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선택
14권의 시집에 총 1,7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9집. 돼지 껍데기  


  "9집. 돼지 껍데기"
1998년 6월17일의 이 詩集을 끝으로 하여
더 이상은 詩集을 출판하지 않았으니
현재까지의 마지막 詩集인 셈입니다.

52편의 일반詩와
童詩集 '자라는 나무가 되어'에서
비교적 성장한 수준의 어린이들에게
권장할 만한 내용으로 사료되어 발췌한
39편의 童詩를 선별,
'童詩모음 코너'를 뒷부분에 덧붙여 편집한 詩集입니다.

특별한 독자층을 확정하지 않았기에
詩集의 성격이 약간은 애매모호한 관계로
독자들에게 '무리수를 두었다'는 비판과 아울러
그리 좋은 작품평을 듣지 못하였으며
결과적으로 긴 시간이 흐르도록
더 이상의 詩集을 출판하지 못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詩集입니다.
[ 초롱불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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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눈, 눈 *



시작노트

" 눈, 눈, 눈 " 詩作 note

지난 주 시작노트에 올 겨울이 유난히 춥지 않은 데 대한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웬 걸! 그랬더니 기습적으로 혹한이 몰아쳤다. 잠깐 사이에 한겨울의 중심에 완전히 파묻힌 셈이다. 강원도 지방을 중심으로 한파경보도 자주 발령되고, 대낮의 기온마저도 영하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본격 겨울 날씨가 목하 맹위를 떨치고 있다.

유구무언이다. 입이 방정이라고 필자가 섣불리 천기를 비판하는 바람에 심기가 불편해진 겨울이 심술을 부리니, 이제는 되레 서민들에게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얼른 태도를 바꾼다. 원컨대 대한을 접점으로 하여 추위가 조금은 후퇴해주기를 바란다. 먹고 살기 힘겨운 소시민들이 추위에 너무 움츠려들지 않도록, 이 쯤에서 적당히 온화한 겨울 맛을 내주기를 은근히 바랄 뿐이다.

‘동장군(冬將軍 General Winter)’이라는 말이 있다. 겨울 장군이라는 뜻으로, 혹독한 겨울 추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꽁꽁 얼어붙은 날씨 만큼 마음도 얼어붙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소한 추위는 꾸워서라도 한다” “대한이 소한집에 왔다가 얼어죽었다” 이런 속담을 우리는 잘 안다. 그만큼 추위는 때를 맞추어서 분명히 행세를 하고야 만다는 의미다.

추위가 밀려오는 한겨울 강원도 산속의 계곡에 들어서면 동장군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겨울이면 이 동장군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동장군의 유래가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된다면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서양의 동장군은 ‘나폴레옹’의 ‘러시아전쟁’에서 왔고, 우리나라의 동장군은 ‘임진왜란’ 때 왔다. 나폴레옹의 군사들은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 때문에 결국은 퇴각을 했고, 왜군들은 우리나라의 혹독한 추위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준 혁혁한 공을 세운 분이 바로 동장군이시다.

‘나폴레옹 1세’가 1812년 5월 31일, 45만 대군을 이끌고 ‘알프스산맥’을 넘어 러시아 원정에 나섰으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겨울을 맞게 되고, 때마침 불어닥친 초속 20m가 넘는 강풍과 영하25도의 혹한으로, 그 해 12월 8일 퇴각하게 되는데, 이를 두고 “겨울 혹한이 막강한 전투력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고 한다.

이러한 동장군이 요즘은 재래식 전쟁터의 군인들 목숨을 위협하는 게 아니라 거리로 내몰린 노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 사실을 인식하여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그들의 이웃으로, 주위를 항상 살펴보고 따뜻한 마음을 베풀고 살아야 하겠다. 노숙자가 사회의 문제로 대두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사회 문제로, 늘 언론보도의 한 축을 채우고 있다.

아무리 문명과 기술이 첨단을 걸을 정도로 발전했다 해도 근본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미 노숙자는 우리의 이웃으로 자리매김 된 지 오래다. 그러므로 눈을 감고 보지 않는다고 해도 없어지지 않는 그들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고,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가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어차피 행복과 불행이 같은 현상의 다른 얼굴일 뿐이라면, 행복도 불행도 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순리이듯, 우리의 이웃이라는 실존의 의미에 그들도 포함시키고 받아들이는 것이 돌파구를 찾는 첩경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번 겨울에 들어서서 노숙자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사실 이런 취재를 할 때면, 필자가 어떤 입장에 있으며,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할 지를 먼저 걱정하게 된다. 왜냐하면, 취재의 내용이 무엇이던간에, 곁들여야 하는 사진을 찍으면서 겪어야 하는 심리적인 갈등을 무시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진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의 시선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진 찍는 사람이 노숙자를 욕심 나는 피사체로 본다면 사진의 대상은 흥미의 대상으로 보일 것이고, 사진 찍는 이가 노숙자를 정면으로 바라보기를 두려워한다면 사진 안의 피사체는 똑같이 부끄러운 대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과도한 모자이크도 결국은 마찬가지 인상을 남긴다.

게다가 실제적인 문제도 있다. 노숙자들은 일단 자신들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 그 중에서도 특히 기자나 취재원들을 싫어한다. 그러면서도 기회가 되면 잡아서 돈이라도 뜯을 수 있는 봉으로 여기기도 한다. 게다가 민감하게도 초상권 문제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거리에 내몰린 노숙자들이라고 해도 함부로 사진을 공개해서는 안된다. 어쨌든지 사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의 문제와 정확히 일치한다.

얼마 전에 접했던 외신보도 중에 특히 시선을 끌었던 내용이 있다. 27살 동갑내기 커플 ‘퀸’과 ‘랜든’의 이야기다. 2011년에 처음 만난 두 사람은 3년의 열애 끝에 2014년 4월 약혼식을 올렸고, 2015년 10월 17일 사랑의 결실을 맺기로 했다. 그것도 ‘캘리포니아’에 있는 고급 호텔에서 말이다. 하지만 퀸과 랜든의 결혼식은 예정대로 치러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하객들은 신랑 신부 없는 피로연장에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음식’을 대접받았다고 한다. 도대체 퀸과 랜든 커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호텔 예식장 인테리어와 하객 120인분의 요리 등 결혼식의 모든 준비가 끝나갈 무렵, 예비신부 퀸은 랜든으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는다. “결혼을 그만두고 싶어.” 결혼식을 5일 앞둔 상황에서, 너무도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은 퀸은 물론 가족들도 큰 충격에 빠졌다.게다가 랜든은 결혼을 취소하는 이유도 자세히 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름다운 신부가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퀸. 그녀의 꿈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돼버렸다. 더욱이 결혼식 준비에 들인 비용은 35,000달러(약 4,000만원)나 되었다. 하지만 퀸과 그의 가족들은 결혼이 무산됐음에도 피로연은 취소하지 않았다. 결혼식 하객을 위해 준비했던 고급 요리 120인분을 지역 노숙자들에게 베풀기로 한 것이다.

처음 의견을 낸 것은 퀸의 어머니 ‘카리’였다. 딸에게 일어난 사건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지만, 퀸의 괴로운 기억을 조금이나마 좋은 추억으로 바꿔주고 싶었다. 카리의 바람처럼, 노숙자들에게 베푼 피로연은 퀸이 파혼으로 인한 슬픔을 이겨낼 만큼 따뜻하고 좋은 기억을 선사했다. 음식을 대접받은 노숙자들은 저마다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중 아내와 5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피로연장을 찾은 ‘라샤드’는 퀸과 그의 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무 가슴 아픈 일을 겪었는데도, 불우한 이웃에게 선행을 베푸는 그 마음이 정말 아름답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다. 하늘의 축복이 함께 할 것으로 믿는다.” 물론 퀸은 당일 피로연장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깊은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감사와 위로의 인사를 잔뜩 전해 들었다.

그가 어렵게 노숙자를 위한 연회를 결심해준 덕분에 정말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울 수 있었다. 아! 퀸은 랜든과 가기로 했던 ‘벨리즈(Belize) 허니문’도 취소하지 않고, 어머니 카리와 함께 떠났다. 파혼의 상처 따위에 주저앉지 않고,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괴로운 상황에서도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부드러운 마음의 소유자, 퀸과 카리. 분명 퀸에게는 더욱 멋진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피로연에 참석했던 노숙자들은 하나같이 따뜻한 마음을 느꼈을 것이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뒤쳐져있긴 하더라도 결코 사회의 문제를 일으키는 대상으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아직도 이런 마음을 지니고 있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에 감동하여, 부족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해 삶에 임하는 자세를 갖게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노숙인의 실태조사나 현황파악 등의 분석은 정부 기관이나 사회 단체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단편적인 방편이나 대응책도 나름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요는 그러한 제반 방책들이 실질적으로 노숙자들에게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적용되며 그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그저 도식적이며 탁상공론적인 대안책이나 천편일률적으로 변함없는 방안의 제시는, 늘어나는 노숙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못될 뿐 아니라 오히려 절망과 낙담만을 안겨줄 지도 모른다. 노숙자의 특성 중 하나인 ‘가시성(visibility)’으로 인한 사회적 인식은 게으르고 나태하며, 역 근처에서 음주하는 모습만 연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편견과는 달리 상당수의 노숙자는 취업에 적극적이다.

대표적으로 종사하는 일은 일용직 노동, 파지나 고물 수집, 공공근로, 그리고 자활쉼터에서 생활하는 입소인은 정규직에도 종사하고 있으며, 취업성공패키지 등 직업 교육을 받고 있기도 하고, 거리 노숙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으로는 숙식이 가능한 개인 공간의 확보, 일자리 확보, 건강문제 해결의 순이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적합한 취업 연계, 직업 교육,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면 상당수의 인원이 거리 노숙을 탈피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노숙자에게 제공되는 시설의 종류로는, 자립을 지원하기 위하여 직업상담, 근로활동, 취업훈련 등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자활시설과, 신체 및 정신장애로 자립이 어려운 노숙인에게 치료 및 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재활시설, 그리고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단기간 내 가정 및 사회복귀가 어려운 노숙인등에게 제공되는 요양시설이 쉼터의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그 외 일시보호시설, 급식시설, 진료시설 등이 설치되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시설이 개인의 사생활이 보장되는 개인적 공간이 아니라, 거리 노숙을 감소하기 위한 수용 및 목표에 의한 관리를 통한 효과성을 추구하다 보니, 노숙인 쉼터가 가급적이면 많이 입소할 수 있도록 설치되고 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사적인 공간에서 생활하고 싶어하는 인원은 시설에 입소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게 된다.

물론 이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노숙인 쉼터에서는 균형잡힌 식사를 제공하고 개인 위생을 청결하게 할 수 있는 샤워실, 세탁실 등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대부분 사회적 관계망이 두절되어 있는 노숙인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현장의 사회복지사와 새롭게 관계를 맺고 유지할 수 있는 기반도 구축되어 있고, 개별 노숙인의 욕구와 의지에 따라 단체생활을 통해 새롭게 목표를 설정하고 실천할 수도 있다는 장점도 또한 있다.

한편 근래에는 임시주거, 임대주택, 그룹홈 등 좀 더 다양한 형태의 주거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다. 한편, 노숙자들은 결핵, 당뇨 등의 만성 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크므로 의료 지원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 조사된 통계에 의하면 호흡기 질환이 3,476건(35%)으로 가장 많고, 고혈압(34%)이 다음으로 많았으며, 당뇨 1,386건, 소화기질환 1,323건, 알콜중독 220건으로 나타났다. 전염병도 450건이 발생했으며 결핵 112건, 간염 59건, 성병 24건으로 나타났고, 바이러스 결막염, 피부사상균증, 손발톱과 수염백선 등 기타도 255건이나 됐다.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노숙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거리의 노숙자에 대한 정확한 신상파악과 임시 거주지역에 관한 정보파악을 치밀하고도 신속하게 이행함은 물론, 그들에게 목욕, 이발소, 보건소, 순회 진료 시설 등을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체계적인 관리로 이탈과 소외를 미연에 방지함은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는 아주 작은 피해도 돌아가지 않도록 양 측의 눈높이에 적합한 맞춤대응 전략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노숙자를 위한 프로그램(Homeless Program)’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방안 중의 하나다. 이것은 1991년 ‘산타모니카’, 캘리포니아 경찰에서 노숙자를 위해서 실시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노숙자 문제의 악순환을 없애고, 지역사회의 주민들과 사업자들을 위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 특히 4명의 경찰관이 한 조가 되어 노숙자들에 대한 지역주민의 관심을 직접적으로 끌어들이는 경찰조직을 만들어 노숙자 연락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그 효과가 입증되어 오늘날에는 전 세계에서 롤모델로 선정하여 배우고 있다.

흔히 노숙자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예외 없이 몇 개의 단계를 거친다고 본다. 대체적으로 ‘동정(compassion)’, ‘동정쇠약(compassion fatigue)’, ‘낙인(stigma)’, ‘범죄화(criminal)’의 단계를 거친다고 보고 있다. 이는 물론 사회 구성원 개별 인식 주체마다 다르므로 일반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대개의 시민은 위에서 언급했던 노숙자에 대한 가시성 때문에 노숙의 원인을 개인의 게으름과 나태함, 알코올 사용 장애, 정신건강상의 문제 등, 개인적 원인으로 노숙자가 되었다고 믿는 부정적 인식이 많은 편이다.

이러한 점은 노숙자 사회복지 현장에서 장애로 작동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표적으로 노숙자 쉼터의 이전이 지역주민의 반대로 무산된다거나, 항의성 민원으로 인해 쉼터가 폐쇄되는 경우다. 하지만 엄연히 우리 사회 구성원인 노숙자 역시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해서 살아가야 하며 특히, 노숙자의 대부분이 성인 남성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이 취업 또는 직업 교육에 적합하고 거리적 접근성이 용이한 곳에서 지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통합(intergration)’을 중심으로 놓고 여러가지 정책 계획을 입안해야 한다. 노숙자 문제는 본질적으로 우리사회의 불평등의 심화, 빈곤문제 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개인적, 사회구조적 요인을 함께 고려하는 균형적 시각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다. 전문가들이나 위정자들이 효율적인 대책을 지속적으로 입안하여 시행함으로써, 사회 문제로 확산되는 것을 잘 조율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바다.

노숙자라는 단어 자체가 ‘길이나 공원 등지에서 한뎃잠을 자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아무리 추위를 막기 위해서 궁리를 한다 해도 이 엄동설한이 그들에게는 정말 가혹하고 매서운 삶의 극점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대대적이고 거창한 대책과 방편 이전에,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온정 담긴 배려야 말로 가장 시급한 상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노숙자가 되기 이전에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었고, 우리의 친구였다. 우리와 같이 호흡하며 같은 꿈과 소망을 향해 나아가던 우리의 동료였고, 우리의 동반자였다. 비록 지금은 다른 모습으로, 다른 얼굴로 우리로부터 소외된 행렬에 속해있지만, 그들도 다시금 상황에 따라서 우리의 곁으로 얼마든지 되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인생길을 가노라면 누구나 힘이 들고 지칠 때가 있다. 그 힘든 길에 동반자가 있다면 조금은 위안이 될 것이다. 힘든 길의 여정을 위해 동행하며 말벗이 되는 친구가 되어줄 사람이 옆에 있다면 축복받을 일이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금 힘을 내어 앞으로 갈 수 있도록 어깨를 내어주는 친구가 있다면 행복한 일이다. 때로는 인생의 여정이 험난하여 포기하고 싶어질 때 따뜻한 가슴으로 다가서 손 내밀어 잡아주는 동반자가 있다면 성공한 삶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지금 무거운 짐 다 짊어지고 비록 힘겹게 걸어가더라도, 우리와 함께라면 웃음 머금고 불평하지 않는 걸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을 동행하는 우리들에게 감사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서로 바라보고 웃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몰아쳐도 우리가 함께 하는 길이라면, 거뜬히 헤쳐나갈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참 좋은 동행이지 않는가?

가끔 어두운 벼랑으로 떨어진다 해도 그것이 걸어야 할 길이라면, 다시 오를 수 있도록 주저함 없이 등을 내어주고 싶다. 실상은 같이 웃고 우는 인생길이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뜨거운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있는 따뜻한 가슴 하나 간직하면, 그 삶이 행복한 삶이지 않는가? 서로가 서로를 감싸안는 사랑 하나 있으면, 함께 가는 인생길이 힘겹지만은 아닐 거다. 그렇게 힘을 내면 서러운 것도 힘든 것도 너끈히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더불어 그 길을 함께 할 수 있으면 그것이야말로 크나 큰 행복이요, 좋은 인연이 아닐런지 모르겠다. 마지막 삶의 다리를 건널 때 우리가 함께 했던 길에, “당신이 있어 행복했다”는 말 한마디를 서로 정겹게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 그렇게 후회 없는 삶이 되도록 애써 마음 열어 이웃을 돌아볼 일이다. 지금 바로 이 강추위 속에서 동장군과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우리의 이웃, 노숙자들을 만나러 걸음해 볼 일이다. 그리고 작은 손일 망정 선뜻 내밀어 그들의 언 손을 잡아줄 일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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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되고,
슬픔이 되고,
그렇게 싸아한 아픔의 이야기로 되어
나리는 눈발이 더러는
무덤 위에 머물러 시절 탓하고 섰네

산뜻한 산 뜻이야
눈 덮인들 가리리요만은
떠나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되어
흩뿌려지는 눈발이 더러는
무덤 속에 스미어 작별 탄(歎)하고 있네

워낙 잦은 변덕
흉흉한 인정만큼이나 노박이로 덮여오는
눈, 눈, 눈,
우리네 설운 가슴 속내
칼바람으로 시린 겨울은
저녁무렵 삭풍 신호 삼아
여지없이 눈발 날리네,
산에 - 무덤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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