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린 손잡고 노을 앞에 섰었지
함께였기에 한껏 노을은 붉었지

보고파 아름다운 게 사랑이라기에
마냥 그리워하면서도 행복했었어,
아플수록 빛나는 게 사랑이라기에
기꺼이 상처입으면서도 참아냈었어,
이별로 기약하는 게 사랑이라기에
슬픈 헤어짐 앞에서도 웃어보였어,

색 바랜 사진처럼 기억 흐릿해진
이제사,
꺼져버린 촛불인 양 흔적 사라진
지금에야,

오늘 난 홀로이 노을 앞에 선다
오늘 난 처연히 지난 시절 본다
오늘 난 비로소 빈 나를 만난다

그렇구나,
사랑을 노을 지는 저 강물에
훠이훠이 내가 띄워 보냈구나
살갗 스치고 지나는 무심한 강물이
마음 파고들어 내 사랑 씻어갔구나

휑하니 떠나간 사랑이건만
사랑의 마음일랑 날선 칼 같아서
숨긴다고 숨겨지는 건 아니지
모른 체 한들 사라지는 건 아니지

상처에 피나면 더 아파하고
눈물이 흐르면 더 슬퍼하고
보고파 떠오르면 추억하면서
노을 앞에 서면 되는 거다

여지없이 석양 질 제면
붉게 물든 노을 산하를 비춘다
노을은 자체만으로는 아름다움이 없다
구름에 칭칭 엉켜있어야
노을은 노을다운 맛이 난다

실구름은 실구름대로
뭉게구름은 뭉게구름대로
하늘가득 펼쳐진 구름 모양 따라
노을 맛이 틀려진다

노을은 세월이다, 맛이 쓴 사랑이다
나의 노을은 세월 구름 벗삼아
붉게 오늘도, 붉게 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