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5집. 비 내리는 날 오후  


  "5집. 비 내리는 날 오후"
수록된 序詩의 제목은 '사랑의 서시'이며
목차에서는 '봄 ! 초록빛 생명이 움트는 새 날'에 11편,
'여름 ! 푸른 바다 파도위 갈매기의 사연'에 11편,
'가을 ! 낙엽쌓인 포도의 회색 하늘 정취'에 11편,
'겨울 ! 백설의 광야에 홀로 선 소나무'에 11편,
그리고 '뒷풀이 한마당 -
멍석깔고, 재주넘고, 행복찾는 짓거리'에 16편,
합계 61편의 詩와 後記로 편집된 詩集입니다.

1995년 11월6일 인쇄되었으며
이 詩集에는 비교적 서사적인 내용과 형식을 지닌 詩가
다른 詩集에 비해서
더 많이 실려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 초롱불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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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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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지하철이 멎는다.
비집고 들어가 자리잡고 앉으니
맞은편에 보여지는 사람들이 을씨년스럽다.

문가에는 설흔쯤 된 젊은 여자가 앉았다.
키가 꽤 커보이는 아주 깡마른 여자 -
뭔가 불안한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 옆에는 환갑을 훨씬 전에 넘음직한 할아버지가 앉았다.
듬성 듬성 흰 수염 난,
엉덩이만 슬쩍 걸친 노인 -
짐받이에서 주운 주간지를 뒤적이며
옆의 아낙 드러난 종아리를 힐끔거린다.

그 옆에 앉은 아가씨는 참 수수하게 생겼다.
두꺼운 책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여자 -
아까부터 어떤 걸 골똘히 생각하면서,

그 옆에 앉은 여학생은 큰 가방을 갖고 있다.
공부에 지쳐 낙을 잃어버린 듯한 표정의 그녀 -
멍하니 촛점 없는 눈동자로 허공을 주시하며 ,

그 옆에는 중년의 사내가 앉아 졸고 있다.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정신 없는 남자 -
몸 가누지 못해 자꾸만 옆쪽으로 쓰러지며,

그 옆의 뚱뚱한 처녀는 짜증나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다리가 허리만 한데도 과감하게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 -
중년 사내가 자구 기대오는 걸 이리저리 피하며,

마지막에는 역시 젊은 아가씨가 앉았다.
완전히 잠에 취해 계속 눈감고 있는 여자 -
어디까지 가는지 도통 눈뜰 생각조차도 없는,

자정무렵 지하철에는 고단함이 가득하다.
나는 고단하여 그네들이 된다.
그네들의 얼굴이 모두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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