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
네번째 가상詩集입니다.

2012년 봄부터 씌여진 詩들입니다.
實驗詩적인 성격의 習作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역사의 章입니다.

처음 詩人의 길에 入門한 이래로
이제껏 40년 이상을 지어온 詩이지만 아직도
정확한 詩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품어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풍운아로 떠돌며
詩의 본질을 찾아 헤매고 있는
詩人 林森의 애환이 드러나 있습니다.

林森의 고행은 그래서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쭈욱 ~~

詩人의 멍에를 天刑으로 걸머지고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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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세상으로 *



시작노트

" 바람의 세상으로 " 詩作 note

새 해가 밝았다. 2023년은 계묘년(癸卯年)이다. 육십간지의 40번째로 계(癸)는 흑색, 묘(卯)는 토끼를 의미하는 ‘검은 토끼의 해’이다. 토끼는 영민함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예부터 검은색은 인간의 지혜를 관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2023년은 검은 토끼의 해인 만큼, 강인한 뒷발로 장애물을 뛰어넘는 토끼 모습처럼 팬데믹과 전쟁, 초인플레이션 등 그간의 온갖 어려움을 힘차게 뛰어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모든 사람들의 염원을 모아 힘차게 밝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 해에는 사람들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보듬으며 감싸 안아줄 줄 아는, 사람다운 사람들로 넘쳐나는 세상이 열리어지기를 고대한다.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남이 먼저 해주기를 기다려볼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먼저 나서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땀 흘리며 기꺼이 양보하면서 기쁨을 나누어주는 향기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지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이 세상이 평화와 평안의 바람으로 가득 차는, 따뜻한 바람의 누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그래서인지 필자가 올 해 벽두에 제언하는 화두는 바로 ‘바람’이다. 때로는 강렬하게 불어 온갖 삿된 것들을 쓸어버리는 열망의 바람으로, 혹은 광활하게 불어 온 누리에 가득 찬 시기와 질투와 음모의 씨앗들을 죄다 날려버리는 심판의 바람으로, 그런가 하면 다시 온화한 손짓으로 불어 고통과 절망으로 힘겨운 삶의 그늘을 뎁혀주는 따스한 온정의 바람으로, 그리고는 이내 모든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예는 내일의 꿈을 북돋아주는 소망의 바람으로 불어, 그리하여 보여지는 온 세상 끝까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찬란한 바람의 향연을 경험하는 올 해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매년 연말이면 ‘교수신문’에서 선정하는 올 해의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골랐다고 한다. 필자가 처음 듣는 말인 걸 보면 흔히 쓰이는 용어는 아닌 듯 한데, 논어 ‘위령공 편’ 중 ‘과이불개(過而不改) 시위과의(是謂過矣)’에서 나온 말로서, 풀이하면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물론 잘못을 인정하고 그때 그때 고칠 수만 있다면 그 먼 옛날 공자님이 이런 말씀은 안 하셨을 게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 그것을 고치려 하는 것은 쉽지만 또한 쉽지 않다. 사물이나 법규, 정책 등의 잘못은 고칠 수 있지만,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은 바꿀 수는 있어도 고칠 수는 없다. 천만 번의 몸부림을 쳐도 고쳐지지 않는 것이 타고난 인성과 몸에 배인 습관이라 했다. 개인이든 어느 집단이든 어쨌든 간에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바로 고치려는 노력은 해야 할 것이다. 허기사 그게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올 해의 사자성어로까지 선정이 되었을까?

그러고 보니 비단 어느 한 쪽을 겨냥해서 하는 쓴소리는 아닌 듯 하다. 서로 잘 났다고 목소리 높이고 있는 작금의 정치판의 분위기나, 특별한 소수에 의해서 나라의 살림살이가 좌지우지되는 재벌을 위해 특화된 경제 정책, 갈팡질팡하는 각종 규제와 제도 등등, 주워섬기다 보면 은근히 속으로 켕기는 속인들도 많을 것이고, 그렇더라도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뻔뻔하게 쳇머리 흔드는 부류들도 꽤나 있을 것이다. 차라리 그냥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향해 지적하는 말이라고 여겨, 스스로 반성하고 잘못된 행동거지를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 뒷 모습을 살펴보면 내가 갈 앞 길도 보인다고 한다. 자기 자신이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면 발자국이 남아 있다. 왜 사람들은 앞을 보며 말할 때는 애국자요 사회의 지도자인데, 뒤를 돌아보면 발자국이 그리도 삐뚤어져 있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일, 내가 하는 말은 모두 다 옳다고, 맞다고 자신 자신하면서, 나 아닌 사람들의 생각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말은 모두 다 틀린 말이라고, 엉터리라고 확신하지 않았는가?

흥분해서 들떠서 하는 말도, 술 취해서 하는 말도, 빠짐없이 발자국으로 남는 법인데, 지금 이 시점에서 잠시 가던 길 멈추고 뒤돌아보았으면 좋겠다. 혹시 이런 저런 이유로 남아 있어야 하는 발자국이 지워졌던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 발자국 흔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남아 있다. 행여 자신이 해버린 지난 시절의 말들을 모두 모아보면 그 결과가 과연 어떨까? 자신의 발자국과 남겨진 어록들을 보면 알 거다. 내 창피, 내 잘못을 말이다.

길을 모르면 묻고 또 물어서 가고, 뜻을 모르면 그 뜻을 아는 이에게 배워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찌 모르는 길을 제가 잘 아는 길인 것처럼 그리 자만을 하는 걸까? 현자의 말씀에도, ‘길을 모르면 물으면 될 것이요, 길을 잃으면 조금 헤매며 길을 찾으면 될 것이거늘, 중요한 것은 확실한 목적지가 어디인지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라는 글귀가 있다. 눈 덮인 광야에 함부로 발자국 내지 말자. 그 잘못된 발자국 때문에 뒤 따르는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은 거울과 같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신의 본 모습이니 굳이 다른 사람의 모습에 부합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러니 우선 마음을 잘 들여다보자. 그리고 마음의 자화상을 그려보자. 그 다음 마음의 거울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며, 후회 없고 의미 있는 인생을 만들어가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들은 먼저 자화상을 많이 그린다고 한다. 자화상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기회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와 사건 사고들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 그럴수록 마음의 거울을 통해 자아를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농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논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벼가 잘 자라는 줄 안다. 하지만 논에 물이 항상 차 있으면 벼가 부실해서 하찮은 태풍에도 잘 넘어진다. 가끔은 물을 빼고 논을 비워야 벼가 튼튼해진다. 우리도 때로는 삶의 그릇에 물을 채워야 할 때가 있고 때로는 물을 비워야 할 때가 있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우고 또 비우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비워야 할까?

마음에도 저울이 있다. 가끔씩 가리키는 무게를 체크해보아야 한다. 열정이 무거워서 욕심을 가리키는지, 사랑이 무거워져 집착을 가리키는지, 자신감이 무거워져 자만을 가리키는지, 여유로움이 무거워져 게으름을 가리키는지, 자기 위안이 무거워져 변명을 가리키는지, 슬픔이 무거워져 우울을 가리키는지, 주관이 무거워져 독선을 가리키는지를 말이다.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고 느낄 땐 필히 저울을 한 번 들여다보자.

마음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세상을 살면서 사랑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인생은 잠시 스쳐가는 바람 같다. 문득 ‘천상병 님’의 ‘귀천’이란 시가 생각난다. 잠시 우리는 이 세상에 소풍 온 사람들이다. 같이 웃고 같이 슬퍼해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해서 두 손 모으고 감사해야 한다. 인생이 아름다운 건 바로 사랑 때문이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진실인 것을, 그저 간단하게 생각하고 그리 행하면 되는 것을, 어렵거나 장황하지 않은 아주 쉬운 삶의 한 걸음이거늘, 무얼 그리 복잡하게 꾸미고 치장하며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에만 급급해야 하는 걸까?

사람은 누구나 마음 속에 두 마리의 개를 키운다고 한다. 이 두 마리의 개에게는 이름이 있는데, 하나는 ‘선입견’이고, 또 하나는 ‘편견’이라고 한다. 그저 웃고 흘리기에는 그 숨은 뜻이 가슴을 찌른다. 사람은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거대한 감옥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도 가볍게 이야기해서 선입견과 편견이지, 사실 이것들은 ‘교만’의 또 다른 이름이다. 교만은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죄이다.

이런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두 마리 개를 쫓아버리는 한 마리의 특별한 개가 있다. 개 이름이 좀 긴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개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 직접 보지 않고 들은 얘기로 상대를 판단하면 큰 실수를 범하게 된다. 이 개의 애칭은 ‘일견’이라 한다. 일견을 키우면 선입견과 편견을 억누르고 조절할 수가 있다. 항상 일견을 키우면서 상대를 바르게 보는 혜안을 가져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가끔은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닐 때도 있는 것 같다. 거짓말보다 더 나쁜 말은 빈 말이라고 했던가? 그 빈 말 속에 진실이 가려져 오해란 것이 생기고, 그 오해란 것이 또 다른 선입견과 편견을 만드는 것 같다. 그 결과 인연을 악연으로도 만드는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은 세상의 바람과 맞서서 싸우거나, 아니면 바람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함께 흘러가는 것이다. 똑같은 바람이 불어도 느끼는 사람에 따라서 그 이름과 성격이 달라진다. 하지만 실상은 아주 작은 미풍에서부터 거대한 태풍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하나의 바람이다.

때로는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가 있으니 그 때는 얼른 몸을 낮추고 바람을 거스르지 말아야 할 것이요, 때로는 따스한 바람이 불어올 때가 있으니 그 때는 신속하게 가슴을 열어 바람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바람의 흐름과 가는 길을 잘 알아 슬기롭게 대처하는 삶의 눈을 뜨는 올 한 해가 되도록, 모두의 뜻하는 바가 성취되는 ‘검은 토끼의 해’로 하루하루들이 이어져나가기를 고대하는 새 해 벽두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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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세상
살아간다는 건 그저 의무가 아닌
아름다운 축복, 화합의 더불음

몽상에 빠진 나태함
호되게 질책하는 바람이거나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
귓가로 불러주는 바람이거나

그렇게 다 바람이 되는 곳, 세상
바람을 피워내는 곳
바람을 보내오는 곳
바람과 하나 되는 세상 햇살 비칠 때
바람은 세상의 축복으로 불어예다

이토록 찬란한 세상
살아간다는 건 그냥 일상이 아닌
찬란한 비상, 꿈의 날개짓

아직은 힘겨운 도전
애써 손 맞잡는 바람이거나
언젠가는 다다를 피안
차마 반가워 할 바람이거나

그렇게 다 바람을 빚는 곳, 세상
바람과 어울리는 곳
바람과 합쳐지는 곳
바람이 소망 되는 세상 밝히 열릴 제
바람은 세상의 약속을 싹 틔우다

바람의 세상으로 햇살 가득
아름답게 새 날 살아나는 소리
찬란하게 새 바람 열리는 오늘
새 해 정월 초하루
너, 나,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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