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잊혀진 시절들의 꿈  


  "* 잊혀진 시절들의 꿈"
詩集으로 출판되지 않은
未發表詩들을 모아놓은 코너입니다.
그러므로 향후 출판을 계획하고 있는 거라면
첫번째 묶음집의 가상 제목인 셈입니다.

시기적으로는 1998년부터 2008년 중반까지
약 10여년 동안에 씌여진 詩가 대부분입니다.

가장 치열하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처절한 경제활동을 하던 시기인지라
詩作활동은 상대적으로 약간은 침체되어 있던 기간입니다.

일상에 쫓기다보니 多作을 할 여건이 안되어
기간에 비해 詩의 數는 많지 않은 대신,

이 코너에는 특별히
마지막 남은 로맨티스트를 표방하는 스토리텔러
林森 본인에게 애착이 가는
詩들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 ]

위로 이동

* 늦가을 서정 *



시작노트

" 늦가을 서정 " 詩作 note

늦가을이라고 해야 할까? 초겨울이라고 불러야 맞을까? 목하 지금은 완벽한 환절기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 그 가운데 우리가 자리하고 있다. 수많은 사연을 안고, 화려한 색깔로 우리에게 꿈과 회한을 동시에 심어주었던 가을이 저물고, 이제는 엄동설한의 초입에서 계절 하나가 옷깃 여미고 섰다. 모든 것의 색이 바뀌고 있다. 온통 변화하고 있다. 온 세상이 다시 거듭나는 모양새다. 그런데 이건 딱 자연에 한정된 이야기다.

도대체가 바뀌지 않는 게 있다. 찰거머리처럼 질기고도 끈덕진 놀음이, 계속 공을 주고받으며 이어지고 있다. 승리자도 패배자도 없는 지겨운 권력의 전투가, 주야로 승세를 굳히는 패거리를 교체하면서 끊임없이 줄을 잇고 있다. 대관절 어느 편을 들어줘야 할 지, 누구 손을 들어줘야 할 지 이제는 판단조차도 하기 버겁다. 진리가 무엇인지,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분간하기도 쉽지 않다. 그냥 전통적으로 저력있는 우리의 민족성에 마지막 희망을 걸게 될 따름이다. 참으로 처연하고도 처량하다.

세상 사는 이야기가 이처럼 평범하지 않다면, 산다는 것이 이토록 일상적이지 않다면, 우리의 삶이라는 게 가없는 일엽편주이니, 더 이상 얼마나 고달프고 비참해져야 하는 걸까? 끝없는 시름에 문득 하늘을 향해 종주먹 들이댄다. 어차피 최상의 해결책이 없다면 차선의 어떤 방책이라도 얼른 모색이 되어지기를 간절한 염원으로 바란다. 큰 걸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정국이 대충 안정되고, 경제가 조금이라도 되살아나서 국민들이 모두 소박한 행복에 미소 짓는 그런 날이 오기를 빌고 또 빌 뿐이다.

서로 사랑하며, 작은 기쁨에도 기꺼워하는, 그리고 더불어 축하해줄 수 있는, 그런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이 되살아나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오로지 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시작노트에 어울리지 않는, 이런 거국적이고 원대한 주제는 이 쯤에서 거두자. 소시민이 목소리 높여봤자 해결될 일은 애저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도자들이, 위정자들이 각성하고 깨달아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니, 막연하나마 그런 기적이나 바라면서 내일의 태양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어느 산골 마을에 할머니와 초등학생인 손녀딸이 살고 있었다. 며느리는 일찍 세상을 뜨고 아들은 건설 현장에서 잡일꾼으로 일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온종일 산으로 들로 다니며 나물을 캔 뒤, 밤이 새도록 나물을 다듬어 다음 날 장터에 내다 팔았다. 어린 손녀딸은 할머니가 캐오는 산나물이 너무나 싫었다. 숙제하고 나면 할머니와 같이 손톱 밑이 까맣게 물들도록 나물을 다듬어야 했기 때문이다.

손톱 밑의 까만 물은 아무리 박박 문질러도 잘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상담 때문에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다. 모시고 갈 분은 할머니 뿐이라 걱정이었다. 선생님이 할머니의 허름한 옷, 구부러진 허리, 손의 까만 물을 보는 게 정말 싫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손녀딸은 한참을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 “저, 할머니, 선생님이 내일 학교 오시래요.” 할 수 없이 말하긴 했지만, 손녀딸은 할머니가 정말 학교에 오시면 어쩌나 했다.

다음 날 오후,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교무실로 갔다. 선생님은 할머니의 두 손을 잡으면서 손녀딸에게 말했다. “우리 가은이, 할머니께 효도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그 순간 손녀딸은 와락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선생님이 눈시울을 붉히며 잡고 있는 할머니의 손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었고 피가 흐를 듯 생채기로 가득했다.

할머니는 손녀딸이 할머니를 부끄러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침 내내 표백제에 손을 담그고 철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닦으셨던 것이다. 필자에게도 그런 할머니가 계셨다. 홀로 시골집에 살면서 간혹 찾아오는 손주가 ‘노인 냄새’ 난다고 할까 봐 새벽부터 일어나 몸을 씻고 또 씻었던 그 분. 당신 쓸 용돈 아껴두었다가 어린 손자 호주머니에 몰래 넣어주며 과자 사 먹으라고 속삭이던 그 분. 세상에서 필자가 가장 예쁘고, 가장 자랑스럽다 말해주던 그 분.

그렇다. 지금은 가슴에 묻어둔 이름, ‘할머니’... “당신이 계심으로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 오늘따라 할머니의 사랑이 더없이 그리워진다. 계절 탓이련가?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온다는 것. 그 계절을 살아가며 세월을 흘러보낸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 그 당연하고 뻔한 진리가 이즈막에는 왠지 한 층 더 가슴을 시리게 한다. 새삼 사랑이 고파서 세상의 인심에 민감해지는 것이, 아마도 필자도 나이를 제법 많이 먹었다는 반증인가보다.

“헌신이야말로 사랑의 연습이다. 헌신으로 사랑은 자란다.” 이 말은 석학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말이다. 할머니의 헌신이 있어서 손녀딸의 꿈이 자라날 수 있듯이, 누군가의 헌신적인 사랑은 이 삭막하고 메마른 세상의 근원적인 샘이 되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누군가는, 특정한 자격이나 조건을 갖춘 선택받은 사람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세상 속에서 녹아드는 희생과 봉사와 헌신이 바로 사랑의 근본이다. 또한 그 주인공의 이름은 우리 모두다. 나 자신이다.

일전에 시작노트를 통해서, 평생에 걸친 연애 일기를 200여 컷의 따뜻한 수채화로 담아 ‘우리는 60년을 연애했습니다’ 라는 화보집을 발간한 ‘핑루’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기술한 적이 있다. 너무나도 감동적인 스토리라서 한참이 지난 지금도 계속 아름다운 사연이 머리 속에서 맴돈다. ‘60년을 한결같이 사랑하는 법’을, 사랑이 메마른 현대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불쌍한 우리를 바라보며 가르치는 교재라고 해도 무방한, 감동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강추한다.

아내인 ‘메이탕’과 만난 그해, ‘라오 핑루’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집안의 오랜 친분으로 처음 만났고, 반지 한 쌍을 나눠 끼며 부부의 연을 맺었다. 부모들끼리 정해준 사이였지만, 두 사람은 상대방을 평생 함께 할 상대로,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였다. ‘항일 전쟁’이 끝나고 곧이어 내전이 일어나는 등 불안한 시국이 이어졌다. 부부는 사방에 판을 대서 만든 작은 방에 살았고, 방 안으로 비,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날이 허다했다.

하지만 둘이 함께했기에 고생이라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시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부부는 그걸로 행복했다. 하지만 1958년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라오 핑루는 ‘노동 개조’를 받아야 하는 대상자가 되었다. 주변에서는 메이탕에게 남편과 헤어지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메이탕은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날부터 힘든 날의 시작이었다.

핑루는 한 공장에서 22년간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온종일 수레에 흙을 싣고 다니며 댐 수리를 하는 힘든 일을 했다. 20여 년간,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먹을거리는 어떻게 마련했는지, 아이들 직장은 어떻게 찾았는지, 자식들 결혼 상대는 어떻게 찾아줄지... 편지에는 부부 사이의 정이 느껴지는 달콤한 글귀보다는 서로를 의지하며 보낸, 고단하지만 굳건한 일상이 담겨 있었다.

간혹 아내가 답답한 마음에 모진 말을 쓴 편지를 보면, 남편은 ‘상냥한 아내를 화나게 할 만큼 자신이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다’고 아내에게 미안해 했다. 남편은 늘 혼자서 아이 여럿을 데리고 살았던 아내의 상황을 헤아렸다. 아내도 혼자 있는 남편의 마음을 헤아렸다. 아내가 아이들 입에 들어갈 사탕을 아꼈다가 반 봉지라도 마련해 보내주면, 남편은 이 사탕을 손수건에 싸서 베개 아래 넣어놓고 보름을 먹었다.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건 1년에 딱 한 번 뿐. 남편은 아이들의 간식거리를 멜대에 소중히 맨 채 기차를 타고 돌아왔다. 아내와 아이들이 문을 열고 시끌벅적하게 환영해주는 한 순간을 위해 1년이란 세월을 버틸 수 있었다. 두 사람은 20년을 줄곧 떨어져 살았다. 그러나 서로의 감정에 어떤 문제가 생길 거라는 두려움은 없었다. 정부가 바뀌고 핑루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젊어서 헤어진 두 사람은 이제 반백이 훌쩍 넘은 모습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함께할 수 있으니 부족할 게 없었다. 잠시 행복한 나날이 이어졌다. 아내가 시장에 가면 그도 따라나섰다. 장바구니 무거울까 봐. 그럼 아내는 ‘이 재료는 어떻고, 저 재료는 또 어떻다’며 남편에게 일일이 말해줬다. 그런데 또 다른 이별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몰랐다. 아내는 젊어서 고생을 해서 그런지 찾아온 병마 앞에 쉽게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힘겨운 세상살이가 얼마나 버거웠던지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남편의 마음도 모르고 쉽게 날아갔다.

핑루는 혼자 남았다. 젊어서 아내를 남겨두고 먼 길을 떠난 게 그렇게 마음 아팠는데 이제는 남편 혼자 남았다. 언제 다시 그녀를 볼 수 있을까? 핑루는 그녀를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쓰기로 했다. 잊기보다는 기억하는 것이 덜 아프므로. 그렇게 해서 평생에 걸친 연애 일기를 200여 컷의 따뜻한 수채화로 담은 감동 화보집이 세상에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핑루 할아버지는 한 번도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그의 그림에는 인생의 기쁨이 진실하게 담겨 있기에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과 큰 위로를 주는 것 같다고 필자는 전에도 사견을 조심스레 내놓았었다. 예컨대 우리는 오로지 사랑을 함으로써 사랑을 배울 수 있다. 우리가 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는 사랑을 받아야 하는 이유와 동일하다. 세상에 사랑이 존재함으로써 모든 미움과 불신과 쟁투를 종결시킬 수 있다. 이것이 불변의 진리다.

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에게 갑작스러운 병이 찾아왔다. 점점 시야가 좁아지더니 결국 시력을 잃었다. 그리고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1990년대 ‘틴틴파이브’로 전성기를 누렸던 가수 ‘이동우’ 씨의 이야기다. 결혼한 지 100일도 채 안 되어 일어난 비극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후 아내도 뇌종양 판정을 받았고, 수술 후유증으로 왼쪽 청력을 잃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겨운 나날들이 지속되자 이동우 씨는 삶의 허무함을 느꼈다.

그저 물이 되어 하늘로 증발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소원이 하나 있다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얼굴을 보게 되는 것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눈을 기증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놀랍게도 기증자는 몸이 굳어가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임재신’ 씨였다. 그리고 그는 외동딸을 둔 한 아이의 아빠였다. 누구보다 눈에 의지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TV에서 딸의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는 이동우 씨의 사연을 접하고, 기증하고 싶다는 전화를 건 것이었다. “나에게 남은 5%를 주면, 당신은 100%를 갖게 되잖아요.”

사실 이동우 씨의 병은 이식해도 낫지 않는 병이었다. 기증자의 진심에 이동우 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저는 이미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세상과 소통하는 맑은 눈을 주셨으니까요.” 이들은 이후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친구의 눈으로 보고, 친구의 발로 걸으며 두 사람은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다. 그들의 아름다운 우정은 지금도 감동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갑자기 찾아온 불행 앞에서 절망하는 것이 보통의 우리다. 그러나 여기에서 두 부류의 사람이 생긴다. 잃은 것, 없어진 것을 한탄하는 데 시간을 쏟는 사람과, 오히려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다. 비록 눈은 잃었지만,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이 생겨 감사하다는 이동우 씨... 비록 몸은 움직일 수 없지만, 눈으로 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임재신 씨... 감사하는 마음 하나로 희망의 기적을 만들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이렇게 개개인의 마음 속에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쌓아올린 견고한 탑이 있다면, 다음에는 그 탑을 기준으로 정의와 공익을 위한 자기 희생과 솔선수범의 마음가짐이 뒤따라야 한다. 상황 판단과 가치를 파악하는 안목이 옳바라야 함은 물론이고, 후회하지 않을 과감한 결단력과, 일방적인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도리가 수반되어야 함도 물론이다. 물론 쉽지 않은 통찰력과 포용력도 더불어 요구되는 바이다.

2009년 1월 15일, 미국 ‘뉴욕’에서 출발한 국내선 항공기가 사고를 당했다. 이륙한 지 몇 분 만에 새떼와 충돌하여 2개의 엔진을 모두 잃게 된 것이다. ‘체즐리 설런버거(설리)’ 기장은 바로 관제탑에 이 사실을 알렸다. 관제탑의 지시로 회항하려고 했으나, 기장은 그때까지 버틸 수 없을 거라고 직감했다. 설리 기장은 비행기를 ‘허드슨 강’에 불시착하기로 마음먹었다.

비행기의 두 엔진이 폭발한 후 무동력으로 동체착륙을 한다는 것은 이전에도 성공한 적이 없었을 만큼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래도 설리 기장은 그것이 제일 나은 선택이라 판단했고, 바로 승객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승무원들은 승객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최대한 편안하게 지시사항을 구령 합창으로 전달했다. 비행기는 기적적으로 파손되지 않고 허드슨 강에 잘 착수하였다. 설리 기장은 승무원들과 함께 먼저 승객들을 대피시켰다.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한 명의 승객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지켜냈다. 마침 근처에 있던 구조용 보트와 통근 페리 등이 구조에 동참했다. 그리고 경찰들과 의료진, 소방대원들도 즉시 현장으로 달려왔다. 추운 날씨라 구조가 늦어졌다면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을 수도 있었지만 24분 만에 승객과 승무원 155명 전원이 구조되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정확한 판단을 한 설리 기장의 리더쉽과, 그를 믿고 따라 준 승무원과 승객들, 그리고 구조대원 모두가 하나 되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24분이라는 구조 시간 동안 이들에겐 ‘나’라는 개인보다 ‘우리’라는 공동체가 먼저였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일화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 사고들, 그리고 그 상황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마음 자세와 비교할 때 어떤 점이 다르고, 무엇이 틀린가? 되돌아보아야 할 문제다.

세 사람이 살인사건 용의자로 유죄판결을 받고, 10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하였다. 그들은 모두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장애인이었다. 또한, 출소 후에도 장애인이라는 편견보다 더 잔혹한 살인자라는 꼬리표까지 달고 살아야 했다. 세상은 그들에게 다가서려고도, 관심을 두려고도 하지 않았다. 허기사 관심이 있는들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이들에게 유일하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박준영 변호사’였다.

“판사님, 이의 있습니다. 이 사건은 장애인에게 살인 누명을 씌운 억울한 사연입니다. 다시 재판하여야 합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결국 3명은 무죄가 선고되었다. 그들은 16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박준영 변호사를 찾는 많은 의뢰인은 안타까운 분들이 많다. 가난한 분, 지적장애가 있는 분, 그리고 억울한 누명을 쓴 분 등 정말 다양하다.

그런데 박변호사는 찾아오는 분들 뿐만 아니라, 반대로 억울한 사연을 듣고 그들을 찾아가기까지 한다. 때론 돈도 받지 않고 길게는 6년, 짧게는 3년째 재심을 추진하며 사회적 약자를 돕고 있다. 박변호사 같은 사람들이 있어 여전히 세상은 따뜻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온 힘을 기울여 아름답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한다. 법의 형태가 아닌 그 정신이 바로 진정으로 정의를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한 보도를 통해서 ‘대한민국이 빚진 여섯 형제의 나라 사랑’이라는 제목의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가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이야기다. 예전, ‘조선’의 명문가에서 여섯 명의 아들이 태어났다.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의 임무에 온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나라가 일제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고 식민지로 강제 편입되자 형제들은 각자의 하던 일들을 중단하고 함께 독립운동에 동참하기로 마음먹었다.

국내에서 하는 독립운동의 한계를 느낀 형제들은 대대로 내려온 집과 땅을 포함한 엄청난 재산을 처분하여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을 하기로 했다. 모든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마음 하나로 만주로 망명한 형제는 좀 더 체계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학교 출신들은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게 되었다. 그 학교가 바로 ‘신흥무관학교’다.

1945년, 꿈에도 그리던 조국의 광복이 되었다. 그러나 만주로 떠나 함께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여섯 형제 중 살아남아 조국 땅을 밟은 건 오로지 다섯째 ‘이시영 선생’ 뿐이었다. 대한민국이 빚진 여섯 형제분의 이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첫째 ‘이건영(李健榮, 1853~1940)’ 중국의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다 병사하셨다. 둘째 ‘이석영(李石榮, 1855~1934)’ 가장 많은 독립자금을 보냈지만, 중국 빈민가를 전전하다가 결국 아사하셨다.

셋째 ‘이철영(李哲榮, 1863~1925)’ 신흥무관학교 교장을 맡아 일하시다 병사하셨다. 넷째 ‘이회영(李會榮· 1867~1932)’ 독립운동을 하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일제의 잔혹한 고문에 의해 중국의 ‘뤼순감옥’에서 순국하셨다. 다섯째 ‘이시영(李始榮·1869~1953)’ 임시 정부 ‘재무총장’직을 맡았으며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하셨다. 여섯째 ‘이호영(李頀榮·1875~1933)’ ‘만주, 북경’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33년 소식이 끊기며 행방불명이 되셨다.

여섯 형제는 개인의 이익보다는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평생을 헌신했다.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이제,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는 대한민국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가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노력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는다면 이 또한 행복이다.” 넷째 ‘우당 이회영’ 선생의 말씀이시다.

온 세상을 뒤흔들 것 같은 사건 사고도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조차 희미한 과거지사가 될 것이다. 비록 가슴 저리고 심각한 상처와 흔적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충격이 지금 엄습한다 해도, 결국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영 머물 것 같던 계절이 자연의 질서를 따라 옷을 갈아입듯이, 우리네 주변의 모든 이야기들이 때로는 우리가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사라지고 소멸하리라. 그것이 윤회이며 역사다. 그것이 바로 참진리다.

소리 없이 뜨거운 불길로 와서, 오색 빛깔로 곱게 타올라 찬란한 황혼의 향연을 벌려 놓던 가을은 이제 갔다. 여기저기 형형색색 곱게 물든 산야가 너무도 아름다워 눈이 부시게 했던 가을은 지금 멀어졌다. 가을에 심었던 꿈과 소망이 어떤 모습의 결실로 이 계절의 끝자락에서 필자의 창고에 갈무리되었는지 자못 궁금하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결실의 아름다움을 실감하기 위한 행진을 시작하련다.

영혼을 맑히는 일에 더욱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넉넉하게 사랑으로 가득 채워 여유롭고 향기 가득한 얼굴로 피어나게 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맞이하기 위해 지나치게 차오르는 욕심은 털어내고, 현실에 만족하려 노력하며 항상 감사하고 늘 웃으리라. 황혼의 만찬에서 좋은 사람들과 멋진 친구들을 많이 만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덕을 쌓는 일에 힘을 쏟으리라. 알찬 인생의 열매를 맺기 위해 필자의 삶의 밭을 기름지게 일구고 튼실한 씨앗을 심으리라.


" 늦가을 서정 " 詩作 note 닫기
 | 배경이미지 새로적용  | |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산중턱 타오른 곱단풍
자신의 몸 털어 산정으로 치달으며
햇살 몰아가고
꼭대기 하양구름 조각
뜻모르게 저 홀로 바쁘다

털갈이 끝내가는
고양이 등짝 들판에
막바지 추수 소리
턱까지 찬 숨 몰아내며
그르릉 거리다가
하행선 열차 기적 소리에
두 동강 갈라져 들판에 흩어지니

돌담 옆 감나무 고목
건듯 부는 산바람에 부르르 떨자
한 잎 낙엽이
형이상학 가르치며
허공으로 날고
반만 남은 까치밥 홍시
안타까이 바동거릴 즈음

키 낮은 아낙네
종종종 잰 걸음 하고
혓바닥 늘어뜨린 강아지
발발발 뒤따르는데
논두렁 두서너개
훌쩍 넘은 그림자
서둘러 허리 접어
주인 품에 깃든다

아 !



늦가을
이맘 때
저녁 이 무렵이라면

20071129

 | 배경이미지 새로적용  | | 글자 크게 글자 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