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8집. 우짜 멧시지가 웁노?  


  "8집. 우짜 멧시지가 웁노?"
1997년 10월 8일 인쇄된 詩集입니다.

다른 부제는 정하지 않고 그냥 분류만
22편씩 3개의 章과
14편 1개의 章으로 하였으며,
합계 80편의 詩가 수록되어 있고
부록으로 '클래식음악 감상문'이 7편 실려있습니다.

감상적인 내용의 詩가 가장 많이 포함된 詩集인데
이 詩集만 보아서는 평소의 林森의 詩風과는
다소 상이한 면모를 엿볼 수도 있습니다.
[ 증인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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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맞이 터 *



시작노트

" 별맞이 터 " 詩作 note

가을 밤하늘에는 유난히도 별이 많다. 허기사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있는 게 별이지만, 거기 그냥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별은 우리에게 반짝이면서 사랑과 희망과 행복을 안겨줄 때에 비로서 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난다. 그래서 별이 더욱 반짝이는 빛을 발하는 초가을 이맘 때에 바라보는 밤하늘은, 그야말로 별들의 향연이 쉴 새 없이 펼쳐져서, 마냥 우리를 유혹하니 별들과 바람나기 십상이다.

가을의 밤하늘은 특히 맑고 청아한 하늘이라서, 여름 내내 희뿌옇게만 보여지던 작은 별까지도 저마다의 흥취를 돋구며, 우리에게 꿈을 전해주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가을의 밤은 찬란하다. 그리고 가을의 밤은 황홀하다. 그렇기에 가을의 밤은 차라리 혼란스럽다. 가을의 밤은 먼저 숨을 쉬면서 우리에게 삶을 느끼게 해준다.

필자는 가을이면 유별나게 많은 별이 떠있는 강원도 원주시 무실동 야트막한 뒷산의 밤하늘을 퍽 좋아한다. 어쩌면 요즘의 밤 산행이 즐거워 이 소도시에 자그마한 터를 잡아 주저앉았는지도 모른다. 잠시라도 속세의 지난한 업보를 잊고, 별들과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노라면 어느새 필자는 신선이 되고, 천사가 되고, 직접 하늘의 전령사가 되어 세상사를 조율하는 절대자라도 된 듯한 착각으로 우쭐해지곤 한다. 아마도 그 재미는 겪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권하고 싶다. 살기가 힘들 땐 부담 없이 뒷산에라도 오르라고. 땅거미 지고 난 한 참 뒤에 슬슬 차비를 갖추고, 높지 않은 동산에 산책하듯 가볍게 올라보자. 숨이 차지 않게 천천히 걷다가 작은 바위라도 발견하면 그 자리에 그냥 철푸덕 자리잡고 앉아 별과의 대화를 시작해보자. 필경 시간 가는 줄 모르도록 많은 이야기의 꽃이 별처럼 아삼삼 피어나는 걸 느끼게 될 거다.

고단한 현실에서는, 버거운 생활에서는, 전혀 맛보지 못했던 알싸하고 상큼한 삶의 맛이 게서 스며나오리라. 미처 느끼지도 못하는 새에 재충전과 활력의 신호가 온 몸에 꽉 들어차는 희열은 보너스로 받게 될 거다. 그리고 기분이 한껏 좋아지면 그제사 주섬주섬 되돌아 내려오면 된다. 그 후에는 슬슬 그 느낌 그대로 잠자리에 들면 된다. 그렇게 평온한 휴식을 취하고 난 뒤 시작하는 다음 날의 하루가 얼마나 행복하게 열려지고, 이어지는지 체험해보자.

만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아름답고 고운 마음이 철철 넘치는 자신의 미소를 상상해보자. 본래는 천성적으로 착하고 선했던 우리네 인심이, 각박하고 비천한 삶의 굴레에 갇혀서 발버둥치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어리석은 얼굴로 변모해버리지 않았던가? 따지고보면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한 일인가?

그러나 어느 누구도 되돌려주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같이 그네들의 삶의 무게에 허덕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모습을 성형해줄 여유 따위는 아예 있을 수 없다. 우리의 행복은, 우리의 꿈은, 우리의 삶의 본질은, 우리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리고 부활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별을 찾아가야 한다. 별을 품에 안아야 한다. 별을 바라보며 전부 다 고백해야 한다. 별을 닮아 반짝이며 빛을 발해야 한다. 그래서 별맞이 터는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피난처이며 방향을 제시하는 보표이다.

오늘날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밤하늘의 별을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곳은 과학관의 천체관일지 모른다. 아예 별 볼 일 없는 시대인 건지, 일부러 방문해서 학습의 효과를 기대하는 교육연장선 상의 탐사라는 방법론을 제하면 별 보는 일도 쉽지 않다. 그 아이들은 웬만해서는 맨 눈으로 올려다보는 가을밤의 정취를 잘 모른다. 그래서 사실은 좀 불쌍하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 중 일년 내내 하늘에 떠 있는 별이 있다. 우리보다 별 볼 일 많았던 조상들은 이 별들을 숭배했지만, 우린 이런 별들이 있다는 것조차 잘 모르고 살아간다. 대관절 우리의 조상들에게 영원히 지지 않는 북쪽 하늘의 별들은 어떤 의미였을까?

우리는 우주의 먼지다. 광활한 우주는 우리를 먼지보다 더 초라한 존재로 만든다. 우리를 잉태한 지구는 ‘우주먼지’에서 태어났다. 최근 미국 ‘코넬대’ 과학자들은 초신성 폭발 뒤 남은 우주먼지를 관측했다. 지구가 우주먼지에서 만들어졌다는 기존 가정을 뒷받침하는 결과였다. 이들이 관측한, 지구에서 2만7000광년 떨어진 ‘궁수자리’ 동쪽 한 초신성의 잔해에선 또 다른 별들이 지금도 먼지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사실 우리가 전체 우주에서 먼지보다 못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손수 만든 지름(직경) 35㎜의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발견한 건 400여년 전의 일이었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고 생각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목성의 위성은 지구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 최초의 천체였다.

오늘날 우리는 지름 25m가 넘는 거대 망원경을 만들고 우주 암흑물질의 분포도를 그리고 있지만, 여전히 우주는 미지의 존재다. 오늘날 밤하늘을 보며 스스로 먼지라 체감하는 이는 드물다. 기술의 발달은 우주를 전보다 더 멀리, 더 깊이 들여다보게 했지만 정작 일상에서 밤하늘을 보는 이는 적다.

지구상 인구의 절반은 ‘빛공해(광해)’로 별이 보이지 않는 도시에 산다. 시커멓기만 한 밤하늘은 그저 별 모양의 빛이 드문드문 투영된 검고 둥근 ‘천장(플라네타륨)’에 불과하다. 도시 안 삶도 천장 너머를 상상할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역설적이게도 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린 우주와 멀어져 간다.

일상의 밤하늘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별을 볼 수 있었던 과거 조상들은 자신들이 하늘과 긴밀히 결속돼 있다 생각했다. 그들에게 하늘은 특별한 힘을 발휘하는 존재였다. 달은 모양에 따라 조류를 바꿨고, 태양은 별과 함께 계절을 바꿨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한 계절을 따랐다. 계절에 따라 나타나는 비와 바람, 천둥·번개 같은 기상현상에 조상들은 울고 웃었다.

하늘이 인간의 영혼과 사회를 규정한다고 생각했던 고대인들은 하늘과의 긴밀한 관계를 자신들의 일상에 담았다. 달력과 시계, 별자리표와 책력, 신들과 신화, 의례와 의상, 춤, 신전과 무덤엔 고대인들이 생각한 하늘이 담겼다. 그들은 장례에 천체의 은유를 담고, 고인의 유품에 천체의 이미지를 남겼다. 무덤의 구조에도 천문학적 의미가 반영돼 있다.

태양이 홀로 지배하는 낮의 하늘과 달리 밤하늘은 다채롭다. 달과 별, 은하수, 유성, 혜성, 성운 등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가만히 누워 바라보면, 밤하늘의 천체도 태양처럼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진다. 어떤 별들은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까지 내내 하늘에 떠 있다. 지평선 밑으로 지는 일 없이 천구의 북극을 돌며 밤새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주극성’이라 부른다.

북극이나 남극 같은 극지방에서 보면 주극성은 하늘의 별 전부다. 모든 별들이 뜨고 지는 일 없이 밤새 하늘을 옆으로 돌기만 할 테니까. 반면 적도에서 보면 주극성은 없다. 모든 별은 태양처럼 뜨고 지는 ‘출몰성’이다. 북위 37도 부근인 서울에서 봤을 때 밤새 지지 않고 떠 있는 주극성은 천구의 적도인 ‘적위’를 기준으로 53도 이상에 위치한 ‘카시오페이아, 케페우스(세페우스), 큰곰자리(북두칠성), 작은곰자리, 용자리’ 등에 속한 별들이다.

뜨지도 않고 지지도 않는 별. 죽지 않는 영원불멸하는 별인 주극성에 대한 숭배는 고대 문명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주극성의 영역은 불멸의 영역, 즉 죽지 않는 별들의 고향이었다. 하늘의 북극인 천정 주위 원형 궤도를 도는 그들은 뜨지도 않고 지지도 않는 영원한 삶과 동의어였다.

천문학자나 우주과학자가 아니니까 전문적인 고찰은 이 쯤에서 중단하자.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든지 별은 우리에게 눈으로 보여지는 단순한 별 이상의 의미이며, 실존하는 역사요, 미래로 이어지는 영원한 화두이다. 그래서 별의 과학은 누구에게나 풀지 못할 난제이며, 거룩한 웅지를 품고 있는 거대한 세상이다. 그 속에서 미미한 우리가 산다. 아등바등.

별을 주제로, 소재로, 제목으로 하여 지은 시가 참 많기도 하다. 다른 시인들도 별을 바라보며 곱고 예쁜 시를 많이 지었겠지만, 필자는 그동안 지은 1500편에 달하는 시 중에 ‘별’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시만 해도 거의 40편에 달한다. 이만하면, 자신도 몰랐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별을 짝사랑했는지 짐작할만 하다. 그토록 오랜 세월 별을 바라보며 사랑을 갈구해온 삶이었는데 아직도 별은 필자에게 답을 주지는 않고 있다.

때로는 정녕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여지는 별을 칭송하면서 별빛을 기리는 시를 짓기도 했고, 혹은 별리와 아픔의 경험으로 가슴에 새겨지는 상처를 부여잡고 별을 원망하는 시를 쓰기도 했으며, 간혹 간절하게 바라는 내일의 어떤 소망이 별빛에 담겨져내리기를 기원하는 시를 읊기도 하다보니 어느덧 필자도 회갑을 넘긴 나이가 되어졌다.

언제였던가? 너무나도 살기가 버겁고, 살아있다는 자체가 오히려 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도 별은 필자가 바라예는 미래의 화두였다. 비록 힘겹고 처참한 현실이지만 한 가닥 비추는 별의 빛을 바라보며, 마지막 남겨진 한오리 희망빛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그렇게 이어져온 오늘이 이제는 되레 아팠던 어제를 추억하게 해준다.

당시에 지었던 시가 있다. 무미건조하게도 제목은 그냥 ‘별’이다.

‘별들 빙글빙글 돌다 떨어졌다 / 어지러워 한참 눈감고 있다가 / 머릿속 말갛게 씻기면 / 별들도 하나둘 제자리 돌아온다 // 깃털 1kg과 납 1kg 중 어떤 게 더 무거울까? / 별밤인데, // 슬픔 1kg과 기쁨 1kg은? // 아무도 정말로 슬퍼할 엄두 못내고 / 기뻐할 엄두도 못내며 / 무엇이든 느낄 엄두조차 못낸 채 나는 / 이 이상한 나라에, // 반은 살아있고 반은 죽어있는 삶과 죽음의 나라에, / 시간의 정거장인 셈인 / 별의 나라에 와있는 거구나 // 심장 쿵쾅쿵쾅 뛴다 / 조락한 모습과 왁자지껄한 재회/ 비나리쳐 얻어낸 여벌목숨이 간당간당 이어진다 / 별처럼 빙글빙글 돌고있다’

읽다보니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못했던 깊은 슬픔과 좌절이 피처럼 묻어나 지금까지도 새삼 아프고 섧다. 이토록 오랜 시간 흘렀는데, 그래서 상처는 흔적으로 더께 얹혀졌으려니 딴에는 그리 예감했었는데, 문득 세월을 비집고 되살아나는 아픔에 속내로 진한 눈물 흐른다. 별은 역시 생생한 역사다. 예전에 살아있던 별은 지금도 살아있는 거다. 내일도 살아갈 거고, 그래서 별은 거울이다. 별은 우리 모습이다.

비록 아프고 슬픈 삶의 투정에 소중한 세월을 빼앗기고 시달렸다 해도, 거기에 굴복하지 않고 착한 내일을 꿈꾸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별에 있다. 우리에게 별이 주는 진실을 가슴으로 받아 안아야 하는 이유이다. 수없이 이어지는 만남과 이별의 굴레에서 참된 인연과 기억을 서로에게 심어주어야 하는 까닭이다.

인연만큼 소중한 사건은 우리의 삶에 더 이상 없다. 모든 삶의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인연으로 시작되고 연결되어가며, 귀결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에서 만나지는 잠시 스쳐가는 인연일지라도, 헤어지는 마지막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해야 한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을 듯이 등 돌려 가지만, 사람의 인연이란 언제 다시 어떠한 모습으로 만나질지 모른다.

혹여 영영 만나지 못할지라도 좋은 기억만을 남게 하자. 실낱같은 희망을 주던 사람이든, 설레임으로 가슴에 스며들었던 사람이든, 혹은 칼날에 베인 듯이 시린 상처만을 남게 했던 사람이든, 떠나가는 마지막 모습은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하자. 살아가면서 만나지는 인연과의 헤어짐은, 이별 그 하나만으로도 슬픔이기에, 서로에게 아픈 말로 더 큰 상처를 주지는 말자.

삶은 강물처럼 고요히 흘러가느니 지금 헤어짐의 아픔도 언젠가는 잊혀질테고, 시간의 흐름 안에서 변해가는 것이 진리일테니, 누군가의 가슴 안에서 잊혀지는 그날까지는 살아가며 문득 문득 떠올려지고 기억되어질 때, 작은 웃음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자.

그렇게 주어진 삶을 진실로 기뻐하면서, 기쁨에 겨운 삶을 살아가자. 기쁨이 삶에 있어서 제 일의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야 말로 삶의 욕구이며, 삶의 힘이며, 또다시 삶의 힘이며, 또다시 삶의 가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쁜 마음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슬픔도, 분노도, 그 어떠한 고뇌도, 기쁨의 용광로에선 모두 용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기쁨의 넓이로 말하자면 온 누리에 차고, 작기로 말하자면 겨자씨 보다도 더 작아질 수 있을 것이다. 기쁨이 있는 곳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정을 느낄 때, 우리는 비로서 사랑을 잉태하게 되고, 그것으로 세상은 살만 한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평생을 가도 첫인상을 남기는 사람이 있고, 늘 마주해도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오면 오는대로 그저 편안하게 대하면 그 뿐이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처럼 보이다가도, 조금만 알게 되면 운명으로 여겨지는, 태고 적부터 기약된 약속일 수도 있고, 삶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선물일 수도 있다. 다만 순간에 충실하면 그 뿐이다.

많은 사람에 기뻐하기보다, 작고 소중한 만남에 족해야 하는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이 아름답다면 보내주는 사람은 소중하다. 슬픈 만남에 고개 돌리지 않고, 설령 가야 할 때라도 만남의 시간을 기억하면서, 미소 지으며 보내주는 사람이 되면 그뿐이다. 만나고 헤어짐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과 같은 것, 그 모든 우리의 만남들이 하나같이 사랑과 행복을 위한 만남이라면 좋겠다.

그런 만남과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며 이어지는 마음 속에는 언제나 소박한 기쁨과 단아한 행복이 깃들어 자리잡게 마련이다. 세상 만사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한다. 물론 자기 자신의 마음을 조절하고 컨트롤한다는 게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때로는 스스로도 억제하지 못할 감정의 변화와 욕망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하는 게 사람이다.

그렇지만 항상 슬프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마냥 슬프고, 항상 기쁘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늘 기쁨이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결코 어떤 난관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작은 것에도 눈물을 보이면 더 큰 눈물이 흐르고, 작은 것도 이겨내면 기쁜 미소가 담기게 마련이다. 마음 속에 담아 넣은 것이 무엇인지가 더욱 소중하고 값진 것이듯이, 우리들의 마음 속에 담아두는 것들이 즐겁고 행복한 것들만 가득하다면 슬픔도 괴로움도 더 이상은 자라지 못할 것이다.

지나온 슬픔들을 기억하기 전에 소중했던 아름다운 시간들을 기억한다면 좋겠다. 성큼 다가온 가을, 그리고 하루라는 이름의 오늘, 그리고 펼쳐지는 밤하늘의 별무리에 파랗게 물드는 온 세상 만물들을 그리며, 오늘 밤도 별 바라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행복한 미소 가득한 시간들을 열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온 누리 가득 별이 주는 축복을 골고루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게 행복하고 기쁜 오늘 밤이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새벽으로 달려가는 이 시간에 책상머리를 두어번 손바닥으로 두드려본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이상스레 피곤한 몸뚱이, 자극을 좀 주면 피돌기가 더 잘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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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맞이 터에 오를 젠 그렇게
숨을 죽이세요

혹여 갈잎이라도
숨결에 흔들리면
떠 오르던 별
별똥별 되어 지고 말테니

별맞이 터에 오를 젠 그렇게
할 말 있어도
소곤소곤 귓속말 나누세요

행여 바람이라도
듣고파 귀 기울이면
수줍음 많은 별
구름 속으로 숨고 말테니

별맞이 터에선 그렇게
가슴 가득 오로지
별빛 만 담아
그윽한 꿈으로 꾸세요,
사랑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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