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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권의 시집에 총 1,72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4집. 지구 반대편의 메아리  


  "4집. 지구 반대편의 메아리"
1995년 8월 5일에 인쇄된 詩集입니다.

序詩의 제목은 '평론가에게'이며
총 5개의 章으로 구분되어 있고
'때로는 한두가지 씩 숨기고 싶은 비밀 있었다'에 10편,
'계절이 바뀌면서 염원이 싹트는데....'에 10편,
'세상 사는 보통사람의 없어진 참 모습'에 10편,
'자연 있고 사람 있지, 사람 있고 자연 있을까 ?'에 10편,
'산다는 것은 바로 죽음에 이르는 것이니....'에 10편,
합계 50편으로 엮은 詩集입니다.
[ 도서출판 가람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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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빛 하루 *



시작노트

" 초록빛 하루 " 詩作 note

19세기를 대표하는 영국의 비평가 ‘토머스 칼라일’ 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할 가장 큰 진실은 역사에서는 아무 것도 배울 게 없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한 역사는 계속해서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된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세계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정치, 경제, 문화 등의 폭넓은 부분에서 지업적인 사회 전반의 작은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색다른 모습으로 발전되어지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새로운 상황이 예전의 역사 속에 존재하는 어떤 상황의 판박이이거나 반복된 답습의 양상을 띄고 있는 걸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을 ‘역사적 순환’ 이라고 부르는데 예를 들어 인간들의 범죄 행위나 비윤리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되는 그릇된 행동들은 끊임없이 반복하여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 속의 과거를 돌아볼 때 국가 간의 전쟁이나 흉악한 전대미문의 범죄 등 엄청난 사건이 발발될 경우 인류사회 전반에 충격을 주게 되고 그 당시에는 모두의 힘과 두뇌를 합쳐 재발 방지를 위한 다각도의 연구와 대책을 모색하곤 하지만 일정한 기간이 흐르고 나면 있었던 사실 자체를 근본적으로 망각을 하고는 다시 그와 같은 상황이 반복 발생하게 되는 ‘양면성’ 을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역사의 본질이라는 설명이다.
그러고 보면 역사의 순환 고리에 잠시 걸쳐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 사람이야 말로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연속적으로 과거를 망각하는 우와 그에 따른 시행착오를 거치는 일정한 사이클을 반복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한번 저지른 실수나 잘못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 순간의 각오로만 미루어서는 다시는 과오를 반복하지 않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어느 사이에 다짐은 다 잊어버리고 다시 예전의 그 습관적인 잘못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일단 저지르고 나서 반성하고 후회하면서 다시 계획하고 시도하고는 또 뉘우치는 ‘양면성’을 밑바닥에 단단히 반석처럼 깔고는 천편일률적인 일상으로 이어져가는 우리의 삶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에서는 가장 극단적인 사람의 심리를 정확하게 ‘양면성’ 으로 분리시켜 보여줌으로서 어느 한편으로 기울지 않고 대립하는 양극의 성격과 추구하는 진실의 가치를 잘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 국가의 가장 선도적인 계층이며 유능한 두뇌들의 집단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정치가들의 행태를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주장과 제한된 사고방식의 틀에 사로잡혀 있는 걸 자주 목격하게 된다.
똑같은 문제를 놓고 여야로 나뉘어져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이 정반대인 채 자신들의 주장으로만 결론을 유도해내려고 애쓰면서 협상이랍시고 도모하는 시간낭비의 줄다리기를 바라보다가 입맛이 씁쓸해졌던 경험이 우리에게는 있다.
그런가 하면 노사가 극렬하게 대립하면서 주장하는 바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를 넘는 폭력과 점거 행위도 서슴치 않는 쪽이나 강압적인 공권력까지 동원시켜 탄압을 일삼고 직장폐쇄도 어렵지 않게 시도하는 쪽이나 한결 같이 행동은 꼴사나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딴에는 완벽한 논리와 철학으로 무장되어 있는 것처럼 목청을 높이는 모습도 우리는 심심챦게 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른바 ‘양쪽의 진리’ 라는 제목인 것이다.

필자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유난히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정말 많은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방화나 외화를 가리지 않고 짬만 나면 영화관을 찾기를 즐긴다.
그리고 혹여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꼭 보고 싶은 영화를 놓치게 되면 후일 다른 매체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볼 때에는 감동과 충격을 경험하기도 하고 너무도 아름다운 스토리나 장면에 더러 눈시울도 붉히고 콧등도 시리며 온 몸을 전율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당시의 느낌이 두루뭉실해져 가고 기억의 편린들이 제각각 흩어지다가 복합되어 소위 커피믹스같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나이 탓이려니 하고 자위하곤 한다.
그런데 2005년도에 보았던 ‘킹덤 오브 헤븐’ 이라고 하는 영화에서의 한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게 뇌리 속에 새겨져 있는 게 있다.
성지 예루살렘을 사이에 두고 기독교 진영과 이슬람 세력과의 공격과 방어가 계속되는 십자군 전쟁 당시의 탈환과 재탈환의 격렬한 전투가 주 스토리로 전개되는 영화였는데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지다가 나중에는 너무 많은 피해와 죽음들에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하고 양측이 휴전 협상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그 때 한 사람이 다른 쪽의 사람에게 질문을 한다.
“도대체 당신들에게 예루살렘은 뭡니까 ?”
그러자 아주 간단하게 대답을 한다.
"Nothing !" (아무 것도 아닙니다 !)
이미 폐허가 되고 모든 것이 파괴되어 죽음의 도시로 변모한, 그래서 그들이 믿고 숭배하는 신이 임재하는 성지로서의 의미나 가치를 찾아보기 힘들어진 상태의 예루살렘은 이제는 그들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일어나서 몇 발자국 걸어가다가 뒤돌아서면서 다시 말한다.
“Everything !” (모든 것입니다 !)
아무리 폐허가 되고 모든 것이 파괴된 죽음의 도시로 변모한, 그래서 그들이 믿고 숭배하는 신이 임재하는 성지로서의 의미나 가치를 찾아보기 힘들어진 상태의 예루살렘이라고 해도 아직도 그들에게는 삶의 전부라는 뜻이다.
실로 같은 대상을 판단하는 ‘양면성’ 대변의 압권이다.

강연대 앞에 선 한 남자가 있다.
한참 강연을 진행하다가 몸을 기울여 쓰러진다.
놀라는 청중을 뒤로 하고 그는 넘어진 채로 계속 강연을 이어간다.
“나처럼 넘어지면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 다시 일어서겠죠.
일어나려고 100번을 시도했다가 다 실패했다고 하여 내가 실패자일까요 ?
우리는 실패할 때 마다 교훈을 얻습니다.
혼자가 아니란 걸 알면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시도하십시오.”
그리고 그는 다시 말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보다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세요.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 말아요.
나는 (팔다리가 없지만) 날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합니다."
SBS 힐링캠프 97회에 나왔던 세계적 희망 전도사 ‘닉 부이치치(Nick Vujicic)’ 의 이 말들은 계속 진한 여운을 던지고 있다.
‘해표지증(海豹肢症)’ 이라고 하는 희귀병으로 팔다리 없이 태어나 3번의 자살도 시도했지만, 15살 때에 자신의 실체와 인성을 자각하게 되면서 삶을 사랑하게 되었고 ‘모든 것을 갖춘 것처럼 보여지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할까 ?’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새로 띄어지게 되었으며 이제는 세계적 명강사에 만능 스포츠맨,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난 그가 어느 날 기습처럼 멀쩡한 사람들의 가슴을 찌르는 힐링 메시지를 우리들의 가슴에 남기고 돌아갔다.
그는 세계 43개국을 돌며 400만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감동의 메시지를 전했다.
"내가 할 수 있으면,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닭다리' 같은 작은 왼쪽 발 하나 밖에 없지만, 두 발가락으로 컴퓨터 자판도 치고, 샤워, 칫솔질, 옷 입기 등 거의 모든 생활을 혼자 해결합니다.
어깨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일도 있었지요.
세상에 완벽한 나무나 꽃이 있나요? 우리는 다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아름다워요."
실제로 그는 혼자 이동할 뿐 아니라, 축구, 테니스, 골프, 수영, 서핑, 승마, 줄넘기, 전자드럼 치기, 스카이 다이빙 등 온갖 스포츠에 끊임 없이 도전해 성취하는 기적을 일구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로 결론을 짓는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합니다. 따라서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서로를 용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요?
나의 외모나 내가 이룩한 실적과 성공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세상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사람들에게 용기를 줬는지를 기억할 거예요."
만일 그가 지금과 같은 아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자학과 좌절의 마수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삶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면
그 현실은 어떠했을까 ?
생각하기도 싫은 ‘양면성’ 의 한 쪽에는 우리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엄연하게 존재하면서 우리더러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부인하지 못한다.

과실나무를 기를 때 일정 시기가 되면 잔 가지를 솎거나 잘라내는 ‘가지치기’ 를 한다.
나무의 골격을 바로잡고 실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이다.
쓸모없이 굵은 가지, 병든 가지, 제 멋대로 자란 가지 등을 잘라내면 나무는 열매를 잘 맺고 더 오래 산다.
나무만 그럴까 ?
삶에도 ‘가지치기’ 가 필요하다.
사람은 태어나면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왕성하게 신경망을 형성해간다.
하지만 12살 무렵부터는 유용한 신경망만 남겨두고 불필요한 시냅스는 잘려나가는 ‘뇌의 가지치기’ 가 시작된다.
만일 이러한 가지치기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
과중한 감각 발달과 입출력의 오류에 시달려 정신적인 오작동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유능한 사람이란 많은 뇌 회로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불필요한 신경망을 제거함으로써 집중적인 뇌 회로를 갖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재능이나 강점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다다익선(多多益善)보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지혜가 필요한 세상이다.
버리려 애쓰지 말고 버리기에 앞서 채우기를 조절해야 한다.
결국 버리는 것이 채우는 것보다 한결 더 어렵다.
채우는 것은 욕망으로 되지만 버리는 것에는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컨대 마음을 버리는 건 쉽지 않다.
걱정이나 불안은 더욱 그렇다.
‘그래, 안 좋은 생각은 하지 말자’ ‘사람 앞에서 긴장하지 말자’ 고 수 없이 되뇌어보지만 정작 버리려는 생각 자체가 우리를 더 괴롭히고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버릴 것인가를 생각해볼 차례이다.
버리려고 애쓰지 말 일이다.
애초 버릴 수 없는 것도 있다.
예컨대 인간의 양면적 본능, 타고난 기질, 부정적인 마음 등 그 자체를 버릴 수는 없다.
이러한 본성은 되레 버리려고 할수록 확대되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 조절되거나 다듬어질 수 있다.
따라서 내성적인 성격을 버리고 외향적으로 바꿀 수는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인간의 본성이나 ‘양면성’ 을 인정하지 않고 제거하려는 것은 우리의 정신을 피폐하게 할 뿐인 것이다.
대신 원하는 것에 진심으로 마음을 둠으로써 원하지 않는 것에 마음을 덜 쓸 수 있다.
무엇이 되었든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버리고 싶은 마음과 행위가 생겨난 이유와 긍정적인 의도를 파악해서 소망으로 바꿔야 한다.
‘나는 왜 불행할까 ?’ 라는 문제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 를 생각해야 한다
내게 없는 것, 주어지지 않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내게 주어진 것, 허락된 것에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자.
나와 나의 가정, 내가 속해 있는 집단과 사회가 염원하는 공통의 행복 과제를 이룩하는 데솔선수범하여 힘을 합치고 실제로 내게 부여된 공간과 여건, 환경 속으로 아름답게 스며드는 진정한 희망 바이러스가 되는 하루 만들기를 망설이지 말자.
이 여름의 초록빛 하루들을 신바람으로 장식하는 행복 전도사가 되어보자.
온 세상에 초록빛의 물결이 평화롭게 퍼져나가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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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빛 하루 여물어가면
비발디가 살아나와 교향악 연주하네

열광적 찬란한 몸짓
초록을 노래하는
넋이여 영혼이여
영광스런 몸짓이여

초록빛 하루 저물어가면
자유여신 깃 펴고 안식의 횃불드네

아련히 멀어져가는
초록의 음영모아
꿈이며 사랑이며
영원으로 이어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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