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 감사의 계절에 눈물 내리고... 토해낸넋두리後"
예상하고 있는 출판 계획 상으로 보자면
세번째 詩集이 될 詩들의 묶음입니다.

2010년 후반기부터 2012년 봄까지의 詩를 모았습니다.

역시 힘든 세상살이의 단면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詩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고달프고 버거운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새롭게 거듭나는 미래의 또 다른 삶과
행복의 추구에 관한
보헤미안 林森의 깨달음의 속내가
절절하게 배어나고 있습니다.

비단 詩人 만의 이야기가 아닌
세상 모두의 이야기이며,

그렇기에 누구나가 스스로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여기면서
차례 차례 감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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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 무리 *



시작노트

" 빛 무리 " 詩作 note

오늘은 신간서적 한 권을 소개하면서 시작노트를 시작하려고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소박한 삶,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와 같은 삶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 쓴 책이다. 한때 서울에서 벤처기업 CEO로 일했던 저자 ‘김용규’가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해 삶의 기반을 통째로 숲으로 옮기고, 그 숲에 살면서 겪는 소소한 일상과 감정부터 그가 마주한 사람들, 숲이 가르쳐주는 철학과 지혜까지를 망라하여 지었다.

귀촌과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순리에 맞는 자연스러운 삶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 바로 ‘당신이 숲으로 와준다면’이라는 제목이다. 숲의 섭리에 각자의 삶을 대입해보고, 삶의 궤적을 되짚어봄으로써 독자들은 눈앞에 닥친 어려움이 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삶의 균형은 용쓰지 않아도 천천히 맞춰진다는 사실을 읽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오늘을 살아낼 용기는 물론, 따뜻한 위로를 얻는다.

숲과 조화를 이루어 살며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일에 몰두해온 저자는 ‘여우숲’의 대표로, 사람들에게 숲을 해설하고, 농사를 짓고, 숲학교 ‘오래된 미래’와 연구소 ‘자연스러운 삶 연구소’를 만들어 숲을 공부해왔다. 그 과정에서 습득한 숲의 가르침을 숲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편지 형식의 글을 지난 10년간 연재해왔다. 이 책은 그중 5년의 시간을 선별해 엮은 것이다.

숲에서 자급자족하며 문명사회를 비판한 사상가인 소로는 “사람들이 찬양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삶은 단지 한 종류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다른 여러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한 가지 삶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라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세상에는 수많은 형태의 삶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삶이 정답인 것처럼 교육받으며 자란다.

학창시절 좋은 성적을 받고, 일류 대학에 진학하고, 대기업에 입사하고, 결혼 적령기에 결혼하고, 아이 낳기를 강요받는다. 현대사회가 ‘보통의 기준’으로 짜놓은 삶의 방식을 따라 앞만 보고 달린다. 그래서일까?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틈도 없이 각박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소로처럼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가고 싶은 사람들, 의무와 관성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내 인생’을 살고 싶다는 사람들은 많은데, 자신만의 삶을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열리는 각종 인문학 강좌를 따라다니며 강연자의 삶을 동경하거나, TV 다큐멘터리 속 타인의 삶을 지켜보면서 대리만족할 뿐이다. 그렇게 비극적인 현대인의 삶에 한 모금 청량음료같은 상큼함과 짜릿함을 선사해주기에 이 책은 꼭 읽어봄 직한 책이다.

숲은 인간보다 수천 수억만 년을 먼저 살며 생존의 지혜를 터득해왔다. 비바람을 맞고 부러지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억겁의 시간을 지나, 숲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다. 저자는 숲에 직접 살며 얻은 깨달음을 이 책에 담았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자연을 예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숲의 생리와 인간의 삶을 견주어 성찰한다. 그 기록은 자연이 보여주는 삶의 원리를 인간의 삶에 적용하는 데 아주 탁월하다.

그의 적절한 통찰은 숲에 공존하는 생명체 뿐 아니라 숲을 위협하는 외부요인들까지 함께 통찰함으로써 가능했다. 숲에 영향을 미치는 안과 밖의 요소를 고루 살피는 것으로 삶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가지고 있는 측면, 즉 생래적(生來的)인 면을 발견한다. 반드시 ‘그러할 수밖에 없는’ 삶의 이면을 똑바로 바라본다.

진즉 부러졌어야 했던 나무 가지에 대한 이야기가 그 예다. 늙어 굽은 소나무의 가지 하나를 쇠기둥으로 받쳐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이는 나무의 ‘지상부[tree]’와 ‘지하부[root]’의 균형을 잃게 해 나무를 뿌리째 뽑혀 죽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레 비바람을 맞고, 스스로 지킬 수 없는 가지 하나 쯤 뚝 부러뜨려 잃는 것이 더 좋다. ‘잃음’으로써 뿌리와 가지는 균형을 맞추고 생존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억지로 꾸미지 않은, 순리에 맞는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우리가 잃어버리지 않고자 집착하거나, 잃고자 애쓰는 것들의 운행을 자연스럽게 둔다면, 삶의 어려움은 생각보다 쉽게 지나가는 것이다. - 사람이 실수 혹은 실패가 주는 두려움에 갇혀 발을 내딛지 못하는 동안에도, 숲에 사는 나무들은 주저하는 법이 없습니다. 도피할 수도 없는 붙박이의 숙명을 받고 태어나 평생 빛과 양분을 향한 치열한 경쟁을 이어가야 하는 생명이지만, 나무는 오직 자신이 열고 싶은 하늘을 바라보며 순간을 살아낼 뿐입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새 가지를 뻗어내면서도 나무는, 도달하고 싶은 하늘에 닿을 수 있을지 닿지 못할지를 염려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나무는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성장 중에는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가지들이 있고, 그것들이 발 아래로 떨어져 썩어야 비로소 다시 힘이 되어 더 단단한 줄기를 성장하게 도울 것이라는 사실을. 본래 실수이거나 실패라는 놈은 그렇게 모든 생명에게 주어진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 ‘밤 숲에서 만나는 두려움에 대한 선물’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어떻게 하면, 언제 쯤이면, 숲이 생경스러운 느낌이 아니라, 안온하고 평화로운 마음의 고향이나 태초의 요람처럼 자연스럽게 마음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맛볼 수 있을까? 그리하여 모든 삶의 근원과 활력을 충전시켜주는 에너지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될까? 버겁고 정신 없는 일상을 탈피하여, 무작정 일탈로 떠나고 싶은 강렬한 욕망과 충동에 시달려야 하는 가여운 현대인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주고 등대불로 비추어주는 숲이 지금 책에 담겨 다가온다.

그런가 하면 ‘여행은 선택이 아닌 운명’이라는 부제를 달고, 여행을 통해 진짜의 나를 발견하게 된다면 반은 성공한 셈이라고 주장하는 책 ‘나를 치유하는 여행’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시인이자 여행가이자 전직 기자인 ‘이호준’ 작가가 여행을 통해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나’를 치유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여행은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과정’과, 스스로 익명이 되어 ‘익명의 세상으로 나를 던져 넣는 행위’이며, 허세로 꾸며진 포장을 벗어던지고 발가벗은 나와 만나는 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한겨울의 나무로부터 시련에 무릎 꿇지 않는 의지를 배우고, 철새로부터 뼛속까지 비워, 수만 리를 나는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가 치유를 위한 최적지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충남 부여’의 ‘만수산 무량사’와 인근 ‘서천군’의 ‘신성리 갈대밭’이다. 치유의 마무리 지점은 ‘추사 김정희’가 나고 자란 ‘예산 추사고택’과 ‘고암 이응노 화백’의 습작들을 볼 수 있는 ‘선미술관’과 ‘수덕사’다. 예컨대 이 책에는 일정한 지명을 차례로 열거하면서, 한 편으로 보편적인 자연과 숲을 은유적으로 에둘러 천거하는 묘미가 숨어있다.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이든, 나름 철저한 준비와 계획 하에 떠나는 여행이든, 모든 여행의 끝은 숲으로 난 길을 따라 걷게 된다. 기암괴석의 절벽길에도, 바닷가 좁은 오솔길에도, 도심의 골목마다 펼쳐진 미로에도 숲은 존재한다. 자연의 숲이, 인간의 숲이, 현실의 숲이, 역사의 숲이, 우리를 둘러싸는 모든 숲길에서 우리는 빛을 찾아서 어둠을 헤친다. 그리고 그 숲의 흔적을 가슴에 품고 내일로 걸어간다. 그게 삶이다. 그렇게 걷는 여정이 우리의 운명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숲을 그린다. 숲을 만들어간다.

필자는 한 때 늙어간다는 사실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여 우울증을 앓았던 적이 있다. 물론 자리보전하여 눕는다거나 병원에 입원을 하는 따위의 표가 나는 아픔은 아니었다. 특별한 약을 처방받거나 치료행위를 수반하지도 않았다. 그냥 남들은 알지 못하는 속내에 깊고 진한 아픔이 스며들어 밤낮으로 필자를 괴롭히곤 했던 무시무시하고 끈질긴 병마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와서 밝히지만 정말 돌이켜 보기 조차 소름 끼치는 상처다.

도무지 숨을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거머리 같은 빨판을 필자의 심장에 턱하니 박아 넣고 소중한 피를 한 움큼씩 빨아대던 그 지긋지긋한 병마는 올 때처럼 어느 날, 소식도 없이 슬며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당시 필자는 미친 듯이 산을 탔다. 사철 불문하고 숲을 찾아 헤맸다.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 다리를 삐기도 하고, 크고 작은 타박상을 입기도 했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눈만 뜨면 산에 올랐던 기억이다.

그 후에는 이렇게 잘 늙어가고 있다. 그리고 한껏 늙어버린 시인의 두뇌에서 생각나는 시어는 이리저리 모여져서는 당연히 늙은 시로 지어지고 있다. 이마저도 필자는 호강이라 여긴다. 소위 ‘늙은 시인의 노래’라도 읊을 수 있는 여유가 이나마 주어진다는 오늘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허락되는 한 꾸준한 행보를 숲으로 이어갈 요량이다.

예전 그토록 필자를 아껴준 숲인데, 모든 아픔과 괴로움을 다 씻어준 숲인데, 잗다란 핑계들을 내세워 한동안 산에도 가지 못하고 숲도 거닐지 못했음에 늘 마음 한 구석에 개운치 않은 찌꺼기가 끼어있었거늘, 이 책을 읽는 동안 숲 속에 머물러있는 느낌이 들어 참 좋았다. 지난 시절 언제였던가? 신은 벗어 양 손에 들고, 발 뒤꿈치도 슬쩍 들고, 꽃길을, 숲길을 가만히 가만히 걸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일상에 지치고 힘든 필자에게 숲이 언제나 “괜찮다... 괜찮다...” 버릇처럼 위로를 건넸던 일을 추억한다. 숲은 필자에게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많이 애쓰고 있다고 위로해주곤 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필자가 숲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어서 더더욱 좋았다. 조만간 이 책을 들고 숲으로 가야겠다. 그 숲에 누워서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숲에게 읽어주고 싶다. 그리고 행여 시상이라도 떠오른다면 늙은 시 한 편이라도 지어내고 싶다.

보너스 팁을 하나 적어보자. 마지막으로 저자의 당부를 기억한다. -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것을 택하면 어떨까요? 멈춰보는 것이지요. 놀아보는 겁니다. 수십 년간 조직과 세상으로부터 요구받은 삶, 남편과 아버지로서 요구받았던 가장으로서의 생활로부터 잠시 벗어나보는 겁니다. 여행을 떠나거나, 홀로 영화를 보거나, 미술관을 가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릴없이 빈둥대보는 시간, 그 의도된 공백을 그대로 두어보는 겁니다. 아마도 그 경험은 너무도 생경하고 당황스럽고 아프기까지 할 거예요.

하지만 제대로만 마주한다면 참으로 소중한 일일 겁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주도해 ‘본래의 나’를 만나는 거의 최초의 의도된 시간일 테니까요. 이 시간 동안 가능한 한 끝까지 가보기를 권합니다. 사회적인 역할을 위해 썼던 가면을 벗는다는 두려움, 혹은 왜소함, 불안감 따위의 느낌을 피하지 말고 직시해보세요. 그 끝과 제대로 마주한다면, 화려한 덧칠로 가득했으나 결코 그 옷의 주인은 아니었던 나를 만나고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운이 좋다면 그런 나를 떠나보낼 힘도 솟아오를 것입니다. 마침내 ‘내 삶의 주인인 나의 삶’을 향하는 옷을 찾아 걸치게 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옷 따위는 필요 없다며 스스로 닫아걸었던 문을 박차듯 열고 벌거벗은 채로 나서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삶은 언제 살아보려 합니까? 오직 내가 내 삶의 주인인 그 삶은 언제? -

우리의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귀하게 여기고 신경써야 할 선택은 어떤 것일까? 숲은 우리에게 숨겨진 답을 알려준다. 비밀한 진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단,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한 여객선이 항해하다 큰 폭풍을 만났다. 배는 곧 난파됐고 항로를 잃고 헤매다 어느 무인도에 도착했다. 승객들 모두 목숨은 건졌으나, 고칠 수 없을 정도로 고장이 난 배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배 안에 충분한 식량과 씨앗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언제 구조될지 모르는 상황인지라 미래를 위해 땅에 씨앗을 심어두기로 했다. 그런데 씨앗을 심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하자 놀랍게도 땅속에 황금 덩이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황금을 보자 더는 씨앗을 심는 일을 모두 잊고, 황금을 채취하는 데만 열중했다.

어느덧 황금은 더미를 이뤘고, 몇 달 치의 식량은 바닥을 드러냈다. 그 때야 사람들은 씨앗 심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는 식량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씨앗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황금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차이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결정하는 것이다.” 라고 한 ‘벤 스타인’의 말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아름다운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인과다. 다만 억지로 목적을 위해 거짓으로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고자 한다면, 작위적이면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갈피를 잡고자 한다면, 오히려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린 아이의 마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본심을 바탕으로 하고, 그 위에 소중하게 쌓아올린 아름다움의 탑이라야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일 수 있다.

어느 이른 봄날,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공원 놀이터에 어린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놀이를 하고 있었다. 모여 앉은 아이들이 자기의 꿈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필자의 어린 시절의 한 자락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런데 마지막 한 아이가 한참을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야, 너는 뭐가 될래?” “그래, 빨리 정해라.” 친구들이 지친 듯 쪼그리고 앉아 재촉하는데도 그 아이는 망설이기만 했다. “빨리 말해. 궁금하단 말이야.”

그러자 뭔가 결심한 듯 벌떡 일어서더니 햇볕이 잘 드는 벽으로 뛰어들어가 기대어서는 것이었다. “난 햇볕이야, 너희들 모두 이리로 와봐.” 어리둥절해 하던 아이들은 모두 달려가 그 아이 옆에 섰다. 아이들은 “와, 따뜻하다.” 하며 즐거워했다. 벽에 붙어 서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찌나 순박해 보이던지. 무심결에, 햇볕이 되고 싶은 아이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우리 할머니는 시장에서 나물을 파는데 할머니가 앉아 계신 곳에는 햇볕이 잘 들지 않아요.”

아이는 잠깐만 할머니를 비추고는 옮겨가는 햇볕이 얄미웠던 것이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햇볕이 되어 할머니를 온종일 따뜻하게 비춰 줄 거라고 했던 것이다. 필자는 불쑥 그 아이를 꼭 안아 주었는데 햇살을 가득 품은 것처럼 따뜻하게만 느껴졌다. 어른들에게도 꿈은 있다. 이미 수십 년을 살아왔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다른 인생을 살고 각자 다른 곳에서 살아왔는데
어른이 되면 어느 순간 꿈이 닮아 있다.

왜일까? 시간이 순수함을 빛바래서 그런 걸까? 오늘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에게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숲을 바라보며 그 답을 확인해보자. 우리의 꿈은 어디 있는 건지. 문득 숲에서 아른거리는 빛 무리에 눈이 아리다. 울컥 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마도 숲이 영원의 이름으로 거기 있기 때문이리라. 언제까지라도 따스한 빛 무리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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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창밖 고개 돌리다
망막 헤집어드는 빛 무리에 얼굴 찡그리다,
감은 눈속에서도 한참
불덩어리 사라지지 않으니
허위허위 그냥 걸어나가자

뇌수속 끈끈하고 잡다한 기억 회로 헤치고
산 배경으로 둔덕과 능선과 그리고
소나무같은 숲들 멀리 아른거려
올려다보는 내 눈빛도 멀고 멀거늘

여름날답지 않게 공기 선득하되
사물 모두 빛깔 바랜 기운 띄며
평소보다 훌쩍 멀어보이니,
둥그런 빛 무리 형태 하나
무시근한 성미 보는듯 깜냥껏 설명하여
파스텔톤 여름을 스케치

필경 6월인데, 어딘지 쓸쓸한 어쩐지
가을 분위기 느껴지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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