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5집. 비 내리는 날 오후  


  "5집. 비 내리는 날 오후"
수록된 序詩의 제목은 '사랑의 서시'이며
목차에서는 '봄 ! 초록빛 생명이 움트는 새 날'에 11편,
'여름 ! 푸른 바다 파도위 갈매기의 사연'에 11편,
'가을 ! 낙엽쌓인 포도의 회색 하늘 정취'에 11편,
'겨울 ! 백설의 광야에 홀로 선 소나무'에 11편,
그리고 '뒷풀이 한마당 -
멍석깔고, 재주넘고, 행복찾는 짓거리'에 16편,
합계 61편의 詩와 後記로 편집된 詩集입니다.

1995년 11월6일 인쇄되었으며
이 詩集에는 비교적 서사적인 내용과 형식을 지닌 詩가
다른 詩集에 비해서
더 많이 실려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 초롱불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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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펀한 가을 가슴 *



시작노트

" 질펀한 가을 가슴 " 詩作 note

가을이 가버렸다.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팽 돌아서서는 뒤도 안돌아보고 그렇게 갔다.
가을에 하려고 다짐을 했던 게 퍽도 많았던 것 같았는데 제대로 이루어낸 것은 하나도 없고 그냥 가는 가을을 붙잡을 엄두도 못내는 사이 박절한 가을은 내 곁에서 멀어졌다.
여름내 저지레해놓은 흔적에 대한 갈무리도 하나도 하지 못했거늘, 겨우살이를 해낼 마음의 채비도 미처 갖추지 못했거늘....

양심에 걸려서 안절부절 못하는 이즈막이다.
가을걷이도 못한 채 보내기가 영 안스러워서, 그리고 엉겁결에 겨울 받아 안기가 차마 부끄러워서 숨이 차는 삶의 언저리가 못내 버겁기만 하다. 그러니 어쩌랴 ! 다시 올 가을을 기다리면서, 기왕지사 찾아온 겨울을 반기며 아끼며 내 자신에게 종주먹 들이대곤 함께 녹아들어야 하는 것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주어진 하루하루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내 양심의 울림 따위야 내 개인적인 문제이니까 내가 혼자 떠안고 겉으로는 활기차게 이 정신없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오늘도 분주하게 내 ‘직업’에 몰두해야 하는 게 내 운명 아니겠는가?

우리말로 ‘직업’이란 말은 영어로 보면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job)이란 의미도 있고 사회가 불러주었기 때문에 하는 ‘부름받은 일’(vocation)이란 뜻도 있다. 우리는 자기가 하는 일을 그저 살기 위해 하는 일만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해도 그 직업에 담겨있는 뜻과 소명이 있으니 사회의 ‘부름을 받은 일’로 여기고 이에 합당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남을 의식해서 하는 외형적인 행동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소리, 즉 양심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에 기인하라는 의미이다. 또한 정체성만이 아니라 인생의 목적성을 같이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실력, 능력, 노력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는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특히 유의해서 되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이 사회는 어떤 때는 우리의 능력만으로 단순하게는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과 결단을 필요로 할 때가 종종 있다. 때에 따라서는 많은 경우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금방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이럴 경우 어떻게 고비를 극복하고 모자란 실력으로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합당한 결론을 이끌어내야 하는가 ? 결과에 집착하지도 연연하지도 말고 내 양심이 이끄는 대로 가면 된다. 양심의 리듬에 따라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양심이 불러주는 노래의 리듬에 맞추어 온 몸을 움직이면 된다. 지금은 어려워도 양심에 순종하는 느낌으로 생활의 템포를 조절하다보면 궁극에 가서는 자주적이며 효율적인 결과를 스스로 만들어낼 여지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양심이 한 발짝 움직이면 몸도 한 발짝 움직이고 양심이 아래로 내려가면 몸도 아래로, 양심이 위로 올라가면 몸도 위로 따라 올라가면 된다. 그러다가 보면 나중에는 양심의 리듬과 몸의 리듬이 조금씩 비슷해지는 희열을 느낄 수 있을테고 양심에 합당한, 결과적으로 사회의 ‘부름받은 일’로서의 공익적인 소명을 다하는 게 되리라.

사실 현실적으로는 조석으로 변하는 사회의 어지러운 세파에 휩쓸리다보면 자신의 정체성은 커녕 아무런 소회조차 느낄 여지도 없이 그냥 일엽편주처럼 떠돌다가 정신 못차리고 쓰러지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누구에게나 그런 경우가 닥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며 계속 쉬지 않고 성장을 거듭해야 하는 것이다. 미완성의 개체인지라 늘 무언가를 추구하며 내일을 향해 자라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아직 완전한 완성 작품이 결코 아니다.

인간은 모두 하나같이 양심에 기인하여 차근차근 성장해감을 목표로 할 때 비로서 세상 풍조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사회의 일원으로 ‘이미’(already) 이루어졌지만 ‘아직’(not yet) 더 이루어져야 하는 긴장 속에서 살아간다. ‘이미’ 사회의 한 구성원이지만 사회의 참다운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더 자라가야 하는 것이다.

성장하지 않는 양심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양심의 문제를 놓고 남과 비교하려 든다거나 남보다 더 양심적으로 살아서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그릇된 통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그 양심은 죽은 양심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흔히들 지도층의 인사들이나 권력자들이 요즈음은 더 비양심적으로 살아간다는 왜곡된 시선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있는데 그럴수록 본인의 양심만 더 삐뚤어져가고 퇴보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회의 양심인이 되기 위해 양심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쉬지 않고 장성한 양심의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 위해 계속해서 자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겨울을 멋지게 살아내고 이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축복받은 양심의 계절들을 차례로 맞이하면서 질펀한 가을 가슴을 준비하고 있다 보면 기다리던 가을은 또다시 우리 곁으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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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가쁜 숨 내쉴 적 마다
질펀하게 묻어나는 가슴,

널부러져 엉절거리는
후회 속으로 그래도
아직은 쫀득쫀득한
살 내음,

강렬한 욕망
모멸차게 잠재우려
무던히도 애쓰는
가을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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