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네번째 가상詩集입니다.

2012년 봄부터 씌여진 詩들입니다.
實驗詩적인 성격의 習作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역사의 章입니다.

처음 詩人의 길에 入門한 이래로
이제껏 40년 이상을 지어온 詩이지만 아직도
정확한 詩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품어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풍운아로 떠돌며
詩의 본질을 찾아 헤매고 있는
詩人 林森의 애환이 드러나 있습니다.

林森의 고행은 그래서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쭈욱 ~~

詩人의 멍에를 天刑으로 걸머지고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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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숙인 재활일기 *



시작노트

" 노숙인 재활일기 " 詩作 note

시절은 분명 한 여름이지만, 계절 가는 것 따위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은 덥다고, 땀 난다고, 냉방 잘 된 장소 찾아 호들갑 떨지만, 뙤양볕 아래서도 진저리치며 옷깃 여미는 사람들이 있다. 뼈 속으로 스며드는 바람으로 사철 추위에 시달리는, 그렇게 하루를 살기가 죽기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오늘은 시작노트를 시작하면서 먼저 책을 한 권 소개하고자 한다. 작년 이맘 때 쯤에 ‘두란노서원’에서 출간된 책이다. 권위 있는 청소년 문학상을 휩쓴 미국 최고의 청소년 소설 작가 ‘조앤 바우어’의 화제작 ‘달콤한 나의 집’이라는 제목의 책을 펼쳐본다.

‘뉴베리상’, ‘크리스토퍼상’,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도서상’ 등을 열거하자니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느낌이겠지만 미국에서는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들인데, 이 상들을 두루 수상한 바 있는 조앤 바우어는, 이미 미국 청소년 문학 분야의 한 축을 굳게 형성하고 있는 유명 작가이며, 이 책은 이른바 그의 대표적 성장소설로 세간에 잘 알려져 있다.

세상에서 도박을 가장 사랑하는 아빠 때문에 집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게 된 ‘슈가’와 엄마. 노숙자 보호소에서 이들은 서로의 곁을 지키며 용기를 낸다. 하지만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시카고’에서 엄마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렸고, 슈가는 위탁가정에 혼자 남게 되는데, 과연 슈가는 사랑스러운 강아지 ‘슈시’와 함께 두려움과 혼란을 어떻게 극복하게 될까?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을 만날 때가 있다. 그것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의 잘못으로 고통을 받는 상황에 놓인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노숙자라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감사의 이유를 찾아가는 슈가를 통해 용기와 희망을 전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에게 어떤 선택을 할지를 되묻고 있다.

작가는 1951년 미국 ‘일리노이주 리버 포레스트’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시와 소설 형식으로 일기 쓰는 걸 좋아했으며,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책을 많이 읽었다. 부모의 이혼과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때문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오히려 그 경험 덕분에 웃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고,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고난을 받아들이고 견뎌 내면 강해진다고 말하며, 청소년들에게 힘들어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책의 내용들은 그녀의 실제 경험과 생각들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좀 더 현실적이며, 특히 친근하고 가깝게 다가온다. 그래서 독자들이 거부감 없이 동화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노숙자(露宿者)’ 또는 ‘노숙인’이라는 단어는, 주로 경제적 빈곤으로 인하여 정해진 주거 없이 공원, 길거리, 지하철 역사 등을 거처로 삼는, 도시에서 생활환경이 제일 나쁜 빈민 계급을 말한다. 거주지가 없기 때문에 영어로 ‘홈리스(the homeless)’라고도 한다. ‘캐스 R. 선스타인’은 “노숙자가 잘 곳이 없다면 그것은 국가가 주택문제를 소유법의 관점에서만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

대한민국에서는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실직상태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 급증하자, 그들을 노숙자(노숙인)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도 역이나 지하도 주변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는데, 당시엔 그들에 대한 공식적 용어는 ‘부랑인’이었다.

노숙인이 되는 원인을 단정적으로 확정해서 적용하게 되면 무리한 논리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다른 사회문제나 갈등도 마찬가지겠지만 노숙 역시 하나의 원인에서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은 노숙의 원인을 ‘개인적 원인’과 ‘사회적 원인’으로 구별해서 적용한다.

한 개인의 노숙인이 되는 과정은 질병 및 사고 등에 따른 노동력의 손상, 가출이나 이혼같은 가정문제, 실업과 사업의 실패 등으로 인한 경제적인 문제에 따른 사회 안정망의 부재 등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며, 노숙인이라고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적절한 주거에서 생활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편, 여성이 노숙인이 되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실직 남성 노숙인과는 조금 달리하는데, 실업 상태의 남성은 사회경제적 안전망의 부재가 중심 화두라면, 여성의 경우에는 가족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가정 폭력 등 가부장적 가족 구조 속에서 갖는 여성의 지위 및 가족(주로 남편)에게 예속되어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가족과 단절이 되어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기능 수행의 부족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자녀가 있는 여성의 경우에는 양육이라는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노숙인의 특성 중 하나인 ‘가시성(visibility)’으로 인한 사회적 인식은, 게으르고 나태하며 역 근처에서 음주하는 모습만 연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편견과는 달리 상당수의 노숙인은 취업에 적극적이다.

대표적으로 종사하는 일은 일용직 노동, 파지나 고물 수집, 공공근로, 그리고 자활쉼터에서 생활하는 입소인은 정규직에도 종사하고 있다. 취업성공패키지 등 직업 교육을 받고 있기도 하며, 거리 노숙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으로는 숙식이 가능한 개인 공간의 확보, 일자리 확보, 건강문제 해결의 순이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적합한 취업 연계, 직업 교육,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면 상당수의 인원이 거리 노숙을 탈피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노숙인 수의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IMF 경제위기 발생 시기부터 2000년까지, 많은 수의 노숙인이 발생했다가, 이후 경기회복으로 조금씩 감소하여,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2009년 초부터 다시금 다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안타깝게도 이미 노숙을 경험한 사람들이 노동시장으로의 접근성이 약하고 재적응이 쉽지 않아, 사회적 지지망의 지속적인 쇠퇴를 경험하는 등의 이유로, 또다시 노숙인구가 증가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노숙문제 해결은, 노숙 원인을 개인적 관점에서 볼 때는 개인의 역기능을 변화시키거나 자활의지 및 능력을 고취시키기 위한 상담, 교육, 사례관리 등이 중요하고, 사회구조적 관점에서는 국가적 빈곤대책, 노동시장개입, 공동임대주택 확대 등 거시적 사회정책을 통해 이루어 질 수 있다.

노숙의 주요 사회구조적 요인인 빈곤과 실직의 문제는 IMF 경제위기로 촉발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가지 문제 등이 맞물려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에, 노숙인 문제는 본질적으로 우리사회의 불평등의 심화, 빈곤문제 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개인적 사회구조적 요인을 함께 고려하는 균형적 시각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대안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연구와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정부 당국이나 사회 지도층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계획을 수립하여 보다 나은 문제 해결의 방안을 제시하겠지만, 그래서 이 분야의 절대적 문외한인 필자의 제언이나 생각 따위는 아무 필요도 없겠지만, 그냥 더불어서 호흡하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웃의 한 사람으로서, 늘어나고 있는 노숙인을 바라보면서 저윽이 걱정되는 바가 크다.

2007년에 개봉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미국영화 ‘행복을 찾아서’를 기억하는 영화팬들이 의외로 많다. “네가 해내지 못 할 거란 말은 절대 믿으면 안 돼. 꿈이 있다면, 그걸 지켜야 돼.” 라는 명대사를 남겼던 주인공 ‘윌 스미스’와 그의 아들의 연기가 압권이었다고 여겨지는 좋은 작품이다.

‘세상 끝에서 건져올린 기적같은 감동 실화’ 라면서 언론의 평판도 칭찬 일색이었던, 노숙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인데, 모두가 경제난에 허덕이던 198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배경이다. 세일즈맨 ‘크리스 가드너(윌 스미스)’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지만, 한물간 의료기기는 좀처럼 팔리지 않는다.

귀여운 아들 ‘크리스토퍼(제이든 스미스)’는 엉터리 유치원에서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리는 신세에다, 세금도 못내고 자동차까지 압류당하는 상황이 되자 참다 지친 아내마저 두 사람을 떠난다. 마침내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는 크리스와 아들 크리스토퍼. 이제 지갑에 남은 전 재산이라곤 달랑 21달러 33센트 뿐.

어느 날 그는 한 증권회사 앞을 걸어가던 중 페라리에서 내리는 신사를 보고 다짜고짜 물었다. “두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당신의 직업과 성공 비결은 무엇입니까?” “난 주식 중개인입니다. 숫자에 밝은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면 됩니다.” 주식중개인이 되면 페라리를 몰 정도로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크리스는 ‘남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주식중개인 인턴에 지원한다.

덜컥 붙긴 했지만 인턴과정은 땡전 한 푼 못받는 무보수일 뿐 아니라 60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학력도 경력도 내세울 것 없던 크리스는 아들과 함께 노숙자 시설과 지하철역을 전전해야 하는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해지기 위한 마지막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낮에는 인턴사원으로, 밤에는 노숙자 쉼터에서 공부를 하며 가장 힘든 시간을 누구보다 열심히 보낸 그는 마침내 한 투자회사의 정직원이 되었고, 6년 후 자기의 투자 회사를 설립해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가 바로 노숙자에서 억만장자가 된 월스트리트의 전설, 영화의 실제 주인공 ‘홀딩스 인터내셔널’의 회장 ‘크리스 가드너’이다. 그는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안 되는구나, 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지금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은 자기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물론 해피엔딩의 결과가 있기에, 보는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을 지니게 해주는 영화라서가 아니다. 판에 박은 스토리로 친근하게 다가서기 때문도 아니다. 출연하는 주인공과 실제 아들이 연기 호흡을 맞춤으로서 사실적인 느낌을 확대시켜주는 연출력이 있어서도 아니다. 우리는 무조건 이런 영화를 좀 보아야 한다.

그냥 순간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액션영화나 스릴러,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역시 흥미롭고 의미있는 영화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가슴을 살살 어루만지는 꿈과 소망의 이야기들이라면, 각박한 세상을 버겁게 헤쳐나가고 있는 우리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 영화는 예컨대 온 몸으로 힐링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영화다.

노숙인에 관한 사회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니 우리 보다도 훨씬 먼저 세계 각국의 노숙인들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등장하였고, 지금은 깊이 뿌리내린 하나의 계층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니 노숙인은 제도나 행사로 구제할 수도 없고, 방침이나 단속으로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요는 어떻게 인정하며, 어떤 방법으로 공존하도록 선도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대책수립이 필요한 거다. 어차피 단순한 입법화로 단편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면, 원칙적인 승인으로 재활을 위한 다음 단계의 방안을 모색하거나 도입하는 것이 차선의 방책일 것이라 생각한다.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이미 노숙인에 관한 문제는 또 다른 제목의 문제를 유발하기 시작했다. 소위 다문화시대에 돌입한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신종 노숙인문제이다. 바로 우리나라 국민이 아닌 다국적의 노숙인들이 속 속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 겨울, 필자는 어떤 사회단체의 선도 상담요원으로 봉사하면서, 요청에 의해 시내의 요처를 순찰하는데 동참한 적이 있었다. 당시 서울 기온이 영하 4도까지 떨어졌던 어느 날이었다. 시간은 0시 30분. 군복 차림에 검정 가방을 멘 중년의 흑인 남성이 서울 6호선 이태원역 안으로 들어섰다. 주변을 살피던 그는 곧바로 역 구석으로 가더니 담요를 꺼내 몸을 덮었다.

발걸음을 재촉하던 시민들도 그 장면이 신기한 듯 힐끔힐끔 곁눈질을 하며 지나갔다. 이름을 묻는 필자에게 그는 “스몰 에이”라고 한 뒤 입을 닫았다. ‘에이’는 이태원동 일대에서 ‘흑인 노숙인’으로 통한다. 인근 주민들은 “지난 가을부터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그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고 전했다.

이태원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최근에는 고물을 줍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태원역 부역장은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자 바깥보다 역 안에 그가 머무르는 날이 많아졌다”고 했다. 지금 서울에서 노숙하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 네덜란드 국적의 노숙인 B(83)는 작년 5월 서울역 시계탑 앞에서 경찰에 발견됐다.

B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라고 주장했다.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대구에 있는 요양시설로 보내졌다. 하지만 며칠 뒤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와 최근까지 노숙을 했다. 지금은 건강이 나빠져 ‘적십자병원 희망진료센터’에 입원 중이다. 지난 3월엔 서울 용산구 ‘인정복지관’으로 독일인 C(53)가 찾아와 먹을거리를 요구했다. C는 복지관에서 며칠간 지내다 다시 거리로 나갔다. 복지관과 경찰에 그의 행방을 수소문했더니 “현재는 어디서 지내는지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외국인 노숙인들은 국내의 노숙인 복지시설에서 제대로 보호받기 어렵다. 관련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아서다. 임시보호시설을 제외한 일반 노숙인 쉼터와 자활시설, 요양시설은 내국인만을 대상으로 한다. 외국인이 머물 수 있는 임시보호시설은 전국적으로 8곳 밖에 없다. 그나마 보호기간 20일이 지나면 시설에서 나가야 한다.

외국인 노숙인에게 쉼터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단체가 있긴 하나 손에 꼽을 정도다. ‘지구촌 사랑나눔 김해성대표’는 “노숙인 시설이 내국인을 수용하면 정부보조금을 받지만, 외국인 노숙인은 보조금 지급대상이 아니다”며 “대부분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 ‘자립지원과’ 관계자는 “국내 노숙인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외국인 노숙인까지 신경 쓰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법무부 ‘외국인정책과’ 관계자는 “외국인 노숙인이 합법적 체류자인 경우 출입국관리법 위반이 아니기 때문에 본국으로 돌려보내기도 어렵다”며 “임시보호시설이 외국인 노숙인을 의무적으로 보호하게 하는 방안 마련을 보건복지부와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선진국에서 외국인 노숙인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지난해 프랑스 통계청은 “약 14만 명의 프랑스 노숙인 중 58%가 외국인”이라고 발표했다. 스웨덴 극우 정당인 민주당은 지난달 7일 거리에서 구걸하는 외국인 노숙인들을 교도소에 가두거나 추방하자고 제안했다. 숙명여대 ‘김영란(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외국인 노숙인 문제를 방치해두면 새로운 사회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며 “외국인 노숙인도 기존 노숙인 복지시설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사실은 제도화보다 먼저 우리가 짚어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양심과 진실이다. 제아무리 제도가 탄탄하게 잘 구축되어 있다고 해도 그 제도를 이행하고 실천하는 건 엄연히 사람이다. 그래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사람이 사람다운 생각과 행동으로 마련하고 시행하는 제도라야, 사람이 살만 한 세상을 만드는 힘이 되고 뿌리가 된다.

우선은 생각을 씨앗으로 심고, 최선을 다해 경작하여 탐스런 결실로 이끌어가야 한다. 우리의 마음에 어떤 믿음이 움터나면, 그것을 가슴 속 깊은 곳에 은밀히 간직해 두고 하나의 씨앗이 되게 하자. 그 씨앗이 우리의 가슴 속 토양에서 싹트게 하여, 마침내 커다란 나무로 자라도록 기도하자, 그렇게 묵묵히 기도하자.

사람은 누구나 신령스런 영혼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거칠고 험난한 세상에서 살지라도 맑고 환한 그 영성에 귀를 기울일 줄 안다면, 그릇된 길에 헛 눈을 팔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소중하고 귀한 것일지라도, 입 벌려 쏟아버리고 나면 빈 들녘처럼 허해질 뿐이다. 어떤 생각을 가슴 속 깊은 곳에 은밀히 간직해 두면 그것이 씨앗이 되어, 싹이 트고 잎이 펼쳐지다가, 마침내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씨앗은 쭉정이로 그칠 뿐, 하나의 씨앗이 열매를 이룰 때 그 씨앗은 세월을 뛰어넘어 새로운 씨앗으로 거듭난다. 새 봄이 되면 누구나 하나 쯤은 씨앗을 심고 그것을 가꾸며 키워가려고 하기 마련이다. 때론 시들어버리고 말라서 아픈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꾸준한 보살핌으로서 아름다운 새 순을 볼 수가 있다. 우리들의 인생 또한 늘 관심 속에 자라고 보살펴준다면, 행복이란 미소와 함께 멋지게 성장하지 않을까 싶다.

하나하나 소중하게 키워온 인생 만큼 값진 것이 어디 있을까? 조금 부족하면 부족한 만큼, 힘들면 힘든 만큼, 이겨낼 수 있는 용기 속에 나만의 씨앗을 멋지게 키우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스스로도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진정한 삶의 승자가 되어있을 거다. 그게 우리가 걸어야 할 삶의 도리이며, 우리가 깨달아야 할 불변의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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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해 저무는데,
땅거미마저 눈길 거둬 후미진 변두리 공터
무서리에 허연 머리털로 생뚱맞은 허리춤
하릴없는 갈나무 두어그루 섰네

어차피 계절 물처럼 흘러
갈 갈잎은 갈 잎인 것을,
몇닙 더 적선받아서 겹이불 삼아 덮고 누우니
웅트린 세상 한 켠 실낱 온기 모락모락
세월은 군불 때누나

시린 소슬바람이 먼 산자락 데불고 온
으악새 비명소리 섞이어
피 나듯 눈물 새듯 점 점 묻어나는
이 망할 놈의 고적덩어리,

기왕지사 나 등진 세상이나
정작 내 등지기 전이라 -

마즈막 해야 할 業 쬐금쯤은 남겨있을 터
막소주 병나발로 자가충전 완료하곤
헤매도는 발걸음 꼼지락 꼼지락
나름 한껏 분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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