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 온통 깜깜하여 암흑만이 가득할 제
한 줄기 빛 있어져서
한 올의 생명 싹 자람이라면
감히 일컬어 기적이라 이름 부를 겐가?

분명,
손길 외면하고 홀로 걷는 이 길은
정녕코 멀고도 험한 길,
언젠가는 다시 만날 날 고대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기에나 마땅한 길,

부득불 생각키에 작은 쉼 있기 바라는
넘어져 곤고한 심사에
걷고 걷고 또 걸어 위로 얹을 적

보여지는 게 다가 아니고
만져진다 하여 실체 아닌즉,
나 혼자 걷되 함께 가는 누군가 그림자로 숨어있기에
게서 새론 숨결 얻으리
다시 솟는 호흡 일구리

비울수록 채워지고
나눌수록 더해지는 그저 흔한 참진리
그 가운데 귀하게 선 오직 하나뿐인 사랑이여

허면,
당시에 십자가는 멸시와 능욕과 고통의 상징이었거늘
허나,
지금의 십자가는 구원과 평안과 영생의 표상인 것을
이제,
내게 주어진 십자가는
이전 예수가 지던 십자가인가?
이후 예수가 주는 십자가인가?

어제일지 오늘일지를 골라야 할
선택의 기로에 서면
가슴 옥죄는 아픔으로 숨 막혀오고
모호한 의미에 갈팡질팡하다가
엉겁결에 받아든 십자가

그 너무나 버거운 삶의 제목
드디어 감춘 무게 깨닫고
주저앉아 터뜨린 대성통곡
엉절거리고 있는 사탄의 자식아

필경,
사탄은 밖에 있지 아니하고
이 안에 또아리 틀었거늘
대저,
나 입고 있는 이 기름진 몸뚱이보다는
비록 헐벗은 내 영혼 먼저 사랑하라는

하여,
무겁게 지기 시작한 십자가
가벼이 지고 빛으로 걸어가라는 게시

어느 비 오는 밤
하늘에서 내리는 무수한 기억들이 넌지시
단 하나의 답을 손에 쥐어주다
내 십자가, 어쩌면 바로 그 십자가였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