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잊혀진 시절들의 꿈  


  "* 잊혀진 시절들의 꿈"
詩集으로 출판되지 않은
未發表詩들을 모아놓은 코너입니다.
그러므로 향후 출판을 계획하고 있는 거라면
첫번째 묶음집의 가상 제목인 셈입니다.

시기적으로는 1998년부터 2008년 중반까지
약 10여년 동안에 씌여진 詩가 대부분입니다.

가장 치열하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처절한 경제활동을 하던 시기인지라
詩作활동은 상대적으로 약간은 침체되어 있던 기간입니다.

일상에 쫓기다보니 多作을 할 여건이 안되어
기간에 비해 詩의 數는 많지 않은 대신,

이 코너에는 특별히
마지막 남은 로맨티스트를 표방하는 스토리텔러
林森 본인에게 애착이 가는
詩들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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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하는 맘으로 *



시작노트

" 기도하는 맘으로 " 詩作 note

국어사전에 보면 ‘공기나 햇빛을 받을 수 있고,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벽이나 지붕에 낸 작은 문’을 ‘창(窓)’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실내의 환기 및 채광을 위하여 벽체에 개구부를 내고 개폐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라고 정의한다.
건축 설계 강의도 아니고, 뜬금없이 창 이야기로 시작하자니 웬지 좀 황당하긴 하다.
아무튼 현대의 건축 양식에서는 창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하다.
서양식의 건물이 늘어감에 따라 한옥에서 풍기는 아늑하고도 깊숙한 정취는 일순 멀어진 듯한 아쉬움이 일기도 하지만, 대신 서양식 건물의 창에서 얻어지는 개방적이고도 시원한 기품을 따라 마음 또한 툭 틔워놓을 기회를 많이 가지게 되어, 한 편으로는 좋은 면도 있다.
마음을 터놓게 되는 것이 어찌 창 때문 만이라고 할 수 있으랴만은, 벽으로 막아놓고 살아야 하는 현대인에게 있어, 답답하고 우직한 벽을 창창한 세계로 틔워놓은 그 작은 공간이야 말로 실로 고맙고도 소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음이다.
이런 깍듯한 이해관계를 떠나서라도, 필자는 본시 창을 자주 내다보는 습성이 있다.
책을 읽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도 어느새 시선은 마치 인력에 끌리듯 창으로 향한다.
창 앞에 서면, 푸른 하늘 부드러운 휘장을 살포시 밟아가며 하늘하늘 교태부리는 잿빛 구름에, 이미 퇴색해버린 유년시절의 순수를 되찾고픈 진한 갈구의 연줄을 절실한 심사로 날려보내기도 한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그저 올려다보는 맨 하늘보다 그렇게 더 곱다.
사람마다 무언가를 찾아 헤매며 산다지만, 그러고보니 참 많이도 오랫동안 해매었다.
아니, 지금도 아직 필자의 헤매는 날들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인생은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망정 도대체 무엇을 그토록 절실하게 찾아 헤매며 오늘까지 살아왔을까?
어릴 때부터, 역마살이 끼었다고 가슴 아파 하시면서 부모님께서 극구 잡으려 했지만, 틈만 나면 부득불 어디론가 떠나곤 했었다.
물론 그런 방황기의 시절을, 지금에 와서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후회를 하는 것만도 아니다.
다만 성장이라는 제목의 또 다른 방식이며, 또 하나의 이름이었을테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그 방황과 갈등을 모두어 마음 깊은 곳에 갈무리해놓고, 현실로부터는 아주 멀리로 떠나보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용하게 관조하면서, 마음의 창을 통해 들여다보이는 그 시절의 그 기억들을 곱게 접어 간직해야 할 듯 하다.

‘슈바이처’ 박사는 “내 인생을 돌이켜보건대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후회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후회할 만한 일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림자처럼 몰인정한 세월 때문에 지난 날 무던히도 가슴 아파 했고, 조그만 일도 무심코 넘기지 못하는 유리 조각같은 성격 때문에 아직도 지난 날들의 파편은 어딘가에 남아있지만, 이 세상의 종말이 발 끝에 부딪친다 해도 필자가 세상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삶의 길을 안내해준 것도 방황이었고, 자포자기를 더욱 확신케 해준 것도 방황이었으며, 눈물의 원인을 가르쳐준 것도 방황이었다.
그렇게 방황을 통해서 나무와 풀과 구름과 하늘과 새소리가 아름다운 것도 알게 되었으며, 그래서 아마도 시를 짓게 되었나보다.
보여지는 아름다움이 왜 아름다워야만 하는가를 깨닫게 해준 것도 삶의 방황이었으며, 그 모든 것을 아름답게 투영하는 마음의 창을 통해서 언제라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기에 필자는 오늘도 이렇게 나름 건강한 숨을 쉴 수 있으리라.
청아한 초여름의 바람이 그리움처럼 향기를 날린다.
네모진 창을 스치는 계절의 내음은, 아스라이 멀어져간 옛사랑의 이야기처럼 가슴 한 켠을 떨리게 만든다.
지금이라면 어릴 적 꿈을 나누었던 그 시절의 그 사람에게, 고운 낱말들만 소롯이 모아 지나간 사랑의 편지를 써보고 싶다.
하늘빛 닮아 진실한 사연으로, 추억이 흐르는 마음의 창을 살그머니 열어보이고도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지난 시절들의 방황은 이제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 묻어버리고, 지금부터는 새로운 희망과 벅찬 가슴으로 단장하여, 조금은 더 성숙해지고 싶다.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한 아픈 소망, 그래서 더 오래된 슬픔, 끝없이 헤매는 보헤미안의 호수같은 자화상에 맞닿은 이야기는 이제 접고, 긴 방황을 마무리하고 싶다.
그만 하고 싶다.
고독의 이야기까지도.

꿈결에 창문 틈으로 밀고 들어온, 참으로 부지런한 아침의 바람이, 마음을 열고 그늘을 벗고 젖은 날개를 펴야 할 시간이라고 말한다.
꽃향기로 실루엣 지는 커텐을 감아쥐고, 아침의 눈부신 빛 가슴에 품어, 이 하루를 생기있게 채워보라고 한다.
하늘은 수많은 구름 수채화를 그려주고, 창을 통해 내다보이는 초여름의 수목과 꼬불거리는 시골 논밭길은 더 없는 정겨움으로, 이슬처럼 투명하다.
깊이 들이쉬는 풋풋한 공기에 새 삶을 느끼며, 높이 올라간 가지에 미래의 꿈을 걸어놓고, 낮게 흐르는 강물 위에 자작히 흐르는 희망을 띄워놓는 것은 아마도 창이 있어서 가능한 낭만일 것이다.
한없는 포용을 주는 바다를 향해 끝없이 이어질 행복의 닻을 올려볼 수 있음도, 역시 창을 통해 꿀 수 있는 소망의 꿈이다.
이처럼 창 밖으로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는 아름다운 세상에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 사랑하는 이들과 어울려 함께 숨쉬고, 더불어서 행복을 누리는 삶이 있다는 것에 문득 무한의 감사를 느낀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사람은 어차피 살아가면서 자의든 타의든 기쁜 날과 우울한 날을 반복하게 마련이다.
어떤 날 아침 필자는 눈을 뜨면서, 이유도 없이 소망과 기쁨이 마음 속에서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팔다리가 다른 날 보다 유난히 가벼워, 발랄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흥얼거리면서 창 밖을 내다보게 된다.
하늘도 더 넓게 보이고, 나뭇잎들도 더욱 푸르러 보인다.
시끄러운 거리의 소음들마저 삶의 교향악처럼 한결 귀를 즐겁게 해준다.
어쩌다 가로수잎 사이를 넘나들며 노래하는 새들의 지저귐조차도 축복의 소나타인 양 마음을 한층 더 흥겹게 해준다.
이런 날에는 몇 배나 더 능률 있게 일하며 즐겁게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날마다 이런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까닭없이 짜증나고 피곤하고, 또 모든 것이 시들하고 어둡기만 하다.
이런 날,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몸은 천근 만근이나 되도록 무겁고, 마음은 좌절에 빠진 사람처럼 피폐하고 쓸쓸하다.
어제 그렇게 밝게 보이던 창 밖의 풍경들도, 경쾌하던 소음들도 하나같이 암울하기만 하다.
글을 쓴다는 일도, 사람들과 만나는 일도 모두 부질없고 시시하게만 느껴진다.
터무니없게도 산다는 것 자체가 아예 무의미해지는 그런 날이 있다.
이런 명암의 날들을 우리는 날마다 반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아직 청춘이었을 적, 즉 먼 이상과 꿈을 품고 있었을 때, 이런 마음의 변화와 갈등은 오히려 생산적이었던 적도 있다.
좌절 속에서 슬프고 괴로운 날은, 괴로운 만큼 일기장에라도 그 마음을 써 남기고, 혹은 비 내리는 밤거리를 쏘다니며 아픈 사색을 낳기도 했었다.
마음이 밝은 날은 밝은 만큼 일의 능률을 올리고 창의적인 일을 해내기도 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회라는 굴레에 갇히게 되고, 가정을 꾸려 가족과 더불어 삶을 누리게 되면서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제약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감정의 갈등을 처리하기도 버거울 때가 많아지면서, 이제는 삶의 어두운 그림자가 일상에 장막처럼 그 뿌리를 드리우고 있다.
사람의 마음가짐은 그렇게 운명과 이어지는 것이며,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일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면 일부러라도 책을 펴들고 그 속에 몰두 해본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듣기도 한다.
그러면 어느새 우울증은 치유되고, 오히려 삶의 새로운 지혜와 각성을 거기서 새롭게 얻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또한 매사는 생각하기 나름이며, 마음의 창으로 바라보면서 어느 쪽으로 결정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색깔과 형태가 달라질 수 있음도 배우게 된다.
어차피 스스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창은 남들에게도 적나라하게 보여지기 마련이다.
기왕지사 감추지 못하고 보여질 바에는 깨끗하고 청아하며 맑은 창이 더 낫지 않겠는가?
멋없이 커다란 통유리로 된 창 보다는, 자잘한 쪽창들을 이어 붙인 그런 창문이라야 어쩌면 더 다정스러운 이야기들이 흘러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듯이, 우리의 마음에도 여러 개의 창을 내서, 필요에 따라 경우에 따라 딱 적당한 만큼의 창만 열어 보인다면, 그것이 또한 세상 살아가는 참 이치이며 올바른 도리의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
일전에 자연 속에 지은 집에 간 적이 있다.
전경이 무척 좋은데 그곳에서 바로 작은 창문들을 이어붙인 창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이유를 물었다.
“작은 창을 통해 보아야 귀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한 장의 큰 창으로 보면 아무 느낌이 없습니다.”
심오한 사색의 우문현답에서 길을 하나 찾은 기분이었다.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작은 창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과 통하는 마음의 창은 비록 크기는 작지만, 따로 따로 두고 큰 창으로 아무 느낌도 없이 보기 보다, 작은 창으로 섬세하고 은밀하게, 기쁘고 아름답게 보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은 정녕 마음의 작은 창들을 닦고,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두 형제가 배를 훔치려다 붙잡혔다.
분노한 주민들이 형제의 목을 매려 하자 촌장이 이를 막으며 소리쳤다.
“비록 저들이 악인일지라도 함부로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대신 도둑질의 표시로 이마에 글자를 새깁시다.”
주민들은 형제의 이마에 커다랗게 ST(Ship Thief) 즉, ‘배도둑’이라고 새겨놓았다.
그 뒤 사람들은 형제가 지나갈 적 마다 놀려대며 비웃었다.
견디다 못한 형은 밤을 틈타서 몰래 마을을 떠났다.
하지만 다른 마을에서도 이마의 글자 때문에 편할 날이 없었고, 결국 인적이 드문 산골에서 비참하게 죽어갔다.
그러나 동생은 끝까지 마을에 남기로 했다.
“어디로 간들 내 죄를 피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이곳에서 죄과를 달게 치르리라.”
동생은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을 묵묵히 견뎌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의 비난은 사라졌고, 언제나 궂은 일에 선뜻 나서는 동생을 오히려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세월이 흐르면서, 차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동생의 범죄 행위는 잊혀져갔다.
어느날 한 나그네가 마을을 우연히 지나다가 어느 노인의 이마에 글자가 새겨진 것을 보고 주민에게 물어보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저 분은 우리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분이지요.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저 분처럼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지요.
저 분의 이마에 새겨진 글자는 성자[Saint]의 약자랍니다.”
신뢰는 엄청난 것을 추구하는 모험이나 순간의 행동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설령 지금의 자리가 힘들지라도 참고 견디다보면 언젠가는 신뢰라는 이름을 스스로 간직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의 행동으로 자신의 운명과 정해진 제약을 얼마든지 뒤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가치를, 원하기만 한다면 마음 속의 창을 통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필자의 마음 속에 새로운 창을 하나 만들어 달면서, 필자가 스스로에게 전해주는 삶의 멧세지가 바로 이것이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깨끗한 창을 정성스레 장만하고,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창을 닦으면서 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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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냥 기도하는 맘으로 살께
내게 남기운 삶이 얼만큼일지
살다가 살다가 문득 네 생각이 나면
그저 이렇게 가 없는 기도만 할께.

영욕의 하 시절 가슴앓이 하며
인고로 버티다가,
희생으로 견디다가
눈물 떨궈 떠나지는 너의 아린 뒷모습에
내 줄 수 있는 건 가난한 이 맘 뿐,
달리 아무 것 없으니 그저 기도로......

이젠 가는데,
아주 가는데,
정말 정말 떠나가는데.
내 안에 커다란 무덤 하나 새로 만들어
게다 깊이 깊이 너 묻어두고
널 추억하는 맘 모락 모락 샘 솟으면
돌아앉아 눈 감고 기도만 할께

잘 가,
잘 가 -

(마음으로 그녀를 아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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