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출판 예정 두번째 詩集의 제목입니다.

林森의 인생에 있어서 또다른 전환점이 되는 시기의 시작인
2008년 후반기부터 2010년 전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인 양
정말 많은 量의 詩를 짓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의 나날을 헤쳐나오면서
量産된 詩이니만큼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비감어린 내용과
칙칙한 파스텔톤 색깔의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의 방랑자 다운 林森의 詩心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우는 詩語의 조화가
오묘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는지라,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고
한 데 어울려 함께 눈물짓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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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닮이 *



시작노트

" 비 닮이 " 詩作 note

올 장마는 다른 해보다 유난히 폭우도 많고 요란할 거라던 일기예보가 무색하다. 몇 번 오르락 내리락 하는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에는 비다운 비 한 번 뿌리지 않고 누리 태우면서, 뙤양볕으로 마른장마를 표방하고 섰다. 이대로 가다가는 또 비구경하기 힘든 장마로, 갈라지는 농촌의 논과 밭을 속절없이 바라보아야 하는 경우가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속단할 일은 아니지만 괜시리 겁이 난다.

입이 방정이라고 혹여 필자의 섣부른 예언이 그대로 현실이 될까봐 더 이상은 이어가지 않겠다. 그냥 바라건대, 장마는 장마다워야 하는 것이니 이제라도 시원스레 빗줄기가 가슴 속까지쏟아져 내렸으면 좋겠다. 단, 필요 이상의 폭우로 재해를 유발하는 사태는 사절이다. 그저 세상 좋을 만큼만 적당히 내려주길 바랄 뿐이다. 너무 이기적인 건가? 아무튼 세상이 편안하고, 시절이 풍요롭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어디 필자만의 바람이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이런 저런 사건 사고들로 세상이 어지러운 마당인데, 날씨라도 좀 도움을 준다면 하늘의 복에 감사하는 마음이 무럭무럭 샘 솟을테니 말이다. 서로 돕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우리네 인심이 마침내 하늘에 닿아졌다는 소박한 믿음에, 제법 푸근한 나날들을 살아갈 수 있으니, 이야말로 순리가 아니고 무엇일까? 비님이시여! 제발 메마른 대지에, 흉흉한 세속에, 흠뻑 축복의 손길을 내려보내 주시게나.

어려서부터 유난히도 비를 좋아했던 필자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망연하게 처마 끝을 바라보며, 세상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비를 닮고 싶어 했다. 자유롭고 무한한, 넉넉하면서도 부족하지 않은 비의 마음을 닮고 싶었고, 언제나 제한 없이, 속박 없이, 제목을 정하는 비의 언어를 표현하고 싶었다. 비를 타고 거슬러 올라 세상 어디에라도 다다르고 싶었으며, 하늘로 하늘로 생각의 지경을 넓히고 싶었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비를 참 많이도 기다렸다.

그러다가 비가 마침내 내리기 시작하면 펄쩍거리며 온 마을을 쏘다니곤 했다. 우산도 필요 없고, 어떤 가림막도 원칠 않았다. 그냥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내닫곤 했다. 어이없어 하시면서도 할머니께서 눈웃음으로 호통을 치시던 시절이 생각난다. “저 놈의 귀신은 도대체 뭐가 덧씌워서 비만 내리면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저리도 밖으로 쏘다니는 겐지 알다가도 모를 일일세, 그려. 저러다가 고뿔이라도 들까 겁나는데, 어째 홀딱 젖어 돌아치면서 춥지도 않을까?”

비가 유별나게 많이 내리던 여름밤에 태어나서 그런 건가? 그래서 비를 머금은 여름신이 풍성하게 강령하신 건가? 어쨌든 학교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시작된 필자의 ‘비 사랑’은 인근에서는 모를 사람이 없었을 정도였다. 그렇게 비를 사랑하는 습관은 차츰 밖에서 안으로 행동반경이 바뀌면서 무언가를 끄적이는 버릇으로 변모하게 되었고, 이내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그림과 낙서 따위의, 비를 천하에 드러내고 싶은 욕구로 탈바꿈되었다. 그리고는 이내 비를 이름으로 하는 많은 시들을 짓기에 이른다.

크고 작음의 차이는 다소간 있겠지만 그래도, 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추억과 사연을 일깨워주는 보고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물론 눈이나 낙엽, 봄꽃 등의 다른 자연 현상에도 무수한 이야기들이 주저리 주저리 열려있지만, 그래도 그것들을 다 더한 것 보다도 더 많은 상념들이 우리의 삶에서 비를 타고 영근다. 아마도 그래서 비는 그저 하늘에서 내리는 물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적셔주는 낭만과 감성의 시작이요, 사랑과 이별의 꼭지점인 셈이다.

본격적으로 비에 관한 탐구를 시작해보자. 비를 일컫는 순 우리말을 나열해보면 무려 쉰 가지가 넘는다. 내리는 비의 양이 많고 적음이나, 계절에 따른 분류, 혹은 비가 내리는 모양새 등에 따라서 많은 다른 이름들로 불려지기 때문에, 실상 그 뜻을 올바로 헤아리기조차 버겁다. 겨울을 대표하는 눈의 이름들이 기껏해야 ‘함박눈, 싸락눈, 가루눈, 진눈깨비’ 등 네 가지 정도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그 중에서 신선한 이름 몇 가지를 찾아보면, 시골에서는 여름에 별로 바쁘지 않기 때문에 비가 오면 낮잠을 자기 좋다 하여 여름 한낮에 내리는 비를 ‘잠비’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처럼 장마가 시작되었는데도 비가 한 번에 시원스레 내리지를 않고, 오다가 개고, 개었다가 다시 내리고 하면서 찔끔거리는 장마를 ‘건들장마’라고 부르며, 그런 비를 ‘오란비’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한 방울 한 방울씩, 비가 시작될 때 몇 방울 떨어지는 비를 ‘비꽃’이라고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발음들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 많은 비들을 종류별로 세밀하게 바라보고 싶어 한다. 그리고 더 세세하게 묘사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비의 종류와 명칭들에 꽤나 관심을 기울인다. 직업병이다. 어쨌거나 기다리고 원하는 비일지라도 너무 오래 내린다거나,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습한 날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오히려 기분이 상하거나 짜증을 내기도 한다. 불쾌지수가 급상승하여 서로 걸핏하면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마치 여름에 겨울을 기다리고, 겨울에는 여름을 동경하는 얄팍한 인간적 본성이 무의식 중에 현실에 깊이 깃들어있기 때문이리라. 우리의 나날들이 한결같지 않고 늘 변화무쌍한 것도 이런 인간의 습성을 잘 배려해주는 자연의 넉넉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제 철에 맞는 섭생과 의복, 생활 습관들로 우리의 삶이 평탄하게 이어져가는 것이다. 별로 지루한 줄 모르고 다음 계절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윤회의 진실이 우리를 살지게 한다.

그러나 아무리 자연이 너른 품을 열어 우리를 감싸 안아준다고 해도 그것을 느끼고 감사할 줄 아는 우리의 마음이 없다면, 모든 혜택과 은사가 다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자연의 섭리에 보조를 맞추어 노력하고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이 와도 견뎌내고, 꿈을 이루어 낼 수 있는 힘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에 처하지 않았음을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면 용기를 얻게 된다. 어둠의 터널을 아직 들어가 보지 않고, 자신이 가장 힘들다고 말할 자격은 없다. 다만 힘들다고 느낄 뿐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힘들다고 느끼고 있는 모두를 응원한다. 지금 힘들다고 느끼고 있다면,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인생을 경주하고 있다면 잘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도전이 아니더라도, 지금 괴로울 만큼 힘들다면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절망과 한숨이 어느 순간 희망과 경탄으로 바뀌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의 드라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곧 이웃을, 세상을, 다른 모든 사람들의 삶을 사랑하는 밑거름이 된다. 아무리 어려운 경우라도 해결과 소망을 위한 도전의 문은 열려있다. 포기하지 않고 사랑한다면 결국은 최후에 웃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이요, 선물이다. 미국에 사는 ‘미건 바너드(Meagan Barnard)’는 평범한 소녀였다. 그런데 15세가 되자 자신이 뭔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건이 사춘기에 접어들자 2차 성징이 나타나는 대신 오른쪽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붓기 시작한 것이다. 병원에서는 발목이 삔 거라며 아스피린을 처방해 주는 게 다였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증상은 나아지기는 커녕 더 악화됐다. 그렇게 한참이나 시간이 경과되다가 나중에 종합병원에서 검사해본 결과, 미건은 체약 저류와 조직 팽창을 유발하는 만성 림프계 질환인 ‘림프부종’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반 친구들은 그런 그녀를 놀리기 시작했고, 미건은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며 유서를 남기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제 인생이 15살에 끝나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9년이 흘렀다. 그리고 어느 날 미건은 완전 반대의 선택을 하게 된다. 감출 수밖에 없었던 오른쪽 다리를 당당히 드러내기로 한 것이다. 9년이란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감추고 싶던 다리를 드러낸 모델이 되기 위한 사진 촬영에 나섰고, 6개월을 사귀면서도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은 남자친구에게도 사실을 알렸다.

미건의 모습에 남자친구가 놀라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자신을 신뢰할 만큼 편안해졌다는 사실에 오히려 행복했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게 되자, 주변의 모든 것이 변했다. 모델이자 블로거로 활동하며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또 그녀의 용기 있는 선택이 림프부종 환자를 포함해,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하는 많은 이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자신에게 감추고 싶은 비밀이 생겼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울 때, 더는 숨으려 하지 말고,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당당하게 말해 보자. “나를 사랑하자!” 라고... “자신감은 내가 무언가를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자존감은 내가 무언가를 잘하지 못해도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다.” 소설가 ‘남인숙’의 ‘서른에 꽃피다’에 나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며, 마음을 기울여 사랑을 할 대상은 과연 어떤 것일까?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사랑의 시작임은 시인하지만, 대체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는 깊은 심상 중에 어느 것을 먼저 사랑하고 가다듬어야 한단 말인가? 쉽지 않은 문제다. 자연 답을 찾기도 난해하다. 그래서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기를 쉽게 포기하게 된다. 대충 오늘은 우선 살아내고, 내일 다시 가다듬자고 현실과 타협하려 한다. 자신의 명분을 합리화하고 정당화시키려 한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 어느 나라에 한 장군이 있었다. 계속되는 격렬한 전투가 소강상태에 이르자 정말 오랜만에 자신의 숙소에서 쉴 수 있었다. 마침 따뜻한 차 한 잔이 생각난 장군은
귀히 여겨 보관하고 있던 찻잔을 꺼내어 차를 따랐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시려는 순간, 그만 손에서 찻잔이 미끄러져 놓칠 뻔한 것이다. 다른 손으로 다급히 찻잔을 잡아 깨지는 사고는 모면했지만, 장군의 가슴은 순간 철렁했다.

아끼던 찻잔을 한 순간에 깨뜨리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순간, 장군은 조금 전 자신의 모습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터에서 아끼는 부하들이 눈 앞에서 쓰러져 갔을 때도, 적군에게 포위되어 자신과 병사들의 목숨이 풍전등화 같던 때에도, 그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내가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조금 전 자신의 행동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병사의 목숨보다 작은 찻잔 하나에 집착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수많은 병사의 목숨을 책임져야 할 장군의 태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장군은 깊은 반성과 함께 그리도 소중히 여기던 찻잔을 그 자리에서 깨뜨려 버렸다. 현재 우리가 아끼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 때문에 더 소중한 것에 소홀하진 않았는지, 지금 한 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가끔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그 순간 만큼은 그동안 잊고 지낸 것들까지 다시 생각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테리 켈러’의 말이 생각난다. “누군가를 이끌려고 하면 먼저 자기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자신이 유능해서 관리자가 되었다고 믿는 순간, 부하들은 당신 없이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진실이다. 성공의 조건 모든 것이 자신의 실력인 줄로 여겨, 자가당착에 빠지기 쉬운 소인배에게 꼭 들려줄 말이다. 자신을 바로 보고자 하는 심안을 가로막는, 자신 속에 사는 자신의 적을 빨리 찾아내어 없애야 하는 이유다.

자신을 제대로 발견한 사람은 이제 다음 순서로 다른 사람을 향한 손짓을 시작하면 된다. 인연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마련된 셈이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경건한 자세로, 이웃과의 사귐에 임하는 자세가 그 첫 단추다. 기도란 인연을 만드는 일이다. 모든 세상사가 억지로야 되겠냐마는 간절한 바람 없이, 지극한 노력 없이, 이루어진 일 또한 어디 있을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남도 그러했고, 오늘날 지구에 이렇듯 수많은 생명체가 함께 살게 된 것이 40억 년 세월 동안, 억겁의 세월 동안, 간절한 바람으로 이어온 인연일 것이다.

간절한 바람은 간절한 기도를 낳는다. 물론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수록 더 간절한 마음으로, 더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하늘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람을 붙여주고, 물질을 채워주고, 많은 인연들을 만들어준다. 그러니 당장 어떤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서 실망할 것도, 낙심할 것도 없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꿈이 소망으로 남아있기에 우리의 내일은 어둡지 않다.

어느 선생님이 시골 분교에서 교편생활을 했을 때의 일이다. 학교에 출퇴근을 하려면 시냇물을 건너야 했는데, 시냇물은 돌을 고정해 놓은 징검다리를 건너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을 하기 위해 그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돌 하나가 잘못 놓여 있었나 보다. 선생님은 그 돌을 밟고 물에 빠져버린 것이다. 마침 서울에서 내려오신 어머니가 집에 들어온 아들에게 물어보셨다. “얘야, 어쩌다 그렇게 물에 빠져버린 거야?” “네, 어머니, 제가 징검다리를 디디고 시냇물을 건너다가 잘못 놓인 돌을 밟는 바람에 물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되물었다. “그래, 그러면 네가 밟았던 잘못 놓인 돌은 바로 놓고 왔겠지?” 선생님은 머리를 긁적이며, “얼른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그 돌을 바로 놓아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선생님을 나무라며 말씀하셨다. “다른 학생들이 시냇물에 빠질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그냥 올 수 있는 거냐? 당장 잘못 놓인 돌을 바로 놓고 오너라. 그러고 나서 옷을 갈아입도록 해라.”

처음에는 어머니의 말씀이 야속하게 들렸지만, 백 번 생각해도 맞는 말씀이므로 돌을 바로 놓고 돌아왔다. 그 후 선생님은 어머니의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며, 무슨 일을 하든지 돌을 바로 놓는 마음으로 매사에 임했다. 자신이 겪은 아픔을 다른 사람은 겪지 않게 바로잡을 용기, 자신이 배려 받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이런 마음들이 돌을 바로 놓는 마음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누구나 같은 세상을 원한다. 배려로 넘치고, 웃음으로 가득한 행복한 세상. 살기 좋고 편안한 세상. 언제나 웃음꽃이 피고 사랑이 넘쳐나는 세상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남이 아닌 내가 먼저 바뀌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도 늘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에게서 먼저 무엇인가를 바라거나 부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우선 행동하고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바로 그런 세상을 열어가는 가장 기본적인 예절이며 관건이라는, 주지의 사실을 인지하는 데에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레이먼드 조’의 ‘관계의 힘’을 보면 인간관계에 대한 힘과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좋은 글이 있어, 그 대화를 인용하여 구성한 내용을 발췌해본다. “자네 등 뒤에는 보이지 않는 끈들이 이어져 있네. 그 끈들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 인생의 전부라네. 정말 그게 전부라네.” “무슨 거창한 끈이기에 인생의 전부라고 단언하시는 겁니까?”

“관계라네. 나 혼자서는 따로 행복해질 수 없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 ‘달라이 라마’의 말처럼, 관계란 자신이 한 만큼 돌아오는 것이네. 먼저 관심을 가져주고, 다가가고, 공감하고, 칭찬하고, 웃으면 그 따뜻한 것들이 나에게 돌아오지.” “인간을 좋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네.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성공할 수 있네. 지식인은 어떤 사실을 알고 있고, 성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을 알고 있다고 ‘존 디마티니’가 말했지. 관계가 끊어지면 모든 걸 잃는 거야. 물론 힘들고 고통스럽겠지. 하지만 관계의 끈을 놓아서는 안되네. 상처를 주는 것도 인간이지만, 상처를 치유해줄 유일한 약도 인간이라네. 그게 인생이야.

만 명의 인맥보다 한 명의 친구를 가져야 하네. 인생은 참 오묘해서 적이라고 여겼던 사람과 화합하게 될 때가 오기도 하네. 마음을 넓게 가지면 생각지 못한 문들이 열리네. 젊었을 때는 인생이, 쌀로는 오직 밥을 짓는 것이라 여겨지지만, 나이가 들면 쌀로 술도 빚는다는 걸 알게 되지.” 연륜과 경험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되는 관계의 공식이다. 고정관념과 고착화된 생각의 틀을 깨고 과감하게 자신의 생각을 바꾸면, 바로 그 자리에 깃들어있는 희망이 보인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5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세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세월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 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에,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고(故) ‘강석규 박사’의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 중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하지 못하는 이유? 시간이 없어서, 능력이 안 될 거 같아서, 이대로 사는 게 편해서, 늦어서...
해야 하는 이유? 단 한 번뿐인 삶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가장 의미 있게 사는 방법, 바로 무엇이든 하는 것이다. 창밖에 비가 내린다. 안개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내리는 ‘안개비’ 보다는 조금 굵은데, 알갱이가 보슬보슬 끊어지며 내리는 ‘보슬비’ 보다는 가는 모양새로 보아 분명 저 비의 이름은 ‘는개’다.

비록 지금은 싸래기처럼 포슬포슬한 ‘싸락비’에도 못 미치지만, 좀 있으면 저 비가 더 큰 힘을 얻어, 굵고 세찬 ‘작달비’가 되어 온 누리에 시원하고 후련한 꿈을 심어줄 게다. 갑갑하고 꽉 막힌 우리네 가슴에 거대하고 찬란한 소망의 물대포를 펑 펑 쏘아줄 게다. 그건 이미 비를 닮아진 필자의, 틀림이 없을 예언이다. 오늘은 비 내리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자. 그리고 그곳 어딘가에 있을 우리의 꿈들을 받아마시자. 축복의 비가 저리 열심히 마음을 두드리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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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한 공기속 흐슬부슬 퍼져나가는
비 닮이 연무,
사뜻한 사위 바듯하니 흘러다니는
비 닮이 음악,
가살스럽지 않고 그저 숫하여
마주쳤다 비껴나가는
비 닮이 눈빛,

아무런 회의도 없이 채집을 해서
아무런 의심도 없이 분사를 했던 그 숱한
비 닮이 언어, 언어들

오락가락 비 다시 내리고 있지만
이 공간 내리는 비는
아직도 문문하기만 해,
밤 새 침묵처럼 흐를 강물에
조약돌 하나 의미없이 던져보듯
비 닮이 충동으로 부슬대고

내 마음 속
비스러진 말투로 달린 악성 댓글
그건 뉘 들어와서 써놓고 간 건지

기도보다 더 아름다운 몸부림으로
욕심 내려놓은 성취의 단계
빗물 튀어 몽짜스런 표정된 얼굴 훑어내리며
희웁스름하니 웃어보는
비 닮이 비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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