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시인이 될 수는 있지만
아무나는 아니지

시를 알려주시던 옛 은사님 기억
사느라 바빠
미처 돌아보지 못하던,
썰물인 양 빠져나가는
과거 흔적 아래 남은 건
그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한 걸음도 떼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나 밖에 없음!

딱 거기까지 생각하다
묘한 패배감에 사로잡히다
차라리 생각을 말아야지

더디 가는 세월 좇아
떠나온 나그네 길
의례껏 홀로이 서서 마주친
울울창창 미로 닮은
수목참천의 싱그러움조차
참 섧고도 섧더이다

구름 되어 흐르더니
바람으로 할퀴고 간 기적의 시간
잡티 한 점 없는 피부에
생겨난 상처

비록 이다지 쓰리고 아프지만
그 시간 삼키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뽀얀 새 살 돋아나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문득 주위 둘러보면
욕망이 내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머리카락 헤집고서
비웃으며 달아나는
철없는 바람소리만 휑하니
들려나는 아침

시인이 사는 나라에서는
아침마다 해를 대신한
바람만 동녘으로 떠오르다
기적의 이름 달고서
그 잘난 구절 자랑삼아서
어느새 시인 되어진 바람이
바람 아닌 척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