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잊혀진 시절들의 꿈  


  "* 잊혀진 시절들의 꿈"
詩集으로 출판되지 않은
未發表詩들을 모아놓은 코너입니다.
그러므로 향후 출판을 계획하고 있는 거라면
첫번째 묶음집의 가상 제목인 셈입니다.

시기적으로는 1998년부터 2008년 중반까지
약 10여년 동안에 씌여진 詩가 대부분입니다.

가장 치열하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처절한 경제활동을 하던 시기인지라
詩作활동은 상대적으로 약간은 침체되어 있던 기간입니다.

일상에 쫓기다보니 多作을 할 여건이 안되어
기간에 비해 詩의 數는 많지 않은 대신,

이 코너에는 특별히
마지막 남은 로맨티스트를 표방하는 스토리텔러
林森 본인에게 애착이 가는
詩들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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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기운 자 *



시작노트

" 남기운 자 " 詩作 note

신축년 새해가 시작되고 보름 정도가 되어간다. 그동안도 이미 버릇처럼 되어진 일상, TV 아침 방송의 코로나 19 확진자 숫자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변함없이 암울하고 척박한 하루날들로 이어왔다. 새삼스러울 것도 별쭝날 것도 없는 새해의 하루들이 이렇게 맥없이 지나가기는 아마도 내 생애 처음이리라. 대관절 언제쯤이나 끝날지, 도무지 그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을 하늘에 던지며, 어차피 좀비나 강시처럼 변해버린 몸뚱아리를 일으키다가 불현듯 이렇게만 살아갈 수는 없다는 오기에 종주먹 쥐어본다.

그래도 명색이 새해가 시작된 건데, 무언가 새로운 계획이나 다짐이라도 좀 늘어놓아야 체면이 서는 것 아니겠나? 이 정도 나이를 먹었으면 세월에 휘둘리다가도 스스로 정신줄 찾아 제 자리로 돌아오는 노련함 쯤이야 기본 구색으로 갖추고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나?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면서 앙다문 어금니에 또 한 번 힘을 주어 다물어본다. 그래! 언젠가는 지나갈 이 시련의 계절들이거늘 어찌 철푸덕 주저앉아 엉절거리고만 있을소냐? 나부터 힘을 내자. 하늘을 보자. 그리고 희망을, 꿈을, 내일의 이야기들을 장만해보자.

‘교수신문’에서는 지난 연말 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선정하였다. 풀어서 이야기 하자면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는 말이다. 흔히들 사용하는 ‘내로남불’에서 유래된 용어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참말로 일리 있는 이야기라 하겠다. 지난 한 해는 정말 이와 같은 말을 많이 들었다. 그것은 4월 총선이후로 극심해졌다. 한국인의 편가르기 문화에 따라 기존에 여당이 야당이 되고, 기존에 다수 의견이 반대로 소수 의견이 되면서부터 우리는 극심한 국론분열과 정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 시대의 대표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교수신문에서 한 해 동안 가장 사회에 만연한 상황을 풍자하고 빗대어서 선정하는 용어이니만큼 그 수준이나 진위를 추정한다는 건 무리이겠지만 지금처럼 온 세계가 똑같은 충격과 고통에서 오로지 한 가지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상황인데, 굳이 이런 사자성어를 대표 성어로 선정하게 되었다는 데 대해 실로 유감이라고 여긴다. 또한 이런 성어의 대상이 되어버린 소위 지도자들의 행태가 실로 부끄럽고 참담하기 짝이 없다.

바라기에는 올 한 해는 이제부터라도 협치와 상생의 근본을 망각하지 말고 오직 국민을 위한 정치와 경제로 이끌어주기를 염원한다. 그래서 이 암담한 현실에 한 줄기 빛이라도 가슴에 부여잡을 수 있게 되기를, 그렇게 서민들의 위로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실상 따지고 보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데 어째서 그게 잘 안 되는지 모르겠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훌륭한 사람들인데. 욕심을 조금 버리고, 양보하면서 남을 인정하면 다 풀릴 일인데 말이다.

“나를 묻을 땐 내 손을 무덤 밖으로 빼놓고 묻어주게. 천하를 손에 쥔 나도 죽을 땐 빈 손이란 걸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네.” ‘페르시아 제국’과 ‘이집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쳐 많은 땅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죽으며 남긴 마지막 말이다. 스무살 나이에 왕이 되어 세계를 정복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으니 나는 이제 심심해서 어떡하나!” 그는 ‘인도’를 정복하려고 공략하던 중 열병으로 사망했다.

10년 넘게 계속된 원정 생활에서 오는 피로와 병사들의 반란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의 나이는 33세에 불과했다. 한 철학자가 그의 죽음 앞에 이렇게 말했다. “어제는 온 세상도 그에게 부족했으나 오늘은 두 평의 땅으로도 충분하네. 어제까지는 그가 흙을 밟고 다녔으나 오늘부터는 흙이 그를 덮고 있네.” 신하들은 알렉산더의 병세가 악화되자 세계를 정복한 대왕답게 거창한 유언을 남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죽을 때는 자신도 예외 없이 빈 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고, 후세 사람들에게 그 진리를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세상을 살다가 죽을 때는 모두가 빈 손으로 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누구나 오직 빈 손, 오직 바람만이 손아귀에서 부딪혔다가 빠져나갈 뿐, 모든 것이 빈손으로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검소한 생활로 부자가 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밤늦도록 독서를 하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찾아왔다. 그러자 그는 책을 읽느라 켜놓은 두 개의 촛불 중 하나를 끄고 할머니를 정중히 맞이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할머니는 조금 전 남자의 행동을 보고 겸연쩍게 대답했다. “거리에 세워진 학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기부금을 부탁하러 왔습니다.”

그는 선뜻 돕겠다는 대답과 함께 큰 돈을 할머니에게 주면서 이 정도면 되겠냐고 물었다. “조금 전 촛불 하나를 끄지 않으셨나요? 그 정도로 아끼는 분이라면 기부를 거절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거액을 기부하시겠다니 기쁘고 놀라울 뿐입니다.”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독서를 할 땐 촛불 두 개가 필요하지만, 대화할 때는 한 개면 충분하지요. 이렇게 절약해 왔기 때문에 기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노력으로 돈을 버는 것, 번 돈을 아끼고 모으는 것, 그 돈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것, 인생을 가장 빛나게 사는 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호사하는 사람은 돈이 많아도 항상 모자라니, 어찌 가난해도 항상 남음이 있는 검소한 사람만 하겠는가? 우리가 늘 생각할 일이다. 세상을 다 갖는다는 것, 그리고 작은 것을 아껴 큰 것을 갖는다는 것은 결국 그것을 어찌 사용하고 소비하며, 그것의 가치를 스스로 드러낼 줄 아는 삶의 자세에서 비로서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매일 세수하고 목욕하고 양치질하고 멋을 내어보는 이 몸뚱이를 누구나 ‘나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육신을 위해 돈과 시간, 열정, 정성을 쏟아 붓는다. 예뻐져라, 멋져라, 섹시해져라, 날씬해져라, 병들지 마라, 늙지 마라, 제발 죽지 마라...! 하지만 이 몸은 내 의지와 내 간절한 바램과는 전혀 다르게 살찌고, 야위고, 병이 들락거리고, 노쇠화 되어지고, 암에 노출되고, 기억이 점점 상실되고,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결국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

아내가 내 것인가? 자녀가 내 것인가? 친구들이 내 것인가? 내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닐진대 누구를 내 것이라 하고 어느 것을 내 것이라고 하던가? 모든 것은 인연으로 만나고 흩어지는 구름인 것을 말이다. 미워도 내 인연, 고와도 내 인연. 이 세상에서 누구나 짊어지고 있는 고통이니 피할 수 없으면 껴안아서 내 체온으로 다 녹이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누가 해도 할 일이라면 내가 하겠습니다.” 스스로 나서서 기쁘게 일하자. 언제 해도 할 일이라면 미적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에 하자.

그리고 오늘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 쏟도록 하자. 운다고 모든 일이 풀린다면 하루 종일 울겠다. 짜증부려 일이 해결된다면 하루 종일 얼굴 찌푸리겠다. 싸워서 모든 일이 잘 풀린다면 누구와도 미친듯이 싸우겠다. 그러나 이 세상 일은 풀려가는 순서가 있고 순리가 있다. 내가 조금 양보한 그 자리, 내가 조금 배려한 그 자리, 내가 조금 낮춰 놓은 눈높이, 내가 조금 덜 챙긴 그 공간, 이런 여유와 촉촉한 인심이 나 보다 더 불우한 이웃은 물론 다른 생명체들의 희망 공간이 된다.

“나와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이 정말 눈물겹도록 고맙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은 정말 고마움과 감사함의 연속입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다. 유명한 대기업의 어느 회장이 이름난 식당으로 손님들을 초대했다. 여섯 명의 일행은 똑같이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식사가 거의 끝날 즈음 회장이 수행원에게 일렀다. “이 스테이크를 요리한 주방장을 모셔오게, 매니저가 아닌 주방장이어야 하네.”

수행원은 회장이 스테이크를 절반밖에 먹지 않은 것을 보고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을 걱정하며 주방장에게 회장의 말을 전했다. 부름을 받은 주방장은 몹시 긴장했다. 자신을 찾는 손님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테이크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주방장이 물었다. “아니오. 당신은 정말 훌륭한 요리사요. 오늘 스테이크는 맛이 아주 좋았소.” 이렇게 운을 뗀 회장은 말을 이었다.

“다만 내 나이가 이미 여든이라 입맛이 예전 같지 않다오. 그래서 오늘은 반밖에 먹을 수 없었소. 내가 당신을 보자고 한 것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오. 반밖에 먹지 않은 스테이크가 주방으로 들어가면 당신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서 말이오. 나는 내가 스테이크를 남긴 것이 당신의 요리 솜씨가 나빠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오.”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일본 ‘마쓰시타 전기(현재의 Panasonic)’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이야기다. 그가 평소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을 얼마나 존중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일화다.

이 하루도 나를 존중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한다. 거북은 초조함을 모른다. 소나기가 쏟아지면 머리를 몸 안으로 집어넣는다. 햇볕이 따가우면 그늘에서 잠시 쉬어간다. 이와 같이 유순하고 한가로운 동물은 장수한다. 그러나 맹수는 단명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화를 잘 내고 성급한 사람들 중 장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독일의 한 탄광에서 갱도가 무너져 광부들이 갱내에 갇혔다.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상태에서 1주일만에 구조되었는데 사망자는 단 한 사람, 시계를 찬 광부였다. 불안과 초조가 그를 숨지게 한 것이다. 겨울이 지나면 새 봄이 온다고 굳게 믿으면서 우리는 추운 한 겨울을 견디어 나가야 한다. 사람의 삶에 어찌 좋은 일만 있겠는가? 오히려 언짢고 궂은 일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행복한 순간을 슬기롭게 다스리는 것이 미덕이라면, 불우하고 불행한 때를 잘 이겨내는 인내는 지혜라고 할 수 있겠다.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비관과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면, 낙관과 희망은 건전한 삶에 이르는 길이다. 이것이야말로 장수의 비결이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기죽지 말아야 한다. 어느 상황이던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지혜의 삶이 되어야 한다. 신축년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다른 해와는 달리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과 평화는 커녕 날로 더해가는 긴장과 불안만 늘어가는 시절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좌절하고 멈추어설 수는 없다. 힘들겠지만 힘을 내자. 힘겹지만 힘을 모으자. 그리고 이겨내자. 이 시련을, 이 고난을, 그리고는 기필코 승리하자. 빛나는 내일로 나아가자. 고지가 바로 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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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에는
살자 하여 진저리치다가
매운 멍에 짊어지고 떠나진 친구,
동쪽 바다 어디 쯤
그 머무는 그곳에도
이 겨울비 추적여
외로움에 그리움 색칠로 얹을테고

해 바뀐 지 하마 여러날,

흘러가는 세월 만큼이나
정신없이 그리 돌아치는데
내사 사랑할 짬이나 남아있으랴?
미리 운이라도 떼었으면
어제 내려갈 제에 더 갖고 갔을 걸,
지나쳐 간 인연에
사랑 알갱이 한 됫박 적선했으니
난 할 만큼 한 건데

이제사 절절이 외롭다 말하면
날더러 대관절 어쩌란 말인지-
그만큼의 외로움이 그의 몫이라면
이만큼의 그리움은 어차피 내 차지,

나 살다 외로워서 외로워 하고
그 살다 그리워서 그리움 젖으리니
세월 흐르는 매디 구석 쯤에서
우리 만나 어울려 맺힌 자락 풀으리
옛 이야기로,
흘러 지나친 그 이야기로,
그래!
어디 잘 잘못 한번 따져 볼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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