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네번째 가상詩集입니다.

2012년 봄부터 씌여진 詩들입니다.
實驗詩적인 성격의 習作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역사의 章입니다.

처음 詩人의 길에 入門한 이래로
이제껏 40년 이상을 지어온 詩이지만 아직도
정확한 詩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품어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풍운아로 떠돌며
詩의 본질을 찾아 헤매고 있는
詩人 林森의 애환이 드러나 있습니다.

林森의 고행은 그래서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쭈욱 ~~

詩人의 멍에를 天刑으로 걸머지고 있는 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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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 있기에 *



시작노트

" 내일 있기에 " 詩作 note

2017년도 딱 절반이 지났다. 주말부터는 7월이다. 이른바 여름의 한가운데로 접어든다. 이미 폭염과 가뭄과 불쾌지수의 극점을 찍은지도 한참인 우리나라의 이 여름은, 우리가 미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폭싹 익어버린 묵은지같아서, 몸의 안팎을 흠씬 물들여놓았으니, 지금에 와서 새삼스레 여름이라는 제목 달아 절기를 논할 필요조차 없다. 그래도 달력의 절기상으로는 이제야 본격적인 여름의 문턱이라 하니, 앞으로도 얼마나 긴 세월을 무자비한 여름의 폭거에 시달려야 하는가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다.

그러나 어쩌랴? 용 빼는 재주 없는 무기력한 군상들 처지이니 만큼 역시 별다른 방도는 찾지도 못하겠는지라, 오로지 정신집중하고 더위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견뎌내야 할 뚝심이나 길러봐야 할 터수다. 아무튼 이리 지내냐, 저리 지내냐 따질 것도 없으니 그냥 짜증이라도 내지 말고, 기왕지사 찾아든 여름과 잘 사귀어보는 것이 덜 고달픈 처세의 기본이리라. 이처럼 걱정 근심만 한 보따리 짊어진 채 목하 우리의 여름이 열렸다.

그렇지만 비록 오늘 우리의 삶이 비루하고 하찮아서 만족할 수 없다곤 해도, 우리에게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내일이라는 신선한 미래가 있기에, 우리의 고단하고 곤비한 오늘의 삶을 기름지게 한다. 어쩌면 지금 보다는 훨씬 더 나은 모습으로 우리를 감싸줄지 모르는 내일의 안락한 품을 그리면서, 우리는 소망을 향해 나아간다. 그건 꿈이며 희망이며, 행복의 이정표다. 그건 진실한 내일의 의미이며, 오늘을 갈무리하는 참다운 보람이다. 힘겹게 오늘을 견뎌내는 보상이며, 삶을 사랑하는 적절한 댓가다.

그렇게 우리의 오늘을 대신할 내일이 있기에 우리는 기꺼이 오늘을 산다. 내일을 준비하고, 내일을 기다리는 염원이 이리도 간절할진대, 어찌 오늘의 고단함만을 척도삼아 삶의 모든 것을 가늠하려 들겠는가? 필경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가 우리에게 온갖 영광과 찬란한 무지개 빛 행복을 가득 실어다 줄 것이다. 세상에서 누릴 최상의 계절이 바로 내일이면 우리에게 활짝 열리리라. 생각만으로도 절로 힘이 솟고 의욕이 넘쳐난다. 역시 꿈을 꾸는 사람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는 법이다. 미래를 기약하면서 결실의 맛을 음미할 그런 권리 말이다.

지혜롭다는 것은, 슬기롭다는 것은 많이 배우고 익혔다는 뜻은 아니다. 쌓아올린 지식이 충만하고 풍요롭다는 것도 아니다. 비록 학식과 인품이 뒤쳐진다고 해도 상황에 맞추어서, 유효적절한 판단력과 예지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우리는 가끔 주변에서 볼 수 있다. 가진 것 없어도, 누릴 권세와 금력은 부족해도 우리에게 깨달음과 반성을 생각케 하는 뛰어난 사람을 우리는 여렵사리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우리의 또 다른 배움의 기회를 얻게 되곤 한다.

오래전 인디언들은 넓은 평원 한 복판에 장막을 치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평원에서 불이 나더니, 마을을 향해 사방에서 덮쳐오는 거센 불길에 마을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때 한 노인이 모두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큰 원을 그려 그 안에 불을 지르자!” 마을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노인이 말한대로 했다. 불에 타버린 공간이 어느 정도 나타나자 노인이 또 외쳤다. “모두 그 불 탄 자리 위에 올라서시오!”

노인은 한 번 불에 탄 자리는 다시 불이 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마을 사람들을 지혜로 무사히 구해내었다. ‘백발은 인생의 면류관’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은 다양한 정보습득으로 지식수준이 높다 하나, 인생을 살면서 몸소 배운 진짜 경험에서 나오는 삶의 지혜는 따라잡을 수 없다. “20대에는 욕망의 지배를 받고, 30대는 이해타산, 40대는 분별력, 그리고 그 나이를 지나면 지혜로운 경험에 의한 지배를 받는다.”고 한 ‘그라시안’의 말을 기억하자.

세계 최대 부호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어떻게 하여 뛰어난 두뇌로 세계적인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기자의 질문에 빌 게이츠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저는 당신이 생각한 것처럼 똑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재능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저는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을 생각으로 옮기고, 그리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노력했을 뿐입니다.”

세상은 변화하려는 열망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리고 그 변화를 행동으로 옮기는 자가 세상을 바꾸었다. ‘Change’에 ‘g’ 자를 ‘c’ 자로 바꾸어 보자. ‘Chance’가 된다. 즉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 변화는 기회이며,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난 지금 무엇을 변화시킬 준비가 되었는가를. 오늘이라는 이 시간은 나에게 내일을 준비할 충분한 기회를 주고 있다.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고, 철저하게 대비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바뀌어진 내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느 마을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그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로 한 지휘자는 형편이 좋지 않아 전부터 입어오던 낡은 예복을 입고 지휘를 했다. 그런데 지휘자가 너무 열심히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서인지 낡은 예복이 금세 찢어지고 말았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는 예복을 입어야 하지만 지휘자는 한 곡이 끝나자마자 낡아서 찢어진 예복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셔츠 차림으로 지휘하는 그를 향해 관객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휘자는 주위가 소란해도 전혀 흔들림 없이 차분하게 최선을 다해 지휘했다. 그 때 관객석 맨 앞에 앉아 있던 한 중년 남성이 조용히 일어나더니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고, 지휘자처럼 셔츠 차림으로 앉았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관객들은 정적이 흐른 듯 조용해졌다. 그리고 하나둘 겉옷을 벗고, 셔츠 차림으로 오케스트라를 관람했다. 그 날의 음악회는 지휘자와 관객이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한, 감격스럽고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세상에 허물이 없는 완벽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누구에게나 결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상대의 약점이나 허물을 봤을 때 비난할 것이 아니라 배려하는 마음으로 감싸주어야 한다. 마음을 자극하는 단 하나의 사랑의 명약, 그것은 진심에서 오는 배려다. 우리의 내일이 한결 더 평화롭고 풍요롭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 속에 사랑의 씨앗을 가꾸자.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며, 이해와 협력으로 다듬어진 우리의 관계는 사회를 더욱 아름답고 기름진 텃밭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인간 관계야 말로 더욱 멋진 내일로 가는 나침반이며 내비게이션이다.

‘만성 가성 장폐쇄 증후군’으로 먹지도 못하고, 소화시킬 수도 없는 아이... 수차례의 수술을 받으면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지만 병원에서도 항상 다른 아픈 아이들에게 웃음과 격려를 잃지 않는 착한 아이 ‘예지’에 대해서 필자는 얼마 전에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적이 있다.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걱정을 하는 엄마의 이야기도 함께 전했었다. 그 예지의 건강은 그 후 다행스럽게도 제법 많이 회복되었었다.

그리고 예지는 통원치료를 받으며 가끔 학교에도 출석했고, 또래 친구들과 놀기도 했다. 또한 노숙인들을 위해 김밥도 만들어주고, 같은 병동에서 함께 힘들게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샌드위치를 만들어 나눠주면서 행복해했다. 예지의 가족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예지의 가족에겐 기적같은 행복한 일상이 반복되던 지난 6월 5일, 뜻밖에도 예지의 건강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다.

원인 모를 ‘전신 패혈증’으로 온 몸에 염증 수치가 오르더니 한 차례 심정지까지 오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 장기는 움직이지 않았고, 예지는 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하루에 두 번 중환자실에 있는 딸아이를 만날 때마다 엄마는 모든 일이 자신의 탓 같았다. 병원에서도 예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엄마 또한 가까운 곳에서 예지를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예지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된 오백여 명이 넘는 후원자들이 여린 생명을 위해 응원의 댓글과 함께, 힘내라며 두 손을 모았다.

엄마는 감사한 마음으로 중환자실에 갈 때마다 예지에게 그 응원의 댓글을 읽어주었다. 하나하나 소중한 댓글을 읽어주는데 마치 자신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다 안다고, 감사하다고 이야기하듯 예지는 무의식중에서도 듣고 있는지 눈물을 흘렸다. ‘예지야, 너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이란다. 그러니까 힘을 내줘. 살아줘....’ 예지의 기적을 누구보다도 간절히 바라는 엄마이지만 심한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예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다.

‘엄마인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닐까...’ 모두가 절망을 생각했을 때 예지는 또 한 번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의료진은 예지가 살고 싶은 의지가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점점 몸의 장기 활동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하고, 자가 소변도 가능해졌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며칠을 더 중환자실에 있었지만, 큰 고비를 넘겼고 이제는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일반 병실에서 지내고 있다. 책을 보고 일상의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호전되었다.

모든 것이 많은 후원자들의 절실한 마음이 예지에게 전달되어 기적을 부른 것 같아, 엄마는 정말 고마워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예지에겐 기나긴 과정이 남아 있다. 장기 이식만이 유일한 길이지만, 적합한 장기를 찾기도 힘들 뿐 아니라 수술의 위험도 너무 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예지에게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꿈이 있다. 예지의 꿈은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예지의 꿈과 소망이 실현되는 세상이 참다운 사랑의 화원이다. 이런 예지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사랑의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세상이 진정한 사랑의 천국이다. 이런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갈 내일이 있기에 우리의 오늘이 그저 비참하지만은 않다. 얼마 전에 6.25 전쟁 67주년이 지나갔다. 언제나 가슴으로 깊이 느끼고 마음의 소리로 드리는 말씀이지만,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당신들이 있어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단체에서는 올해의 6.25 전쟁 기념을 조금 특별하게 기억하고자 했다. 피부색은 다르지만, 대한민국을 위해 열심히 싸우고 피를 흘렸던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분들을 돌이켜 기억하는 것이 그 기본 취지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머나먼 이국땅인 대한민국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웠던 ‘강뉴부대원’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이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253번의 전투에서 253번의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그들에게 감사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공산혁명으로 공산당이 정권을 잡게 되고, 한국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강뉴부대와 유가족들은 온갖 핍박과 천대를 받아가며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는 고난을 받았다.늦게나마 송구한 마음으로 조금이나마 감사함을 전하고자, 어느 사회단체는 지난 2015년 강뉴부대를 위한 후원 모금을 진행했고, 2016년 처음으로 에티오피아 땅을 밟았다.

“너무 늦게 찾아와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방문자들에게 강뉴부대 참전용사 분들은 오히려 “우리를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셨다. 많은 분들의 사랑이 담긴 후원금을 전달해드리면서 조금이나마 감사함을 전하고 보은할 수 있어 방문자들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리고 아직 생존해 계신 참전 용사분들에게, 꼭 다시 찾아뵐 것을 약속했었다.

그 약속을 지키러 그들은 올해에도 8일간의 일정으로 에티오피아를 다녀왔다. 1년 전 약속을 지켰다며 강뉴부대 참전용사들은 두 손을 꼭 잡고 또다시 눈물을 흘리셨다. 올해에는 ‘KBS’에서 함께 일정을 동행하면서 강뉴부대에 대해서 다큐멘터리 영상을 촬영하였다. 그리고 강뉴부대 다큐멘터리는 6월 24일(토) 오후 4시, KBS 1TV에서 방송되었다. 현재도 강뉴부대를 위한 모금이 몇몇 사회단체의 주관으로 진행되고 있다.

평생을 가난과 천대 속에서 고생하신 강뉴부대원들과 가족들을 후원하고, 후손들을 위한 ‘강뉴합창단’을 만들어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또한 강뉴부대 후손 중 형편이 어려운 아동들을 결연하고 있다. 앞으로도 강뉴부대 후원에 국민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야 말로 비단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싸워준 데 대한 보은의 의미를 넘어서, 다 함께 행복한 지구촌을 만들어가는 인류애의 표상이 될 기본 지침인 것이다.

단순하고 즉흥적인 감정의 발로가 아닌, 진솔하고 겸손한 이성의 판단으로 우리의 삶을 조율하고, 객관적으로 투영하는 자세가 요구되는 현실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사소한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있다. 사람은 흔히 큰 불행에 대해서는 체념을 하지만, 조그마한 기분 나쁜 일에 대해서는 도리어 감정을 억제 못한다. 그러니 우리가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은 큰 불행 보다는 사소한 일에 있다.

사소한 기분 나쁜 일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부딪치는 것이며, 또 그 사소한 일들이 도화선이 되어 큰 불행으로 발전하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이란 그릇이 기울면 엎질러지는 물과 같은 것이니, 늘 조심성 있게 다룰 필요가 있다. 일단 기울면, 평화와 조화가 파괴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기울기 쉬운 순간에 억제해야 한다. 도를 닦듯이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다.

정말 감정이란 것이 묘하다. 사그러드는 쪽 보다는 마치 발화물질 옆에 있는 불씨처럼, 그렇게 걷잡기가 어려울 때가 많은 법이다. 순간적인 감정의 치우침에 충실하다 보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감정의 노예가 될 때도 많다. 아마 다들 공감할 것이다. 이성이란 것은 그럴 때 적극적으로 발휘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하루를 시작할 때는 ‘사랑’을 생각하자. 오늘 하루 누구에게 내 사랑을 전할까 생각하자. 하루가 끝날 때 당신에게 남는 것은 오늘 한 일이 아니라 오늘 전한 사랑이다. 일주일을 시작할 때는 ‘웃음’을 생각하자. 일주일은 밝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적당한 시간이다. 일주일이 끝날 때 당신에게 남는 것은 걱정할 일들이 아니라 밝게 웃는 일이다.

한 달을 시작할 때는 ‘믿음’을 생각하자. 한 달은 내가 확신하는 일을 실천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한 달이 끝날 때 당신에게 남는 것은 의심했던 일들이 아니라 믿고 행동한 일들이다. 일년을 시작할 때는 ‘새로운 꿈’을 생각하자. 일년은 꿈을 가꾸기에 넉넉한 시간이다. 일년이 끝날 때 당신에게 남는 것은 계속하던 많은 일이 아니라 새로 시작한 한 가지 일이다.

내일을 시작할 때는 ‘오늘의 삶’을 되새기자. 내일은 우리에게 또 다른 희망과 행복을 주는 삶의 시작이다. 내일은 오늘의 희생과 노력의 끝에 열리는 열매이며 수확의 보람이다. 내일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오늘까지 느끼지 못했던 찬란한 내일의 햇살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는 우리의 내일 속으로 벅차게 들어차는 환희와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우리의 내일이 우리를 향해 지금 열린다. 그 내일이 있기에 우리는 이 오늘을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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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절 난 어디서 왔기에
이리 날 보낸 그 님은

강물처럼 흐르는 시절임에 왜
내게 생각을 주어서
나로 하여 이리도 슬퍼하게 하는지
난 도통 알 수가 없네

구름같이 떠도는 계절임에 왜
내게 사랑을 보내서
나로 하여 이만큼 아파하게 하는지
난 도통 알 길이 없네

거품인듯 스러진 세월임에 왜
내가 당신을 보내고
나 혼자만 이토록 애달파야 하는지
난 도통 알지를 못하네

내가 진즉에 고통을 배필 삼았고
외롬을 버릇이라 여겼으며
기왕지사 부여된 카리스마로
상흔의 텃밭 일구어왔거늘

어차피 사람의 말로는
작은 위로조차 불가능한즉
내 고통의 분량대로 사라진
순수함 찾아 맴돌던 절정의 어제

그 상실의 누리였다면
바람인 체 했어도, 햇살인 척 했어도
일단은 용서가 되었으리니
이젠 눈물쯤은 닦고 마주서보리라

한 때는 사랑을 얘기할 제는
가 없는 영원이라 감히 칭했었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따위는
아주 없으리라는 믿음으로서

가끔은 선지자 갈렙의 울부짖음
목청껏 외쳐대던 소망의 떨림
그러한즉, 내일이면 필경
뿌듯하게 소돔성에도 새 싹 돋으리

도대체 난 어디로 가기에
게서 날 반길 그 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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