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2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7집. 구름에 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  


  "7집. 구름에 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
1996년 11월 25일을 인쇄일로 탄생된 詩集입니다.

역시 인쇄 출판에 관련된 판권은
증인출판사에서 소유하고 있습니다.

序詩는 '겨울, 그리고 동면'이며
'구름같은 이야기'에 30편,
'달 닮은 이야기'에 31편,
'살아가는 이야기'는 '세월 하나(10편)',
'세월 둘(10편)',
세월 셋(11편)'으로 나누어 목차를 정했으므로
전체적으로 보자면
총 93편의 詩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하게는 경제적으로 침체되고 힘들었던 시기이기에
세파에 시달려 생활고에 찌달리는 일상이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꿈을 키우며 도전하던
그 시절의 여러가지 직업을 대변하는 詩들이
많이 실려 있는 詩集입니다.
[ 증인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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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



시작노트

" 나무 " 詩作 note

림삼 제7시집 ‘구름에 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에 수록되어 있는 시다. 제목이 그냥 ‘나무’다. 그동안 이런 저런 나무들을 소재로 하여 여러 편의 시를 지었는데, 그러다보니 제목에 ‘나무’가 들어가는 시가 꽤나 많은 것 같다. 그 중에서 다른 설명이나 도움말이 없이 그냥 ‘나무’라고만 건조하게 제목을 붙여서 지은 이 시가, 문득 들춰보던 옛 시집 갈피에서 필자의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내 이 나무가 그 나무였구나 하는 마음 들어 뭉클 반가움이 솟는다.

나무는 사철 다른 옷을 입는다. 그리고 철 따라 달라지는 우리네 얄팍한 인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늘상 제 자리에 굳건히 버티고 서서 말을 건넨다. 나무의 목소리는 언제나 다른 것처럼 들리지만 실은 잘 들어보면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같다. 소리를 듣고서 그 뜻을 제대로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우매한 사람들이 제각각 나무의 형태나 소리를 다르게 표현할 뿐이다.

그리고는 자기가 들은 나무의 소리만이 진실이라고 착각을 한다. 정작 나무는 어떤 다툼도 바라지 않고 세상의 화평과 균형을 바라면서 속으로 한결같이 늘 푸른 색을 지니고 있건만, 그 속을 알 턱이 없는지라 겉으로 보여지는 잎과 가지의 모양새로 나름대로 가늠하고는 나무의 색을 다 알아버린 거라고 결론짓는 우스운 자만이 바로 우리에게 배인 헛된 습관이다.

그렇다. 일단 나무는 말이 없다. 그저 조용히 순응할 따름이다. 그리고 기다린다. 철에 맞는 얼굴로 자연스럽게 적응하며 나무는 삶을 관조할 줄 안다. 그리고 우리에게 미소짓는다. 마치 ‘나를 따라서 해보렴.’ 넌지시 권유하는 손짓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맞추어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의 주인공인 그 나무를 보자. 어릴 적부터 이제까지 평생을 보아온 고향의 그 나무는 필자가 갈 적마다 변함없이 정말 반갑게 손짓을 해준다.

때에 따라서는 제법 소란스러운 목청을 들려줄 때도 있다. 물론 사철 다른 옷을 입고 서있지만 그 나무는 자존심이 퍽이나 세서 웬만해서는 얼굴을 바꾸지 않는다. 혹시라도 날이 어두워지면 행여 못 알아보고 그냥 지나칠세라, 근처에만 가도 벌써 반가운 티를 내며 ‘휭 휭’ 소리 내어 필자를 붙들고 늘어질 태세다. 아무튼 어찌나 반가워하는지 모처럼 고향을 찾을 적엔 어울려 수다를 떠느라 정신 차릴 사이가 없다.

뭐니뭐니 해도 역시 옛 친구가 좋긴 좋다. 100년도 더 되어서 필자보다야 훨씬 형님이지만 그래도 어차피 친구삼기로 한 거고, 필자는 오래 전에 그 나무에게 이름도 지어주었다. 그 나무의 이름은 ‘아람목’이다. 이따금 강원도의 고향을 찾노라면 가장 먼저 필자를 맞아주는 마을 초입의 느티나무가 바로 그 나무다. 아마도 필자의 유한한 삶의 끝이 와도, 그치지 않고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서 마을의 수호신처럼 나무는 웅장한 자태를 이어갈 거라고 여겨진다.

살다보면 자신이 몹시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게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 앞에 섰을 때는 결코 아니다. 나보다 훨씬 적게 가졌어도 그 단순과 간소함 속에서 삶의 기쁨과 순수성을 잃지 않는 사람 앞에 섰을 때다. 그 때 내 자신이 몹시 초라하고 가난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물론 필자만의 단편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 앞에 섰을 때 나는 기가 죽지 않는다. 정작 내가 기가 죽을 때는, 그리고 내 자신이 가난함을 느낄 때는, 나보다 훨씬 적게 갖고 있으면서도 그 단순과 간소함 속에서 여전히 당당함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라는 거다. 지난 주말 짬을 내서 찾아간 나무친구가 엄중한 숨결과 함께, 이리 살아보는 게 어떻겠냐면서 건네준 삶의 팁이다.

누구나 저마다 가슴 속에 크고 작은 가시를 하나 쯤은 품고 있으며, 그 가시로 다른 사람을 찌르기도 하고, 또 스스로를 찌르기도 한다. 그런데 가시에 찔리면 처음에는 아파서 견딜 수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운 상처로 시작된 꽃이 피워져 있는 것을 어느 순간 발견하게도 된다. 그것이 우리 삶의 보석같은 기쁨의 순간이다. 가시가 그냥 가시로 끝나지 않고 오랜 기다림과 참음의 세월을 견디고 피워내는 환희와 행복의 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냥 소소한 삶의 얼굴이다.

가시가 가득한 볼품없던 선인장도 언젠가는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당장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고 외면하지 말고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다보면 필경 아름다운 꽃을 피우리라 믿는다. 선인장처럼 정녕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기 위해서 혼자만의 욕망이나 탐심에 머물지 말고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과 서로의 배려와 관심이 필요한 오늘의 현실이다.

허황된 욕심에 헛된 것을 추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이런 나’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오늘 우리는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자기 수용이라는 명제다. 좀처럼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기꺼이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불안하고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에 쫓기듯 정신없이 살아간다. 때론 허황된 기대와 현실 사이에 좌절도 하고, 중심을 잃고 흔들리기도 한다. 그래도 차분함과 용기와 지혜만 있다면 결국 이 험한 세상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시끄럽고 장황한 웅변이나 설득을 앞세우기보다 조용히 침묵하면서 세상의 진리를 관조하는 태도가 절실한 오늘이라고 할 수 있다.

조화(造花)는 아무리 아름다워도 잠시 우리 눈을 즐겁게 할 뿐, 사무실 책상이나 집안의 꽃병에는 비록 초라해도 생화(生花)인 들꽃 몇 송이라도 꽂혀 있을 때 훨씬 더 보기 좋으며 싱그럽고 향기가 가득하다. 이처럼 아무리 포장이 잘되었더라도 조화같이 생명이 없는 겉 모습보다는, 생화가 살아있듯 내면의 마음과 교양이 잘 갖추어져야, 언제나 향기가 나는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결코 눈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듯 외적인 것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듯 하다. 그러므로 화려한 겉 모습보다는 속이 알찬 나날들로 열어가야 한다. 어느덧 중년을 훌쩍 지나더니 빠른 속도로 노년의 나이에 이르러, 막상 이제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더 짧은 인생의 내리막길이 되고 말았다.

돌이켜보니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를, 스쳐가는 바람처럼 의미없이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흘러가는 물도 목적 없는 여행을 하지는 않는다. 물길 따라 하염없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저들 나름대로의 길을 간다. 개울물이 모여서 시냇물 이루고 시냇물 모여서 바닷물 이루는, 유유히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삶의 교훈을 얻고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젊었을 적에는 당장 보여지고 만져지고 느껴지는 어떤 것들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었다. 보여지지 않는 단면까지 신경 쓸 마음의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나이를 이만큼 먹고보니 들은 나이만큼 깊어지는 것들이 있다.

군데 군데 자리잡아가는 주름 사이로 웅성거린 세월을 그냥 덧없다고 하지 않는 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주름이 늘어간다는 것은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속도에 신경 쓰는 일보다 어느덧 자신이 가진 능력에 맞는 속도를 헤아릴 줄 알게 되었다. 날카롭던 것들은 유연하게, 상처는 치유의 흔적으로, 내게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대신 내게 있는 것에 감사하는 법을 알게 되는 것이야말로 바로 나무의 나이테 같이 세월 앞에 넉넉해지는 나이 덕분이었다.

살아오면서 저마다 연륜이 몸에 배고 인생의 빛과 어둠이 녹아든 양만큼 적절한 빛깔과 향기를 띄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고 순간 순간 자각해야겠다. 한 눈 팔지 말고, 딴 생각 하지 말고, 남의 말에 속지 말고, 스스로 살피도록 해야겠다. 그렇지만 이와 같이 제언하는 필자의 말에도 얽매이지 말고, 우리 모두는 각자의 길을 가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런 순간들이 쌓여 한 생애를 이루는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긴장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너무 긴장하면 탄력을 잃게 되고, 한결같이 꾸준히 나아가기도 어렵다. 먼저는 사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묵은 수렁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야 한다. 그게 오늘 또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의 숙제다. 조용한 친구, 오래된 내 친구, 나무가 바라는 우리의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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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엽수에 기원한 슬픈 사랑 이야기
울림으로 다가오고
경이로운 잎 되어
하나씩 하나씩 빗발이
듣고 있는 생명마다에
자애로운 손길 기꺼이 수혈하다

어루만져 싱그러운 내 피 살아올라
새순이 나고
안개마냥 피워올린 꽃나무 등걸 되어지다
어느덧 초여름의 신록으로 어우른
참매미 소리가
멀리서 가까이로,
곁에서 산너머까지 분주히 오가다

지금이라면
마뜩쟎은 색깔로 총총하게 소묘된
잿빛 구름들
가파름으로 바다 건너고
염결성에 묶여 긴 잠 자던
높새바람도 허공으로 솟아오르다

돌아가자,
시가 익어가는 마을 어귀에서
나무 울음 들려오면
그게 꼭 환희만큼의 게절이었음을
우린 알게 되리니
오늘은 또 얼마나 짧을까
새삼 헤아리지 말고
얼른 가서
나무에게 이윽히 손 내어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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