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2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7집. 구름에 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  


  "7집. 구름에 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
1996년 11월 25일을 인쇄일로 탄생된 詩集입니다.

역시 인쇄 출판에 관련된 판권은
증인출판사에서 소유하고 있습니다.

序詩는 '겨울, 그리고 동면'이며
'구름같은 이야기'에 30편,
'달 닮은 이야기'에 31편,
'살아가는 이야기'는 '세월 하나(10편)',
'세월 둘(10편)',
세월 셋(11편)'으로 나누어 목차를 정했으므로
전체적으로 보자면
총 93편의 詩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하게는 경제적으로 침체되고 힘들었던 시기이기에
세파에 시달려 생활고에 찌달리는 일상이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꿈을 키우며 도전하던
그 시절의 여러가지 직업을 대변하는 詩들이
많이 실려 있는 詩集입니다.
[ 증인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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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낙엽 태우다가 *



시작노트

" 겨울 낙엽 태우다가 " 詩作 note

언제부터인가 버릇처럼 새벽에 잠이 깨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선다. 멀지 않은 산 정상에 올라 새벽 공기를 마시는 게 일과로 되었으니, 식전에 물 한 잔 들이키는 것 마냥 자연스러운 행보다. 요즘처럼 날이 몹시도 차면 더러 주저할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특별한 일 없으면 망설임 없이 집을 나서는 편이다. 특출난 운동을 찾아 할 나이도, 여건도 못되니 아마도 이 새벽 산행이 필자에게는 건강을 유지해나가는 보약인 듯 하다.

욕심이겠지만 바라기에는 더 많은 날들을, 힘겹더라도 계속 이어져가는 일상이기를 소망한다. 이제 겨우 한 갑자 정도 살아낸 이 세상이니, 그래도 아직은 할 일이 남아있으리라는 나름의 소명감을 벼르면서 기회를 엿보는 필자에게, 만일 이 일과가 싫어진다면 그건 큰 사단의 징조일 게다. 따라서 이 일이 싫어지면 안된다. 그래서 필자는 어쩌면 운수의 조짐을 여기 거는 걸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에도 예외 없이 산에 올랐다. 오르막을 한 두 번 지나서 소로를 따라 한참 걷다보면, 약수터 옆으로 작은 움막이 한 채 보인다. 가뭄이 심해서 이미 물이 마른지 오래고, 한 겨울에는 찾는 이가 없어서 움막에는 사람의 흔적이 끊겼지만, 다른 계절에는 이따금 필자도 앞마당에 펼쳐놓은 평상에 걸터앉아 음료수나 컵라면을 사먹기도 하면서 참새 방앗간처럼 쉬어가곤 하던 자리다.

때로 왁자지껄한 산행객들이 단체로 모여앉아 막걸리와 도토리묵을 푸짐하게 얹어놓고 권커니 잣거니 나누다가, 지나가는 이들에게도 스스럼없이 권하노라면 언뜻 시골의 장터같은 분위기를 어렵지 않게 자아내기도 하는, 이른바 명당이라 불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빨리 겨울이 지나고 새 봄이 와서 움막의 평상이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넘쳐나길 은근히 바라면서 지나치곤 한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예기치 않게 산자락의 초입에서부터 연기냄새가 어른거리더니, 다가가보니 움막의 한 켠에서 낙엽을 쓸어모아 군불을 때는 노파의 모습이 보였다. 알기에는 겨울 한 철은 장사도 안하고, 일없이 산에 오르는 경우도 없는 노파인지라 의아한 생각에 필자가 반가움 가득 담은 안부 겸 이유를 물었다. 가물어 바짝 말랐다고는 해도 잔 가지에 낙엽만 가득 담은 드럼통 화덕에서는, 불길 보다는 매캐한 연기만 피어올라 연실 캑캑거리면서 노파가 손짓을 한다.

아파트에 사는 자식들에게 얹혀있는 처지라, 멀리 떨어졌어도 자신의 보금자리인 움막 언저리에서 토끼와 닭 몇 마리를 기르고 있는데 엊그제 토끼가 새끼를 낳았다고 한다. 그래서 수시로 올라와 살펴보며, 이른바 산모의 산후조리 겸 새끼들 육아(?)에 신경을 쓰는 중이란다. 추울까봐 불도 지펴주고, 오늘 아침에도 신선한 시래기 좀 장만해갖고 왔단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올망졸망한 주먹 크기의 토끼들이 서너 마리 눈에 띈다.

품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안으려는 토끼의 모성애를 한동안 바라보며 노파와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이내 발길을 재촉했다. 산행을 마치고 하산한 지금까지도 내내 눈에 밟힌다. 토끼가 뭘 좋아 하는지 알아보고, 제법 푸짐하게 준비해서 내일 아침에는 필자도 산후조리와 육아에 동참해야겠다. 토끼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혹시 토끼도 정성을 알까?

한낱 미물에 불과한 짐승이지만 자식을 향한 모성애는 본능적이라서 누구도 말릴 수 없고, 어떤 여건이나 상황의 변화에도 우선하는 걸 보면, 모성애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고 하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문득 고슴도치가 생각난다. 고슴도치 새끼는 엄마 뱃속에서는 가시를 피부 속에 숨기고 있다가, 태어난 후 3일 정도 되면 가시가 나오기 시작하므로 어미가 새끼를 낳으면서도 다치지 않는다.

가시는 적을 공격할 뿐 아니라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몸을 보호하기도 하는데, 생후 5주~6개월 사이에 가시갈이를 한다. 암수 단독 생활을 하나 번식기 암컷은 새끼들과 가족생활을 한다. 새끼의 수는 2~4마리, 드물게 5마리 이상을 낳는다. 피부의 털이 가시와 같은 형태로 조직 변화하여 포식자로부터 몸을 방어하는 역할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주로 야행성으로 지렁이와 같은 환형동물과 딱정벌레 등의 곤충을 포함한 절지동물을 주식으로 하며, 일부 오이 등과 같은 식물도 먹는다. 야산, 농경지, 삼림지대에 이르는 다양한 환경에서 서식하며, 도시의 산지 공원지대에서도 생활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 성장하면 독립을 해서 개인적인 생활을 하게 되지만, 그 이전에는 털갈이가 끝나고도 한동안은 어미의 젖에 의존하게 된다.

고슴도치는 늘 가시를 세우는 건 아니지만, 새끼들은 무의식 중에 불쑥 털을 곤두세우곤 한다. 심지어는 어미의 품에 안겨서 젖을 빨다가도 가시를 세우는 바람에 어미의 가슴 쪽에는 언제나 피가 묻어있게 된다. 새끼들에게 젖을 빨리고 난 어미는 피투성이가 되기 일쑤다. 그럼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수시로 새끼들에게 젖을 물린다. 그야말로 상처 뿐인 모성애다. 하등 동물들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 사회의 모성애는 어떤가?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모든 걸 다 바치는 부모의 사랑과 은혜는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대함이다. 태초에 시작된 어떤 전설 보다도 더한 엄숙함이며, 영원까지 이어질 어떤 신화 보다도 더한 위대함이고, 지금 있는 어떤 역사 보다도 더한 거룩함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부모의 은혜를 칭송하기에 주저함이 없고, 그 은덕을 기리기에 망설임이 없다. 그런데, 그런데 정말일까? 과연 그럴까? 일단 나중에 다시 말하기로 하자.

이제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이 코 앞이다. 설날! 가진 자들은 가진 자들대로, 없는 이들은 없는 이들대로, 나름 최대한의 기쁨과 행복을 맛보고 싶어 하는 축복받은 날이다. 무릇 명절은 명절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모든 이해타산의 정설을 뒤짚는 힘이 있다. 평소라면 도저히 참기 어려운 그 엄청난 교통체증으로 시달리면서도 웃을 수 있고, 예기치 않은 갈증과 허기도 쉽사리 추억의 한 페이지로 적는다.

고생 자체가 행복이고, 혼돈이나 무질서도 해후와 동행의 즐거움으로 덮는다. 작은 준비에도 서로 감격하고, 배려에 기꺼워 한다. 나누는 덕담을 통해서 사랑을 이어주고, 맞잡은 손에서 기운을 전해준다. 1년을 기다린 축복을 아끼지 않으며, 혼자 간직해왔던 소원성취의 소망까지도 공유한다. 소위 명절이기에 모든 걸 포용하고 이해하며 감싸안을 수 있다. 바로 그게 명절이다. 명절은 그렇게 기다림이고 설레임이며, 그래서 꿈이다.

본격적으로 올 해가 시작되는 설날, 비록 허다한 난관과 어두운 현실들이 우리를 짓누르더라도 이 하루만큼은 다 잊고, 손에 손을 잡고 내일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사랑만 가득한 날이 되기를 바란다. 허기사 행복과 기쁨을 위한 행진이라는 데 비단 이 하루 뿐이랴? 물론 이 하루를 시작으로 계속 이어지고 연결되어, 모든 사람들이 하나로 행복할 그 날까지 쭈욱 가자는 이야기다.

필자의 아버지는 음력으로 12월 29일에 태어나셨다. 어떤 해에는 12월이 30일까지 있지만 올 해 같은 경우에는 29일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그래서 설날 바로 전 날이 아버지의 생일이신 셈이다. 그렇기에 따로 생신을 챙겨드리지 않고 그냥 설날 바로 전 날 저녁에, 어차피 가족들이 모인 참에 식사를 하고 축하를 드리는 걸로 생신을 때운다. 참으로 편리하다. 자식들 귀찮지 말라고 그 날 태어나신 거다.

게다가 두어 달 전에 들어있는 어머니 생신도 웬만하면 따로 챙기지 않고, 그냥 넘어가다가 그날 함께 축하를 드리기도 한다. 근래에 와서는 아예 그렇게 굳어졌다. 부모님도 인정하시는 결론이다. 그마저도 강원도 산골의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요즘에는 유명무실해지면서, 더러는 설날 아침의 문안인사로 대신하기도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경일처럼 하루 정해서 1년치 기념일을 몰아서 기리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필자는 부모님의 생신을 비롯한 각종 기념일을 골고루 잘 차려드리는 걸로 착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물며 한 술 더 떠서,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놓고 자랑스레 떠벌린다. 올 해 생신에는 어떤 어떤 효도를 해드렸고, 이런 저런 축하로 기쁘게 해드렸노라고.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토끼가 비웃고 고슴도치가 혀를 찰 일이다.

지금도 필자는 부모님의 은덕을 권면하는 글을 쓰고 있고, 기회가 닿을 때 마다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강의를 하고 있다. 생판 모르는 남에게 부모님의 수발을 위탁해놓고는,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건강을 보살펴드리기에 부모님께는 더 잘하는 일이라고 자화자찬을 하고 있다. 일부 지인들의 효자라는 호칭에 대단히 만족하면서, 한 편으로는 부모님이 한 번이라도 더 부를까봐 전전긍긍하는 걸 숨기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함을 필자의 자식들이 알까봐 쉬쉬하면서 합리화에 여념이 없다. 그렇게 올 해의 아버지 생신과 설날이 또 다가왔다. 이제 얼마나 더 생신을 챙겨드릴 수 있을지 우매한 필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몇 차례나 더 새 해의 인사를 드리면서 세배를 올릴 수 있을지 미련한 필자는 가늠조차 못한다. 그저 올 해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마음으로 공경하는 마음 가득 담아 아버지께, 그리고 어머니께 축하의 인사를 여쭙는 진솔한 마음이 되살아나기를 바랄 뿐이다.

당신들의 모든 열정과 꿈을 모아 못난 자식을 이만큼 키워주신 부모님이신데, 당신들의 청춘과 활력을 오롯이 기울여 잘난 척 하는 이 자식을 예까지 끌어주신 부모님이신데, 상처와 흔적만 잔뜩 머금은 심신으로 세월의 뒤안길에 쓸려가서는, 아무 말도 없이 바라보면서 웃음 짓고 계신 부모님이신데,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이즈막에서야 필자는 후회의 눈물이 흐른다. 이제사 아주 조금이라도 철이 들려는가?

“양철 지붕을 이해하려면 오래 빗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는 말이 있다. 맨 처음 양철 지붕을 얹을 때 날아가지 않으려고 몸에 가장 많이 못 자국을 두른 양철, 그놈이 가장 많이 상처입고 가장 많이 녹슬어 그렁거린다는 것을 우리는 눈치 채야 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양철 지붕 같은 날들인지도 모른다.

얕은 바람소리에도 그렁거리는, 가랑비에도 녹물이 흘러내리는, 쌓인 눈에도 버거워서 숨가빠 하는, 못 자국 많은 양철 지붕 같은 날들, 양철 지붕 같은 우리들, 많이 상처입고 많이 녹슬어 힘겨운 삶으로 그렁거리지만, 그래도 날아가지 않으려고 애쓰는 우리의 오늘들이 처연하지만 차라리 아름답다. 그렇기에 온종일 바람 소리가 세차게 불어오더라도, 결코 맥없이 날아가지는 않을 거다.

그 못 자국이 부모님이 물려주신 우리의 힘이기에, 그 상처가 부모님이 가르쳐주신 우리의 열정이 될 것이기에.... 거친 바람이 다 지나간 자리, 양철 지붕이 그렁거리던 자리, 이 자리가 바로 우리 삶의 터전이다. 지금은 겨울의 푸른 하늘빛이 상큼하게 꽃처럼 피어있는 아침이다. 이 신선한 겨울아침에, 마음 속 깊이 살아계신 부모님께 먼저 말씀 드려보자.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영원히 존경하며 사랑합니다.” 라고 말이다. 그 다음에는 배우자에게 말해보자.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야, 당신을 만난 것은 행운이야.”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말해보자. “너희들이 참 자랑스럽구나. 너희들 때문에 참으로 행복하단다.” 이번에는 직장 동료에게도 말해보자. “나는 당신과 함께 일하게 되어서 마음이 든든합니다.” 다음에는 스스로에게 말해보자. “내 앞에는 언제나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언젠가 그렇게 변해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랄 것이다.

어차피 다 알고 있는 걸 구태여 말로 옮길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평소에는 표현하지 않던 걸 막상 말로 옮기려면 쑥스럽고 어색할 지도 모른다. 사실은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 서투른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다. 단 “정직이 베스트인가?” 라고 묻는다면, 필자는 “아니다.” 라고 답할 것이다. 필자가 만든 격언(?)에 “어두운 정직보다 밝은 빈 말이 좋다.” 라는 것이 있다.

자연스럽게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은 원래 그러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다. 필자처럼 속 좁은 사람들은 특별히 노력을 해서 칭찬해야 한다. 말 하기가 보통 망설여지는 게 아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거북하지만 이것도 점차 익숙해져간다. 나이가 들면 운동 부족으로 좀처럼 몸이 잘 굽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씩 움직여가다 보면 부드러워지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마음도 서서히 풀리면 편안하게 사람들을 칭찬할 수 있게 된다.

희한하게도 진심이든 빈 말이든 남을 칭찬하다 보면 자기도 칭찬을 들을 기회가 늘어간다. 처음에는 겸연쩍지만 역시 칭찬받으면 기분 좋기 마련이다. 칭찬하는 데 인색한 사람은 틀림없이 칭찬받는 기쁨을 모르든가 잊어버린 사람이다. 그런 생활도 나름대로 좋겠지만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진다면, 허세여도 좋으니 말을 하자. 혹은 문자나 엽서에 써도 좋다.

어느 쪽이든, “당신과 함께 지낼 수 있어서 좋았다” 라든가 “멋진 스카프입니다'” 는 말 정도면 된다. 너무 아부에 가까운 칭찬을 하려 하면 나오지 않게 되므로 일단은 간단한 유연 운동부터 시작하자. 조금 유연해지면 스카프 뿐만 아니라 “스카프와 립스틱색이 어울려서 멋지다”고 말할 수도 있게 된다. 성희롱으로 오해받지 않을 만큼의 유머를 섞으면 더욱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자기도 칭찬을 듣게 된다. 칭찬을 들으면 자신에게도 자신감이 붙게 되고, 멋진 코디네이트를 할 줄 아는 상대를 더욱 기분 좋게 칭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부자연스럽고 그리 익숙하지 않더라도 일단은 칭찬하여 볼 것, 이것만으로도 우리의 주변 공기는 더 아름답게 변할 것이다.

의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말을 썩 예쁘지 않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삐죽 빼죽하고, 볼에도 약간 심술살이 붙어 있는 것도 같기도 하고 하여튼 그렇다. 사랑받고 인정받는 사람들의 얼굴은 입매가 다르다. 양 입꼬리가 같은 각도로 보기좋게 올라가 있다. 자신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예쁘게 변화시키는 일, 사랑을 나눠주고 인정해주는 것, 그 예쁜 얼굴이 자신의 거울이 되어 자신의 얼굴도 예뻐지고 하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말새는 그 사람의 인격이고 표정은 마음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글을 쓰다말고 필자도 얼른 거울부터 한 번 봐야겠다는 마음에 일어서본다. 평소의 표정이 뾰족하지는 않은지, 둥글 둥글 예쁜 미소는 갖고 있는지. 자! 어느 사이에 새 해로 시작한 날들이 이만큼 바쁘게 달려오더니 바야흐로 설날의 목전에 이르렀다. 오늘 하루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살이 잘 하면서 다가오는 축복의 명절을 기다리자.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 동료들과 함께 가는 내일들, 이웃들과 함께 맞는 새 날들, 우리의 모든 날들 위에 질책보다는 격려를, 욕심보다는 양보를, 탓을 하기보다는 덕분으로, 그렇게 서로 서로 사랑으로 에너지 충전하는, 행복한 우리 모두의 하루들이 되어지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하자. 그러면서 오늘을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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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바람아, 조금만 있다 불으렴,
해가 지는데.....

쓸어모을 제 마다
문득 문득 떠올리는 고향 뒷산 애기묘,
겨울낙엽 까칠한 밑둥서니
군불인 양 불 놓으니
群舞,
소담스런 불길 새 실연기 궁시렁
하늘로 오르다가
애기넋 살아나와 비인 가슴 헤집는다.

행복이나 불행 사이 그 어디쯤에선가
갈 길 잃어 헤매이나
짓거린 다 했노라,
사연 조차 많았던 듯 어쩌질 못해
장문의 유서대신
차라리 벙어리인 채
곧바로 구천 너머 날아오르질 못하니

매캐한 내음 새
허공에 흩어지는 미련의 상처들
알싸한 눈자위에 물기 언뜻 어리면
노오란 잎이 탄다,
검은 재로 오른다
검붉은 잎이 탄다,
검은 재로 오른다
회갈색 잎이 탄다,
검은 재로 오른다

속세의 유일한 끄나풀
마른 가지 같이 탄다,
검은 재로 오른다
이제는 검은 누리,
밤이 오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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