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5집. 비 내리는 날 오후  


  "5집. 비 내리는 날 오후"
수록된 序詩의 제목은 '사랑의 서시'이며
목차에서는 '봄 ! 초록빛 생명이 움트는 새 날'에 11편,
'여름 ! 푸른 바다 파도위 갈매기의 사연'에 11편,
'가을 ! 낙엽쌓인 포도의 회색 하늘 정취'에 11편,
'겨울 ! 백설의 광야에 홀로 선 소나무'에 11편,
그리고 '뒷풀이 한마당 -
멍석깔고, 재주넘고, 행복찾는 짓거리'에 16편,
합계 61편의 詩와 後記로 편집된 詩集입니다.

1995년 11월6일 인쇄되었으며
이 詩集에는 비교적 서사적인 내용과 형식을 지닌 詩가
다른 詩集에 비해서
더 많이 실려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 초롱불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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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의 세계로 *



시작노트

" 신비의 세계로 " 詩作 note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늙고 약해진다. 이 세상에 절대적이고 완벽하며 불변인 것은 없다. 누구나 잠시 머물다 간다. 마음은 곧 우주다. 광활한 마음이 주는 미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망에 사로잡혀 있으면 우주와의 소통에 장애가 오고, 곧 변화에 사로잡혀 집착하게 된다. 그것이 다시 구별하고 차별하는 마음을 낳고, 소통이 곧 변화라는 사실을 망각해버린다.

소통 그 자체가 변화이며 그 안에서 시간과 공간이란 인식이 생겨난다. 인간이 곧 이 변화 가운데 늙고 병들어 사라진다. 구별하지 않는 마음은 자유롭게 그 변화를 바라볼 수 있고, 집착하지 않으면 순응한다. 내가 곧 우주이며, 우주가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구별이 낳은 그릇들이 깨지고, 그 모든 건 오고 가는 데 자유로워지며 하나가 될 수 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공평하다.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가치를 지녔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마음 속을 어지럽히는 무질서한 혼란을 잠재우는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소중하다.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세계가 멋지게, 혹은 시답쟎게 구축되어진다. 예컨대 신비의 세계는 자신이 만들어간다.

마찬가지로 하챦은 세계도 자신의 작품이다. 주변의 여건이나 환경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스스로의 생각과 능력으로 지어올리는 세상, 그 속에서 다시 자신의 숨소리를 들으며 인간들은 살아가는 것이다.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하루의 일상 중에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교차되는데, 그 때마다 인간들은 선택과 판단의 기로에서 갈등하게 된다. 너무 많은 순간들의 연속이라서 일일이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또한 계속해서 이어지는 선택의 찰나들로 인해, 이미 지나간 잘못된 선택이나 완벽한 판단 등의 가치는 구분하여 되돌아볼 사이도 없이 또 다른 다음 시간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참 바쁜 삶의 단면이다. 어쩌면 이런 순간적인 교차들의 연속성이 있어서 별 탈 없이 살아가게 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미 지나간 일들에 집착하고 아쉬워만 하다가, 다가오는 내일의 삶을 소홀히 하거나, 미처 준비도 안된 채 엉겁결에 내일조차도 흘려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어차피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적당히 잊을 건 잊으면서, 대충 얼버무리면서, 그렇게 상처를 감싸주면서, 아직은 오지 않은 미래의 소망과 행복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그래서 행복의 절반은 현실에 있고, 나머지 절반은 꿈 속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 힘겨운 오늘을 견디다보면 언젠가는 필경 행복과 기쁨만 가득한 신비의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그 꿈이 있어서 나를 살아가게 한다.

어떤 시련도, 난관도, 그리고 아무리 거센 역경이 닥쳐와도 그걸 헤쳐 나가는 의지와 기상은, 그 뒤에 다가올 꿈을 기약할 수 있음으로 비로소 가능할 수 있다. 영화 ‘슈퍼맨’ 시리즈로 잘 알려진 미국의 영화배우 ‘크리스토퍼 리브’. 그는 큰 인기를 끌며 영국 ‘칼포먼상’ 신인상을 받는 등 배우로써 최고의 영웅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엄청난 시련이 찾아왔다. 승마 경기를 하던 도중 말에서 떨어진 것이다.전신 마비를 선고받았고, 목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아내에게 그만 살고 싶다고 애원했다. “여보, 이젠 내게 희망은 없어. 그만 떠나고 싶어...” 그러나 그의 아내는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은 회복할 수 있어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힘을 내세요.”

아내는 더 큰 사랑으로 그가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의료진 또한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주변의 노력에 감동 받아 그 또한 포기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재활을 위해 노력했다. 마침내 그는 다시 일어섰다. 그 후 그는 ‘크리스토퍼 리브 재단’을 설립해 자신과 같은 마비 환자들의 치료, 재활을 위한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Still Me’ 라는 자서전을 출간하여 작가로도 활동하였으며, 배우로도 재기에 성공해 영화 조연, 드라마 카메오로도 활동했으며, 1997년에는 영화감독을 맡기도 했다. 2000년에는 인터뷰 중 왼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을 대중들에게 보여줘 그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밀어넣기도 했다. 그리고 2004년 10월 10일, 그는 53살에 급성심근경색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희망을 놓지 않은 그를 진정한 슈퍼맨으로 기억한다.

전신 마비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 진정한 슈퍼맨인 크리스토퍼 리브. 그는 삶의 크고 작은 문제에 직면한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희망을 잃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자신을 저버리지 마세요.” 그리고 다시 말한다.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잃지 말며, 자신을 저버리지 말라.” 정말로 눈물겨운 말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세상은 어디서나 사람 사는 맛이 느껴진다. 어느 곳에서나 사람의 향기가 풍겨나고, 사람들의 호흡소리와 땀 냄새가 짙게 배어난다. 무릇 사람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어느 산골에 위치한 초등학교 분교에 무척이나 마른 선생님 한 분이 전근해 왔다. 학교 인근에서 자취하게 된 선생님은 마을 내 유일한 작은 가게에서 달걀을 사 오곤 했다.

가게는 연세 많은 할머니가 용돈 벌이 삼아 운영하고 계셨는데, 늘 달걀 한 개에 150원만 달라고 했다. 선생님은 처음엔 150원을 주고 달걀을 샀지만 얼마 후부터 할머니 혼자 닭을 키워 달걀을 파시는 모습이 안쓰러워 달걀 1개 값에 200원을 드렸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선생님이 이러시면 안 된다고 하시며 50원을 억지로 되돌려 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가게에 달걀을 사러 갔다가 우연히 달걀 장수와 할머니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달걀 장수는 할머니로부터 달걀 한 알에 250원씩 사겠다고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유정란을 찾는데 비싸게 팔아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니까요. 그러니 가진 달걀 모두 저에게 파세요.” 그러자 할머니가 말했다. “그런데 요거 몇 개는 못 팔아. 이번에 초등학교에 새로 오신 선생님께 팔아야 해, 그 먼 데서 여기까지 아이들 가르치겠다고 오셨는데 살이 좀 오르면 좋으련만... 뭘 잘 안 드시는지 너무 마르셨어...”

선생님은 할머니를 생각해서 200원에 달걀을 사려고 했지만 알고 보니 할머니는 오히려 선생님을 위해서 손해를 보고 판 것이었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힘든 처지에 놓인 그 사람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 사람에 대한 훈훈한 정과 관심... 이게 사람 사는 맛 아닐까? 남에게 관심받는 것도, 관심을 주는 것도 꺼리는 각박한 요즘, 시골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새삼 그립다. 사람이 사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은 눈도 아니고, 지성도 아니거니와 오직 마음뿐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관계는 일방적인 생각에 의해서 그 가치가 결정된다. 어떤 모임이든지 끝나고 나서, 정말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 낭비만 하였다고 가치를 스스로 평가 절하하는 사람도 있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표출되는 생각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인과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틀린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다만 적절한 조화와 적당한 조합이 세상을 살아가는 팁인 것만은 확실하다.

1951년 4월 13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는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한 ‘강뉴부대’ 파병 출정식이 있었다. 그들이 돕고자 하는 나라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 6.25 전쟁이 발발한 아시아의 또 다른 약한 나라를 돕기 위해 출정에 나섰다. 강뉴부대는 16개국 참전군인 중에서도 가장 용감하게 싸웠다.

5차에 걸쳐 6,037명의 강뉴부대원들이 참전하였고, 123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를 냈지만,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었다. 그 이유는 이기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만 선택했기 때문이다.그리하여 253번의 전투에서 전부 승리를 거두게 된다. 강뉴부대원 중에 어떤 군인들은 월급 일부를 에티오피아로 보내지 않고, ‘보화원’이라는 보육원을 만들어 전쟁고아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잠을 잘 때는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 곁에서 지켜줬다고 한다.

이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때문에 가족을 뒤로 했다. 그리고 목숨을 다해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다. 그 중 형제가 전쟁터로 향한 가족이 있었다. ‘데스타(Desta)와 메코닌(Mekonen)’, 세계 평화를 위한 집단 안보를 실천하기 위해 황제근위병이란 멋진 자리도 버리고, 만류하는 가족들까지 뒤로한 채 죽음이 기다리는 땅을 향해 형제가 뜻을 같이한 것이다.

빛 바랜 사진 뒤에는 그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었다. ‘한국의 상황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열악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생전 처음 겪는 눈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였으나, 그에 따른 추위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쟁터에서 형 데스타는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그의 죽음은 조국을 위한 것도 아니고, 가족을 위한 것도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다. 그렇게 목숨 걸고 싸웠지만, 휴전이 되어 에티오피아로 돌아왔을 때, 목축업으로 살아가던 에티오피아에서는 7년간 계속된 가뭄으로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해 어려운 상황이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 소득이 80$가 채 되지 않았을 때, 에티오피아의 국민 소득은 3,000$가 넘었던 나라였는데 그렇게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멩게스투’라는 군인이 쿠데타를 일으켜 공산국가가 되었다. 공산주의와 싸우겠다고 스스로 지원했던 참전용사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문과 핍박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강뉴부대원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에티오피아, 그 에티오피아에서도 가장 비참한 사람들이 되어 살아가게 되었다.

그들을 위해... 우리 중 누구라도 나서야 했다. 지난 해 어떤 민간단체에서 처음으로 강뉴부대원들을 만났다. 그리고 한없이 부끄럽고 감사했다. 과연 대한민국 국민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가슴 아픈 역사를 알고 있을까? 지금도 강뉴부대원 분들은 우리를, 피를 흘린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대한민국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세상 누가 뭐라고 해도 옳은 일을 했다는 자부심을 간직하고 계셨다.

지하무덤에 쓸쓸히 잠들어 계신 123명의 전사자분들과 아직 생존해 계신 참전용사와 그들의 후손들... 그리고 6,039명의 강뉴부대 전 대원들의 희생을 우리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그냥 기억하고만 있다고 해서 도리를 다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 받았던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지금 베풀고, 건네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며 흐트러지는 심사를 다잡아야 한다.

당장 혹시 처지가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예전의 어려웠던 시절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당시의 고마움이나 배려도 역시 묻어버리고 마는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남이 내게 끼친 손해만은 악착같이 기억하려 애쓰면서, 남에게 받은 은혜나 후의는 부담 없이 머리에서 씻어내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세상의 근본적인 인정과 사랑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마음이 인색하여 남을 인정하지 못하니 자연히 칭찬과 긍정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진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19세기 영국의 전설적인 화가인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에게 어느 날 한 노인이 자신의 그림이 그려진 스케치북을 들고 찾아왔다. 그 노인은 로제티에게 자신이 조금이라도 화가의 재능이 있는지를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했다.

로제티는 찬찬히 그림을 살펴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전혀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노인은 실망한 표정이었지만 어느 정도 각오한 듯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노인은 다시 낡은 스케치북 하나를 더 꺼내더니 그 그림들을 봐주기를 요청했다. 자기가 잘 아는 젊은 화가 지망생이 그린 그림들이라고 했다. 로제티는 귀찮았지만 노인의 진지한 태도에 이끌려 그 그림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 그림들은 놀랍게도 아주 좋았다. 흥분한 로제티는, 이 그림을 그린 젊은 화가지망생은 아주 탁월한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곧바로 전문적인 화가 수업을 시작하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노인은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이상한 느낌이 든 로제티는 그 그림들을 그린 사람이 혹시 아들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사실은 이 그림들도 제 것입니다. 젊었을 때 제가 그린 것들이지요.
만약 그 때 당신 같은 화가가 한 번이라도 칭찬을 해주었더라면... 하지만 아무도 제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기에 도중에 그만 포기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칭찬에 대해 어색해하지 말자. 칭찬에 대해 인색하지도 말자. ‘잘하고 있어.’ ‘재능이 있네!’ 이 한 마디의 격려와 칭찬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을 만큼 큰 힘을 지니고 있다. 칭찬은 평범한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 마법의 문장이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에 인색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우리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 한층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느낌으로 화할 것이다.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해서, 그래서 그 속 마음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해서 우리의 관계가 미궁에 빠져있을 필요는 없다. 비록 보이지 않는 속내일지언정 따뜻한 느낌이야 어찌 숨길 수 있을 것인가? 온정은, 온기는 그렇게 슬그머니 손잡아주는 사랑으로 전달되어지고, 몰랐던 속내까지 어느새 자연스럽게 알아지는 것이 바로 사람이기에 가능한 관계성이다.

오래 전 작은 마을 초등학교에 다니는 5학년인 여학생이 있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준비물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내일 올 때 작은 주전자를 하나씩 가지고 오세요.” 집으로 온 딸은 엄마에게 주전자를 준비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내놓은 주전자는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다. 학교에 가져가면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될 게 뻔했다. “이게 깡통이지 주전자야? 창피해서 못 가져가!” “그래도 준비물 안 챙겨 가면 선생님께 혼나잖니? 그냥 가져가렴.” 그러나 딸은 주전자를 내동댕이 쳐버렸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딸이 들고 가기 쉽게 보자기에 꽁꽁 싸맨 주전자를 건넸다. 딸은 못 이기는 척 주전자를 들고 학교에 갔다. 그러나 녹슨 주전자를 내놓기가 싫어서 가방에 다시 넣어버렸다. 선생님께는 깜빡 잊고 안 가져왔다고 해서 꾸중을 들었다. 학교를 마치고 주전자가 담겨있는 보자기를 그대로 들고 집으로 왔다. 주전자를 잘 사용했느냐는 엄마의 물음에 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엄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녹이 많이 슬어 있기에 철 수세미로 박박 닦았지. 어제 봤을 때보다 그렇게 흉하지는 않았지?” 그제야 어젯밤 잠결에 들었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생각났다. 방으로 황급히 들어와 보자기 안에 있던 주전자를 꺼내 보았다. 어제 보았던 것이 아닌 반짝이는 주전자가 있었다. 엄마는 딸이 학교에서 창피를 당하지 않을까 싶어 철 수세미로 밤새도록 닦았던 것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볼 수 있다. 한 걸음만 떨어져서 생각하면 아직 깨닫지 못했던 신비의 세계가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할 따름이다.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속단하고 경솔한 결론을 내려놓기에 은은하고 멋진 신비를 거부하는 것이다. 자칫 그런 우를 범하기 쉬운 것이 사람이다.

신비의 세계는 멀리 있지 않다. 눈 감고 손만 내밀어도 가볍게 손길 닿는 그곳에 바로 신비의 세계가 있다. 우리가 헛손질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안타까운 눈초리로 우리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고 싶어서 안달하는 신비의 세계는 바로 지척에 있다. 얼른 발견하자. 빨리 깨달아 느끼자. 그리고 함께 더불어 걸음하자. 신비의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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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향해 앉으면 신비의 세계
살아 숨쉬기 시작한다
속살 드러낸 한 떨기 모란꽃잎 속에
자아의 이름으로 펼친
금단의 신기루

항상 푸르른 정글 어딘가에는
유년의 낙원 간직한 채
때깔 좋은 둠벙
초록 물빛 토해내고,

바람처럼 스며든 도발에
화들짝 놀란 개구리 몇마리
목숨 앗길세라
깊이 깊이 여울 파장 만들던 오래된 세계

세상이 이토록 투명한 날에는
사라진 글자 그림자만으로도
옥의 티로 남겨지고 말았던 기억,
내 마음 계절은 오늘도 겨울이라서
한껏 추위에 떨어야 하건만-

꿈꾸며 기다린 초로의 머리엔 서리가 내려
이제 당분간은 고요가 찾아올테고,
신비 가득한 세계로
떠나는 염원에는
빛 받아 반짝이는 소망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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