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꽃 " 詩作 note

고백한다. 필자는 만고에 다시 없을 불효자다. 살펴본즉 앞에도, 뒤에도 이런 불한당은 없다. 양의 탈을 뒤집어 쓴 늑대가 이러할까? 제아무리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이 인간이라지만, 소위 인두껍을 뒤집어쓰고 이렇게 막 돼먹을 수는 없다. 글줄이나 쓴답시고 지면을 빌려 이런 방법으로 면죄부를 청하자는 건 아니다. 미리 만천하에 공개함으로써 나름의 명분이나 합리화를 꾀하자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냥 곰곰 생각해봐도 필자는 불효자임에 틀림이 없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필자는 현재 두 분 부모님께서 다 생존해계신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외로워 하는 지인들을 비견하건대, 필경 축복받은 상황이다. 한 분만 살아계셔도 부러움을 사는 판에 부모님이 모두 이 세상 하늘 아래서 같이 호흡하시니 이리도 좋을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버지께서는 지금은 연로하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의 전면에서 퇴장하시고, 요양시설에서 노후를 의탁하시고 계시지만, 그래도 젊은 시절에는 한 이름 하신 분이시다. 또한 어머니는 정말 부지런하시고 총명하신 현모양처이셨다. 생활력도 강하셔서 우리 4남매를 지성으로 길러주셨다. 입에 발른 소리가 아니라 우리 어머니같은 분은 세상에서 찾기 힘들다.

그리고는 지금은 기억도 선명치 않으시며, 거의 거동을 못하시는 상태로 요양시설에 현재 머물러 계신다. 다시 말해서 두 분 다 시설의 신세를 지고 계신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여러 가지 연유로 인해서 거처에 변동 상황이 비교적 잦았었다. 어디 한 곳에 오래 머무르시지를 못하고 바로 싫증을 내시기 때문에, 또 다른 거처를 찾아 헤매기를 부지기수, 두어 달에 한 번씩 반복되는 일상인 양 거듭되어왔다.

우리 나라가 노인을 위한 후생복지 시설이 그리 뒤떨어지는 수준은 아니라지만, 문제는 두 분이 같은 방에 거하시는 조건을 찾기가 수월치는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건 두 분의 동거가 전제로 되어야 하기 때문에, 방방곡곡 수소문하여 적당한 시설을 물색하고, 점검하고, 상담하고, 결정하여 입주를 진행하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며 절차였다.

그런데 이렇게 심사숙고하여 시설을 선정하고 부모님께 추천을 하면 처음에는 좋아 하시다가, 입주 두어 달도 못되어 이내 마음에 안들어 하시는 것이다. 어찌도 그토록 이런 저런 사유가 많으신지, 항상 해결책 없는 문제점을 지적하시곤 하셨다. 그렇게 몇 번의 의미 없는 반복 행위가 계속되면서 저절로 맥도 빠지고, 솔직히 짜증이 나기도 했다.

논하자면 필자보다도 지척에 거하는 여동생 내외가 훨씬 더 심신이 고달펐지만, 정작 부모님께는 제대로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고 결국은 또 다른 곳을 찾는 방도밖에는 달리 묘수가 없었다. 아무튼 수년에 걸쳐 짐을 싸고 푸르고 하는 이사 아닌 이사를 예닐곱 차례 이상 하다 보니, 이제는 어디로 가시든 몇 달이나 계시다가 나오시려나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반 쯤 앞서곤 한다.

그래서 어쩌다 부모님이 먼저 연락을 하시면서 의논할 일이 있다고 하시면 의례히 올 것이 또 왔구나 하는 지레짐작에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물론 지금까지 기술한 건 완전히 자식들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관점이다. 예전 같으면 정말 큰 일 날 소리다. 어디서 부모님께 짜증을 내고, 귀찮아 하는 속내를 뻔뻔스럽게 드러내 보일 수가 있는가?

애당초 편하고 만족스럽게 모시지를 못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우선은 마음에 안들어 하신다는 자체가 불효인 것을, 진정한 효도의 의미는 아예 모르는 척 하며, 부모님의 탓만 앞세워 필자의 잘못을 억지로 가리려 하는 궤변을 오늘도 늘어놓고 있으니 이것이 불효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과연 실소를 금치 못할 수작이다.

지난 2012년 후반에 많은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과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책이 한 권 세상에 나왔었다. ‘한설희’ 작가의 ‘엄마, 사라지지 마’라는 포토 에세이집이었다. ‘모든 영혼의 정류장, 듣기만 해도 왈칵 눈물이 나는 그 이름, 엄마’라는 부제를 달고, 70여 장의 사진과 글로 남긴 이야기다.

‘엄마’라는 말처럼 많은 이야기가 담긴 단어가 있을까? ‘엄마’라는 말만큼 거대하고 보편적인 공감의 단어가 있을까?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점점 자라면서 슬며시 엄마의 곁을 떠난다. 우리 삶에 가장 밀착되어 있었지만, 어느새 가슴으로부터 멀리 떠나가고 있는 존재, 엄마. 언제나 함께 있을 것이라 착각하지만, 늘 깨달음은 황망하게 찾아온다.

그런 점에서 ‘엄마, 사라지지 마’는 조금 특별한 포토 에세이다. 작가 한설희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후, 엄마마저 사라질까 하는 조바심에 엄마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제목만 보아서는 작가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20대? 30대? 아니면 40대? 아니다.

작가도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딸과 여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머니는 어떤 사진으로 남았을까 하는 것이 공통적인 세상의 관심사였다. 네 아이를 품에 안고 홀로 풍랑 속을 걷는 고단한 어머니, 도시라는 공간에 정착하기 위해 이를 악무는 이주민, 자신을 떠난 남자를 한평생 기다리는 사랑받고 싶은 여인.... 그 모든 삶의 모자이크가 펼쳐내는 감동은 굉장히 묵직하고 울림이 컸다.

어머니의 일상을 담은 흑백사진과 짤막한 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잠시나마 잊고 있던 우리 안의 ‘어머니’를 강하게 환기하는 영감 넘치는 사진들로 가득하다. 예컨대 독자들 가슴 속에 오래도록 기억될만한 기념비적인 사진집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한 이 리얼한 직시(直視)는, 2015년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바로 지난 달에 ‘엄마, 사라지지 마’의 개정판이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거기에는 2012년 가을 이후부터 2015년 봄까지, 엄마의 날들이 추가로 담겼다. 뽑아내지 않은 채 마당에서 말라버린 마른 꽃처럼, 엄마는 여전히 거기에 있다.

이제는 72세 딸, 96세 엄마로 남은 모녀. 작가 한설희는 긴긴 시간 꾸준히 엄마를 관찰하고 남기고 있다. 여전히 카메라를 통해 엄마를 클로즈업하고 상처와 결핍에 다가서면서,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사진을 찍는 동안 수없이 시선을 교환하고 서로를 바라보면서. 그러면서 그녀는 진짜 엄마를 발견한다.

“늦든 빠르든 우리는 언젠가 고아가 된다. 내 머리 위를 받치고 있던 커다란 우산이 순식간에 거두어지고,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비와 눈을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는 것. 그것이 부모를 잃는 경험이 아닐까?” 작가는 망연자실한 심정이 되어 슬프지만 담담하게 말한다.

“이제 엄마의 세계는 세 평 남짓한 방 안이 전부다. 스물두어 살 무렵 섬을 빠져나온 엄마는 구십이 넘어 다시 섬에 갇혔다. 자식들이 아니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롭고 쓸쓸한 섬. 그 섬은 파도도 치지 않고 풀 한 포기 하나 자라지 않는다. 이곳에서 숨 쉬는 존재는 엄마 하나이니, 엄마마저 사라지면 여기는 무인도가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며 온 밤내 필자는 예순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소리내어 펑펑 울어버렸다. 그리곤 주섬주섬 옷을 차려입고 새벽으로 나섰다. 어둠을 헤치고 부모님께로 향했다. “꽃 같은 엄마가 작디작은 방 안에 피어 있다. 향이 없어도 벌과 나비를 부르는 꽃, 아무도 모르는 사이 몰래 피어 얼굴을 내미는 꽃, 작은 꽃잎이라도 떨구지 않고 오래 잎을 흔드는 꽃. 엄마의 오래된 거죽이 뿌리가 되고 이파리가 되어 봄을 부른다. 꽃 같은 엄마가 말갛게 피어 있다.”

책 속의 엄마가 바로 필자가 가는 길의 끝에서 웃음 짓고 계실 필자의 그 어머니인 것을, 오늘의 필자를 만들어주신 바로 그 분이신 것을, 못난 불효자는 오늘의 성취가 바로 모두 본인의 힘과 능력으로 이룬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부모님의 역할은, 역량은, 그리고 입장은 과거의 기억 속에 묻어버리고, 부모님이란 그저 단순히 귀찮고 부담스러운, 그래서 신경 쓰이는 노인네들로 치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놈이, 바로 필자인 것이다.

얼마 안 있으면 나이 좀 훌쩍 더 먹을테고, 금새 자신도 원치 않는 노인의 반열에 서게 될 것을 깨닫지 못하고 우쭐대는 스스로의 폼새가 너무도 우스꽝스럽고 기가 막혀, 운전하는 내내 속으로 중얼거리며 한달음에 내달렸다. 그리고는 강원도 산골의 한적한 시설에 도착하자마자 부모님을 얼싸안고 볼을 비비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황혼은 새벽보다 찬란하다’고 한 옛 어른의 말씀이, ‘인생을 접을 때가 태어날 때 보다 더 아름답다’ 고 한 표현이, 폐부를 깊숙히 찌르는 잊지 못할 새벽길이었다. 그리고 이 무더운 계절 여름에 새삼 차디 찬 겨울의 느낌에 젖어 추억 속의 시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장만된, 신선한 충격의 하룻날이었다.

필자의 현재는 얼마나 모양 좋게 잘 살아가고 있는 건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면서, 강연을 하면서, 과연 얼마나 남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자리매김 되는, 질 좋은 삶을 살고 있을까? 비록 풍족하고 여유롭지는 못할 망정 진실로 겸손하고 덕망 있고 기품 있는, 그렇게 청빈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후덕한 마음가짐을 오늘 다시금 차곡차곡 쌓아본다.

스무 살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교만과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날 그가 ‘무명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무명선사가 대답하기를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하시면 됩니다.”

“그런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줄 말이 고작 그것 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다. 무명선사가 녹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그런데 스님이 그의 찻잔에 뜨거운 물이 철철 넘치도록 차를 따르는 것을 보고 맹사성이 소리를 쳤다.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스님은 태연하게 넘치도록 차를 따르면서 맹사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교만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 마디에 맹사성은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나가려고 하다가 문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다.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많은 교훈을 주는 글이다. 옛 선인들의 말씀처럼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겸손을 미덕으로 생활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한층 더 밝아지리라 생각 한다. 지금처럼 어수선하고 여러 가지로 어려운 난관이 총체적으로 온 나라를 불안하게 만드는 이 시점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화합과 협력이다.

독불장군처럼 독주하거나, 독단적인 판단과 결정으로 해결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 하는 속담처럼 작은 힘이라도 결집하여 문제 해결에 총력 매진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희망의 빛은, 해결의 실마리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그릇된 관행에서는 꾀할 수가 없다.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 경청하면서 돌파구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쥐 한 마리를 물통에 넣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 놓았다. 쥐는 3분 정도 헤엄치다가 결국 포기하고 물에 빠져 죽었다. 연구원들은 두 번째 쥐를 물통에 넣고 이번에는 한 줄기 빛이 비치는 곳에 두었다. 그랬더니 쥐는 36시간이나 헤엄치면서 견디다가 결국 구조되었다. 첫 번째 쥐는 몇 분 만에 죽은 반면, 두 번째 쥐는 한줄기 빛을 보는 것만으로 하루 반을 버티었던 것이다. ‘대시’ 라고 하는 ‘에릭 아론슨’의 논문집에 실린 예화다.

우리의 삶도 희망이라는 빛을 가지고 오늘을 이겨나갔으면 좋겠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현재에 그냥 안주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현 상황을 벗어나서 한 걸음 더 도약하는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결정해야 한다.

한 중국청년이 무작정 미국으로 향했다. 청년은 미국에 도착하고 얼마 후부터 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켜며 생활비를 벌었다. 그는 목 좋은 은행 입구에서 흑인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음악을 연주했는데 거리공연치고 수입이 꽤 괜찮았다. 그러나 그는 좋은 수익의 거리공연에 안주하지 않고 음대 진학의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차곡차곡 공연수익을 모아가는 청년. 드디어 음대 진학의 꿈을 이루었지만 역시 안주하지 않고,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을 연마했다. 10년 후, 그는 유명한 작곡가이자 지휘자라는 자신의 꿈을 이룬다. 그는 어느날 자신이 예전에 연주하던 은행입구를 지나다 여전히 그곳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는 흑인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가 다가가 인사하자 흑인 친구가 물었다. “어이 친구! 요새는 어디서 연주해?” 그가 유명한 콘서트 홀의 이름을 대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재차 물었습니다. “거기도 여기처럼 벌이가 좋아?” 그는 “응, 그럭저럭 되는 편이야.” 라고 대답하고 돌아선다. 그가 바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음악가’ 중 한 명인 ‘탄둔’이다. 영화 ‘와호장룡’의 음악으로 아카데미 음악상과 그래미상을 수상하고, ‘장가계 협곡’을 배경으로 공연하는 중국 3대 뮤지컬 ‘천문호선’의 음악감독이다.

안주와 도약,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안주’의 사전적 의미는 ‘한 곳에 자리를 잡고 편안히 삶’ 또는 ‘현재의 상황이나 처지에 만족함’이다. 반면 ‘도약’의 사전적 의미는 ‘몸을 위로 솟구치는 일’ 또는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두 가지 삶을 놓고 봤을 때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두 번 살지 않기에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이 비슷한 일상을 사는 것 보다, 오늘 보다 나아진 내일을 사는 것이 조금 더 재미있고 의미 있진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선택할 요건은 두 말 할 나위도 없이 ‘도약’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도약도 든든한 뿌리와 반석이 그 밑바탕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야 가능한 위업이며, 그 위업의 근본은 부모님의 가르침이 효시가 된다.

이를테면 일찍이 부모님의 가정교육이 없이는 어떠한 인격의 형성과 학습의 토대도 이루어질 수 없으며, 부모님이 물려주신 가장 기본적인 성품이 비로소 세상을 살아나가는 인품과 대인관계의 시발점이 된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효경’의 표현처럼 효도의 시작이 바로 세상살이의 가장 큰 첩경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후세에 삶의 도리와 지침을 알려주고 있는 ‘주자십회훈(朱子十悔訓)’의 첫 번째 덕목도 ‘不孝父母死後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후에 뉘우친다.]’이다. 굳이 오래 된 고서를 들먹거릴 필요는 없지만,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효도와 불효에 관한 현상은 언제나 사회의 이슈이며 문화적 정점이었다.

영어에도 ‘효도(孝道)’라는 단어[filial duty]가 있으며 ‘패륜아(悖倫兒)’란 단어[an immoral person]가 있다. 다만 서구는 우리보다 앞서, 19세기에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농경사회가 붕괴되어 자연히 효도란 풍습이 사라졌던 것이다. 그래서 서양은 부모세대가 일찍이 노후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자녀는 자생력을 키우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서양인들은 우리 나라의 미풍양속인 ‘효 문화’를 부러워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부모와 자식 사이는 피(血)를 나눈 사이이기 때문이고, 한국인의 특질인 정(情) 때문이다. 영어에는 정이란 단어가 없다. 우리만의 고유한 의식구조가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와 풍습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되어있음이다.

사랑은 내가 주었다고 해서 상대가 다 받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기 자신만의 방법으로 주었으니 상대가 온전하게 다 받을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다 주었는데 왜 그럴까?” 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마음의 문을 자기 자신의 잣대로 두었지, 상대의 눈빛이 말하는 곳까지 미치치 못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관심이다. 상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관심으로 느끼고 알아서 그 상대만의 방법으로 주어야만이 온전하게 사랑을 듬뿍 다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랑도 사랑하는 방법을 알면, 더 깊은 행복을 상대와 온전히 나눠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더 깊은 사랑을 위하여 우리는 사랑을 더 연구해봐야 한다.

효도도 마찬가지다. 전혀 다를 바 없다. 부모님의 입장에 서서 바라보는 평온함이 효도의 극점이다. 무엇보다도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는 것이 일착이다. 그러기에 ‘장자’도 말했다. “부모를 공경하는 효행은 쉬우나 부모를 사랑하는 효행은 어렵다.”고. 결코 자만하지 말자. 다시 시작하자. 더 늦어버리기 전에....

‘논어’에 나오는 말을 덧붙여본다. “부모의 나이는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한 편으로는 오래 사신 것을 기뻐하고, 또 한 편으로는 나이 많은 것을 걱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