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 할 때를 알면서도
떠나지 않는 나보다
떠나면 안되는 걸 몰라서
그저 떠나가는 네가
어쩌면 훨씬 더
서러울 지도 몰라

남겨지는 아픔이라면
떠나가는 슬픔보다도
차라리 아름다운 진실,
뒤돌아서는 이름에
별리의 손짓 체념으로 얹을 제

어차피 가진 것 하나도 없어서
나눌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우리들 짧은 애련,
태산인 척 쌓이는 미련 때문
옷깃 여미며 주저앉다

너, 이제는 가도 된단다
지금이라면 그냥
훌쩍 떠나가도 되느니
이토록 눈물겨운 노을이 지고
피처럼 붉은빛 누리
멍에로 걸머졌기에

길 떠날 차비 갖춘 바람도
할 만큼은 한 셈,
주저리 엮은 사연다발
훌 훌 훌 죄다 털고
체온 맞대어 떠날 양이면

모진 세월의 욱여쌈에
손짓 발짓 모두어
내밀한 기억 뒤집으면서
땅 속 깊이 박힌 옛 터에
나이테 자라나는데

하나씩 하나씩
이슬로 맺어지는 잎새마다
인연 매어달려
흥건히 적셔진 눈물자욱
되살아나는 상처의 흔적

예 홀로된 내가
게 가버린 너를
오늘도 그리고 섰구나
시바의 여왕이여,
너는 정녕 어디로 갔느뇨?