에 대한 미련만 진하게 남길 뿐이며, 아무리 반성과 회한이 사무친다 하여도 돌이킬 수는 없는 세상사인 것이다.
요는 이러한 성공과 실패가 수시로 교차되면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삶의 모습을 정립시킬 마음의 자세가 확고하게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예전 우리나라의 뼈아픈 과거사 중 하나인 한국전쟁 당시에 산속의 굴에 숨어서 인민군의 추적을 피한 구사일생의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증언에 따르면 미처 피난을 떠나지 못하고 인민군에게 마을이 점령당하게 되자 밤을 틈타서 뒷산으로 올랐는데, 끈질긴 추적이 시작되었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어느 굴 속으로 몸을 숨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포위망을 좁혀온 인민군들의 발자국 소리가 가깝게 들려오기 시작했고,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굴 속의 그들은 모두 부둥켜안고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마침내 굴 밖에까지 도달한 인민군이 굴 속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하나같이 벌벌 떨면서 숨을 죽이고 있던 순간에 갑자기 굴 천장에서 커다란 거미 한 마리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굴 입구 쪽에는 거미줄이 쳐졌고 들어오려던 인민군 중에 한 명이 거미줄을 걷어내며 인상을 쓰면서 말을 했다.
“이렇게 거미줄이 지독한 걸 보면 이리로는 사람이 들어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기적이 일어났고 인민군은 돌아갔으며, 그로 인해서 10여명의 마을 사람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일촉즉발의 순간에 자연의 힘으로 살아난 경우이지만, 무엇보다도 조금만 늦었으면 이루어지지 못할 기적의 완성이라는 면에서 시간의 오묘한 조화가 느껴지는 예이다.

우리가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표현하는 이른바 ‘적시’의 상황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시간의 가르침이다.
‘고토 부케’라고 하는 일본의 어부가 있었다.
몇 년전 일본을 초토화시킨 대재앙 쓰나미가 밀려왔을 때의 이야기이다.
진원지에서 멀지 않은 바닷가에서 거주하고 있던 그 어부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바람이 심해지며 물결이 요동치기 시작하자 대자연의 경고를 조짐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대피를 촉구하는 긴급 방송이 이어지기 시작하였다.
모두들 정신 못차리고 조금이라도 높은 곳으로 피하기 위해 허둥대기 시작할 때 그는 가족들을 이끌고 배에 올랐다.
그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배를 몰고 바다로 나아갔다.
가장 깊은 곳이 가장 안전하다는 그의 신념을 믿고 온 가족이 합심하여 조금이라도 바다 가운데로 나가려고 애를 썼다.
세찬 물결에 배가 거꾸로 떠밀리려 했지만 노련한 어부인 그는 그 와중에도 쉬지 않고 기를 쓰며 조금이라도 더 바다 쪽으로 배를 몰았다.
그렇게 얼마동안 끈질긴 사투를 벌이다가 이윽고 바다가 조금 잠잠해지고 파도가 낮아지자 기진맥진해진 그는 다시 천천히 뭍으로 배를 틀었다.
한참 뒤 해안에 도달한 그는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온 도시가 물에 잠기고, 산허리에 큰 배가 동강난 채 걸려있는 것이었다.
끔찍한 쓰나미의 마수가 세상을 뒤집어버려 흉측한 폐허를 만들어놓고 말았던 것이다.
그가 죽을 힘을 다해 배를 몰고 있던 그 시간에, 이미 그를 지나쳐가면서 더욱 거대한 물살로 변한 쓰나미는 순식간에 해안가를 휩쓸어버렸다.
우리는 ‘태풍의 눈’이라는 표현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안다.
험하고 세찬 태풍의 한 가운데에는 고요하고 잠잠한 기압골이 잠자듯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곳을 그렇게 부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변화무쌍한 시간의 흐름에는 태풍의 눈이 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언제나 우리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시간은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중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적극적이며 진취적인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진솔하고 일관된 삶의 자세로 시간을 존중하며 아낄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최후의 결실을 맛볼 수 있는 선택받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기록하고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는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으며, 그 시계가 바로 우리 삶의 시간을 헤아리게 해주는 척도이다.
우리 삶의 시계는 쉬지 않고 흐르다가 어느 순간 단 한 번 수명을 다해서 멈추게 되지만 언제 어느 시간에 멈출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시간이 바로 내 시간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랑하며 수고하며 열심히 살아가지만, 이 시간이 내일까지 변함없이 주어지고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믿지는 말아야 한다.
그 때는 이미 시계가 멈춰 서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떠날 때 우리는 시간이라는 모래밭에 남겨놓아야 하는 발자국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인생에서 정녕 중요한 것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다.
꿈을 잃지 않고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것을 실현할 때가 올 것이다.
그것이 시간이 우리에게 베푸는 공평한 호의이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어떤 꿈을 가지고 있다면 기회를 사용하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나 곤경에 처해 있더라도 절대 당황하지 말자.
사방이 다 막혀도 위쪽은 언제나 뚫려있으니 하늘을 바라보면 새 희망이 생겨난다는 진리를 가슴에 반드시 심어놓자.
기왕지사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는 없지만, 우리의 젊음은 마음의 상태이지 직접적인 나이의 문제가 아님을 명심하자.
매력은 눈을 놀라게 하지만, 미덕은 영혼을 사로잡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렇게 시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습관을 최대한 유지하고 다스리도록 하자.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지만, 다른 사람한테 던진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베품의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이 시간의 순리와 더불어 삶을 사는 지혜이다.
먹을 마음이 원래부터 없는 사람은 바보이지만, 가진 마음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성인이라고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며 자신을 다독이는 마음으로 남을 다독거려야 할 것이라 여긴다.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가고 있다.
시간은 매사에 멈추는 법도, 또 더디게 흘러가는 법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을 저축하거나 남에게 빌릴 수도 없다.
또한 시간은 우리에게 무한정 베풀어지는 것도 아니다.
길어야 고작 8,90년의 삶을 우리들은 살고 있다.
과연 지금 우리의 삶 중에서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
참으로 두려운 게 시간이다.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게 태양이지만 우리에게 무한정 기약돼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시간은 바로 우리의 생명인 것이다.
그 귀한 생명을 지금 우리는 어떻게 쓰고 있는가 ?
이 지구상에 발 딛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 어느 누구도 인연적으로 무관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끔 해볼 때가 있다.
한 시대에 태어나 같이 살아간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주위 사람들을 너무 소홀히 대하지는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아주 커다란 인연의 끈으로 만난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못함을 스스로 꾸짖는 것이다.
‘빌 오히언’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참으로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 특히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마다 많은 에너지를 얻게 된다. 또한 거기서 받은 에너지의 일부를 다른 누군가에게 제공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서로 어깨를 기대고 체온을 나누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사람의 손이 따스한 체온을 나누며, 서로 깍지를 끼고 살아가라고 다섯손가락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말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우리 삶에서 단 하루만 주어지는 소중한 시간이다.
이 소중한 시간에 인생의 가장 소중한 삶을 살아야할 책임과 의무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오늘의 과제이다.
아마도 최선을 다해 우리가 답을 해야 할, 시간이 주는 엄숙한 질문일 것이다.


" 시간 속 시간 " 詩作 note 닫기
 | 배경이미지 새로적용  | |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풋풋한 사람냄새 나는데
겉 밋밋하다면 그 땐
지체없이 감정은
이성 종살이하러 출장간다

묵은 시간찌꺼기 소멸되어
내 남 할 것 없이
목전의 일에만 급급하고,
시원의 정적 무심히 걷는동안이니

낡고 남루한 기운 절로 스러지며
시간성으로부터 차별 애매하지만

다카르 모래언덕
죽음의 랠리에서도 너끈히 살아나와
하얀 속살 눈부시게 내놓은 채
바람이 불어오고

천진한 동심 지닌 도인마음으로
녹차향기 통해 기억 회상하며
어린 시절은 프루스트현상 되어
이렇게 뒤늦게 찾아온다

나 가로막는 이 시공의 벽
무한인가, 유한인가 ?

무질서와 혼돈의 와중에서
종내에는 없어져가는 무(無)의 존재
그 자체일 뿐인데,
감은 눈으론 씁쓸한 인과응보

욕망서린 시선 사정없이 엇갈리는
황량한 사막에선
시간 속 시간의 만남과 이별
영구히 반복된다

 | 배경이미지 새로적용  | | 글자 크게 글자 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