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 孤島의 默示錄... 토해낸넋두리前"
출판 예정 두번째 詩集의 제목입니다.

林森의 인생에 있어서 또다른 전환점이 되는 시기의 시작인
2008년 후반기부터 2010년 전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인 양
정말 많은 量의 詩를 짓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역경의 나날을 헤쳐나오면서
量産된 詩이니만큼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비감어린 내용과
칙칙한 파스텔톤 색깔의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의 방랑자 다운 林森의 詩心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우는 詩語의 조화가
오묘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는지라,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고
한 데 어울려 함께 눈물짓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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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바람 *



시작노트

" 봄바람 " 詩作 note

참 신기하다. 아니, 신비하다. 겨울바람 아직도 간간 지악스레 들러붙는 사이로 요렇게 상큼한 봄바람의 기운 샛길 트더니, 하마 경칩을 넘겼다. 그리곤 이내 땅 속에 숨어 긴 겨울 인동하던 벌레들까지 겨울잠 깨고 솔깃, 고개 쳐든다. 이 절기는 필경 봄이다. 그래서 만물 소생하고 햇살 따스한 폼새가 영락없이 봄처녀들 벌판에서 손짓하는 모양새다. 한낱 미물들까지 반겨맞는 봄이 왔다. 목하 누리는 온통 봄이다.

그런데 누리만, 주변의 자연에만, 봄이 왔다. 안즉도 봄 오지 않은 광장 엄연하다. 필자 머무는 강원도는 유독 겨울이 길다. 헌데도 필자 거하는 강원도는 유독 봄이 일찍 온다. 그래서 지금은 겨울이며 봄이다. 이른바 계절이 바뀌는 길목, 환절기다. 이제는 지루한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나설 때다. 봄맞이에 앞다투어 길 틀 때다. 그래서 겹옷 갈아입고 문 밖 나서본다. 아뿔싸! 그랬다가 이내 다시금 종종걸음치며 집구석으로 처박힌다.

봄이려니 하고 나선 길. 봄놀이 즐기려 걸음 뗀 길. 그런데 웬 걸! 삭풍 몰아치는 한겨울이다. 그 거리에는, 그 광장에는 지금도 춥고 살을 에는 겨울바람만 그득하였다. 봄의 기운은 어디에도 없다. 단 한 줄기의 봄기운도 찾아볼 길 없다. 분명 예서 제서 봄을 알리는 자연의 목소리들이 풍겨나기에, 경칩을 넘긴 개구리들이, 벌레들이 시끄럽게 솟아오르기에, 그래서 그저 당연한 봄일지라 여겨 봄 맞을 채비 차리고 길 나섰거늘, 아직도 봄은 요원하기만 하다.

대관절 이 시절의 봄은 언제 오려나? 과시 이 나라의 봄은 어디에 머물러 섰는가? 이 마음에 봄바람은 정녕 불어줄텐가? 봄이 그립다. 퍽도 기둘려진다. 보잘 것 없는 미물들조차 봄을 미리 알고 반기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으스대는 우리네 인간들은 어찌 계절마저 망각하고 이리 대책없는 분탕질인 건가? 한심스럽다. 정말 개구리 보기도 부끄럽다. 봄의 햇살 앞에서 두 눈 뜨고 견딜 재간이 없다. 차라리 눈을 감자. 그리고 다시 겨울잠이라도 자자. 진실과 정의의 봄빛을 감당할 자신이 생길 때 까지.

지난 시절 언제 우리가 경칩에 즈음하여 이처럼 추위에 시달려 본 적 있었을까? 이미 봄의 기운이 한껏 샘솟는 이 절기에 말이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인 이즈음이 되면 겨울철의 대륙성 고기압이 약화되고, 이동성 고기압과 기압골이 주기적으로 통과하게 되어 한난이 반복된다. 그리하여 기온은 날마다 상승하며 마침내 봄으로 향하게 되는 것인데 말이다.

절기를 추측컨대, ‘한서(漢書)’에는 ‘열 계(啓)’자와 겨울잠을 자는 ‘벌레 칩(蟄)’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고 기록되었었는데, 후에 ‘한漢) 무제(武帝)’의 이름인 ‘계(啓)’를 피휘하여 ‘놀랠 경(驚)’자를 써서 ‘경칩(驚蟄)’이라 하였다는 어원이다. 옛사람들은 이 무렵에 첫 번째 천둥이 치고, 그 소리를 들은 벌레들이 땅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동의보감(東醫寶鑑) 논일원십이회삼십운(論一元十二會三十運)’에는 “동면하던 동물은 음력 ‘정월[寅月]’에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절기로는 경칩에 해당하며, 음력 ‘9월[戌月]’에는 동면을 시작하는데 절기로는 입동(立冬)에 해당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예기(禮記) 월령(月令)’에는 “이월에는 식물의 싹을 보호하고, 어린 동물을 기르며, 고아들을 보살펴 기른다.”라고 되어 있다. 이는 경칩은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이므로 이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시기임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왕이 농사의 본을 보이는 ‘적전(籍田)’을, 경칩이 지난 ‘해일(亥日)’에 ‘선농제(先農祭)’와 함께 행하도록 정하였으며, 경칩 이후에는 갓 나온 벌레 또는 갓 자라는 풀을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불을 놓지 말라는 금령을 내리기도 했다.

‘성종실록(成宗實錄)’에 “우수에는 삼밭을 갈고, 경칩에는 농기구를 정비하며, 춘분에는 올벼를 심는다.”고 하였듯이, 우수와 경칩은 새싹이 돋는 것을 기념하고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는 중요한 절기이다. 이른바 경칩은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로, 움츠려 지냈던 겨울이 끝나고 새로운 생명력이 소생하는 절기인 것이다. 이렇게 고래로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풍습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절기는 모든 멈춤의 현상은 사라지고 약동과 활력이 만연하는 희망의 계절이다.

절망과 패배의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감쌀 소망의 계절이다. 목하 이런 계절이 돌아왔다면 우리는 이제 다시 한 번 서로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 속에서 사랑과 화해의 아름다운 감정을 발견해내야 한다. 그리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 화합하고 양보하면서, 이해하고 격려하면서, 서로의 발걸음에 축복과 성원을 보내주어야 한다. 따스하고 상큼한 봄햇살을, 봄바람을, 서로에게 보내주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찾아온 이 봄에 대한 의무다. 최소한의 의리다. 운명처럼 봄을 맞는 우리의 삶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국방성 장관이었던 ‘뉴턴 베이커’가 한 야전병원을 방문했을 때 심각한 상처를 입은 미군 병사를 만났다. 그는 두 다리와 팔 하나, 그리고 한 쪽 눈까지 실명한 상태였다. 베이커는 안타까운 마음에 한참을 머물며 그를 지켜봤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베이커는 다시 그 병동을 들렀다. 그런데 그 병사는 보이지 않았다. 병사를 간호하던 간호사와 결혼하여 고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쟁이 끝나고 몇 년 후 베이커는 장관직을 퇴임하고 ‘존스홉킨스 대학교’의 이사장으로 가게 되었다. 그해 박사 학위 수여식 때 베이커는 깜짝 놀랐다. 크게 다쳤던 그 병사가 휠체어를 타고 박사학위를 받으러 단상으로 올라온 것이었다. 반가움과 놀라움으로 베이커는 그 병사의 손을 꼭 잡았다. 병사는 베이커에게 짧은 인사를 건넸다. “장관님, 은퇴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직 보람 있는 일이 많이 있으니 기운 내시기 바랍니다.”

심한 부상으로 안타깝게만 여겼던 젊은 그 병사가 오히려 베이커를 위로해준 것이다. 어떠한 절망도 인간의 의지보다 강할 수는 없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비극과 절망도 이겨낼 수 있다. 우리에게 어떠한 역경과 고난이 찾아와도 희망을 품자. 그 상황을 피하지 않고 하루하루 굳은 의지로 헤쳐 나간다면 희망은 현실이 되어 우리 삶에 우뚝 서 있을 것이다. 역경은 당신에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할 용기를 준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과제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이 페이지가 우리의 삶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 문제의 해답은 우리 스스로가 이미 알고 있다. 지나고 나서 후회하지 않기 위한 절실함이 바로 우리의 내일을 만드는 근본적인 원동력이 된다.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사무엘 존슨’이 무더운 여름날 장터 한 쪽에서 몇 시간을 서 있었다. 사람들이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어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서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반나절이 지나자 걱정이 된 제자가 스승의 낯선 행동에 대한 이유를 물었다. “스승님,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그러자 사무엘 존슨이 대답했다. “사실은 오래 전 우리 아버지께서 이 자리에서 헌책방을 하셨다네. 그날도 아버지는 장사를 위해 일어나셨지만, 몸이 안좋으셨는지 나에게 하루만 대신 장사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물으셨었지.” 제자는 궁금해서 물었다. “그래서 스승님은 뭐라고 대답하셨나요?”

사무엘 존슨은 한참 지나서 다시 말했다. “우리 집이 시장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것도 창피한데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냐면서 거절했다네. 그런데 너무 무리했던 탓인지 아버지는 그날 이후 몸이 약해져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고 말았다네. 오늘은 그때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 이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네.” 물론 아무리 위대하고 능력 있는 위인들이라도 그들 나름대로의 회한이나 후회는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찌 보면 극히 소소하고 작은 것들일 수가 있다. 그렇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작은 문제일지라도 본인에게는 가장 큰 후회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된다.

몇 해 전, 모 금융회사 CF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젊은 아빠들을 대상으로 몰래카메라를 실시했는데 아이와 하루에 얼마나 시간을 함께 보내는지,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뭐고, 아이의 사진은 지갑에 넣고 다니는지 등등에 관해 물었다. 대부분의 아빠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런데 이번엔 반대로 물었다. 아이 대신 그 자리에 ‘부모님’을 넣어보라는 것이었다. 부모님과 하루에 얼마나 시간을 함께 보내는지, 부모님의 좋아하는 음식은 뭐고, 부모님 사진은 지갑에 넣고 다니는지를.

그러자 젊은 아빠들은 죄송한 마음에 일제히 눈물을 흘렸다. 앞으로 우리가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우린 항상 부모님이 늙지 않고 곁에 있을 거로만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곁을 떠나셨을 때 뒤늦은 후회를 한다. 시간은 항상 멈춰 있는 게 아니다. 수천의 생을 반복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자.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 앞에 서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자. 부모에게, 배우자에게, 자녀에게, 친구에게, 이웃에게, 동료에게, 그리고 당신의 적에게.

수탉 두 마리가 암탉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둘은 한참을 싸웠고, 마침내 승패가 결정됐다. 싸움에서 진 수탉은 깊은 상처를 입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어둑한 구석으로 숨어버렸다. 반면 이긴 수탉은 암탉을 차지하게 된 기쁨과 승리에 도취해 높은 담장 위에 올라가서 큰 소리를 내지르며 자랑했다. “꼬끼오~~~ 이 세상은 이제 내 것이다!!”

그 때 그 소리를 듣고 독수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와 눈 깜짝할 사이에 담장 위의 수탉을 낚아채 가버렸다. 결국, 싸움에서 진 수탉이 암탉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에서 영원한 승자, 영원한 패자는 없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될 수도 있고, 오늘의 패자가 내일의 승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일이 잘 풀린다고 자만하지 말자.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조심하고, 겸손해야 한다. 그 때가 가장 위험한 때다.

우리에게 오늘은 어떤 때인가? 승리의 날인가? 아니면 패배의 날인가? 요는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승리는 투쟁과 다툼에서 가려지는 것이 아니다. 함께 상생하고 공유하는 승리의 기쁨은 더불어 누릴 때에 한 층 빛이 나고 가치있는 진실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참된 의미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라고 하는 평범함 속에 있다.

또한 승리와 패배는 겨우 종이 한 장의 차이다. 1782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태어난 ‘니콜로 파가니니’는 엄청난 연주와 기교로 전 유럽을 들썩이게 했던 바이올린의 귀재였다. 파가니니는 자신의 기법을 신비롭게 하려고 연주법을 비밀에 부치고, 악보조차도 공개하기를 꺼렸다. 그래서 파가니니의 화려하고 다양한 연주 테크닉은 아직도 의문으로 남겨져 있다.

파가니니가 프랑스 혁명의 여파를 받아 감옥생활을 할 때의 이야기다. 유일하게 바이올린 연주를 위안으로 삼으며 지내고 있었는데, 바이올린 줄이 습기로 썩어서 한 줄만 남게 되었다.교도관에게 부탁했지만, 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안 돼 파가니니가 있는 방 쪽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여긴 교도관이 가보니, 파가니니가 연주하고 있었다. 외줄로 연주했지만, 바이올린의 음색과 기교는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 만큼 훌륭했다.

누구에게나 삶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다. 그리고 인생을 살다 보면 줄이 하나 끊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삶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끊어진 줄처럼 깊은 좌절과 한숨으로 보내야 했던 시기가 있다. 그럴 때 중단하지 않은 사람만이 승리할 수 있다. 실패한 자가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한 자가 패배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진정으로 패배하는 사람이 되는 길로 걸음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승리의 길로 향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과연 우리는 어떤 쪽의 길에 서있는가?

우리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감정적인, 일방적인 선택으로 행동한다면 그 여파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 자신을 파멸과 실패로 이끌어갈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판단은 무조건 그릇되고 잘못되었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있는 한 우리의 안목은 제대로 된 선택과 판결을 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바로 코 앞에 봄이 와도 느낄 수가 없다. 봄바람도 겨울바람으로 여길테고, 봄햇살도 겨울의 햇살로 간주할 것이다. 그리고 잘못된 판단 자체를 무조건 인정하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 바로 거기에서 파탄과 패배가 기인한다.

자주 화가 난다면 그건 삶의 방향을 바꾸라는 신호다. 우리 뇌가 “너는 너무 지쳐 있어. 좀 쉬어.”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거다. 분노 자체가 나쁜 게 아니다. 감정에 좋고 나쁜 것은 없다. 모든 감정에는 고유한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화는 불과 같다. 얼른 끄라는 신호다. 얼른 바꾸라는 신호다. 화를 화로 풀면 큰 불로 번진다. 화가 불러들이는 부정적 감정의 에너지를 긍정의 에너지로 바꾸면, 화가 도리어 삶에 활력을 주는 힘이 된다. 화낼 일도 적어진다.

또한 삶이 고통에 처했을 때,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제아무리 힘겹더라도 사람이 적응하지 못할 상황이란 있을 수 없다. 특히 자기 주위의 사람들이 자신과 똑같이 고통스럽게 생활하고 있는 것을 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자기만이 불행한 사람에 속한다고 자학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거나 겪어왔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명심하자.

지금의 불운과 고통이 없다면 미래의 행운과 안락함도 찾아올 수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불행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아우성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현실이 고통스러울수록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침착하고 냉정하게 그 고통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은 온다. 그 기로에 서있는 삶은 선택이다. 우리의 생활은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기까지의 일련의 행위이며, 사람은 날마다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 가능한 무수한 조건 속에서 자기가 해야 할 행위를 끊임없이 선택한다.

삶에 대하여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성숙도와 맞물려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 삶에 있어서의 선택도 숙성과정을 거쳐야 훌륭한 것이 될 수 있다.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다면 인간적인 삶도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에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진리가 있다. 바로 봄에는 봄바람이 분다는 것이다. 아무리 거부하고 부정하려 해도 봄에 불어오는 봄바람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봄에는 봄을 느끼면 된다. 봄이라면 마땅히 봄을 누려야 한다. 봄바람을 맞으며 봄을 만끽해야 한다. 바로 봄이니까. 지금이 겨울 아닌 그 봄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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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좇아 쌕쌕 소리지르던
또 하나의 밤
계절 저편으로 흘렀다
일출은 언제나 장엄하다
구석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새벽 안개 때문에 몇번이나 눈 흡떠
햇살 마주한 계절,
눈가 그렁한 눈물 삼키면서
바람과 소곤거리다가 헛헛,
나는 헛바람소리만 내며
이내 헤실바실 궁글린다

어쩜 내 삶도
한오라기 바람에 불과하지 않을까 ?
바람이다
봄이다
봄바람 분다

당신 !
저기 어디쯤 당신 좋아하는
산수유 노란 봄꽃 피고있으리라
내 마음엔 어떤 계절 있어서
봄바람은 이렇게
어지럽게 죄다 흔들어놓고 떠나는 것인지,

바람속엔
내 이마 짚어주고 가는 따스한 손 숨어
그 손으로 하여
봄바람 불면 가슴 뭉클해지고
무엇인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설렘같기도 한,
슬픔같기도 한,
울컥울컥 마음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설움의 시작, 저리도 아름다운데
아주 가버릴 바람이면 어떠랴
더없이 노란 바람빛인 걸

정열적으로 먹고 자고 하다보면
힘든 삶 끝나고
죽는 때도 결국은 오게 되겠지
봄처럼 바람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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