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8집. 우짜 멧시지가 웁노?  


  "8집. 우짜 멧시지가 웁노?"
1997년 10월 8일 인쇄된 詩集입니다.

다른 부제는 정하지 않고 그냥 분류만
22편씩 3개의 章과
14편 1개의 章으로 하였으며,
합계 80편의 詩가 수록되어 있고
부록으로 '클래식음악 감상문'이 7편 실려있습니다.

감상적인 내용의 詩가 가장 많이 포함된 詩集인데
이 詩集만 보아서는 평소의 林森의 詩風과는
다소 상이한 면모를 엿볼 수도 있습니다.
[ 증인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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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바라기 *



시작노트

" 님바라기 " 詩作 note

12월을 이름하여 ‘사랑의 달’이라고 부른다. 숱한 날들, 어느 한 날 사랑을 마다 할 날이 있으랴만은, 그래도 12월엔 유독 사랑이라는 말이 한층 실감이 난다. 아마도 온 몸을 바쳐 죄를 대속해준 사랑의 대명사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일인 성탄절이 들어있는 달이라서일 게다. 사랑을 주고 받는 성탄의 계절. 허기사 추운 겨울날이다 보니 따스한 사랑의 온기가 더없이 그리워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계절에는 사랑이 참 많이도 고픈 게 사실이다. 사랑을 나누어주고, 사랑을 받아 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훈훈하게 들려날 제면 괜시리 마음이 푸근해지고, 평화와 행복의 멧세지가 가까이에서 들려나는 듯 하여 고개를 돌리고, 귀를 기울이고, 그리고 하찮은 것 까지에도 관심을 쏟게 된다. 작은 사랑일지라라도 서로 나누는 대열에 기꺼이 동참하고픈 마음이 절로 샘솟는 12월 하순이다.

비단 사랑을 건넬, 사랑하는 이가 곁에 꼭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보여지고 만나지는 모든 사람들이, 온갖 사물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어울리고, 거듭나지는 계절이 바로 지금 이 계절, 겨울의 한 가운데다. 이 겨울이라면 그동안 베풀지 못했던 친절과 격려를, 사랑이라는 명찰로 달고 소문을 좀 내보고도 싶다. 따스하게 손 잡고 사랑을 나누고 싶다. 그래서 사랑의 계절임을 만천하에 증명해보이고 싶다.

님이 아니면 어떠랴? 님이 안오시면 또 대순가? 님이 외면해도 상관없다. 세상의 모든 생명있는 존재를 님으로 여기며, 마음 속에 고이 깃들어있던 사랑을 조심스레 꺼내어 골고루 나누어주고픈 가슴이 이리도 힘차게 생동하거늘, 이 사랑을 받으러 오시라. 모두들 오시라. 와서 나의 님이 되어주고, 영원한 사랑의 선물을 한껏 받으시라. 그리 소리치며 아침을 연다.

흔히 ‘사랑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온갖 좋은 느낌만을 열거하는 사람들이 많다. ‘핑크빛 로망스’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황홀한 감정’과 같이 매우 긍정적인 감정들만 모아 놓은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이루는 감정은 긍정적인 감정만이 아니다. 극단적인 감정의 긍정적인 쪽과 부정적인 쪽을 왔다 갔다 하는 강한 감정이다. 물론 사랑이 매우 긍정적인 감정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뜻이다.

사랑이라는 감정 안에는 둘이 서로 만나고 있을 때 느끼는 긍정적 감정 뿐만 아니라, 당장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는 상태에서 느끼는 그리움이나 안타까움과 같은 강렬한 부정적 감정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예를 더 들어보면, 친구가 생일선물을 주면 기쁘고, 생일을 잊으면 서운하다. 그런데 애인이 생일선물을 주면 매우 기쁘고, 생일을 잊으면 매우 서운하다. 많이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자기에게 잘 해 주면 엄청나게 기쁘고(대부분 이것만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기대에 못 미치면 엄청나게 섭섭하다.

심한 경우에는 실연을 당하면 삶의 의미를 완전히 잃고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랑은 매우 긍정적인 감정과 매우 부정적인 감정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강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Sternberg’가 주장하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에서는 사랑이 세 가지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바로 ‘친밀감, 열정, 개입’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가 모두 갖추어져 있을 때가 완전한 사랑이며, 이 요소들 중 하나 또는 두 가지가 있고 없고에 따라 모두 8가지의 사랑이 가능해진다.

‘친밀감(intimacy)’은 상대방을 가깝게 생각하고 많은 문제를 서로 주고받는 친한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사랑하는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친한 친구 관계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감정이다. 반면에 ‘열정(passion)’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만 느끼게 되는 강렬한 욕망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배타성과 함께 강도 높은 감정이 수반된다. ‘개입(commitment)’은 상대방의 생활이나 행동에 끼어들 정도의 관련성을 말한다. 함께 같은 집에 산다든지, 통장을 공유한다든지 할 정도로 상대의 삶과 많이 얽혀 있는 상태를 말한다.

흔히 대학생 단계의 연애는 친밀감과 열정이 합해진 상태라 할 수 있다. 결혼한 지 아주 오래 된 부부의 경우 초기의 열정은 조금 약해진 상태에서 친밀감과 개입 요소가 갖추어진 사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결혼을 한 상태에서 다른 상대와 불륜 관계에 있는 커플은 대개 친밀감은 없이 열정과 개입만 있는 사랑일 경우가 많다.

사랑의 삼각형 이론에서는 세 가지 요소 각각이 얼마나 강한지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과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 간에 얼마나 차이가 큰지도 중요하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이 서로 일치할 때 갈등의 소지가 더 적은 것은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의 삼각형 모습과 현실의 모습 간 차이도 중요하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작을수록 당연히 마음의 갈등도 더 적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예컨대 사랑은 가장 따뜻한, 가장 바람직한 ‘인간관계’다. 또한 그러한 관계를 맺고 지켜가고자 하는 마음이자, 마음의 움직임이다. 가슴을 가진 사람, 그리고 영성(靈性)을 갖춘 사람이 서로 유대 또는 사귐을 갖는 것이고, 그것들을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다. 한국인들이 관례적으로 ‘정을 주고 받는다’고 한 것은 이런 면에서 뜻 깊은 말이다.

따라서 애틋하다고 표현된 ‘그리움’, 간절하다고 말한 ‘따름’ 등 마음의 움직임을 포함하는 소망, 열정, 욕망 등이 사랑이라고 생각되어 왔다. 그런 면에서 ‘마음을 준다’ 또는 ‘마음을 바친다’ 라는 말로, 또는 ‘정을 준다’ 등의 말로 사랑이라는 행위를 표현해 온 것은 자못 뜻깊은 일이다.

전통적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아끼고, 귀히 여기고, 중히 여기고 하는 일을 사랑의 구체적인 마음을 전하는 징표라고 믿었다. 그런가 하면 공경하고, 섬기고 하는 것이 그렇듯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대하는 마음의 쓰임새가 사랑이었는가 하면, 귀여워하고, 예뻐하고 하는 것이 그렇듯이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을 대하는 마음의 바탕 역시 사랑이라고 일컬어져 왔다.

또 달리는 보살핌, 돌봄, 베풂 등과 같이 시혜(施惠)라고 표현될 만한 마음씨 역시 사랑이라고 믿어 왔다. 그리고 소유욕, 욕정이 엉킨 쾌락원리의 충동 역시 사랑으로 범주화되어야 하는데, 이 점은 남녀 간의 애정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사랑은 인간관계의 위아래, 대등함이 진하게 끼친 마음인가 하면, 또 다른 면에서는 인간 심성의 양지이면서 동시에 바닥 모를 음지이기도 한 것이다.

사랑은 복합적인 인간 심성인 만큼, 거기에는 미더움, 미쁨이 따르게 마련이고, 도덕심 또는 윤리의식도 수반되게 마련이다. 마음씨의 고움, 이쁨, 착함이며, 훈기까지도 사랑의 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적어도 종교에 버금할 만큼 믿음이 강조된 심성의 영역이 곧 사랑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담론에서는 철학, 심리학, 종교론, 윤리학, 예술론, 심지어 정치론까지 망라되어야 한다. 사랑은 한국 문화와 사회와 인간관계에 두루 걸쳐서 이야기되어 마땅하다. 사랑은 진과 선과 미를 두루 감싸고 있는 인간 심성이면서, 현실적 효용성을 충족시키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같은 의미를 가진 낱말은 적지 않다. 그것은 사랑이 그만큼 다양하고 복합적이라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그 일군의 낱말들은 사랑이라는 개념이 가진 외연의 넓은 포괄성에 대해서 말하면서,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함축성에 대해서도 말하게 될 것이다. 사랑은 일종의 ‘관념군’이고 ‘개념군’이다. 그 점에 대해서 사랑함과 같은 의미를 가진 ‘낱말군’이 시사하고 있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정서 속에서 사랑은 ‘애정’이라는 말이 있는 만큼, ‘정(情)’과 거의 동의어였다. 전통사회의 한국에서는 오히려 정이, 보다 더 친숙하고 관용화된 용어의 몫을 했다고 생각된다. 사랑으로서의 정은 범인간적 사랑인 인정에서부터, 가족 간의 그리고 남녀 간의 애정까지 포괄하고 있다. ‘모정(母情)’은 가족 차원의 정이지만 ‘모정(慕情)’이라고 하면 전적으로 남녀 간의 정에 국한된다.

또한 동정을 비롯해서 온정이나 연민지정은 ‘인정’이라는 말로 포괄될, ‘시혜(施惠)’의 사랑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정은 부모 자식 간의 정, 형제 간의 정, 그리고 우정 또는 이웃 간의 정 외에 남녀 간의 ‘정분’까지 두루 망라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든 고향’이라는 관용어가 가리키듯이 인간과 환경, 그리고 사물 사이에서도 정이 이어져 왔다. 또, 달리 ‘충정(忠情)’이라는 말은 ‘단심(丹心)’과 더불어서 군신 사이에서 사용되기도 하였다.

정은 워낙 ‘성정(性情)’의 정이 그렇듯이 마음이거니와, 이 점은 ‘심정(心情)’이라는 낱말에서도 헤아려진다. ‘통사정’에서는 말 못할 혹은 숨겨진 속내라는 뜻과 정이 통하게 될 것이고, ‘물정’이라고 하면 세상이나 사물에게 속내가 따로 있는 셈이 될 것이므로, 정이 곧 마음임을 더한층 굳히게 된다.

고대 그리스에서의 사랑은 ‘에로스’로 불렸는데, 이것은 육체적인 사랑에서 진리에 이르고자 하는 동경이나 충동을 포함한다. 그리스도교에서의 사랑, 즉 ‘아가페’는 인격적 교제(이웃에 대한 사랑)와 신에게 대한 사랑을 강조하며 이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자기희생에 의하여 도달하게 된다고 한다. ‘르네상스’에서의 사랑은 또 다시 인간 구가(謳歌)의 원동력으로 보았으나 이것은 사랑의 세속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 공업화가 진척되어 가는 현대는 그 경향을 차차 강조한다.

사랑은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이라는 데서 힌두교에서의 ‘카마’, 유교에서의 ‘인(仁)’, 불교에서의 ‘자비’ 등 모든 문화권에서 보인다. 또한 사랑의 표현방법은 한결같지 않으며 성애(性愛)와 우애, 애국심, 가족애 등 교제 형태에 따라 다르다. 교제관계가 치우칠 경우에는 ‘이상성애(異常性愛)’나 증오에 가까운 ‘편집적(偏執的)사랑’으로 변할 수 있으나, 이것은 이미 사랑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어쩌다보니 오늘 시작노트의 전개가 사랑에 관한 학술적인 접근에 너무 치우쳐, 집착하는 것 같이 되어졌다. 어차피 우리는 사랑이라는 범주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라는 생명체다. 사랑의 본질이나 정의를 따져서 파헤치고, 분석하면서 선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살아간다는 자체가 사랑의 일상과 체험의 연속이며, 사랑의 증명과 확인의 반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곧 삶이며 생명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역사며 미래다.

사랑이 없는 세상은 추호도 상상조차 할 수가 없고, 만일 인간 세상에서 사랑을 빼앗아간다면 그건 한낱 짐승의 세상과 다를 바 없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존심이며 존재의 이유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숨을 쉬는 첫 번 째 이유이며, 가장 마지막까지 인간을 지탱해주는 힘으로 남겨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사랑을 할 수밖에 없다.

상반기에 출간된 책 중에 예쁜 책이 하나 있었다. 네이버카페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의 회원들이 가장 뜨겁게 공감하고 소통했던 170여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지금 당신 사랑하고 있나요?’ 라는 부제의, 새로 나온 사랑에세이가 바로 그 책이다. 사랑의 위기와 갈등, 아픔이 있을 때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고, 때로는 조급해지거나 불안해질 때 여유롭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힐링서이자 삶의 지침서로,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어 마음의 크기를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책이다.

“사랑에 전문가라는 것은 없으며 사랑을 글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내가 지금 사랑하고 있는 그 사람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떤 책이나 누군가가 아닌, 그 사람과 시간을 함께 나눈,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관한 지식이나 정보를 자기에게만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정리하여, 상대를 평가하기 위한 잣대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먼저 그 사람을 온전히 인정하고 바라보았으면 한다. 그것이 바로 사랑을 시작하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이들, 사랑했던 이들, 다시 사랑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다시 이야기 한다. “당신은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며,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라고. 아마도 이 책을 통해서 사랑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잡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고 추측한다.

사실 모든 사랑은 아픔을 동반한다. 댓가 없는 사랑은 없다. 사랑의 크기만큼, 깊이만큼, 사랑은 책임이 비례하여 뒤따른다. 그것이 겁나서 사랑을 외면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사랑은 아프고 슬픈 만큼 값지고 뜻 깊은 것이기에, 우리는 대체로 울면서도 사랑을 선택한다. 힘겹고 벅차지만 기꺼이 사랑의 쓴 잔을 마시려 한다.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필자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도 않는다.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늘이 곧 사랑을 잉태하는 근원이 되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필자는 눈물이 없는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다.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세상천지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그늘과 눈물이 있어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1945년 6월, ‘런던 광장’에서 육군중령 ‘브라운’은 시계탑을 보며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3년 전 죽음의 공포 속에 탈영한 경험이 있던 브라운은 우연한 기회로 젊은 여성작가 ‘주디스’의 책을 읽게 되었다. 전쟁 속에서 그녀의 글은 한줄기 빛처럼 희망과 용기를 주었고 브라운은 용기를 내어 작가에게 편지를 썼다. 기대하지 않았던 답장이 2주 후에 왔고, 두 사람은 전쟁기간 중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사랑의 감정이 싹튼 브라운이 주디스의 사진을 보내줄 것을 청했다. 하지만 사진 대신 질책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그토록 제 얼굴이 보고 싶으신가요? 당신이 말해왔듯이 당신이 정말로 저를 사랑한다면 제 얼굴이 아름답던, 그렇지 못하던 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요? 만약 당신이 보시기에 얼굴이 추하기 짝이 없다면, 그래도 당신은 저를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요청에 이런 반응을 보인 그녀를 이해할 수 없어 허탈한 웃음을 지었지만, 더 이상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서 귀국하는 브라운은 드디어 주디스에게 만날 약속을 청했다. 주디스는 브라운에게 만날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었다. “런던 전철역 1번 출구에서 제 책을 들고 서 계세요. 저는 가슴에 빨간 장미꽃을 꽂고 나갈 거예요. 하지만 제가 먼저 당신을 아는 척 하지는 않을 거예요. 당신이 먼저 저를 알아보고, 만약 제가 당신 연인으로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모른 척 하셔도 됩니다.”

3분 뒤면 만난다는 생각에 브라운은 두근거리는 마음에 조금 일찍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금발의 전형적인 앵글로 색슨계의 미녀가 나타났다. 브라운은 녹색 옷을 입은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넋을 잃고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지나쳤다. 순간 브라운은 그녀의 가슴에 장미꽃이 없다는 걸 알았다. 브라운은 자신의 성급함을 자책하고는 그녀도 녹색 옷을 입은 그 여인과 마찬가지로 매우 아름다울 것이라 기대했다.

그리고 6시. 멀리서 가슴에 장미꽃을 단 여인이 아주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런데 브라운은 머리 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지는 듯 했다. 놀랍게도 걸어오는 여인은 못생기다 못해 매우 흉측한 모습이었다. 한 쪽 다리를 잃은 그녀는 한 쪽 팔만으로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걸어오고 있었다. 얼굴 반 쪽은 심각한 화상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짧은 순간 브라운은 심한 갈등을 느꼈다. ‘그녀가 자신을 모른 척 해도 된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군. 정말 그녀를 모른 척 해야 하나?’

그리고 브라운은 생각했다. ‘아니야. 원망해야 할 상대는 독일군이야. 이 여인 역시 전쟁의 피해자일 뿐이고… 3년 동안 난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녀를 사랑했어. 이건 변할 수 없어. 이제 와서 그녀를 모른 척 하는 것은 비겁하고, 함께 했던 시간을 배신하는 거야.’ 브라운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잠깐만요!” 그녀가 돌아보자 브라운은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녀의 책을 들어올렸다. “제가 브라운입니다. 당신은 주디스이지요? 이렇게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브라운을 바라보았다. “아니예요… 전 주디스가 아니고 패니예요… 저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조금 전에 녹색 옷을 입은 여자분에게 부탁을 받았어요. 장미꽃을 달고 이 앞을 지나가 달라는… 그리고 만일 저에게 말을 거는 분이 있으면 식당으로 오시라고 하더군요.”

식당에 들어서자 녹색 옷을 입었던 주디스가 환한 웃음으로 브라운을 반겨주었다. 주디스는 놀라 당황하는 브라운에게 붉어진 얼굴로 부탁하였다. “오늘 일은 절대 비밀로 해주세요. 당신을 실험했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우리만의 비밀로 간직해주세요.”

이후, 브라운과 주디스의 가교 역할을 하였던 ‘패니’가 실명을 쓰지 않고, ‘감동적인 사랑 실화’라는 제목으로 영국 ‘타임즈 지’에 이 내용을 게재했으며, 이 이야기는 영국 전역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비슷한 이야기가 소설로 쓰여지기도 하고, 심지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군지 궁금해 하였다.

1996년 5월 3일 ‘존 브라운’이 세상을 떠난지 몇 시간 뒤 그의 아내 ‘주디스’도 그 뒤를 따랐다. 일생 동안 깊은 사랑을 나눈 이 두 노인은 죽는 날까지 같이 했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날, 이 두 노인의 친구인 패니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불편한 몸으로 단상에 올랐다. “오늘에서야 지난 50년 동안 비밀로 지켜왔던 이야기를 공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여기에 누워있는 두 사람이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입니다.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 때문에 밝히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평생 이 두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질투하였는지 모릅니다.”

브라운과 주디스가 죽은지 두달 후 패니의 병도 급속히 악화되어 죽음을 맞이하였다. 1997년 ‘웨딩드레스와 행복’ 창간호 편집자는 패니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패니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그녀가 이 이야기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실화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보다 더 아름답고, 소설보다 더 극적인 삶을 먼저 살았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필자는 아직은 살아야 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 자신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다짐한다. 비단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남은 삶에서의 사랑이 더욱 소중하게 빛나기를 소망할 뿐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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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언저리 언뜻 기억 서리면
너무나도 선연한 흔적들
자꾸만 아프게 하고,
연보라색 나비꿈에 마냥 잠들어 있던
건너편 악몽의 의식
주섬 주섬 깨어나 뒷덜미 챈다

님이시여, 내 생명 살아있음 의미주신
님이시여

붉은 빛 노을 아래
황혼보다 붉게 타오르는
열정의 마음 먹여주신, 하여
미지의 반쪽 세상 경험케 하신 내 야속한
님이시여 !

하루의 살이에 바빠서, 사느라 정작
나이테조차 키자라지 못한
갈목의 애틋함으로 바라예는 등 뒤에서
비인 목소리만 목청껏 울리며
떠난 이의 시린 상흔은
이토록 현란한 몸짓으로 눈발 뿌려질 제면

흐릿한 영상만큼이나 커어다란 반향되어
뿌우연 기억 저편에서
주억대며 다가선다,
님바라기 울어지친 가슴 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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