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9집. 돼지 껍데기  


  "9집. 돼지 껍데기"
1998년 6월17일의 이 詩集을 끝으로 하여
더 이상은 詩集을 출판하지 않았으니
현재까지의 마지막 詩集인 셈입니다.

52편의 일반詩와
童詩集 '자라는 나무가 되어'에서
비교적 성장한 수준의 어린이들에게
권장할 만한 내용으로 사료되어 발췌한
39편의 童詩를 선별,
'童詩모음 코너'를 뒷부분에 덧붙여 편집한 詩集입니다.

특별한 독자층을 확정하지 않았기에
詩集의 성격이 약간은 애매모호한 관계로
독자들에게 '무리수를 두었다'는 비판과 아울러
그리 좋은 작품평을 듣지 못하였으며
결과적으로 긴 시간이 흐르도록
더 이상의 詩集을 출판하지 못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詩集입니다.
[ 초롱불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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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사랑하노라 *



시작노트

" 너 사랑하노라 " 詩作 note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여러 가지 이름으로 가족이나 스승을 향한 사랑과 감사를 전하고 표하는 정성의 달이다. 올 해는 특별히 제정된 임시공휴일까지 있어서 황금연휴가 이어지고 있으니 위정자들의 바람대로 경제가 살아나고, 국민들의 삶에 호재로 작용하는 희망의 계기가 되어지기를 기원한다. 모든 만사는 마음먹기 달린 건데, 아무리 어렵고 빡빡한 현실일지라도 그 속에서 소망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우리들의 염원이 이러하다면 안 될 일이 뭐 있겠는가? 그저 좋은 시절이 올 거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오늘을 살자.

어차피 현실은 누구에게나 만족스럽지 못한 법이다. 많이 가진 사람이나 적게 가진 사람이나 오늘 보다는 내일을 바라보며 산다. 어제보다는 그래도 오늘이 조금 괜찮았고, 내일이라면 오늘에 비해서 그런대로 더 나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꿈으로 우리는 오늘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내일은 무지개 빛이다. 아니, 무지개 빛이어야 한다.

어느 모녀의 슬픈 실화를 그린 ‘우리 딸 사랑해’ 라고 하는 제목의 자전적 고백 전문이 얼마 전 인터넷과 sns를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직접적인 상담을 통해서나 서적 등의 다른 매체들을 접하면서 생생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비교적 많이 듣는 필자지만, 그 가운데서도 이 사연을 대하며 특별히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에 젖어, 한참 동안을 아무 생각도 못했던 내용인지라 우선 되짚어본다.

- 우리 엄마는 남의 집에 가서 그 집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는데, 사람들은 우리 엄마를 가정부라고 불렀다. 왜 우리 엄마는 남의 집 일을 하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참 사춘기였던 나는 엄마가 창피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해서 날 창피하게 만드는 엄마가 죽도록 미웠다. 그래서 나쁜 애들이랑도 어울리고, 하지 말라고 하는 건 다했다.

엄마도 나 때문에 속상하고, 창피당해 보라는 맘에 나는 삐뚤어지려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한 번도 날 혼낸 적이 없다. 그런 엄마는 더 싫었다. 차라리 마구 때리고 혼을 내지, 화도 못내게 만드는 너무 착한 우리 엄마가 싫었다. 그래도 엄마가 많이 속 상했나보다. 늘 웃기만 하던 엄마가 울었다. 괜히 가슴 아파서, 질질 짜는 게 싫어서, 그냥 나와버렸다.

그렇게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나는 한 쪽 눈을 잃었다. 온 몸은 피투성이었고, 놀라서 쫓아오는 엄마의 모습은 흐릿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병원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엄마가 아주 어렵게 내 한 쪽 눈을 되돌려 줄 망막을 찾았다고 했다. 그게 누구냐고 묻는 나의 말에 엄마는 그냥, 죽을 병에 걸린 어떤 고마운 분이, 자기는 어차피 죽을 거니까 좋은 일 하고 싶다고, 자기에 대해 밝히지 말아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려니 했다. 그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나는 다시 눈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 그렇게 나쁜 짓만 하고 다녔다. 그런데 엄마가 이상했다. 전화기도 제대로 못잡고, 비틀비틀 거리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힘도 없는 엄마가 쓸데 없이 남의 집 가서 일이나 하고 그러니까 그렇게 비실거리지. 쓸데 없는 짓 좀 하지 마. 돈이 그렇게 좋으면 돈 잘 버는 아저씨랑 재혼이나 해. 알았어? 엄마가 자꾸 그렇게 기침해대고 그러면 내가 아주 짜증나.”

엄만 요새 부쩍 말랐다. 원래 삐쩍 마른 엄마라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엄마가 너무 이상했다. 어디서 그렇게 울었는지 얼굴은 퉁퉁 부어서, 안울려고, 눈물 안 보이려고 애쓰는 엄마가 정말 이상했다. “이쁜 우리 딸. 엄마가 정말 미안해. 다 미안해. 엄마가 우리 딸, 우리 애기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엄마가 그동안 그런 일 해서 속상했지?

우리 딸. 응? 그런데, 이제 엄마 그 일 안해도 될 것 같아. 엄마 돈 많이 벌었다. 이제 우리 딸 맛있는 것도 사주고, 사달라는 것도 다 사주고, 그럴 수 있을 만큼 많이 벌었어. 그런데, 말야. 혹시, 우리 딸, 우리, 딸, 엄마, 조금 오래 여행 갔다 와도 괜찮지? 우리 딸 혼자 두고 여행 가서, 미안하지만, 엄마 가두 되지?”

“가던지 말던지. 그렇게 돈 많이 벌었으면 오기 싫으면 오지 마.” “그래, 고맙다. 역시 씩씩한 우리 딸이야. 엄마 없어도, 잘 있을 수 있지? 엄마가, 냉장고에, 맛 있는 것도 꽉 채워놓고 가고, 우리 딸 좋아하는, 잡채도, 많이 해 놀게. 잘 있어야 돼. 엄마가 혹시 늦어도, 알았지?” “엄마. 내가 그렇게 귀찮았어? 그럼 버리지 뭐하려고 키웠어?” “.........”

엄마는 정말 이상했다. 하지만 평소에 표현을 잘 안했었기 때문에 그냥 넘겼다.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오랜 만에 느껴보는 따사로움이었다. 혼자만의 아침, 상쾌한 기분. 부엌에 나가보니 밥이 차려져 있었다. 그런데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거창했다. 내가 좋아하는 거란 음식은 다 있었다. ‘진짜 여행 갔나 보네. 췌! 딸 버리고 여행가면 기분 좋나? 오래오래 가있으라고 하지.’

그런데 왠지 불길했다. 전 날, 이상한 엄마의 행동이 머리를 스쳤다. 엄마 방에 가보니 엄마 침대 위에 하얀 봉투와 쇼핑백이 있었다. “사랑하는 우리 딸에게- 우리 딸, 일어났구나.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지? 엄마는 벌써 여행을 떠났는데. 엄마가 많이 아펐어. 우리 딸 엄마 많이 걱정한 거 엄마 다 알아. 우리 딸이 얼마나 착한데. 또 미안한 게 있네. 우리 딸한테.엄마 여행이 많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혼자 잘 있을 수 있지?

엄마가 냉장고에 맛있는 거랑, 우리 딸 생일에 먹을 케익이랑, 다 넣어 놨는데. 우리 딸 생일 촛불은 같이 불고 싶었는데. 엄마가 너무 급했나 봐. 우리 딸. 사랑하는 우리 딸. 엄마가 차려주는 마지막 아침이 될 것 같아서 엄마가 이것 저것 차렸어. 우리 딸이 이 편지를 볼 때 쯤이면 엄만, 하늘에 도착해 있겠지. 우리 딸한테 엄마 안 좋은 모습 보이기 싫어서, 어제 엄마가 이리로 왔어. 자는 모습을 보는데, 어쩜 이렇게 이쁘니? 우리 딸.

근데, 엄마는 한쪽 눈만으로 보니까 자세히 못 봤어. 아쉽다. 엄마는 여기로 왔지만 우리 딸이랑 항상 함께 있는 거 알지? 우리 딸이 보는 건 엄마도 함께 보고 있는 거니까. 너를 낳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엄마는, 엄마는, 남은 사람을 위해서 엄마의 모든 것을 주고 왔단다. 엄마가 도움이 될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렇지? 그 사람들한테 받은 돈은, 우리 딸 꺼야.

미안한 생각 하지 말고, 우리 딸 좋은 남자한테 시집갈 때, 엄마가, 아무 것도 해줄 께 없어서, 이렇게 밖에는 혼자 남을 우리 딸한테 해줄 께 없어서. 내 딸아. 씩씩하게, 엄마 없어두 잘 지내야 한다. 알았지? 엄마가 이 하늘에서 여행 끝날 때까지 계속 지켜보고 있을 거야. 우리 딸 울지 않고 잘 있는지.

너무 사랑해서, 우리 딸을 위해라면 엄마는 두려울 게 없었다. 우리 이쁜 딸의 엄마가 될 수 있어서 엄마는 정말 행복했어. 사랑한다. 너무나. 우리 딸. 엄마 사랑하지? 말하지 않았어도 엄마는 다 알고 있어. 정말, 사랑한다. 그리고, 이 스웨터는 우리 딸이 갖고 싶어 하던 거야. 이거 입고 겨울 씩씩하게 나야 한다. 엄마가, 말이 너무 많지? 엄마가 항상 함께 할 꺼라는 거 잊지 말으렴. 사랑한다. 사랑한다. 엄마가-”

하염 없이 눈물만 흘렀다. “엄마. 나, 우리 착한 엄마 딸. 나두 데리고 가지 왜 혼자 갔어?있잖아. 여행 너무 오래 하지는 마. 알았지? 여행 너무 오래하면 딸 화낼 거야. 정말 너무 너무 사랑했는데. 내가 말 못한 거, 다 알지? 나 슬플 때, 하늘을 볼게. 그럼, 엄마가 나 보는 거잖아. 지켜본다고 했으니까. 그렇지? 엄마.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엄마. 사랑해.” 이렇게 외쳐도 다시 볼 수 없는 엄마이기에 눈물이 그치지 않습니다. “엄마. 사랑해. 사랑해.엄마, 보고싶어요.” -

그냥 한 여학생의 고백이라고 단순하게 단정짓기는 너무 가슴 시리다. 가슴의 상처가 너무 선명하다. 자식을 위해서 무한정 희생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이러할진대, 과연 오늘의 자식들은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얼마나 추측할 수 있을지, 가정의 달이라서 지금 특별하게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가슴 속에 항상 자리매김 되어 있는 소중한 사랑의 기억이라면 언제라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인간으로 지녀야 할 기본 덕목이다.

‘멜라니 메카시’의 작품을 읽으면 가슴에 난 상처를 치료하는 법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남편 ‘하녹’과 공저로 ‘친절한 행동-친절 혁명을 일으키는 법’이라는 책을 썼다. 책은 ‘미국’ 전역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다음 이야기는 그녀가 ‘시카고’에서 라디오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 익명의 청취자가 들려준 것이다.

- 수지가 물었다. “엄마, 지금 뭐해?” 엄마가 말했다. “이웃집에 사는 스미스 부인에게 갖다 주려고 볶음밥을 만드는 중이란다.” 이제 여섯 살밖에 안 된 수지가 물었다. “왜?” “왜냐하면 스미스 부인이 매우 슬프기 때문이란다. 얼마 전에 딸을 잃어서 가슴에 상처를 입었거든. 그래서 우리가 한동안 돌봐드려야만 해.” “왜, 엄마?”

“수지야, 누군가 아주 아주 슬플 때는 음식을 만든다거나 집안 청소 같은 작은 일들을 하기가 어려워진단다. 우리 모두는 함께 살아가고 있고, 또 스미스 부인은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에 어렵고 힘들 때는 우리가 도와드려야지. 스미스 부인은 다시는 딸과 얘기할 수도 없고, 딸을 껴안을 수도 없고, 엄마와 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신나는 일들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단다. 넌 매우 똑똑한 아이야, 수지. 그러니 너도 스미스 부인에게 도움이 되어줄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거야.”

수지는 이 새로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스미스 부인을 돕는 일에 자신도 참여할 수 있을까 깊이 생각했다. 몇 분 뒤 수지는 스미스 부인의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한참 지나서 스미스 부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안녕, 수지.” 수지는 스미스 부인이 다른 때와 같이 귀에 익은 음악 같은 목소리로 인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스미스 부인은 또 울고 있었던 듯 했다. 눈이 부어있고 물기에 젖어 축축했다.

스미스 부인이 물었다. “무슨 일이니, 수지야?” 수지가 말했다. “엄마가 그러시는데 아줌마가 딸을 잃어서 가슴에 상처가 났고, 그래서 아주 아주 슬프시대요.” 수지는 부끄러워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손에는 일회용 반창고가 들려져 있었다. “가슴에 난 상처에 이걸 붙이세요. 그러면 금방 나을 거예요.”

스미스 부인은 갑자기 목이 메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앉아 수지를 껴안았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다. “고맙다, 수지야. 이 반창고가 내 상처를 금방 낫게 해 줄 거야.” 스미스 부인은 수지의 친절한 행동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녀는 상점에 가서 둥근 유리 안에 작은 사진을 넣을 수 있도록 된 열쇠고리 하나를 사 왔다.

열쇠를 갖고 다니면서 동시에 가족 사진을 넣고 다닐 수 있도록 고안된 고리였다. 스미스 부인은 수지가 준 일회용 밴드를 그 유리 안에 넣었다. 그것을 볼 때마다 자신의 상처가 조금씩 치료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마음의 치료에는 시간과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열쇠고리는 그녀에게 치료의 상징이 되었고, 그녀가 딸과 함께 나눈 기쁨과 사랑을 언제나 기억하도록 도와주었다. -

작은 관심과 사랑이 상상 밖의 큰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알아야 한다. 반드시 거창하고 커다란 어떤 베풂만이 다른 사람에게 충분한 기쁨과 배려가 된다고 오인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결코 세상의 이치는 그렇지 않다. 작은 어린이를 통한 새로운 희망이, 이어지는 삶에 활력소가 되고 전환점이 되어지기도 한다는 걸 보여주는 예화다.

우리가 많이 듣는 말 중에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womb to the tomb)’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생명이 꺼지는 순간까지의 긴 여정을 한 단어로 함축시킨 표현이다. 요람은 젖먹이 아기를 태우고, 흔들어 즐겁게 하거나 잠을 재우는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문명의 요람처럼, 사물의 발생지나 근원지를 비유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시작과 창조의 의미가 강하게 함축되어 있다.

인문학적으로 보면, 여성의 자궁이야말로 인류의 요람이 아닐 수 없다. 생명이 잉태되고, 자라는 곳. 어쩌면 인식의 세계이며, 형이상으로 통할 수 있는 유일한 관문이 자궁에 있을지 모른다. 자궁의 신비를 생물학적으로 혹은 해부학이나 의학적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제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자궁이 만들어지는 신비는 풀지 못할 것이다. 현상이 본질을 파헤치는 일은 지구에서 어느 농부가 자기 땅에 삽질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어느 종교 지도자가, 어느 과학자가, 인류가 형태 너머에서 자궁으로 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현상은 본질의 그림자 즉 형언(形言)처럼, 겨우 말로 시늉하여 나타낼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자궁의 요람적 의미는 형체를 초월한 영역이다. 어쩌면 인문학적으로 보면 자궁과 철학은 동의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따라서 자궁은 인간 실존의 근원이며 어머니다.

현대인들이 아이 낳는 걸 거부하는 순간부터 원인 불명의 불임은 빠르게 늘고 있다. 결국 어느 시대에는 인구가 급감하게 될 것이고, 국가는 그 대책을 세우게 될 것이며, 과학자들은 과감한 시도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랄까? 조금은 섣부른 생각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는 이미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지금 세계 곳곳의 조용한 실험실에서는 의도적으로 자궁을 만들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그러나 자궁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계속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태초의 이야기다. 그것도 사랑하기에, 고통과 책임과 희생을 수용하는 것이 자궁이라는 메커니즘이다. 어머니의 사랑과 아픔 속에서 인간으로서 존재적 조건을 갖추는 아기가 태어나는 곳.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는 가장 진실되고 아름다운 모습이 자궁의 세계다.

인류 문명사가 급변하고 있다. 인문학이 사라지고, 자연과학이 생산성을 주도하면서 인간의 생각이나 삶이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궁이 거부당하고 있다. 자궁은 우리 인간의 시작이며, 끝이다.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진보할수록 그것은 더욱 투명한 사실로 증명될 것이다. 작가 ‘안하림’이 세상을 바라보며 한탄하는 이유다.

또한 필자 ‘림삼’이 세상을 살아가며 헷갈리는 까닭이다. 대관절 오늘의 인간들에게 ‘어머니’는 무엇이며, 어머니를 대변하는 ‘자궁’은 무엇이고, 그 자궁을 타고 태어난 자식을 사랑으로 키우는 ‘요람’의 실체는 어디 있는가? 거짓 사랑이 판을 치고, 허위와 기만으로 점철된 진실이 인류를 학습하며 사육하는 이 시대에,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기 위한 지난한 행로는 어디로 이어지고 있는 건가? 생각할수록 분하다. 통탄할 일이다.

‘유아무와인생지한(唯我無蛙人生之限)’이라는 낯선 한자성어가 있다. ‘고려말’의 유명한 학자인 ‘이규보’가 몇 번의 과거에 낙방하고 초야에 묻혀 살 때 집 대문에 붙어있던 글이다.
- 임금이 하루는 단독으로 야행을 나갔다가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요행히 민가를 하나 발견하고 하루를 묵고자 청을 했지만, 집주인(이규보)이 조금 더 가면 주막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임금은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런데 그 집 대문에 붙어있는 이 글이 임금을 궁금하게 했다. ‘유아무와인생지한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도대체 개구리가 뭘까?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느 정도 이상의 지식은 갖추었기에, 개구리가 뜻하는 걸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감이 안 잡혔다. 주막에 들려 국밥을 한 그릇 시켜먹으면서 주모에게 외딴 집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과거에 낙방하고, 마을에도 잘 안나오고, 집 안에서 책만 읽으면서 살아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궁금증이 발동한 임금은 다시 그 집으로 가서 사정사정한 끝에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었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집 주인의 글 읽는 소리에 잠은 안오고 해서 면담을 신청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렇게도 궁금하게 여겼던 ‘유아무와인생지한’이라는 글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옛날,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꾀꼬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고 있을 때, 까마귀가 꾀꼬리한테 내기를 하자고 했다. 바로 3일 후에 노래 시합을 하자는 거였다. 백로를 심판으로 하고서. 꾀꼬리는 한 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노래를 잘 하기는 커녕 목소리 자체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자신에게 노래시합을 제의하다니, 웃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월등한 실력을 자신했기에 시합에 응했다.

그리고 3일 동안 목소리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반대로, 노래시합을 제의한 까마귀는 노래 연습은 안하고, 자루 하나를 가지고 논두렁의 개구리를 잡으러 돌아다녔다. 그렇게 잡은 개구리를 백로한테 갖다주고 뒤를 부탁한 거다. 약속한 3일이 되어서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심판인 백로의 판정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꾀꼬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고운 목소리로 잘 불렀기에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국 심판인 백로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말은 이규보가 임금에게, 불의와 불법으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해서 한 말이다. 이때부터 ‘와이로’란 말이 생겼다. ‘와(蛙) : 개구리 와, 이(利) : 이로울 이, 로(鷺) : 해오라기 로, 백로 로’. 이규보 자신이 생각해도 그의 실력이나 지식은 어디 내놔도 안지는데, 과거를 보면 꼭 떨어진다는 거다. 돈이 없고, 정승의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말이다.

자신은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 같은 입장이지만, 까마귀가 백로한테 상납한 개구리 같은 뒷거래가 없었기에 번번이 낙방하여 초야에 묻혀 살고 있다고 한탄하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임금은 이규보의 품격이나 지식이 고상하기에, 자신도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하고 전국을 떠도는 떠돌이인데, 며칠 후에 임시과거가 있다 해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궁궐에 들어와 임시과거를 열 것을 명하였다 한다.

과거를 보는 날, 이규보도 뜰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하고 있을 때, 시험관이 내 걸은 시제(詩題)가 "유아무와인생지한" 이란 여덟 자였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이규보는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큰 절을 한 번 올리고 답을 적어냄으로서 장원급제 하여 차후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 우리들이 오래 전부터 들어온 와이로란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진실이 외면되고 정의가 묻히는 괴사가 도처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른바 정신 나간 세상이지만, 결국 최후의 승리는 진실과 정의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이 인간다울 이유가 없다. 인간 본연의 양심과 처세가 끝끝내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사랑과 선의가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없는 시절이라면, 가정의 달이라고 외치는 공허한 목소리가 비웃음과 힐난의 횡포에 휩쓸려버리는 계절이라면, 우리가 인간의 탈을 썼다는 걸 자부심으로 여길 필요가 없다.

오늘의 시작노트가 필자의 창작이 아닌 몇 가지의 예화로 이어졌지만, 그래서 어쩌면 구차하고 구태의연한 잔소리로 치부될지도 모르겠지만, 비단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여야만 할 이유는 없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진솔한 사랑을 사랑하자는 데에, 그래서 이 5월에 더 따스하고 정감 넘치게 가정과 이웃을 돌아보면서 사랑바라기의 호흡으로 일치된 손 맞잡자는 데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어떤 이야기라도 이미 상관 없음이 아니던가? 사랑하자는 데 말이다. 서로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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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한 삶 속에 파고든 여울
고즈넉한 박동 소리
마음 속 추위는 사르락 녹아지고 지금은,
따사한 봄과 만나고 있다

꽃망울 터뜨려 옷섶 풀린 외그루 매화나무로
포근하게 너른 품
너만을 위하여서 채비했나니
오라- 오라-

설레설레 고개 흔들어
가늠턴 그 사랑이 아니다
불보듯 뻐언한
일순의 놀음마당은 아니다
짐짓 모르는 체
돌팔매만 던질 양도 아니다

질곡 거슬러 내던져져
피안 기구하는 오로지의 맘,
장마지절 봇물꼬 터져 넘치는 열정으로
세상에선 오직 하나
너 향한 연모이거늘
바람 타고 솔솔 오라

아무도 몰래 그리 와서는
없는 듯이 있는 듯이 녹아지어라
내 안에- 내 깊은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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